신마 연비강 64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64화
제64화. 곡성 혈사
호북 양양은 그 옛날 제갈무후에 관한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는 곳이자 후손을 자처하는 제갈세가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지금도 제갈세가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으나 명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양양성 안으로 들어선 비강은 행인을 잡고 곡성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저쪽으로 이십여 리쯤 가다 보면…….”
행인이 대답을 끝내기도 전에 이연은 이미 곡성으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었다.
“길을 알고 있었습니까?”
“전에…… 오래전에 이곳에 있었어.”
비강은 말없이 이연의 뒤를 따라 걸었다.
곡성으로 가는 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크지 않은 호수와 높지 않은 산들이 겹겹이 어우러져 있었고 계곡마다 맑은 물이 흘렀다.
이연은 아름다운 경치를 눈에 담을 겨를조차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관도를 벗어난 그녀는 계곡을 낀 소로를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다 쓰러져 가는 두 채의 초옥 앞에 걸음을 멈췄다.
넓은 마당은 마른 풀이 가득했고 봄을 알리기라도 하듯 기화이초들이 막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아!
‘이 여인의 집이었구나.’
비강은 하염없이 초옥을 바라보고 있는 이연을 훔쳐보며 긴 탄식을 흘렸다.
그녀는 마른 풀들을 헤치며 초옥 뒤로 돌아갔다.
큰 무덤 하나와 작은 무덤 하나, 뒷마당에는 마른 풀로 무성한 두 개의 무덤이 사이좋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비강은 검을 뽑아 무덤을 뒤덮고 있는 마른 풀들을 전부 쳐 냈다.
“그만 가자.”
물끄러미 무덤을 바라보고 있던 이연이 먼저 신형을 돌리고 비강도 그녀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관도로 나온 두 사람은 얼마 걷지 않아 곡성에 도착했다.
곡성은 가구 수가 사백 채를 넘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오래전에 이 곡성을 중심으로 녹림의 산채들이 많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시절이 있었어. 산적들과 제갈세가는 공생 관계였어. 주기적으로 뇌물을 바쳤으니까.”
고저 없던 이연의 목소리에 약간이나마 힘이 들어갔다.
비강은 그녀의 이야기를 토대로 전후 사정을 추측했다.
산적들을 몰아낸 협객이 바로 이연이었다.
그 일로 인해 산적들에게 뇌물을 받고 있던 제갈세가는 그녀를 제거하고자 했을 것이고, 공교롭게도 부군과 아이가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어쩌면 광인이 되었다는 소문조차도 제갈세가가 퍼뜨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황곡에는 어떻게 들어가신 겁니까?”
걸음을 옮기던 이연은 또다시 발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제갈세가에 복수를 하고 싶었어. 많은 가인들을 죽여 없앴지만 제갈세가를 멸절시키기에는 내 힘이 모자랐지.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지아비와 내 아이의 원수를 갚아야 했어.”
그 시절, 강호에는 소문 하나가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에 맞서려는 자는 황곡으로 들어가라.’
“그곳에서 림주님을 만나 결국 원수를 갚았지. 전부 죽이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어. 제갈세가에도 내 아이와 같은 어린아이들이 있었거든.”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여인이었다.
비강은 이연의 모습이 너무 슬퍼 보여 얼른 말을 돌렸다.
“그만 가시죠. 점심으로 맛있는 잉어찜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 * *
이번에도 그녀는 잉어찜을 먹지 않았다.
객잔을 나온 두 사람은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을 살폈다.
평화로운 마을에 평화롭게 오가는 사람들만이 비강의 눈 안으로 들어왔다.
‘북림의 순찰조들이 수시로 드나들었을 텐데 꼬리조차 잡지 못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비강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곡성에 무가와 무문들이 있습니까?”
“곡성 유가가 있소이다. 저기 저쪽으로 돌아가 보시오.”
행인의 말대로 곡성에는 무가 한 곳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담 너머로 보이는 전각들의 숫자만 열 채가 넘는 것이 꽤 큰 규모의 강호 무가였다.
“유가를 아십니까?”
“예전에 이곳도 제갈세가의 영역이었어. 유가는 제갈세가가 쇠퇴하고 난 후에 생겨난 가문일 거야.”
유가를 살펴보던 비강은 다시 객잔으로 되돌아갔다.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는 낮이 아닌 밤에 움직이기가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쉬고 계십시오.”
별채의 방 두 칸을 잡은 비강은 방 한 칸에 이연을 들게 하고 객잔 주인을 찾아 나섰다.
* * *
의자에 앉아 은자를 세며 주판을 굴리던 주인은 비강이 다가와 앉아 얼른 은자를 훔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손님, 필요한 것이라도 있으신지요?”
“심심하여 주인장과 이야기라도 나누려고 나왔소.”
비강은 주인의 손에 은자 한 냥을 슬쩍 쥐여 주었다.
이에 객잔 주인은 크게 반색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이 마을에 관한 일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으니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특히 유가에 관한 일은 전부 알고 있습니다.”
객잔 주인은 장사를 하는 사람답게 눈치가 아주 빨랐다.
“그동안 마을에 불미스러운 일이나 의문스런 사건 같은 것은 없었소?”
하하하…….
“손님께서는 곡성 유가에 관한 강호의 소문을 듣지 못하셨군요. 유가의 가주님은 공명정대함과 인자함으로 호북에 명성이 드높은 분이십니다. 그분 덕분에 곡성은 지금까지 무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해서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전부 가주님을 찾아가지요.”
보통 양민들은 강호의 일에 관심이 많지만 함부로 끼어들지는 못한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곤경에 처하거나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에 거리를 두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객잔 주인처럼 칭송만 하는 일이라면 곤경에 처하거나 목숨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외지에서 강호인들은 많이 들어오는 편이오?”
“아닙니다. 가끔 북림의 순찰조들이 들르거나 경치에 반해 묵고 가는 강호인들이 전부입니다. 가주님께선 이름 없는 낭인의 방문도 거절하지 않기로 유명하시지요.”
‘전부 칭찬 일색이라 건질 만한 게 하나도 없군.’
비강은 객잔 주인을 통해 유가에 관한 정보를 캐 보려던 일을 포기했다.
“이야기 잘 들었소.”
객잔 주인과 헤어져 방으로 돌아온 비강은 고민에 휩싸였다.
‘모르겠어. 림주는 곡성에서 무엇을 알아내고 싶은 것인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생각에 잠겨 있던 비강은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이연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해야 한다.
그녀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너무 신경이 쓰였지만 그 수고로움이 싫지는 않았다.
* * *
스으으…….
비강은 어두운 밤을 이용해 유가의 담을 넘었다.
여느 무가나 무문들처럼 순찰을 도는 가인들이 눈에 띄었다.
툭.
횃불이 비치지 않은 어둠 속으로 스며든 비강은 땅을 가볍게 차고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
지붕 위로 날아내린 비강은 기와를 차며 다른 지붕으로 신형을 이동시켰다.
휘리리리…….
밤하늘을 가르며 다른 전각의 지붕에 내려선 비강은 바로 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밤이 늦었으니 그만 들어가 쉬어라.”
“예, 아버님. 편안히 주무십시오.”
“오냐.”
비강의 귀로 들리는 대화는 여느 평범한 가문의 저녁 인사와 다름이 없었다.
‘틀렸군.’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간 비강은 기와를 침상 삼아 드러누웠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비강이 막 자리를 뜨려는데 아래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나온 가주는 마당을 가로질러 다른 전각으로 걸어 들어갔다.
비강은 가주가 들어간 전각의 지붕으로 날아 뛰어 대들보를 잡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무래도 일찍 돌아가셔야 할 것 같소. 오늘 곡성에 수상한 자들이 들어왔는데 북림의 백리혈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소.”
“그럼, 북림에서 유가를 의심하고 있다는 소리가 아니오?”
“그건 아닌 것 같소. 백리혈은 머리보다는 힘을 쓰는 자라 우리 유가를 의심했다면 바로 쳐들어왔을 것이오.”
“그렇다면 이른 새벽에 떠나겠소.”
방 안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비강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졸지에 힘만 믿고 날뛰는 놈으로 소문이 났군.’
대들보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간 비강은 다른 전각의 지붕으로 건너뛰어 담장을 넘어갔다.
조심성이 많은 자라면 정문이 아닌 후문을 통해 유가를 빠져나갈 것이다.
비강은 후문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인시를 막 넘길 무렵 낭인으로 보이는 사내 둘이 후문을 열고 주변을 살폈다.
문을 나선 그들은 비강이 숨어 있는 숲을 통해 유가를 빠져나갔다.
그들은 새벽길을 걸어 양양으로 통하는 관도를 부지런히 걸었다.
‘이상한데? 저놈들의 본거지는 곡성 인근이 아니었던가?’
가주와 저들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면 저들을 의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기서 좀 쉬었다 가세.”
두 명의 낭인은 양양으로 통하는 관도를 걷다가 나무 아래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그들은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면서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구우욱…… 구우욱…….
새벽이 지나가고 있는 관도에는 새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던 낭인들은 나무 뒤로 나 있는 소로를 통해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호수를 지나고 계곡을 오르던 그들의 신형이 바위틈으로 사라졌다.
“저곳을 지나면 어디가 나옵니까?”
먼 곳에서 낭인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비강이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산적들이 사용하던 산채가 나와.”
언제 뒤를 따라왔는지 커다란 나무 뒤에서 이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돌아가십시오. 저 혼자 움직이겠습니다.”
“심심하니까 같이 가.”
이연은 비강의 말을 무시하며 먼저 계곡으로 신형을 날렸다.
비강도 급하게 이연을 앞질러 계곡의 바위틈으로 들어갔다.
계곡의 바위틈은 멀리서 보기에는 아주 좁아 보였지만 실제 크기는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도 남을 만큼 넓었다.
어둠 속을 걸어 들어가던 비강은 옆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얼른 몸을 틀었다.
우두둑.
자신을 향해 검을 들이밀려던 사내의 목을 꺾어 버린 비강은 그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뉘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던 비강은 어둠 속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끄르르.
괴이한 소리와 함께 검에 목을 찔린 사내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둠을 통과한 비강의 눈으로 환한 빛이 쏘아져 들어오고 노랗고 하얀 꽃잎들이 막 피어나기 시작한 넓은 평야가 나타났다.
‘이곳은 마치 다른 세상 같군.’
이십여 채의 초옥들이 나란히 들어서 있는 반대편에는 푸른 풀들이 무성한 드넓은 연무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연무장 한가운데는 일백여 명에 가까운 무인들이 무공을 연마하고 있었다.
“전진과 아미, 종남의 무공들이야.”
“백건적이로군요.”
비강은 무공을 연마하고 있는 이들을 백건적이라 단정했다.
“그럴지도.”
대꾸가 끝나기 무섭게 이연의 신형은 연무장을 향해 날아갔다.
“적이다!”
무공을 연마하고 있던 자들도 날아드는 이연의 모습을 발견했는지 사방으로 퍼지며 몰려들었다.
스걱. 스악.
커억!……!
이연의 검은 잔인하고 단호했다.
그녀의 검이 스치는 곳마다 목이 달아나고 무복이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퍼퍽, 퍽.
이연을 포위하며 달려들던 적들의 머리에 작은 구멍이 생기고 피가 흘렀다.
적들의 머리에 구멍을 만들어 낸 비강은 검과 철봉을 회전시켰다.
따당! 땅……!
끄으으…… 아아악!
검과 철봉은 적들의 가슴을 가르고 머리를 부쉈다.
사라락…….
눈부신 검광은 밝은 햇빛을 가리며 비강의 전신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따다다…… 당!
어느새 하나로 합쳐진 창은 비강의 전신을 보호하듯 빼곡한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창날에 의해 적들의 목이 베어져 굴러떨어지고 창대에 의해 가슴이 꿰뚫렸다.
“월하파랑(月下波浪)!”
이연의 입에서 낭랑한 외침 소리가 터져 나오고 그녀의 검에서는 다섯 줄기의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적들을 휩쓸었다.
파파파팍!
크아악! 끄아아아……!
기운이 스치고 간 땅거죽은 길게 패이고 적들의 몸은 세로로 갈라져 나뒹굴었다.
우웅!
거의 동시에 비강의 창도 진동을 일으키며 막강한 기운이 감싸 돌았다.
콰쾅! 콰콰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