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63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63화
제63화. 협녀 이연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과 함께 흰 머리카락이 간간이 섞여 있고 눈가에 주름이 짙은 것으로 보아 여인은 사십 대 후반이나 오십 대 초반처럼 보였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거리에서 오직 그녀만이 다른 세상에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괴이한 여인이로군.’
공손황도 비강이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허리에 검을 차고 있으니 강호인은 맞는 것 같은데 온전한 정신은 아닌 모양이오.”
비강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고개를 끄덕이며 옥돈조와 함께 거리를 걸었다.
“내가 잘 아는 객잔이 있소. 그곳으로 갑시다.”
공손황과 나란히 거리를 걷던 비강은 힐끗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멍하게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여인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꼬리가 붙었어, 조장.”
옥돈조의 조원들도 여인이 뒤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모른 척해.”
거리를 걷던 옥돈조는 하나둘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이윽고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쯤 비강과 공손황은 몸을 돌려 여인과 마주했다.
“정체를 밝혀라.”
공손황의 입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사방으로 흩어졌던 조원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여인의 퇴로를 막았다.
그러나 흐릿한 눈을 가진 여인에게서는 긴장감이라고는 한 올도 느껴지지 않았다.
“네가 연비강이구나. 그렇지?”
흐릿한 눈동자는 오직 비강만을 향했다.
“그렇소. 당신은 누구요?”
“심부름을 왔어. 림주님의 심부름.”
여인의 대답이 너무 뜻밖이었는지 공손황은 물론이고 비강까지 놀랐다.
“림주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소?”
“아니. 하지만 곧 생길 거야.”
여인의 대답은 흐릿한 눈빛만큼이나 심하게 모호했다.
“무슨 뜻이오?”
비강의 질문에 여인은 품에서 봉서를 꺼내 건넸다.
“너만 확인해. 다른 사람은 보여 주지 말고.”
“알겠소.”
서신을 건넨 여인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멀어져 가는 여인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는지 비강은 뜻밖의 말로 그녀를 붙잡았다.
“식사는 하셨소? 식전이라면 밥이나 먹고 가시오.”
인파 속으로 걸음을 옮기던 여인은 걸음을 멈추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잉어찜 잘하는 사람을 알고 있나? 잉어찜을 먹고 싶어.”
‘정말 이상한 여자야.’
비강은 여인의 공허한 눈빛이 왠지 꺼림칙했지만, 이대로 그녀를 돌려보내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여기 공손 소협이 안내할 거요.”
허어…….
공손황은 갑자기 자신까지 끌어들이는 비강을 어처구니없어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싫다는 내색 하나 없이 잉어찜을 잘하는 객잔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정말 모를 친구로군.’
* * *
비강의 약속대로 공손황은 잉어찜을 잘하는 객잔으로 여인을 인도했다.
그러나 여인은 먹음직스러운 잉어찜을 눈앞에 두고도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어서 드십시오.”
가만히 잉어찜만 내려다보고 있는 여인이 마음에 걸렸는지 비강이 거듭 권했다.
“맛이 없어 보여.”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있던 옥돈조의 조원들은 여인의 대답이 너무 황당해 손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여인은 조원들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잉어찜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강은 여인의 공허한 눈빛 속에서 왠지 모를 지독한 아픔을 느꼈다.
“어서 드십시오.”
비강이 젓가락으로 잉어찜의 살을 발라 앞에 내놓자 흐릿했던 여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여인은 젓가락을 들어 잉어의 살을 한 점 맛보았다.
“그 맛이 아니야.”
젓가락을 내려놓은 여인을 살펴보던 비강은 점소이를 불렀다.
“두부탕 한 그릇 가져다주게.”
주문을 받은 점소이는 잠시 후에 잠시 후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두부탕 한 그릇을 내왔다.
“드십시오.”
잉어찜을 원했던 여인은 잉어찜에 손도 대지 않고 두부탕과 밥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한데 존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식사를 이어 가던 공손황의 은근한 질문에 여인은 무척 혼란스러워했다.
“내 이름? 내 이름이 뭐더라…… 아, 이연. 내 이름은 이연이었어.”
조원들은 그 이름을 모르는 듯했지만 공손황은 깜짝 놀란 눈치였다.
―이연이 누구요?
비강의 전음을 받은 공손황은 여인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했다.
―협녀(俠女)로 불리던 강호의 협객이자 무공의 고수였소.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눈 밖에 나 부군과 어린 아들까지 목숨을 잃고 광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소.
공손황의 전음을 들은 비강은 이 여인이 무척 안쓰러웠다.
“너는 다른 사람들과 아주 다르구나.”
“무슨 뜻입니까?”
“눈 속에 분노가 가득해.”
여인을 안쓰럽게 응시하던 비강의 눈빛이 심하게 떨렸다.
강호에 나온 이래 이런 사람은 처음 만났다.
도대체 이 여인은 자신의 겉모습에서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꺼림칙한 여인이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묘한 이끌림을 느끼게 하는 여인이기도 했다.
먼저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온 비강은 림주의 전서를 확인했다.
[양양 곡성에 가 보아라. 네가 찾고자 하는 것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
워낙 짧은 글이라 풍천양의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얼른 알아차리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림주가 인편으로 서신까지 보냈으니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전서를 객잔의 아궁이에 넣자마자 옥돈조와 이연이 밖으로 나왔다.
“여기서 그만 헤어져야 할 것 같소.”
공손황은 전서에 대해 묻지 않았다.
“아쉽게 되었소. 조금 더 연 소협과 함께하고 싶었는데.”
“나 또한 마찬가지요. 그럼 무운을 빌겠소.”
공손황과 비강은 서로를 향해 머리를 숙이며 손을 모았다.
옥돈조의 조원들도 비강과 말없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작별 인사를 나눈 비강은 가만히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이연과 응시했다.
정말 마음 쓰이게 하는 여자였다.
“맛있는 잉어찜을 하는 곳을 알고 있는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그렇게 해.”
뜻밖에도 이연은 비강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북림에서 봅시다.”
멀어져 가는 비강과 이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조원 중 하나가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조장, 우리 북림에 저런 이상한 여자가 있다는 이야기나 소문이라도 들어 본 적 있어? 저 여자가 하도 이상한 말만 하니까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였어.”
이연이라는 사람은 알았지만, 그녀가 북림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렇다는 것은 저 여인도 아마 금지에서 나왔다는 뜻일 터.
“이 일은 비밀로 해. 우리가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으니까.”
공손황은 비강의 뒷모습만을 좇았다.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친구로 지내자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으나 안타깝게도 그 말을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남선의 진상이라는 북궁도와 친하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은근히 부럽기까지 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나 강호 무림을 통틀어 젊은 기재 중 북궁도만 한 기재는 없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만한 협객도 없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기재는 기재를 알아본다고 비강과 북궁도는 친한 벗이 되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 * *
“북림은 어떻습니까?”
이연과 나란히 길을 걸으며 비강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평소와 같아.”
이연은 세상사에 도통 관심이 없어 보였다.
“늦게 돌아가면 림주에게 꾸중을 듣지 않겠습니까?”
“괜찮아. 그럴 분이 아니야.”
그럼에도 풍천양에 대한 신뢰는 대단해 보였다.
“수많은 요리들 중에 굳이 잉어찜을 고집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연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지런히 옮기던 발을 멈추더니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래전에 아주 맛있게 잉어찜을 해 주던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는 한 여인의 부군이자 갓난아이의 아버지였다.
부인은 강호의 유명한 고수였으나 부군은 백면서생이었다.
백면서생은 부인을 위해 가끔 잉어찜을 만들고 먹기 좋게 살을 발라 주기까지 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온 부인은 난자가 되어 죽어 있는 부군과 갓난아기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날로 부인은 세상을 전부 잃었다.
“제가 쓸데없는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응? 뭐라고 했지?”
여인은 여전히 흐릿한 눈으로 멈췄던 걸음을 옮겨 갔다.
비강은 관도에 오가는 사람이 없자 가볍게 몸을 띄웠다.
스으으…….
바람에 실려 가는 깃털처럼 비강의 몸은 저 앞으로 날아갔다.
그에 맞춰 이연의 신형도 같이 움직였다.
그렇게 반 시진을 달렸을 때 비강은 관도에서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이연은 비강이 산길로 접어드는 이유조차 묻지 않았다.
산을 가로질러 다시 관도로 내려왔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다.
“날이 저물기 시작했으니 객잔을 잡고 묵어가야겠습니다.”
객잔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잉어찜을 하는 객잔을 찾는 일이었다.
서너 개의 객잔을 지나쳤을 때는 이미 사방에 짙은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다행히 작은 호수를 끼고 있는 객잔을 발견한 비강은 그곳으로 들어갔다.
“잉어찜 있소?”
“물론입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잉어찜을 요리해 올리겠습니다.”
객잔 주인의 말을 온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비강과 이연은 객잔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정해 앉았다.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이연의 모습을 확인한 비강은 바로 술을 주문했다.
객잔 주인이 술과 소채가 먼저 내오자 비강은 술잔에 술을 채워 건넸다.
말없이 술 한 병을 다 비웠을 때 기다리고 기다리던 잉어찜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연은 잉어찜을 바라보기만 할 뿐 젓가락을 가져가지 않았다.
비강은 살을 발라 그녀의 앞에 내놓았다.
“그 맛이 아니야.”
“여기 가장 잘하는 요리로 하나 더 내오시오. 술도 한 병 더 내오고.”
객잔 주인은 좋아라 하며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 * *
침상에 몸을 뉘었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을 뒤척이는 비강의 귀로 옆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방은 이연이 들어 있는 방이었다.
‘정말 신경 쓰이게 하는 사람이야.’
한참 동안 몸을 뒤척이다 결국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온 비강은 마당에 서서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는 이연을 보게 되었다.
비강은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쏟아질 것 같은 수많은 별들과 환한 달이 두 눈을 가득 채웠다.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대답을 기대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답이 들려왔다.
“내 아이의 별.”
“그 별의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의명, 임의명.”
죽은 어린 아들의 이름이 아마도 ‘임의명’이었을 것이다.
“당신은 좋은 어머니입니다.”
위로의 말을 건넨 것뿐이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아주 강렬했다.
사방이 얼음으로 뒤덮이듯 순식간에 싸늘한 살기가 비강의 전신을 엄습해 왔다.
스악.
파르르…….
비강의 목이 있던 자릴 베어 낸 이연의 검이 공중에서 파르르 떨렸다.
“미안합니다.”
일 장 너머에서 비강은 이연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나는…… 나는 좋은 어머니가 아니야. 나는…….”
처음으로 이연의 눈동자에 감정이라는 것이 깃들었다.
“당신은 좋은 어머니입니다.”
“거짓말…… 거짓말하지 마.”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 따가운 살기가 비강의 온몸을 휩쓸었다.
“세상에는 자식을 버리는 부모들이 있고, 죽인 어머니도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부모가 아니야.”
분노를 담아 비강의 눈을 직시하던 이연의 눈동자는 극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눈앞에 있는 아이가 바로 그런 부모의 아이라는 것을.
비강의 목을 향하고 있던 검이 서서히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감정을 담았던 그녀의 눈동자는 다시 빛을 잃어 갔다.
“들어가 자야겠어.”
* * *
이연은 여전히 시간이 날 때마다 흐릿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강은 그녀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고 있기에 그러한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곧 양양 곡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