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61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61화
제61화. 악녀의 눈물
“나는 부림주가 북은각이 나서지 않는 이유에 대해 내게 물어 오리라 생각했소. 부림주는 북은각이 나서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내게 묻지 않은 것이오. 그렇지 않소? 부림주.”
“저 또한 림주님이 직접 까닭을 밝히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약추완을 응시하던 풍천양은 시선을 거뒀다.
“돌아가시오.”
“예. 그럼…….”
풍천양은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약추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바보 같은 녀석. 차라리 나를 저버리고 사형의 사람으로 살아가지 그랬느냐.’
풍천양은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눈물만 흘리고 있던 그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순찰단의 연비강을 불러오라.”
“연비강은 악가의 습격을 조사하기 위해 어제 떠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비강과 함께 옥돈조도 하남으로 출발했습니다.”
방 밖에서 호위 무인의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그 녀석이 정주로 떠났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지 잠시 생각에 잠겼던 풍천양의 입가에 허탈한 웃음이 떠올랐다.
허허…….
‘원한은 반드시 갚아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이로구나.’
선물로 준 천마지병을 순찰단의 연무장에서 부숴 버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악가가 습격을 받아 수많은 가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북림까지 습격한 놈들이니 악가에 대한 습격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여긴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천마지병이라는 말에는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천마지병이 강호인들을 끌어들이기에는 훌륭한 미끼일 것이나 사패를 속이기에는 어려운 미끼였다.
이제 연비강이 악가로 떠났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야 비로소 머릿속으로 번뜩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내 눈을 속이기 위해 애를 썼구나. 내가 건네준 천마지병은 하오문에 의해 악가로 옮겨졌겠지. 그다음에는 강호인들에 의한 악가의 습격이 있을 것이고.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악가가 아닌 악규의 목이 아니겠느냐.’
쯧쯧…….
풍천양은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몇 시진 정도 기다렸다가 북림의 무인들과 함께 출발했다면 좋았을 것을. 어젯밤에 악규는 죽었을 것이야.’
* * *
옥돈조를 이끌고 정주로 향하던 공손황은 바람에 실려 오는 은은한 피 냄새를 맡았다.
“조장, 무슨 일이야?”
조장이 걸음을 멈추자 조원들도 걸음을 멈췄다.
주변을 살펴보던 공손황은 관도와 조금 떨어져 있는 공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곳과 별다를 바 없는 흔한 들판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스스슥…….
공손황은 발바닥으로 바닥의 흙을 긁었다.
‘역시.’
흙을 뒤집자 선명한 핏자국이 보였다.
“근방을 수색해 봐.”
조원들도 핏자국을 알아보고는 급히 주변을 훑었다.
“조장, 여기야!”
들판 너머 숲을 수색하던 조원 중 하나가 공손황을 불렀다.
공손황과 조원들이 급히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찢어진 무복들과 뼛조각, 핏물이 흥건한 현장이 나타났다.
“늑대들이 잔치를 벌였군.”
끔찍한 모습의 해골들이 뒹구는 현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펴보던 공손황은 널려 있는 병기 중 창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회운창 악규.”
공손황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조원들이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게…… 무슨 말이야? 조장. 설마 회운창의 시신이 이들 중에 있다는 거야?”
“맞아. 이건 회운창 악규의 창이야. 죽기 전에 자신의 병기를 몸에서 떼어 놓을 리 없으니 이 시신들 중에 회운창이 있을 거야.”
“백건적이야. 백건적이 분명해.”
조원들은 확신에 공손황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흩어진 뼛조각들을 살폈다.
악가를 공격한 것이 백건적이 확실하다면 악규와 가인들을 죽인 자들도 백건적이 맞을 것이다.
뼛조각들을 살피던 공손황은 함몰된 해골과 가슴뼈를 확인하고는 주변에서 굵은 나뭇가지 하나를 찾았다.
굵은 나뭇가지를 해골에 대보고 가슴에 대보던 공손황은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병기를 알아차렸다.
“검과 철봉. 아니, 창도 있군.”
검과 철봉, 창이라면 단번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같은 편인 회운창을 죽일 이유가 없었다.
‘있을지도 모르지. 천마지병으로 인해 앙금이 쌓였을 테니까.’
공손황은 천마지병을 차지하기 위해 악가와 비강이 싸움을 벌였다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천마지병은 북림으로 들어왔고 그 일도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하지만 눈치 빠른 공손황은 저간의 사정을 모두 알아차렸다.
공손황뿐만이 아니었다.
북림의 무인 중 생각 있는 몇몇은 백리혈이 악가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악가가 백리혈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되었다.
‘과연 연 소협이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공손황은 고개를 저었다.
철봉과, 검, 창이야 무림인들이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병기였다.
“뼈를 수습해 합장하고 병기들은 수거해 악가에 전해 주는 것이 강호의 도리야.”
정주가 급하기는 하지만 시신들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반 시진 가까이 움직인 조원들은 악규와 가인들의 뼈를 수습해 돌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출발하자.”
옥돈조는 정주를 향해 걸음을 서둘렀다.
하지만 지나가는 행인들이 있어 경공으로 달리지 못한 그들은 저녁때쯤이 되어서야 정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장,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배부터 채우고 악가를 찾아가는 게 좋겠어.”
배가 고프기는 공손황도 마찬가지였다.
“저번에 들렀던 그 객잔으로 가자.”
정주의 지리는 익숙한지라 조원들의 걸음이 급해졌다.
그렇게 객잔을 찾아 움직이던 공손황은 이 층으로 된 다점에 앉아 있는 비강을 발견했다.
허어.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는 번잡한 곳이었지만 비강의 모습은 유독 한눈에 들어왔다.
조금은 오만해 보이는 모습으로 길거리를 내려다보는 그를 올려다보던 공손황은 급히 다점 안으로 들어가 이 층으로 올라갔다.
“연 소협이 차를 즐기는 모습은 처음 보았소.”
“아, 오셨소. 차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를 빌려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던 것뿐이오.”
옥돈조를 정주에 파견할 줄은 몰랐던 비강이었지만 태연하게 공손황과 마주했다.
공손황은 빠르게 비강의 무복을 훑어보았다.
검은 털이 수북한 털가죽 옷을 겉에 걸치고 속에는 검은 무복을 입고 있는 비강의 모습은 아주 깔끔했다.
‘역시 아닌가.’
회운창 악규라면 누구도 상처 하나 없이 제압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어디 한 군데 헤지거나 갈라진 곳이라고는 없는 비강의 무복을 살피던 공손황이 말을 돌렸다.
“식사는 하셨소? 식사를 하지 않았다면 나와 함께 가는 것이 어떻소?”
“이미 저녁 식사는 끝냈소. 나는 이곳에 있을 터이니 식사를 하고 오시오.”
“알겠소. 악가에 같이 들어갑시다.”
다점을 내려가 멀어져 가는 공손황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비강은 오가는 사람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비강이 이곳에서 북림 순찰조를 기다린 이유는 악가 때문이었다.
악가를 방문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면 그들은 출입을 거절할 것이다.
‘미안하오, 공손 소협. 당신을 조금 이용해야겠소.’
* * *
비강은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옥돈조에 합류했다.
“공손 소협도 잘 알고 있겠지만 악가와 나는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오. 그러니 되도록 내 정체는 밝히지 말아 주시오.”
“그 일이라면 염려하지 마시오.”
공손황과 나란히 걷던 비강은 조원들이 등에 메고 있는 여러 병기들에 대해 물었다.
“조원들이 메고 있는 병기들은 뭐요?”
“악 대협과 가인들이 지니고 있던 병기요.”
공손황은 대답을 하며 비강의 표정을 빠르게 살폈다.
“……악규 대협이 죽었다는 말씀이오?”
무표정하지만, 조금은 놀란 듯한 비강의 표정.
‘역시 아니군.’
몇 번의 확인을 거친 공손황은 비강은 범인이 아닐 것이라 확신했다.
“어떻게 된 일이오?”
“우연히 악 대협의 시신과 가인들의 시신을 발견했소. 임시로 돌무덤을 만들어 주기는 했으나 악가에서 그 무덤을 수습해 다시 장례를 치러야 할 거요.”
“결국 악가의 습격은 악규를 제거하기 위한 함정이었군. 백건적이 머리를 잘 쓴 것 같소.”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그동안의 상황으로 볼 때 백건적이 범인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멀리 악가의 장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비강은 뒤로 빠져 조원들과 섞였다.
“북림 순찰단의 옥돈조가 방문을 요청합니다.”
정문을 지키고 있는 가인들에게 다가간 공손황이 먼저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어서 오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북림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던 중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가인들은 대문을 활짝 열어 옥돈조를 안으로 맞이해 들였다.
“옥돈조의 공손황이 인사 올립니다.”
“악가의 악춘이 공손 소협을 뵙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안에서 달려 나온 나이 지긋한 가인은 공손황의 인사에 마주 예를 올렸다.
“혹시 가문의 가주님과 가인들은 언제 출발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까. 가주님과 가인들이 아직 도착을 않으셨습니다.”
악춘이라는 가인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역력했다.
“실은 그 일에 관해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우리 옥돈조가 악가로 향하던 중 들짐승들에게 뜯어 먹힌 변사체들을 발견했습니다.”
공손황이 눈짓을 하자 조원들은 등에 메고 있던 병기들을 앞에 쏟았다.
“확인해 보십시오.”
악춘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놓인 병기들을 일일이 살폈다.
“이…… 이, 이럴 리 없어…… 이럴 리…….”
그는 악규의 장창을 두 손으로 잡아 꼭 끌어안고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무슨 일입니까?”
바쁘게 일을 보던 서너 명의 가인들도 악춘의 그런 모습이 이상했는지 급하게 달려왔다가 바닥엔 놓인 병기들을 발견했다.
“이, 이건 순경이의 창인데…….”
“모두 전사하셨습니다. 백건적의 함정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공손황은 고개를 푹 숙이며 일의 전모를 밝혔다.
“가, 가모님과 장로님을 모셔 오너라!”
눈물을 흘리고 있던 악춘이 두서없이 소리쳤다.
당황한 가인들이 달려가 장로와 가모 약하림을 데려왔다.
비강은 조원들 사이에 숨어 그 모습을 일일이 지켜보고 있었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가주님께서 전사하셨습니다.”
악춘은 눈물을 흘리며 창을 공손히 바쳐 올렸다.
아아아…….
약하림은 악춘이 바쳐 올리는 창을 바라보다가 힘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가모님.”
으헝…… 헝…… 헝……!
“도대체……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멀쩡한…… 멀쩡한 모습으로 나가 창만 덜렁 돌아오다니요.”
약하림은 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했다.
‘저 여자도 눈물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군.’
서늘한 눈으로 약하림을 내려다보던 비강은 성난 목소리로 추궁을 하는 장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공손 조장,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장로는 공손황과 안면이 있는지 대함에 있어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단주님의 명을 받고 악가의 변고를…….”
공손황은 처음부터 차분하게 일의 전모를 밝혔다.
“백건적 이놈들…… 이 때려죽일 놈들!”
장로는 분을 이기지 못해 가인들을 독촉했다.
“뭣들 하는 것이냐? 어서 놈들을 추격할 채비를 하지 않고!”
“장로님, 우선 가주님과 가인들을 가문으로 모셔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인들의 반대에 장로도 얼른 정신을 차렸다.
“너희들의 말이 맞구나. 공손 조장, 가주와 가인들을 묻은 곳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게.”
“저와 조원들은 맡은 임무가 있으니 조원 한 사람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