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60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60화
제60화. 복수는 잔인하게
비강이 기다리던 소식은 채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도착했다.
“어젯밤에 정주 악가가 강호의 악적들에게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악가의 장로 두 분이 전사하고 가인들 또한 사십여 명이 죽고 다쳤습니다. 아직 그자들의 정체를 밝혀내지는 못했으나 백건적이 연관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부림주는 직속 수하를 보내 악가의 일을 알려 주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단주님이 막는다면 림주에게 허락을 얻을 겁니다.”
이번에도 약철빙도 비강의 무림행을 쉽게 허락하려 하지 않았다.
“다른 순찰조들도 많아. 굳이 연 부관까지 나갈 필요는 없어.”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녀는 선뜻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비강이라면 어느 순찰조들보다 빠르게 적들의 정체를 밝히고 추격할 것이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다시 한번 비강은 허락을 구했다.
“이번 기회를 빌어 악가에 뭔 짓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녀의 걱정은 바로 이것이었다.
북림 내에서 비강과 악가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군.’
비강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미 끝난 일이고 피해를 입은 쪽은 내가 아니라 악가입니다.”
“좋아. 연 부관의 그 말을 믿을게. 적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추포해. 단, 악가의 방문은 허락하지 않을 거야. 뒤따라 다른 순찰조도 정주에 내려갈 거니까 손이 필요하면 그들에게 도움을 받아.”
단주의 허락을 받은 비강은 밤중에 써 둔 서신을 탁자 위에 쌓아 올린 서류 뭉치 속에 집어넣었다.
이것은 만약을 위한 대비였다.
일이 계획대로 풀린다고 해도 비파샤를 만나지 않을 것이다.
“다녀오겠습니다.”
* * *
대충 행랑을 꾸려 집무실을 나온 비강은 하남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부림주가 먼저 그 일을 보고 받았다면 이미 악규와 가인들은 하남을 향해 출발했을 것이다.
서안에서 하남 정주까지 경공으로 달린다면 채 하루가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내일 새벽쯤이면 악규는 가문으로 들어갈 것이기에 오늘 밤이 유일한 기회였다.
휘이이이…….
귀밑으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멀리 보였던 나무들이 빠르게 다가왔다가 지나쳐 사라져 간다.
탁…… 탁…….
비강이 땅을 한 번 차고 오를 때마다 신형은 칠, 팔 장씩 늘어나며 멀어져 갔다.
* * *
“저곳에서 저녁을 먹고 바로 출발한다.”
가인들과 정주로 달려가던 악규는 눈앞에 보이는 객잔을 가리켰다.
세 시진이나 쉬지 않고 달렸기에 가인들은 물론이고 악규까지 꽤 지친 상태였다.
“빨리 되는 것으로 아무거나 가져다주게.”
이십여 명의 가인과 함께 객잔으로 들어선 악규는 급하게 주문을 하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가인 이십여 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술을 즐기며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던 상인 몇 명이 무거운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서둘러 객잔을 떠났다.
객잔 주인도 뭔가 당장이라도 큰일이 터질 것 같은 무서운 예감이 들자 요리사를 거듭 재촉했다.
악규는 주변의 상황은 아랑곳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범인들은 백건적이 확실해. 그런데 이번에는 왜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을까.’
하남 정주에 천마지병이 나타났다는 소리에 이것저것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그것을 수습해 오게 했다.
전에 부림주에게 가져다주었던 천마지병 안의 무공은 이미 가문의 무공비급 사이에 숨겨 놓았다.
가인들은 병기점에서 천마지병을 찾아왔으나 무공은 숨겨져 있지 않았다.
‘미끼를 던지고 강호인들까지 끌어들여 우리 가문을 습격했어.’
백건적이 아니고는 자신의 가문을 습격할 만한 자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세력도 없거니와 그만한 간담을 가진 자들은 대부분 사패에 속해 있기 때문이었다.
‘복면을 한 자들은 정주의 무인들일 가능성이 많아.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고 복면을 했겠지. 어디 두고 보자, 이놈들. 반드시 네놈들을 죽이고 말 테니까.’
살심을 가까스로 억누른 악규는 급하게 차려 내온 밥과 탕으로 배를 채웠다.
가인들을 재촉해 배를 채운 악규는 바로 객잔을 나섰다.
악규가 먼저 경공을 펼쳐 달리기 시작하자 가인들도 경공을 펼쳤다.
그렇게 두 시진을 달리다 보니 주변은 어느새 어둠이 깊어지고 있었다.
“저곳에서 운기행공으로 내공을 보충하도록 하라.”
가인들은 일제히 땅바닥에 주저앉아 운기행공을 하고 악규는 그들 앞에 서서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먼저 운기행공을 하고 싶었으나 가인들을 거느린 가주라면 체면을 생각해야 했다.
스아아…….
이른 봄이라 그런지 얼굴에 부딪치는 바람이 스산하고 서늘했다.
악규는 자리에 앉아 있는 가인들에게 등을 돌려 오륙 장 떨어져 있는 관도를 지켜보았다.
늦은 밤이라 그런지 행인은 하나 없고 들짐승들의 울음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문득 주변이 어두워졌다는 느낌을 받은 악규는 뒤쪽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달빛과 별빛을 가린 검은 그림자 하나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갈(喝)!”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악규는 가인들을 깨우며 창을 내질렀다.
그러나 검은 그림자는 이미 가인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스악, 퍽, 서걱…… 퍼퍽……!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검과 봉은 가인들의 목을 베고 머리를 부쉈다.
쾅!
악규가 내지른 창은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크아아악……!
먼지구름 속에서 가인들의 비명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가…… 주…….”
먼저구름을 뚫고 팔을 잃은 가인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때 이미 악규의 창은 먼지구름을 난도질하며 쏟아져 들어가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가인의 처절한 외침 소리와 함께 온몸은 걸레 조각처럼 찢어졌다.
크크크크…….
가라앉는 먼지 너머로 하얀 웃음을 짓고 있는 비강의 얼굴이 드러났다.
“연비강!”
“조마조마하게 마음을 졸였어. 저번처럼 길이 어긋나면 어쩌나 하고 말이야. 그런데 네놈은 가인들을 손쉽게 처리할 기회까지 주더군. 이제 너만 남았다, 악규.”
비강은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악규를 내려다보았다.
악규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백리혈과 싸움을 벌인다면 패해 죽임을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악가의 가인들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정주까지 경공으로 대략 두 시진이면 도착하겠지. 살아남은 악가의 가인들도 있을 것이고. 운만 조금 따라 준다면 이번에도 나를 따돌리고 역습을 가할 기회를 얻을 수 있겠지.”
비강은 악규의 심중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물러난다면 내가 침묵을 지키겠다. 설사 이번 일전에서 승리해 나를 죽인다고 해도 북림은 네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네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다.”
활화산처럼 들끓던 분노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연비강의 말처럼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복수가 아닌 이 자리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계속 이어진 경공으로 내공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잠시 생각하는 듯한 비강의 모습. 악규의 손이 슬쩍 움직였다.
타앗!
악규의 입에서 기합성이 터져 나오고 휘황한 기운에 휩싸인 창은 비강을 향해 쏟아졌다.
콰콰쾅!
철봉으로 쏟아지는 창날을 전부 쳐 낸 비강은 검으로 악규의 팔을 갈랐다.
스걱!
쾅!
창을 비틀어 검을 막은 악규는 뒤로 서너 걸음이나 물러났다.
철봉으로 이원삼천의 무공이 펼쳐지고, 뒤이어 검을 통해 삼하귀상의 무공이 악규의 온몸을 찢어 버리듯 쏟아졌다.
악규의 창은 그의 몸을 촘촘하게 감싸고 돌았다.
콰쾅! 콰콰…… 쾅!
이원삼천의 무공을 막아 내고 삼하귀상까지 막아 내던 악규의 입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크으윽…….
창으로 쏟아지는 무공을 쳐 내던 악규가 피를 뿌리며 버티지 못하고 튕겨져 날아갔다.
어둠 속으로 튕겨져 날아가던 악규는 몸을 뒤집으며 땅으로 내려섰다.
콰쾅!
땅으로 내려선 악규가 제대로 균형을 잡기도 전에 빛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끄아아악……!
급하게 만들어 낸 기막을 뚫어 버린 검광은 그의 온몸을 난도질하며 지나갔다.
탁!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악규는 발바닥으로 땅을 슬쩍 밀며 뒤로 몸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 했다.
스걱. 철퍽!
발목으로 전해 오는 따끔한 고통과 함께 뒤로 날아가던 악규의 몸뚱이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크크크…….
사이한 웃음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닥을 뒹굴던 악규는 허리에 차고 있던 비도를 힘껏 던졌다.
쐐애액……!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비도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팡!
손바닥으로 땅을 때리며 일어선 악규의 눈앞으로 미소를 짓고 있는 비강의 얼굴이 다가왔다.
으어어어……!
오른손에 쥐고 있던 창을 내지르려던 악규는 괴성을 발하며 자신의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창이 없었다.
창뿐만 아니라 창을 쥐고 있어야 할 손도 없었다.
“너는 시신조차 보존하지 못할 거다, 악규. 가인들 또한 들짐승들의 먹이로 던져 줄 터이니 남는 것이 별로 없을 거다.”
우우…… 우우우…….
피 냄새를 맡았는지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내 잘못이 아니야. 전부 약추완이…….”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악규는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걱정하지 마. 약추완도 머지않아 네 뒤를 따라갈 테니까.”
비강은 약추완의 눈을 들여다보며 빙글빙글 웃었다.
“천마지병은 내가 네놈의 가문에 전한 거야.”
너무 놀란 나머지 비강을 올려다보는 악규의 눈은 불신으로 흔들렸다.
그럴 리 없다.
연비강이 무공은 강하지만 세력은 두고 있지 않았다.
“마지막이니 내 이름 정도는 밝히는 것이 예의겠지. 나의 본래 이름은 월이다, 연월.”
악규는 얼른 그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이에 비강은 친절하게도 오래전의 기억을 끄집어내 말해 주었다.
“연서문이라는 분은 알고 있겠지?”
“그렇다면…… 너는…….”
크하하하하……!
비강은 자신을 기억해 낸 악규를 크게 기꺼워했다.
“악착같이 살아남아 내 손에 죽어 주어 고맙다.”
* * *
“이것을 이곳의 주인께 전해 주십시오.”
하얀 비단에 싸인 기다란 물건을 건네는 젊은 사내에게 북림의 무인이 물었다.
“이건 무엇이고 당신은 누구요?”
“신선의 땅에서 보내온 것이라 하면 알아들으실 겁니다. 저는 심부름만 하는 사람이라 이름 같은 것은 굳이 입에 올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젊은 사내는 이 대답을 끝으로 몸을 돌려 멀어져 갔다.
사내의 행동거지가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는지 정문을 지키던 수비대의 조장은 비단에 싸인 물건을 부림주에게 가져갔다.
부림주 또한 하얀 비단에 싸인 물건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자 비단을 묶고 있는 끈을 풀었다.
‘창?’
비단 안에는 한 자루의 긴 창이 놓여 있었다.
언뜻 보아도 흔한 창은 아니었다.
‘묵곤의 창.’
부림주는 창을 보자마자 묵곤이라는 사내를 떠올렸다.
림주의 곁을 지키며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고수들을 창으로 무참히 도륙하던 사내.
그는 한 손에 항상 이 창을 들고 있었다.
백건적이 북림을 급습했을 때, 북은각은 나서지 않았다.
이때까지 북은각을 믿고 있던 약추완은 자신도 모르는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약추완은 창을 비단에 싸 묶었다.
림주에게 보내라 하였으니 림주에게 보이면 뭔가 말이 있을 것이다.
비단으로 싼 창을 들고 림주가 기거하는 전각으로 올라간 약추완은 방 앞에서 목소리를 낮췄다.
“림주님, 안에 들어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시오.”
림주의 허락을 받은 약추완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실 안에는 벽 총관이 림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총관의 인사를 받은 약추완은 비단으로 싼 창을 공손하게 바쳐 올렸다.
“신선의 땅에서 보내온 것이라 하였습니다.”
순간 흔들리는 림주의 눈빛을 발견한 약추완은 속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림주는 지금까지 저렇게 흔들린 적이 없었다.
북림이 백건적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에도 놀라지 않았었다.
“부림주는 이 창의 주인을 아시오?”
“혹시 묵곤이라는 사람이 아닌지요.”
“원래 이 창의 주인은 나였소. 내가 곤에게 선물로 주었다오. 그런데 이제 이것이 다시 내게 돌아왔구려.”
“하면 이미 죽었다는 말씀이신지요?”
벽 총관은 림주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닫고 물었다.
림주 풍천양은 대답 대신 벽 총관에게 오히려 되물었다.
“이번 백건적의 급습 때 북은각이 어떠하였는지 아는가?”
“예. 북은각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였으나 그곳은 오직 림주님의 명을 받들기에 함부로 묻지 못하였습니다.”
움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지금까지 묵곤이 자신의 명을 대신하고 있었기에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총관은 그만 나가 보시오.”
“예.”
총관을 내보낸 풍천양은 잠시 말이 없다가 깊은 눈으로 약추완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