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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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0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59화
제59화. 복수(2)
하하하하…….
곡주 시천세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묵곤을 향해 양팔을 활짝 펼쳤다.
“곡주를 뵙습니다.”
묵곤은 정중하게 두 손을 모아 머리를 숙였다.
“녀석, 오랜만에 만났는데 어찌 그리 딱딱한 것이더냐. 어서 이리 와 앉아라.”
“감사합니다.”
창을 들고 다가간 묵곤은 탁자 옆에 창을 기대 놓고는 의자에 앉았다.
“그래. 그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느냐?”
곡주는 손수 차를 채워 내놓으며 살갑게 물었다.
“농사를 지으며 지냈습니다.”
“이런…….”
쯧쯧…….
“천하를 떨쳐 울린 묵곤이 고작 농사나 지으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다니…… 맹수는 죽음과 마주해도 맹수이어야 하느니라.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곡주는 묵곤의 지난날이 진심으로 안타까웠는지 혀까지 차며 위로했다.
“북주(北主)께서 잘 대해 주어 마음 편한 나날이었습니다.”
“천양이는 그런 녀석이지. 어디 천양이뿐이겠느냐. 악이와 운패, 백요도 모두 좋은 녀석들이었어.”
“저는 곡주님과 사방주(四方主)들께서 언제나 우애 좋은 형제들처럼 지내기를 바랐습니다.”
하하하하…….
“세상일이 내 뜻대로만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묵곤은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곡주를 똑바로 응시했다.
“세상일을 곡주님의 뜻대로 하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음……?”
곡주의 얼굴에서 미소가 걷히는 순간 묵곤의 오른손은 빛살과 같은 빠르기로 목을 파고들었다.
퍽.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묵곤의 다섯 손가락은 허공을 움켜쥐었다.
팍……!
기습이 실패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묵곤은 몸을 뒤집으며 창을 잡아챘다.
그러나 곡주는 방 한쪽에 서서 그런 묵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리석은 녀석, 천양이가 시키더냐?”
묵곤은 탄식을 삼키며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창이 아닌 맨손으로 암습을 시도했음에도 실패했다.
양손을 무쇠처럼 단련했기에 창을 잡지 않아도 목표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으니 암습이 가능하리라 판단한 것이다.
“북주께서는 아무 말씀도 않으셨습니다. 전부 내 스스로 결정한 것입니다.”
“과연…….”
곡주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는 너무도 따뜻해 보였다.
“너의 충성심을 높이 사마. 너는 천양이를 위해 목숨까지 바쳤으니 이제 내게 오는 것이 어떻겠느냐?”
“제 마음속의 고향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더군요.”
온화하고 따뜻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그라지며 섬뜩한 안광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좋다. 네 뜻이 정 그러하면 들어줄밖에. 집 안이 지저분해지는 것이 싫으니 밖으로 나가자.”
그 말에 묵곤은 스스럼없이 등을 보이며 방을 나섰다.
곡주 또한 그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서며 슬쩍 손을 뻗었다.
스으으…….
벽에 걸려 있던 도 한 자루가 날아와 곡주의 손안으로 들어갔다.
밖으로 나온 묵곤은 건물 뒤에 있는 넓은 연무장 한가운데로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오너라.”
뒤따라 나온 곡주는 흐트러진 자세를 취했다.
“죽어서도 저희들을 돌봐 준 은혜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어차피 필요에 의해서 그런 것일 뿐. 고마워할 필요조차 없다.”
“그래도 고마웠습니다.”
지난날의 따뜻했던 보살핌과 끈끈했던 우애는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어릴 때의 그 기억마저 거짓이라고 한다면 자신은 너무 비참한 인생이 아닌가.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른 묵곤은 이를 악물었다.
타아앗!
계곡을 뒤흔드는 기합성과 함께 묵곤의 신형은 공중으로 떠올라 곡주를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시천세의 손에서 뽑혀져 나온 한 자루의 도는 기이한 진동을 일으키며 기의 파장을 만들어 냈다.
우우웅…….
콰쾅!
투명한 막에 막힌 듯 창날은 곡주의 공간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날아갔다.
창과 함께 튕겨 날아오른 묵곤은 시천세의 머리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쏴아아…….
창날을 통해 빠져나온 빛줄기들은 소나기처럼 시천세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콰콰콰콰…… 쾅!
시천세를 감싸고 있는 기막은 철옹성이었다.
묵곤이 만들어 낸 빛줄기들은 시천세의 공간을 뚫지 못한 채 스러져 갔다.
스악…….
도에 의해 갈리고 갈라진 공간은 순식간에 묵곤의 몸을 관통했다.
철퍽!
공중에서 묵곤의 머리와 몸이 따로 떨어져 땅바닥에 처박혔다.
“종예.”
시천세의 입이 열리기 무섭게 종예가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중하게 장례를 치러 주어라. 창은 천양에게 보내도록 하고.”
“예.”
시천세가 방으로 들어가고 난 후에도 종예는 한참이나 묵곤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묵곤은 종예와도 친남매처럼 지냈었다.
“미련한 놈.”
시신을 내려다보는 종예의 입에서 씁쓸함이 가득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 * *
하남 정주에서 가장 유명한 가문은 바로 악가였다.
가문의 주인인 회운창 악규의 무공은 북림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고 가인들의 무공 또한 여느 가문들과는 격이 달랐다.
그런 대단한 가문을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나이 든 노인과 젊은 여인이 주시하고 있었다.
“강호인들이 눈치만 살피고 있어요.”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할 것 같구나. 내가 저것들의 시선을 잡아 놓을 터이니 너는 담을 넘어 불을 질러라. 악가에 불길이 치솟아 오르면 강호인들도 움직이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담노의 지시에 수연이 먼저 어둠 속에 보이는 악가의 담장을 향해 달려갔다.
홀로 남게 된 담노는 검은 복면을 뒤집어썼다.
저 멀리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악가의 정문이 보였다.
어둠 속을 걷던 담노는 정문을 지키고 있는 가인들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신형을 쏘아 보냈다.
서걱. 스각―!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담노는 좌우에 서 있는 가인들의 머리를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쾅! 꽈지직……!
검이 가인들의 목을 베자마자 오른쪽 발은 정문을 부숴 버렸다.
“침입자다!”
담노가 문을 부수는 소리에 맞춰 안쪽에서 불청객의 침입을 알리는 외침 소리가 퍼져 나갔다.
뎅뎅뎅……!
잠들었던 악가가 비상을 알리는 종소리에 깨어나고 가인들이 사방에서 뛰쳐나왔다.
끄으으…….
침입을 알렸던 가인은 담노의 검에 의해 가슴이 꿰뚫려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악가는 가인들이 밝힌 횃불들로 인해 대낮처럼 환해지고 횃불보다 더한 밝은 빛이 뒤쪽에 자리 잡고 있는 건물로부터 치솟아 올랐다.
화르르르…….
문살과 문풍지를 태우던 불길은 삽시간에 대들보에 이어 지붕 위로 치솟았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정주의 저잣거리에 하나둘 불이 밝혀졌다.
크아악! 아악……!
담노의 검은 잔인하고 탐욕스럽게 가인들의 피를 빨아들였다.
‘감히…… 감히…… 네놈들이 그분을…….’
담노에게도 비강은 하나 남은 가족이었다.
제자들도 가족처럼 대했지만 비강에 대한 애틋함이 더했다.
크아아악!
적의 허리를 반으로 갈라 버린 담노의 눈에 담을 넘어 들어오는 강호인들이 보였다.
‘죽어라, 이놈들. 전부 죽어라.’
담노는 자신의 무공을 모두 쏟아 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생존자가 있어 검법의 특징을 북림에 알린다면 정체가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왼쪽에 적들이 나타났다!”
“오른쪽 담 위에도 적들이 나타났다!”
악가의 담을 넘는 강호인 중에는 담노처럼 복면을 한 자들이 꽤 많았다.
“천마지병을 내놓아라!”
크아아악……!
마음 급한 강호인들 몇몇이 안쪽으로 뛰어들다가 가인들의 창과 검에 바닥을 나뒹굴었다.
“악가는 천하제일이다!”
“네놈들을 강호 끝까지 추격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가인들의 자부심은 실로 대단했다.
수십 명의 강호인이 담을 넘었고, 지금도 넘어오고 있었지만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잠시 전황을 살피던 담노는 양 떼 속의 늑대처럼 날뛰는 악가의 늙은 장로를 주시했다.
따다당! 따당……!
베어 오고 파고드는 강호인들의 병기를 쳐 내는 장로의 창이 그의 온몸을 보호하며 휘감고 돌았다.
퍽! 스걱.
끄르르르…….
장로의 창이 닿는 곳마다 강호인들은 목이나 가슴을 부여잡으며 속절없이 쓰러졌다.
화르르르…….
가문의 위세를 상징하는 전각들이 차례차례 불타올랐다.
퍽!
장로의 창에 머리를 뚫린 강호인이 눈을 까뒤집으며 옆으로 쓰러지려는 찰나, 육 장 너머에 있던 담노의 신형이 빛살처럼 파고들었다.
순간 장로의 창날은 빠르게 방향을 바꾸며 담노를 향해 날아갔다.
까강! 깡!
장로의 창과 담노의 검이 부딪치며 불꽃을 튀겼다.
머리, 목, 가슴, 허리를 향해 연달아 날아드는 창날을 쳐 낸 담노가 반 바퀴 회전을 하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푹!
겨드랑이 사이로 빠져나간 검은 장로의 복부를 꿰뚫었다.
서걱.
뒤이어 회전하는 담노의 신형과 함께 검광은 목을 베며 지나갔다.
“장로님!”
“병 장로!”
안쪽 깊숙한 곳에서 가인들을 지휘하던 또 다른 장로가 달려왔다.
가인들의 목을 베어 낸 담노는 마주 신형을 날렸다.
화르르…….
꽈드드드…… 콰쾅!
불길에 휩싸인 전각 한 채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주저앉았다.
까강! 깡……!
창과 검이 부딪치고 담노와 장로의 신형이 교차했다가 떨어졌다.
뒤로 물러났던 장로가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그의 창은 희뿌연 기운이 휘감고 돌았다.
꽝!
흉맹한 기운을 머금은 창날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땅을 뚫고 들어갔다.
퍽!
바로 그 순간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를 창 한 자루가 장로의 옆구리에 깊숙이 박혔다.
그리고 담노의 검이 그의 목을 가르며 지나갔다.
담노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복면인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쉽지만 물러나야 할 때였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가인들의 수는 일백 명을 웃돌고 있었다.
그에 반해 담장을 넘었던 강호인들은 채 육십 명이 채 남지 못한 상태였고, 그들 중의 일부는 벌써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
담노와 수연은 앞을 가로막는 가인들을 베어 내고는 담장을 넘어 악가를 빠져나갔다.
* * *
아침 식사를 끝낸 비강은 의자에 앉아 여러 서류들을 살폈다.
삐걱.
그때 문이 열리며 꽤 여러 날 얼굴을 보지 못했던 공손황이 안으로 들어왔다.
“옥돈조가 복귀했습니다, 단주님.”
공손황은 복귀 인사와 함께 보고서를 약철빙에게 올렸다.
“수고했어요.”
보고서를 받아 든 약철빙은 그것을 읽지 않고 비강에게 건넸다.
비강이 먼저 살펴보라는 뜻이었다.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소, 연 부관.”
“공손 조장의 얼굴이 떠오르더이다.”
그 말에 공손황과 비강의 얼굴에는 동시에 미소가 떠올랐다.
비강을 미소로 바라보던 공손황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안색을 고치며 입을 열었다.
“복귀하는 도중에 하남 정주에서 기이한 소문 하나를 들었습니다. 또 다른 천마지병이 나타났는데 악가에서 그것을 수습했다고 합니다.”
공손황의 말이 끝나자마자 약철빙의 얼굴에는 노기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 노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위에 보고를 올려 조사를 하도록 할 터이니 그만 나가 봐요.”
“예, 그럼 다른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 숙소에서 쉬고 있겠습니다.”
공손황이 방을 나가고 난 후 비강은 그의 보고서를 살폈다.
양민들을 괴롭히던 산적들과 도적들을 처리했다는 평범한 보고서였다.
보고서를 약철빙에게 넘긴 비강은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던 말을 꺼냈다.
“천마지병이 나타났으니 제가 한번 나가 보고 싶습니다.”
“이미 악가에 그것이 들어갔다면 연 부관이 나서도 소용이 없어. 헛소문일 가능성도 있고. 정주에서 아무런 정보가 올라오지 않은 것을 보면 정주 지부도 악가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고 봐야 해.”
‘역시, 쉽지 않아.’
이렇게 되면 남은 방법은 악가에 변고가 발생했다는 소식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