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54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54화
제54화. 한밤의 대전
“림주를 만나고 싶습니다.”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비강의 말에 약철빙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말이지? 림주님을 뵙고 싶다니?”
“긴히 대화를 나눠야 할 일이 있습니다.”
“대화라니? 연 부관이 요청을 한다고 해도 림주님은 함부로 만나 뵐 수 있는 분이 아니야. 그리고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어 보고를 올리려면 나를 거쳐야 해.”
약철빙이 이런 반응을 보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했다.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림주님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내게 먼저 보고를 해.”
기분이 상했는지 약철빙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림주님을 뵙고 난 후에 보고를 올리면 안 되겠습니까?”
비강을 노려보던 약철빙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저었다.
하아.
“지금은 불가능해. 림주님은 출타 중이시거든.”
“출타 중이라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
“장담은 못 하지만 사흘 안으로는 돌아오실 거야. 극비사항이라 연 부관에게도 숨겼어.”
하하…… 하하하…….
비강이 갑자기 소리 높여 웃어 대자 약철빙은 더욱 얼굴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상황이 참 대단해서 웃었습니다. 이렇게 철두철미한 놈들이니 여태까지 멸절시키지 못한 것이겠지요.”
약철빙은 비강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지 못해 답답하기만 했다.
“내가 알아듣게 차근차근 얘기해 봐.”
웃음을 그친 비강은 그녀의 눈을 직시했다.
“오늘 밤이 아니면 내일 밤 백건적의 기습이 있을 겁니다.”
“어디에? 그 정보는 누구에게 들은 거야?”
“이곳 북림을 목표로 놈들이 기습을 할 겁니다.”
하아……!
잠시 비강을 주시하던 약철빙은 고개를 흔들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불가능해. 연 부관이 백건적의 수장이라면 이곳을 목표로 기습을 감행하겠어?”
비강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백건적의 수장이라면 기습은 불가였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어.’
비강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약철빙은 표정을 풀었다.
“이곳 북림은 연 부관의 짐작보다 훨씬 더 방비가 단단한 곳이야. 그나저나 밖에 나갔던 일은 어떻게 됐어?”
“하오문이 맞았습니다. 강호인들의 이동이 많아 북림에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하더군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는데? 이제는 하오문의 첩자 노릇까지 하는 거야?”
다시 약철빙의 안색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차만 마시고 왔습니다. 대답할 게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다음에는 나도 같이 가. 아무래도 하오문의 못된 심보를 한번 눌러 줘야겠어.”
전부터 느낀 것이었지만 약철빙은 하오문을 지나치게 경계했다.
하지만 비강은 아니었다.
적당히만 이용한다면 꽤 유용한 정보 조직이었다.
“전에 거리에서 보았던 그 여자였어?”
“네?”
“오늘 만났던 하오문원 말이야.”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 * *
밤은 깊어지고 자시가 가까워지자 비강은 싸울 채비를 끝내고 방을 나섰다.
집무실 밖으로 나오니 호위를 서고 있던 광이재가 말을 건넸다.
“어디 외출하십니까?”
“아니오. 명상이나 하려고 나왔소.”
짧은 대답으로 광이재의 말을 받은 비강은 산 아래쪽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적들은 오늘 밤이 아니면 내일 밤에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다.
북림의 주인은 자리를 비워 놓았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내 짐작이 틀렸으면 좋겠는데.’
밤바람이 그다지 차갑지 않은 것을 보면 벌써 봄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길기만 했던 일 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있었다.
* * *
비강이 명상에 잠겨 있을 때 약철빙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비강은 절대로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삐걱…….
그녀의 귀로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곧 집무실의 출입문을 열고 닫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침상에서 일어난 약철빙은 무복을 갈아입고 병기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나오셨습니까? 단주님.”
“연 부관은?”
“명상을 한다면서 산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약철빙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곧 마음을 정했는지 광이재를 시켜 동평지를 불러오게 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단주님.”
“동 호위는 이곳에 남아 있는 순찰조들을 돌며 이틀 후 아침까지 비상 대기하라고 해.”
“이유를 물어보면 뭐라 대답해야 합니까?”
“명령이라고 해.”
“예.”
날이 밝으면 부 단주가 찾아와 따져 물을 것이다.
하지만 약철빙은 비강을 믿어 보기로 했다.
아니, 믿었다.
* * *
쏴아아아…….
어둠이 깔린 서안의 밤거리에 하얀 바람이 불어왔다.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른 수많은 강호인이 마을과 들판을 가로질러 북림을 향해 질주했다.
강호인 십여 명이 마을과 들판을 빠져나간 뒤 거리로 들어섰다.
선두에 선 자들은 두 명의 사내였는데 젊어 보이는 자는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고, 나이가 들어 보이는 자는 한 손에 참마도를 들고 있었다.
특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자는 멀리서도 눈에 금방 띌 만큼 덩치가 거대했다.
“그들이 백 공의 짐작대로 합류할지 의심스럽소.”
“십여 명만이라도 우리 쪽에 합류한다면 이번 일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덩치 큰 사내는 서글서글한 눈매와는 다르게 목소리는 몹시 차가웠다.
“이번 일이 끝나면 약속을 지키리라 믿겠소.”
“약속은 지킨다. 우리에게 합류한 자들은 전부 너희들을 위해 힘을 다할 것이다.”
거리를 벗어난 그들은 두 갈래로 갈라졌는데 덩치가 큰 사내의 옆에는 단 한 사람만이 따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뒤에서 따르고 있던 자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희생이 클 것이오, 오 장문.”
“그래도 제방에 큰 구멍을 뚫는 일이니 반드시 성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일만 성공한다면 북림은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될 것입니다.”
“북림도 걱정이지만 더 큰 걱정은 바로 저 백산이라는 자요. 과연 저자가 약속을 지킬 것 같소?”
전진의 장문 오진권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머물렀다.
“십 년을 넘게 우리들에게 도움을 준 자들입니다. 우리들을 죽이고자 했다면 벌써 그리했을 것입니다.”
저들이 자신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만 한마디 없이 저들의 계획에 동참했다.
당장은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했었고 강호 무림에 전진이라는 깃발을 다시 세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북림에는 강자가 많소. 무력대의 양호와 무석손, 수비대의 노정유…… 특히 부림주는 무공이 고강해 아주 조심해야 할 자요.”
“부림주 약추완은 싸움에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자들의 특징은 상대방이 약함을 보일 때 나서서 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자는 순찰단의 연비강입니다.”
아무리 늙고 병들었다고 하지만 연비강은 사부를 실력으로 이긴 자였다.
나이 들고 약아빠진 약추완보다 젊고 패기만만한 연비강은 더욱 위험한 적이었다.
‘우리도 약하지는 않지.’
북림의 힘이 아무리 막강하다고는 하지만 이쪽도 만만치 않았다.
사패의 힘에 눌려 달아났던 이 중에 대사형이 되는 이들은 이제 장문인이 되었고 젊은 자들은 가려 뽑아 길러 낸 고수들이었다.
그동안 숨죽이며 키워 낸 고수들은 오래전 구파일방이나 육대세가의 힘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나 그건 저들도 마찬가지였다.
백도 정파를 멸망시켰던 황곡의 고수들은 사패로 나뉘어졌으니 사패 중의 일패 정도는 오래전 구파일방이나 육대세가보다는 못할 것이었다.
멀리 불빛이 환한 북림을 지켜보던 오진권은 양쪽 언덕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언덕 위에는 침입자들을 감시하는 북림의 경계초소가 있다고 했다.
‘처리했군.’
양쪽 언덕 위에서 횃불이 좌우로 흔들거리는 광경을 확인한 오진권은 불을 밝히고 있는 북림을 향해 손을 치켜들었다.
그의 신호에 반응해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수많은 그림자들이 북림을 향해 질주했다.
* * *
으음…….
‘내 짐작이 틀리기를 바랐건만.’
비강은 은은하게 전해 오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고는 나지막한 침음을 흘렸다.
“시작됐습니다.”
“뭐가 시작됐다는 거지?”
비강의 등 뒤에 가만히 서 있던 약철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아직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적들이 몰려옵니다. 곧 무슨 기별이 있을 겁니다.”
“설마…….”
설마라는 심정으로 어둠 속을 지켜보던 약철빙의 안색이 급변했다.
“적이다!”
“적들의 침입이다!”
댕댕댕……!
멀리 성벽 쪽에서 적들의 침입을 알리는 외침 소리와 종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콰…… 앙!
뒤이어 성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비명 소리가 연이어 어둠 속을 진동시켰다.
“피해가 막심할 겁니다. 적들은 철저하게 준비를 했고 우리는 급습을 받은 상황이니까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비강은 천천히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단주님!”
동평지와 광이재도 적들의 기습을 알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황급히 달려 내려왔다.
“순찰조들을 전부 한곳으로 끌어모아 흩어지지 못하게 해!”
“예!”
급박한 상황에서도 약철빙은 대처는 능숙했다.
동평지와 광이재가 아래쪽으로 달려 내려가고 약철빙은 비강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명심해. 비강은 우리 순찰단, 아니, 나의 부관이야.”
“알고 있습니다.”
비강의 대답은 차분함을 넘어 권태롭기까지 했다.
‘풍천양, 당신도 참 힘들게 사셨구려.’
평화로운 강호 무림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또한 황곡의 무인이 되어 강호 무림을 평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경을 이겨 냈을까.
협(俠)과 의(義) 같은 말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살며 행하고 싶다.
화르르…….
산 아래쪽의 건물 한 채가 불길에 타올랐다.
“벌써 입구 쪽의 수비대 숙소까지 적들이 쳐들어온 모양이야.”
뒤이어 양옆의 건물들도 차례로 불길이 치솟았다.
그만큼 안으로 들어온 적들이 많다는 뜻이었다.
“서둘러야겠어.”
약철빙이 조급하게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가자 비강도 걸음을 재촉했다.
“단주님!”
순찰조들의 숙소 한쪽에는 동평지와 광이재가 단단히 무장한 조원들을 모아 놓고 있었다.
그중에는 비강도 잘 아는 온조의 얼굴도 보였다.
“단주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뒤늦게 부단주 엄숭하가 무복조차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달려 내려왔다.
“우리는 지금 적들을 막으러 갈 거예요. 절대로 흩어지지 말고 조원들과 함께 뭉쳐서 적들을 막아야 해요.”
“존명!”
오십여 명의 순찰조원을 이끈 약철빙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이 난무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히히힝! 히힝……!
마구간이 불탔는지 말들이 미쳐 날뛰고 치솟는 불길 사이로 수많은 적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와아……!
“강호에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정의를 세우자!”
“변절자들을 죽여라!”
이구동성으로 외쳐 대는 적들의 고함 소리는 북림을 뒤흔들었다.
스악―!
약철빙의 허리에서 검광이 번뜩였다.
선두로 달려들던 적의 머리가 땅으로 굴러떨어지고 몸뚱이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크아악! 아악……!
약철빙의 뒤쪽에 서 있던 비강이 앞으로 튀어 나가며 적들의 중앙을 파고들었다.
핏물이 사방으로 뿌려지고 적들이 나뒹굴었다.
퍽! 퍼퍽! 스걱…….
적들의 머리를 으깨고 가슴과 팔다리를 베며 지나간 철봉과 검은 또 다른 적들을 향해 쏟아졌다.
따다당! 땅!……!
온몸을 휘감고 도는 검과 철봉은 무엇이든 먹어 치우는 아귀처럼 적들의 피를 빨아들였다.
“백리혈!”
순찰조의 조원을 베어 버린 중년 여고수가 노기를 터뜨리며 비강을 향해 검을 날렸다.
순간 비강의 검은 오 장을 넘어 길게 뻗어 나갔다.
쾅!
오 장을 너머로 길게 늘어난 기운은 빛살과 같은 속도로 날아오는 여고수의 검과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