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53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53화
제53화. 무신들의 결정
“천마지병으로 인해 강호 무림이 난리를 치르고 있을 때 나를 비롯한 두 친구들은 가장 믿고 있는 놈들을 내보냈지. 바로 자신들의 제자들 말이야. 그에 반해 너는 누구를 내보냈냐?”
그런 것인가?
자신은 연비강이라는 젊은 놈을 제자들보다 더 신뢰하고 있었던 건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풍천양의 눈동자는 도운패를 응시한 채 움직임을 멈췄다.
그놈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가슴이 뛰고 즐거웠다.
그놈이라면 정면에서 검을 겨눌지언정 뒤에서 암습을 꾀하지는 않을 것이다.
크하하하하…….
풍천양은 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며 기분 좋게 웃어 젖혔다.
삐걱.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나누는 거냐?”
그때, 문이 열리며 동천의 남궁악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와, 이 돼지 같은 놈이 내 제자들이 못났다고 흉을 보고 있는 중이었어.”
끄응.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받아넘기는 풍천양이나 그에 맞춰 죽을상을 하는 도운패나 의뭉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백요 그년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로군.”
“네 뒤에 있다, 이 자식아.”
어헉…….
남궁악은 화들짝 놀란 척을 하더니 얼른 머리를 수그렸다.
“심하게 때리지는 마라.”
어휴!
하하하하…….
큭큭큭큭…….
네 무신들은 일제히 파안대소하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무신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고 곡주가 직접 요리들을 내오기 시작했다.
“상황이 좋지 않아.”
요리가 다 차려지고 난 후 식사를 하던 네 무신 중 남궁악이 먼저 운을 떼었다.
“그걸 잘 아는 놈이 그 가짜 천마지병을 거둬들였냐?”
“천양, 너는 어떻고?”
“혹시나 하는 욕심 때문이었겠지. 확인은 해 보고 싶었을 테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직접 나서기에는 강호의 눈과 귀가 찜찜했을 것이고.”
당백요는 자신의 일이 아닌 것인 양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번 일로 사형과 백건적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실해졌어. 아직도 믿기지는 않지만 말이야.”
사형은 자신들보다 훨씬 더 구파일방과 육대세가를 증오했었다.
그들을 전부 비로 쓸 듯이 깨끗이 쓸어 버린 후 새로운 강호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런데 이제 그 사형은 자신이 증오하던 이들과 한편이 되어 있었다.
“어디 백건적뿐일까. 사련도 사형과 관련이 있을 거다.”
풍천양은 남궁악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자들에 관한 일은 내가 처리할 것이니 걱정 마라.”
“문제는 구파일방이나 육대세가, 사련 같은 것들이 아니야.”
당백요의 말마따나 무신들의 걱정은 백건적이나 사련이 아니었다.
백건적이 아무리 강성한 세력이라 해도 충분히 물리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사형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제 더 이상은 결정을 미룰 수 없게 되었어. 사형을 죽이지 않은 한 언젠가 사패는 강호 무림에서 사라질 거다.”
“그럼 오늘 결정을 보자. 조금 더 두고 볼 것인지, 아니면 날을 정해 우리들의 집이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인지.”
식사를 하던 풍천양은 술병을 잡아 벗들과 자신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 홀로 단번에 술잔을 비워 냈다.
“사(死).”
풍천양의 뒤를 이어 도운패가 술잔을 비웠다.
“사(死).”
남궁악과 당백요도 술잔을 비웠다.
“사(死).”
“사(死).”
두 무신의 입에서도 죽음의 결정이 떨어졌다.
“뜻이 모아졌으니 길일을 결정하는 일만 남았군. 언제로 하면 좋겠나?”
“앞으로 정확하게 이십 일 후가 좋겠어. 각자 본거지로 돌아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테니까.”
“이십 일이면 너무 촉박하지 않을까? 삼십 일 후면 어때?”
“그럼, 정확하게 삼십 일 후에 화산에서 만나는 것으로 하지.”
강호를 제패하고 난 후 이십 년 만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기쁘기도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방 안은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예전에 사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었지. 너희들 다섯이 무한에 있는 은운곡에서 평화롭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셨어.”
도운패의 말에 다른 무신들의 눈에도 아련함이 떠올랐다.
맞다.
그때는 사부님의 그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었다.
사부님의 바람대로 네 사람은 이 은운곡에서 일 년에 한 차례 만나 술잔을 기울이지만, 사형은 항상 그 자리에 없었다.
“우리 사형제 전부가 이 은운곡에 모일 일은 이제 영원히 없을 것 같구나.”
* * *
집무실에서 서류를 살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던 비강은 호위가 가져다주는 종이쪽지를 건네받았다.
“입구에서 어린아이가 순찰단의 연비강 소협께 전해 달라고 했답니다.”
호위의 말에 종이쪽지를 열어 본 비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리로 나와요.]
“무슨 내용이야?”
맞은편에 앉아 일을 보고 있던 약철빙이 관심을 드러냈다.
비강은 그녀에게 종이쪽지를 건네고 외출할 채비를 서둘렀다.
“누가 보냈는지는 알고 있는 거야?”
“나가 보면 알게 될 겁니다. 다녀오겠습니다.”
“하오문일 거야.”
“그 정도는 저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집무실을 나와 북림의 성문을 향해 걷던 비강의 입가에 가는 미소가 맺혔다.
흑견조의 조장 온조가 조원들과 함께 성문으로 막 들어서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연 부관.”
“오랜만이오, 온 조장.”
“호북에서 일을 끝내고 막 도착했습니다. 보고서는 바로 올리겠습니다.”
비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온조를 지나쳐 갔다.
“또 봅시다. 온 조장.”
“저 사람이 바로 조장과 함께 흑견조에 몸담고 있었다는 백리혈이로군요?”
“맞아. 그러니 너희들도 열심히 해.”
신입 조원들과 온조의 대화를 들으며 성을 나선 비강은 양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향했다.
아마도 어린아이를 통해 서신을 전한 사람은 하오문의 장경주일 것이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로 들어선 비강은 자신을 지나쳐 가며 중얼거리는 중년 사내의 목소리를 듣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천혜원(千蕙院)을 찾아가십시오.”
천혜원은 또 어디란 말인가.
잠시 거리를 걷던 비강은 사람들을 붙잡고 천혜원의 위치를 물었다.
그러나 천혜원이라는 곳을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마침 비강은 길거리 한쪽에 의자를 내다 놓고 앉아 있는 늙은 노인을 발견했다.
이 거리에서 많은 세월을 보냈다면 분명 천혜원이라는 곳도 들어 보았을 것이다.
“노인장, 혹시 천혜원이라는 곳을 알고 있습니까?”
“저기 저 골목길로 빠져나가 이각쯤 걸어가시오. 그럼 큰 나무 한 그루가 보이고 그 아래에 작은 요리점 하나가 나타날 거요. 그곳이 바로 천혜원이라오.”
“감사합니다, 노인장.”
비강이 골목길로 사라지고 난 후 노인은 묘한 미소를 짓더니 의자를 가지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 * *
노인의 말대로 골목길을 통해 이각쯤 걷다 보니 작은 언덕 아래에 큰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그리고 그 나무와 붙어 작고 아담한 기와집 세 채가 보였다.
그러나 어디에도 이곳이 천혜원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팻말은 붙어 있지 않았다.
“계십니까?”
방문을 알리는 비강의 목소리에 기와집의 대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연 소협.”
대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짐작대로 하오문의 장경주였다.
“여기가 혹시 장 소저의 집이오?”
“네. 어서 들어오세요.”
비밀을 요하는 하오문의 여인이 집으로 자신을 초청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비강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집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정적까지 흐르는 마당을 지나 아담한 기와집 안으로 안내되어 들어간 비강은 장경주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로 나를 부르셨소? 장 소저.”
“섬서 북쪽과 호북, 산서로부터 묘한 정보가 여러 번 날아왔어요. 그 정보를 전해 드리기 위해 연 소협을 급하게 찾았어요.”
장경주는 미리 준비해 놓았던 차를 내와 비강과 마주 앉았다.
“얘기해 보시오.”
차를 한 모금 마신 그녀는 탁자에 지도 한 장을 펼쳤다.
“강호인들의 이동이 활발해지고 있어요. 오래전에 강호에서 모습을 감춘 마두들을 목격했다는 보고도 자주 올라오고 있고요.”
“천마지병으로 인해 가문이나 집을 떠났던 강호인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섬서 북쪽과 산서 북쪽에서 이곳 서안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이들의 숫자가 늘어났어요.”
장경주는 손가락으로 지도에 섬서 북쪽과 산서를 찍더니 서안을 가리켰다.
“호남이나 호북과 거리가 멀다 보니 뒤늦게 소식을 듣고 움직였을 수도 있소.”
아무렇지도 않게 장경주의 말을 받고 있기는 했으나 비강도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연 소협의 추측이 타당하기는 해요. 하지만 이런 일을 꽤 오래 하다 보니 감이라는 게 생기더군요.”
“감이라…….”
장경주는 비강이 자신의 말을 믿어 주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저의 감을 믿지 못하시는군요. 그렇죠?”
“아니오. 오히려 장 소저의 감이라면 어지간한 정보보다 훨씬 더 믿을 만하오. 계속해 보시오.”
살짝 찌푸려졌던 장경주의 안색은 일시에 활짝 펴졌다.
“무엇보다 사패의 순찰조들도 잡아내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는 강호인들이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요.”
비강의 안색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강호인들이 없을 수는 없겠으나 장경주의 감을 더한다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굳은 안색으로 지도를 살펴보던 비강이 물었다.
“서안에 강호인들이 많이 모여들었소?”
“아니요. 서안은 전과 마찬가지로 평온해요. 그 때문에 선뜻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요.”
“고맙소.”
강호인들이 서안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서안이 평온하다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리 서안에 북림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말이지.’
비강은 탁자에 팔을 괴고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장경주가 내온 따뜻한 차가 차갑게 식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던 비강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빛은 번들거리는 기광으로 가득했다.
“뭔가 알아내신 거라도 있나요?”
“아니…… 강호 무림의 분란을 위해 천마지병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이동을 숨기기 위해 천마지병을 이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소.”
“그게…… 무슨 말씀이죠? 그렇다면 백건적의 원래 목적은 강호의 분란이 아니었단 말인가요?”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를 노렸을 수도 있소. 첫 번째 목적은 강호의 분란일 것이고, 두 번째 목적은 강호인들과 사패의 분열,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이동을 숨기기 위해 그럴듯한 미끼를 던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소.”
비강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장경주의 온몸에는 소름이 돋아났다.
어떻게 이 사람은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이런 추론을 끄집어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연 소협께서는 백건적들의 목표가 무엇이라고 보고 있나요?”
“담대하거나 혹은 미쳤다면 북림을 노릴 거요.”
“그…… 계획이 가능하리라 보시나요?”
“내 짐작일 뿐이오. 그러니 마음속에조차 담아 두지 마시오.”
언제 심각했냐는 듯 표정을 푼 비강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차, 잘 마셨소.”
“벌써 가시려고요?”
“혹시 다른 정보라도 있는 거요?”
“그건 아니지만…….”
장경주를 향해 가벼운 미소를 보인 비강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다 입을 열었다.
“언제 이번 일에 대한 보답으로 식사 한번 대접하고 싶소.”
“그럼, 닷새 후 저녁은 어떤가요?”
“그럽시다. 어디서 만나는 게 좋겠소?”
“일미고가 좋겠어요.”
“아.”
일미고라면 전에 약철빙과 함께 상단 사람들을 만났던 그 요리점이었다.
“좋소. 그때 봅시다.”
“네. 그때 뵈어요.”
대문을 나서는 비강의 걸음은 한가롭기 그지없었으나 북림에 가까워질수록 속도는 빨라졌다.
‘풍천양에 필적할 만한 고수가 백건적에게도 있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