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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51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1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51화

제51화. 초대

 

 

 

약철빙이 수련과 운기행공을 마칠 때까지 비강은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비강도 천천히 눈을 떴다.

“운기행공을 너무 오래 하는 거 아냐?”

“운기행공을 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와 싸우다니?”

“그런 게 있습니다.”

싸움의 상대는 남선의 선주 도운패였다.

계속해서 싸움을 걸었고 그때마다 패했다.

싸움에 패할 때마다 도운패는 더 강해졌고 나중에는 그의 일도조차 제대로 받아 내지 못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넘을 거다.’

 

* * *

 

비강이 순찰단에 복귀한 지 열흘이 지나갔다.

여느 때처럼 순찰조의 보고서를 살펴보고 있던 비강은 동평지로부터 봉서 하나를 전해 받게 되었다.

“정문에서 젊은 여인이 연 부관께 전해 달라며 봉서를 건네주고 돌아갔답니다.”

“젊은 여인?”

서안에서 자신에게 봉서를 전할 여인은 하오문의 장경주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들 모르게 움직여야 하는 입장이라 함부로 얼굴을 드러낼 처지가 아니었다.

“누구에게서 온 거지?”

봉서를 열어 서신을 읽고 있는 비강에게 약철빙이 관심을 보였다.

“전에 만났던 담노가 저를 초대하는 초대장입니다. 서안에 거처를 마련한 모양입니다.”

비강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약철빙은 눈살을 찌푸렸다.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노인이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수상했던 노인.

의도는 불분명하지만, 자신에게 접근하려 하는 건 분명했다.

“아니. 혼자 갔다 와. 가는 김에 그 노인에 대해 잘 알아보고.”

“그러죠.”

비강은 바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깨끗한 무복과 털옷으로 갈아입고 허리와 등에 검과 봉을 둘러멘 비강은 무복으로 싸 놓았던 도를 집어 들었다.

“그건 왜 가져가려고?”

무복에 싸인 것이 천마의 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약철빙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쓸데가 있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일찍 돌아와.”

 

* * *

 

북림을 나온 비강은 양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거리에 들어섰다.

“쌉니다, 싸요!”

“우리 객잔은 면 요리를 잘해요! 면 한 그릇 먹고 가세요!”

“한 푼만 깎아 주쇼.”

“나도 남는 게 있어야지.”

비강은 거리를 가득 메우며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으로 묻혀갔다.

한참을 걸어 사람이 가득한 거리와 거리를 지나 동쪽으로 빠져나오니 드문드문 논과 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논과 밭 사이에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큰 저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수상한 노인이야.’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던 담노가 구한 집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큰 저택이었다.

논과 밭 사이로 난 넓은 길을 걸어 대문 앞에 도착한 비강은 자신의 방문을 알렸다.

“계십니까?”

잠시 후, 저택의 대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렸다.

대문 안쪽에는 담노가 머리를 조아린 채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비강도 고개를 마주 숙였다.

“오랜만에 뵙소. 초대해 줘 고맙소.”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흠…….’

담노는 비강을 마치 하인이 주인을 대하듯 했다.

넓은 마당에는 노인의 손녀와 일 보는 중년 여인들이 서 있다가 비강이 다가가자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

‘도대체 뭐 하는 짓들인지 모르겠군.’

비강을 방 안으로 안내한 담노는 주인이 앉을 자리를 권했다.

“이쪽에 앉으십시오.”

“내가 어찌 그 자리에 앉겠소. 주인장이 앉을 자리가 아니오?”

“저도 주인이 아닙니다. 불편하시다면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허허허…….

의미 모를 대답과 함께 웃음을 지어 보인 노인은 다른 자리를 권했다.

비강과 담노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좌우에 자리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마자 방문이 열리고 요리가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년 여인들은 끊임없이 요리를 내왔는데 처음 접하는 요리들이 꽤 많았다.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약속을 했으니 응당 초대에 응해야 하지 않겠소.”

허허허…….

“대협, 어서 드십시오.”

아직 이른 저녁이었지만 주인의 대접이니 식사는 해야 했다.

비강은 식탁 위에 차린 요리들을 골고루 맛보았다.

담노에 대한 의심은 여전해 혹시 독이 들어 있지 않는지 여러 요리를 맛본 것이다.

식탁 위에는 기름진 요리들도 여럿 있었지만 담백한 맛을 내는 요리들도 많았다.

“한 잔 드시지요.”

비강은 담노가 채워 주는 술잔을 받고 그의 잔에도 술을 채워 주었다.

요리들은 비강의 입맛에 아주 잘 맞았다.

비싼 요리점에서 먹는 요리들보다 이곳에서 먹고 있는 요리들이 훨씬 더 맛이 좋았다.

특히 그중에 잘게 썬 채소와 고기를 곁들인 죽이 있었는데 수저를 계속 움직여야 할 만큼 입맛에 맞았다.

그런 비강의 모습을 은근히 훔쳐보던 담노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맛이…… 어떠신지요?”

“좋소. 아주 좋소.”

“옛날 제가 모시던 아기 도련님께 그 죽을 가끔 해 드렸지요. 도련님께서도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그 아기 도련님은 어떻게 되었소?”

비강은 식사를 이어 가며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계속 찾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빌겠소.”

죽 한 그릇을 뚝딱 비운 비강이 다른 요리에 젓가락을 가져가자 담노는 빈 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더 가져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일부러 나갈 필요는 없소. 다른 요리들도 많으니.”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 되지요.”

밖으로 나간 담노는 다른 큰 그릇에 죽을 가득 담아 돌아왔다.

“드십시오.”

“아…… 고맙소.”

큰 그릇에 담긴 죽을 당황스럽게 바라보던 비강은 수저를 부지런히 움직였다.

“정말 잘 먹었소.”

이윽고 식사는 끝이 나고 비강은 고마움을 표했다.

비강의 인사는 절대 빈말이 아니었다.

그만큼 입에 잘 맞는 요리였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상을 치우고 차를 내오게.”

담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년 여인들이 들어와 상을 치웠다.

뒤이어 식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가 놓여졌다.

“실은 연 소협께 여쭐 말이 있어 초청을 했습니다.”

“무슨 목적이 있어 초청했음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소. 물어보시오.”

담노는 떨리는 눈으로 비강을 주시했다.

“혹시…… 원래 이름이 ‘월’ 아니십니까?”

순간 비강의 눈빛은 섬뜩한 살기를 띠었다.

“백건적인가?”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연 대협.”

담노는 붉어진 눈으로 고개를 저으며 애절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혹시 원래 존함이 연월이 아니신지요?”

“그건 왜 묻소?”

“제겐 아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대답을 들으면 죽어야 할 텐데.”

식탁 옆에 세워 둔 검을 잡은 비강의 목소리는 다시 살기를 띠었다.

“그래도 좋습니다.”

비강은 담노의 표정에서 형언치 못할 감정을 느꼈다.

뭔가 아련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했다.

이런 감정은 아저씨와 같이 있을 때뿐이었다.

“맞소. 내 본명은 연월이오.”

“그…… 그렇다면 아버님의 존함은 연서문이 아닌지요?”

담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 나왔다.

비강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정체를 밝힌 후에 이 노인은 죽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아아…….

담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털썩.

담노는 갑자기 비강 앞에 무릎을 꿇으며 통곡을 했다.

어헝! 헝헝헝……!

“왜 우는 거요? 노인장.”

“도련님……!”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담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렇구나…… 찾아다니고 있다는 도련님이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구나.’

비강은 단번에 이 기막힌 상황을 파악해 냈다.

하지만 아직까지 완전하게 이 노인을 믿는 것은 아니었다.

“어찌하여 나를 도련님이라 부르는 것이오?”

“제가…… 제가 도련님의 부친 되시는 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 없소…….”

“원래 도련님의 조부께서 고려의 장군이셨습니다. 저 또한 그분을 모시면서 연가와 인연을 맺어 연월 도련님까지 모시게 되었지요……. 모든 비극이 시작된 그날, 주인께선 저를 피신시키셨지만…… 그 후로 통한에 젖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회한이 묻어 나오는 노인장의 말.

“제가 자결하지 않은 것은…… 연월 도련님이 어딘가에 살아 계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헛소문일지도 몰랐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믿어야만 했습니다…….”

의자에 앉아 담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비강의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아아…….

아저씨를 제외하고 또 다른 가족이 살아 있었다.

비강도 담노 앞에 무릎을 꿇어 엎드렸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살아 계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도련님…….”

차갑기만 했던 비강의 가슴속에 온기와 기쁨이 가득했다.

 

* * *

 

슬픔과 기쁨이 가득한 통곡의 시간이 지나가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할아버지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담노라 부르십시오, 주인님.”

“어찌 제가 그리 함부로 부를 수 있겠습니까. 당치도 않습니다.”

“아니 됩니다. 주인께서는 저를 담노라 부르셔야 합니다.”

담노의 목소리가 워낙 강경하기에 비강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담노라 부르도록 하지요. 담노,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몇 년 동안 중원을 돌며 주인님을 찾았지만 행방을 알지 못해 고려로 넘어갔었습니다. 혹시 부친께서 고려의 지인을 통해 주인님을 빼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지요. 하지만 그곳에서도 찾지 못하고 고아와 여인들 몇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시중을 들고 있는 여인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렇다면 밖에 있는 여인은 손녀가 아니군요?”

“예. 제자 중에 둘째입니다. 첫째와 셋째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께서는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비강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풀어놓았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담노는 크게 감탄을 하며 기뻐했다.

“하늘이 도우신 겝니다. 아무렴요. 하늘이 도우신 게지요.”

무릎까지 치며 기뻐하던 담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제가 강호 무림을 돌아다니며 꽤 쓸 만한 자들을 여럿 모았습니다. 전부 주인님께 보탬이 될 만한 자들입니다.”

“담노, 복수는 제 손으로 직접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복수는 제가 천하제일인이 되었을 때입니다.”

비강의 꿈이 원대한 곳에 있음을 알아본 담노는 더욱 기뻐했다.

“장하십니다.”

“그러니 이제 담노의 삶을 사십시오.”

“그 무슨 말씀을…… 차라리 저를 죽이십시오!”

털썩.

담노는 크게 역정까지 내며 비강 앞에 꿇어앉았다.

후우!

“제발, 무릎 좀 그만 꿇으십시오. 제가 다 민망합니다.”

한숨까지 푹 내쉰 비강이 말렸지만 담노는 요지부동이었다.

“주인께서 말씀을 거두시기 전까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가족을 만난 것은 정말 기쁘기 짝이 없었지만 그 가족은 너무 고집이 세고 막무가내였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오직 비강을 찾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아…….

“좋습니다. 대신 함부로 움직이지 마십시오. 북림의 순찰조는 담노의 짐작보다 눈이 밝습니다. 또한 림주는 앉아서 천 리 밖을 내다보는 자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사패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이곳에는 아주 적은 인원만 상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럼, 이제 나가시지요.”

“어디를 나간단 말씀이십니까?”

“가문을 되찾으셨으니 가문의 무공도 되찾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담노의 말에 몸을 일으킨 비강은 함께 방 밖으로 나갔다.

“수연아, 앞으로 목숨으로 지켜야 할 주인님이시다. 제 둘째 제자로 이름은 담수연입니다. 원래 이름이 없어 저의 성을 주고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방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젊은 여인은 비강을 향해 엎드렸다.

비강도 마주 머리를 숙여 인사를 받았다.

“그만 일어나시오, 담 소저.”

“예. 주인님.”

“앞으로 주인이라 하지 말고 그냥 연 소협이라 부르시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자도 사부를 닮아서 그런지 고집이 무척이나 셌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이곳을 떠나겠소.”

담노는 대대로 가문의 사람이라 이해한다지만 젊은 여인에게까지 주인이라는 말은 듣긴 거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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