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89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89화
제89화. 떠돌이 무인(1)
“예. 차라리 북림 안에 그들을 잡아 두는 것이 훨씬 더 감시하기 편할 것입니다.”
시천세는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총관으로서 마땅한 의심이었다.
“그자들은 앞날을 염두에 두고 내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겠지. 응당 그래야 하고. 아마도 오진권이라는 애송이는 십 년이나 십오 년 앞을 내다보고 있을 게야. 그 정도의 시간이면 나를 제거하고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으리란 판단을 하고 있겠지. 어떠냐? 종예. 가능하겠느냐?”
“불가능합니다. 애초부터 상대를 잘못 골랐습니다. 삼천존이라면 가능할지 모르나 주공께 닿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종예.”
순간 시천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시천세의 눈빛이 변하자 회의실 안은 순식간에 차갑고 싸늘한 기운이 가득 들어찼다.
“죄송합니다, 주공.”
종예는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앞으로 내 사제들과 그자들을 비교하지 말라.”
“명심하겠습니다.”
“되었다.”
종예는 조심스럽게 바닥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평생이 걸려도 그것들은 내 사제들에게조차 닿지 못할 게야. 그놈들은 지금 미몽을 꾸고 있는 것이지.”
총관 벽하원은 시천세의 모습을 가만히 두 눈에 담았다.
‘이자라면 내 꿈을 이룰 수 있게 해 줄지도 모르겠군.’
은연중 시천세를 관찰하고 있던 총관 벽하원의 가슴속이 야망으로 꿈틀거렸다.
무공이 강하지 못해 북림의 이인자로 만족하며 야망을 숨기고 있어야 했다.
하나 새로운 주인은 무림일통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총관 벽하원의 꿈은 오직 하나였다.
강호의 주인을 대신해 강호 무림을 운영하는 것.
벽하원은 흉중을 숨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음 목표로 심중에 두고 있는 곳은 삼패 중에 어느 곳인지요?”
끌끌…….
시천세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그런 그를 대신해 종예가 서늘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벽 총관은 주공께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끌어들인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그자들을 이용해 삼패 모두를 치기 위함이에요.”
“그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오히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삼패에 의해 전멸을 면치 못할…….”
하하하하…….
총관의 의문에 회의장 안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서늘한 눈초리에 입가에는 비웃음이 가득한 종예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동천과 서패의 주인들은 주공을 두려워하고 있으니, 이미 강호는 주공의 것이나 다름없어요.”
시천세는 이미 삼패가 무너져 내린 이후를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과 사제들은 죽지 않는 괴물에게서 선택받았다.
그리고 언제 그 괴물이 나타나 자신들의 목숨을 앗아 갈지 모른다.
‘강호 무림 전체가 전부 적이 되어 나와 맞선다 해도 두렵지 않아. 하나 그 괴물만은…….’
홀로 두려움을 삭여 내던 시천세는 문득 연비강이라는 애송이를 떠올렸다.
‘설마, 그놈도 그 괴물의 안배인가.’
* * *
어두운 흑의 무복에 말을 탄 젊은 사내가 호북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더운 뙤약볕을 피해 그늘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말을 타고 지나가는 젊은이를 구경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너도 많이 지친 모양이구나. 멀지 않은 곳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니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가자.”
물소리를 좇아간 비강은 말을 풀어놓고 커다란 나무 그늘에 앉았다.
몸이 편치 않아 말을 구하기는 했으나 이제 몸도 거의 다 나아 눈에 보이는 목장이 있으면 말을 되팔 생각이었다.
물을 마시고 풀을 뜯는 말을 잠시 지켜보던 비강은 숨을 헐떡이며 관도를 걷고 있는 강호인들을 향해 눈을 돌렸다.
“더위가 대단하구만. 저기 물이 있는 것 같으니 잠시 쉬었다가 가세.”
강호인들은 비강이 앉아 있는 곳과 조금 떨어진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갔다.
허겁지겁 흐르는 물로 목을 축이고 비어 버린 가죽 물주머니에 물을 채운 그들은 다시 그늘로 돌아와 한숨을 돌렸다.
후우…….
“정말 올해는 유난히 덥군. 사람을 삶는 것 같은 더위야.”
“이번에는 꼭 합격을 해야 하는데. 이 고생을 해 가며 은운곡을 찾아가는데, 떨어진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나.”
“그렇지. 떨어지고 돌아오는 길은 아마도 지옥일 걸세.”
강호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비강이 피식 웃었다.
처음 강호에 들어와 은운곡으로 찾아갈 때가 떠오른 것이다.
‘그곳에 잠시 들르긴 해야겠군. 숨겨 놓았던 금붙이가 있으니.’
은운곡에서 북림으로 들어갈 때 대들보 위에 숨겨 놓았던 금붙이를 챙겨가지 않았었다.
“그만 가자.”
비강이 몸을 일으키자 풀을 뜯고 있던 말이 느린 걸음으로 다가왔다.
“영리한 녀석.”
말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비강은 바로 말 등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두어 시진을 말을 몰아가려니 어둠이 찾아왔다.
비강은 물이 흐르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 다시 말을 풀어놓았다.
모깃불을 피우고 말 등에 실린 행랑에서 육포를 꺼내 배를 채운 비강은 정좌를 하고 운공에 빠져들어 갔다.
반 시진 정도 운공을 하던 비강은 문뜩 눈을 뜨고 모닥불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잠시 후 두런두런 사람들의 발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선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소국주.”
“그래도 우리가 항상 쉬어 가던 자리이니 양해를 구하고 저곳에서 쉽시다.”
“소국주, 요즘 이 근방에서 강도들이 자주 출몰한다고 합니다. 차라리 밤길을 달려서라도 이곳을 빠져나간 다음에 쉬시지요.”
“표두님과 표사들이 있는데 무에 걱정이겠소. 또한 그자들이 고수라면 적당히 통행료라도 지불하면 되는 것이고. 무엇보다 말들이 너무 지쳤으니 저곳에서 쉽시다.”
“오라버니, 원 표두님의 말씀이 옳아요. 무리를 해서라도 이곳을 빠져나가요.”
하하하…….
“세상에 두려울 것 없이 날뛰던 네가 그까짓 강도들을 무서워해서야 쓰겠느냐. 걱정 마라. 다 잘될 것이니.”
비강이 쉬고 있는 공터로 이십여 필의 말과 사십여 명의 사람이 몰려들었다.
표국의 젊은 주인은 먼저 모깃불 앞에 앉아 쉬고 있는 비강에게 다가와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밤을 함께 보내도 되겠는지요?”
비강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소국주의 허락이 떨어지자 쟁자수들은 요리 도구를 내려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모닥불이 여기저기 밝혀지고 그 위에 커다란 쇠솥들이 걸렸다.
표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표두는 병장기 하나 없이 모닥불 앞에 앉아 있는 비강을 주시하다가 표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인근을 순찰하고 돌아와라.”
표사 여섯 명이 짝을 지어 순찰을 나간 후 표두는 소국주 옆에 붙어 섰다.
“저 사람도 강호인처럼 보이는데, 병기가 없네요?”
소국주의 여동생이 비강을 흘깃거리며 물었다.
표두는 어둠속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을 향해 턱짓을 해 보였다.
말안장에 삐져나온 검병이 눈에 들어왔다.
“고수는 몸에서 병기를 떼지 않는 법인데…….”
“함부로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는 것이 아니다. 입조심해라.”
“예. 오라버니.”
밥 익는 냄새와 고깃국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순찰을 나갔던 표사들이 돌아왔다.
“이상 없습니다.”
쟁자수들은 먼저 소국주와 여동생, 그리고 표두에게 밥을 내왔다.
그리고 뒤이어 표사들에게 밥과 국을 돌리고 난 후 자신들이 먹을 밥과 국을 그릇에 담았다.
소국주는 밥과 국을 그릇에 담아 가만히 앉아 쉬고 있는 비강 앞으로 다가갔다.
“식전이라면 한번 드셔 보시지요. 우리 쟁자수들의 요리 솜씨가 제법 뛰어납니다.”
처음에는 사양하려고 했던 비강은 소국주가 내민 소반을 받아들었다.
“고맙습니다.”
소박한 자긍심이었지만 소국주의 말대로 국물 맛이 아주 좋았다.
“잘 먹었습니다.”
깨끗하게 비운 그릇을 되돌려준 비강은 소국주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쟁자수들의 설거지가 끝나고 밤은 점점 더 깊어갔다.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잠에 빠져들던 비강의 눈썹이 살짝 흔들렸다.
멀리서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숫자는 다섯.
그중에 둘은 발소리가 꽤나 가벼운 것이 강호의 고수였다.
잠시 후 번초를 서던 표사들도 사람들의 인기척 소리를 들었는지 은근히 긴장하며 잠자고 있는 표두를 깨웠다.
잠이 들었던 표두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표사들과 함께 공터 입구를 지켜 섰다.
“사해는 모두 동도라 하였는데 어찌하여 앞을 막는 것이냐?”
공터 입구로 들어서던 사내 중 하나가 눈을 치뜨며 물었다.
“표물을 지키는 임무에 충실할 뿐입니다. 존함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끌…….
혀를 찬 사내는 힐끔 뒤쪽을 돌아보았다.
뒤에 서 있던 나이 든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강호의 동도들은 나를 두고 잔표(殘彪)라 부르며 경외하지.”
‘잔표’는 이십여 년 전의 강호에서 꽤나 악명을 떨쳤었다.
그는 산적이나 수적과는 달리 일정한 거처 없이 무림을 떠돌아다녔는데 주로 하는 짓은 강도와 약탈이었다.
표두는 잔표라는 별호를 듣자마자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리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잔표 대협의 위명은 아버님께 귀가 따갑게 들었습니다. 가문의 영광입니다.”
언제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소국주가 머리를 숙이며 사내들을 안으로 들이게 했다.
잔뜩 긴장을 하고 있던 표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허리를 숙였다.
“안으로 드십시오.”
잔표와 사내들은 마치 주인이 제집을 찾아 들어가듯 당당하게 공터 안으로 들어섰다.
“무엇들 하는가? 어서 저분들이 드실 음식을 마련하고 술을 내오지 않고.”
소란에 잠을 깬 쟁자수들도 소국주의 재촉에 급히 수레에서 식재료들을 내렸다.
“저는 불영 표국의 소국주 이찬승이라 합니다.”
“강호의 후배를 만나 반갑군.”
잔표가 인사를 받으며 모닥불 주위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곁에 서 있던 사내들도 주변에 둘러앉았다.
“한데 대협께서는 이 후배에게 어떤 가르침이 있어 찾아오셨는지요?”
소국주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아주 조심스러웠다.
잔표가 강도짓이나 벌이는 흉적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으나, 무력이 아닌 대화로 일을 풀어 보고자 함이었다.
“성미가 조금 급한 편이로군. 하나 묻는 말에는 대답을 해 주어야겠지. 내가 이 근방에 무문을 하나 세우려고 하네. 그동안 북림의 떨거지들에게 쫓겨 다니다 보니 쉴 만한 집이 없는 것이 무척 아쉽더군.”
결국 은자를 내놓으라는 소리였다.
“경하드립니다, 대협.”
“고맙네.”
“먼저 술부터 드시며 천천히 얘기하십시오. 무엇들 하는가. 어서 술을 내오게.”
쟁자수들은 술과 잔을 내와 바쳐 올렸다.
술이 몇 순배 돌고 고기 안주까지 마련이 되자 본격적인 술판이 어우러졌다.
하하하…….
“문주님, 북림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한번 얘기해 주십시오. 언제 들어도 통쾌하기 그지없는 얘기가 아닙니까.”
“그러지. 내가 북림에 도착했을 때 북림의 떨거지들과 우리 편은 한창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 나는 북림의 떨거지 중 고수들만 살폈어. 원래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옥돈조의 공손황이라는 놈이 내게 덤벼들더군. 제법 검이 매섭기는 했으나 나의 노련함에는 미치지 못했지. 한참을 싸우다가 겁을 집어먹었는지 뒤로 물러나 욕지거리만 해 대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가소롭던지……클클클…….”
“백리혈, 백리혈과의 승부도 얘기해 주십시오.”
“그럴까?”
잔표는 입을 열다말고 주변을 흘깃 살폈다.
소국주는 물론이고 표두와 표사들, 그리고 쟁자수들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은근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잘하면 은자 오십 냥은 족히 뜯어낼 수 있겠군.’
흉명으로 이름 높았던 고수라 하지만, 표두를 포함한 표사들과의 싸움은 적잖은 부담이었다.
특히 앞을 가로막았던 표두는 무공이 제법 강해 보일 뿐 아니라 책임감까지 있어 보여 싸움이 벌어지면 죽기 살기로 달려들 게 뻔했다.
그런 표두가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오래 살아남으려면 언제나 조심해야 했다.
사실 그는 북림과의 전쟁에 참여하지 못했다.
깊은 골짜기에 있는 작은 촌락에서 숨어 지내다가 얼마 전에 강호에 출두한 것이다.
“백리혈은 참으로 대단한 자였어.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상대하기에도 꽤나 벅찬 놈이었지. 공손황을 대신해 그놈이 내게 검을 겨누더군. 십여 초의 공방 끝에 그놈의 검에서 사나운 용이 튀어나왔지. 서안의 저잣거리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는 바로 그 용이 말이야. 나는 광삭초(狂削超)라는 최고의 비기를 펼쳤지. 천지를 울리는 용의 울음소리가 비기와 만나 광풍을 일으켰어. 참으로 대단한 일전이었어.”
“백리혈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렇게 나와 일전을 벌이던 놈이 갑자기 모습을 감추더군.”
비강은 잔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피식 웃기만 했다.
처음 들어 보는 별호에, 허풍이 센 놈이었다.
무공은 제법 고강할지 몰라도, 교활해 보이는 눈빛을 보니 상대가 자신보다 강해 보이면 바로 꼬리를 말고 도망칠 위인처럼 보였다.
“대협께서 북림과의 일전까지 참여하셨다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소국주는 북림 전쟁에 잔표의 참여 여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한 칭송의 말은 잊지 않았다.
클클클…….
“예의 바른 후배를 만났으니 내가 조금 양보하지. 무문을 세우려면 은자가 많이 필요하네. 백 냥만 지원해 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