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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86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4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86화

제86화. 탈출

 

 

 

―나는 북림에 남을 거요, 연 소협.

멀리서 공손황의 전음이 전해져 왔다.

비강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문을 눈앞에 둔 비강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정상에서부터 이곳까지 내려오면서 남몰래 내공을 보충하기는 했으나, 아직 마음 놓고 무공을 펼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곳에 남으십시오.”

성문을 나서려던 약철빙은 놀라 비강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슨 뜻이지? 설마 저들에게 머리를 숙이라는 거야?”

“당신은 순찰단의 단주가 아닙니까. 단주는 조원들을 끝까지 돌봐야 합니다.”

약철빙을 위한 마지막 호의였다.

이곳에 남는다면 다음에 만날 때는 분명히 적으로 마주하게 되지만, 그때까진 살아남을 수 있을 터였다.

약철빙은 선뜻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단주라는 직책의 책임감이 마음을 흔들리게 한 것이다.

“비강도…… 순찰단의 부관이잖아.”

“저는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임시직일 뿐이었습니다.”

비강은 머뭇거리는 약철빙을 남겨 둔 채 정문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잠깐! 나는…….”

스아아아…….

약철빙이 급히 비강의 뒤를 따라나서며 뭔가 말을 하려 할 때, 그녀의 양옆으로 십여 줄기의 그림자들이 빠져나갔다.

“백리혈!”

정문을 빠져나간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고수들은 등을 보인 채 걷고 있는 비강을 향해 짓쳐들어왔다.

순간 비강은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며 적들을 향해 창을 뻗었다.

콰콰…… 콰쾅!

십여 명의 고수들은 성난 회오리에 휩싸여 비명조차 질러 보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추격하라!”

붉은 피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오진권의 외침 소리가 성 안을 뒤흔들었다.

아아아…….

약철빙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 무사히 내보내 주겠다는 시천세의 약속은 오직 북림 안에서만 허용된 것이었다.

약철빙은 망연한 얼굴로 점점 점이 되어 사라져 가는 비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 * *

 

크윽! 컥!

적들을 베어 내고 이십 보를 떼어 내기도 전에 등 뒤로 또 다른 살기가 따라붙었다.

스걱―!

신형을 회전해 등 뒤로 접근하는 적의 목을 쳐 내고 나니 어느새 퇴로는 또 다른 추격자들에 의해 막혀 있었다.

“포기해라, 백리혈.”

후우…….

남은 힘을 쥐어짜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있지만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인내심이 부족한 적 하나가 땅을 박차며 창을 들이밀었다.

따깡! 끄아아아악!

비강은 가슴을 파고 들어오는 창을 비껴 쳐 내며 적의 팔을 잘라 버린 뒤, 목을 베어 들어오고 있는 검날을 튕겨 냈다.

터턱…… 턱…….

까깡!

힘에 밀려 뒤로 주륵 밀려난 비강은 순식간에 따라 들어오는 검력을 이기지 못해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이제 그만 죽어라!”

비강이 땅을 나뒹굴자마자 네 방향에서 적들이 신형을 띄우며 날아들었다.

순간 번뜩이는 빛줄기가 그들을 향해 쏟아졌다.

투툭…… 툭…….

공중으로 신형을 띄웠던 적들의 몸이 일제히 터져 나가며 땅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남은 힘을 모조리 쥐어짜 내던 비강의 귀로 담노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피하십시오, 주인님.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비강의 눈은 추격자들을 막아서고 있는 담노와 젊은 사내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들을 베어 내고 있는 담노는 흘깃 눈을 돌려 무언의 재촉을 거듭했다.

‘담노…….’

비강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조금씩 적들의 추격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산서 평요의 태청산을 기억하십시오, 주인님.

산서 평요의 태청산.

담노의 전음을 머릿속으로 되뇌던 비강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어렵게 서안에 자리를 마련한 담노의 장원은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

북림에 자리를 잡은 오진권은 곧 담노와 정천에 대한 추격에 나설 것이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까마득히 멀어지고 서안으로 들어가는 관도에 다다랐을 때쯤, 비강은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

“내가 너를 그냥 이대로 도망치게 내버려둘 것이라 생각했나? 그렇게 생각했다면 나를 한참 잘못 본 거야.”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던 오진권이 몸을 일으키며 이죽거렸다.

“사부님과 사숙이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는 모양이야. 그분들의 복수를 내 손으로 직접 하게 되었으니.”

“축하해.”

외통수도 이런 외통수가 없었다.

내공이 바닥난 상태에서 도망을 쳐 봤자 오진권은 금방 따라잡을 것이다.

비강은 심하게 떨리는 손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천천히 검을 빼 들었다.

오진권도 검을 빼 들며 차갑게 웃었다. 전진의 선배님들이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어떻게 저놈을 죽여야 할까?

어떠한 극한의 고통을 선사한다고 해도 사부님과 사숙에 대한 복수로는 시원치 않을 것이다.

“선공을 양보하마. 그다음에는 네놈의 손가락을 자르고, 팔을 자르고, 다리를 잘라 개의 먹이로 던져 줄 거다.”

아무리 비강이 심한 부상을 당하고 지친 상태라 하지만 오진권의 만용은 너무나 지나쳤다.

‘한 번. 한 번밖에 기회가 없는 건가?’

하지만 그 한 번을 펼칠 무공이 없었다.

오진권을 상대하려면 최소한 용아포를 시전해야 하건만 바닥난 내공은 그 무공을 허락하지 않았다.

후우우…….

길게 숨을 들이켠 비강은 오진권의 가슴을 향해 검을 뻗었다.

 

내공의 파장조차 느껴지지 않는 비강의 검.

빠르기는 하지만 여느 검초와 다를 바 없는 모습에 오진권도 그에 맞춰 초식을 펼쳤다.

까가가…… 깡!

비강의 검과 부딪친 오진권은 손목이 비틀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힘이……!’

지금껏, 비강이 전장에서 쌓아 올린 업(業)의 무게가 담긴 중검(重劍).

“크윽!”

오진권의 한쪽 다리가 구부러진다.

급하게 자리를 뒤로 물리는 오진권의 가슴으로, 다시 비강의 검첨이 짓쳐들어왔다.

‘내 검은 전진 최후의 검일지니……!’

흔들림 없이 파고드는 비강의 검을 맞받아치기 위해 오진권이 자세를 잡고 기세를 피워 냈다.

서로의 검이 부딪치는 찰나, 흐릿하고 여린 기운은 오진권의 가슴을 꿰뚫었다.

스각―

“뭐, 뭣…….”

힘을 잃은 오진권은 가까스로 비강의 검을 막았으나, 검력을 이기지 못하여 뒤로 날아가 버렸다.

때를 맞춰 검은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오더니 비강의 몸을 감싸 안고 사라져 갔다.

쿨럭!

급하게 비강의 뒤를 쫒으려던 오진권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여자?’

비강을 안고 사라져 가는 검은 형체는 몸의 굴곡으로 볼 때 여인이 분명했다.

“빌어먹을…… 으아아아! 쿨럭!”

몸을 일으켜 뒤를 쫒으려던 오진권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울분을 쏟아 내다가 다시 피를 토했다.

아무래도 상처가 가볍지 않은 모양이었다.

부상당하고 지쳤다지만, 백리혈을 너무 무시했다.

그리고 그 무시에 대한 대가는 통한의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 돼.’

백리혈을 저대로 놓아 보냈다가는 머지않은 미래에 강적이 되어 다시 출현할 것이다.

오진권은 가슴을 움켜잡으며 억지로 경공을 펼쳤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고 비틀거리다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젠…… 장! 으아아아……!”

 

* * *

 

축 늘어진 비강을 업고 달리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무공을 익힌 무인이라고는 하나 건장한 사내를 업고 칠팔 리가량을 달리다 보니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하아…… 하아…… 하아…….

장경주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시 발을 멈췄다.

몰래 숨어 기회를 엿보다가 비강을 빼내기는 했지만 천운이 닿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등에 업혀 있는 비강은 기절했으나, 손에 있는 검만은 여전히 꽉 움켜쥐고 있었다.

잠시 거친 숨을 가다듬은 장경주는 북쪽을 향해 다시 달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잘 아는 의원이 있었다.

의술은 뛰어나지만 억울하게 강호인에게 한 팔을 잃어버린 자였다. 그 일로 인해 의원을 그만두고 작은 마을에 들어가 약초를 캐다 팔아 살고 있었다.

‘버티셔야 합니다, 비강.’

 

계속해서 오륙 리를 달리다 보니 땅바닥으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등에 업힌 비강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였다.

경공을 멈춘 장경주는 비강을 풀밭에 누이고 자신이 입고 있는 무복을 찢어 근처 개울에서 물을 적셔 왔다.

걸레처럼 변한 무복을 열어젖히니 온몸에 온통 깊은 상처투성이였다.

‘지독한 사람. 어찌 이 몸으로 적들과 계속 싸움을 벌였을까.’

젖은 헝겊으로 피를 전부 닦아 낸 그녀는 다시 비강을 등에 업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사람은 살리고 싶었다.

하오문의 염원과 상관없이 이 사람을 살리고 싶었다.

날이 어둑어둑할 때쯤 되자 녹초가 된 장경주는 업고 있는 비강과 함께 어느 이름 모를 야산에 쓰러지고 말았다.

허억…… 허억…… 허억…….

너무 지친 나머지 차라리 비강처럼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조금만…… 조금만 쉬었다가 가요, 연 소협.”

어느 결에 눈꺼풀이 스르르 감겨들었다.

우우우…….

막 잠에 빠져들던 장경주는 멀리서 들려오는 늑대 울음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났다.

늑대 무리가 비강의 피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되는 대로 근처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화섭자로 불을 피웠다.

그러곤 허리에서 검을 뽑아 움켜쥐었다.

크르릉…… 크릉…….

곧이어 푸른 안광을 번뜩이는 늑대 십여 마리가 무리 지어 근처로 몰려들었다.

휘이이…….

뿐만 아니라 기이한 바람이 불어 애써 피워 놓았던 불을 꺼 버렸다.

“아, 안 돼.”

꺼진 불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장경주는 문득 기이한 바람이 비강의 몸을 돌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 웅…….

비강의 천령개에서 흘러나온 하얀 서기는 그의 몸을 감싸고 돌았다.

크아아앙!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늑대 무리에서 늑대 한 마리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퍽!

장경주가 미처 늑대를 향해 검을 휘두를 겨를도 없이 비강의 손에 있던 검이 날아 늑대의 목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 검은 다시 비강의 손으로 날아 들어왔다.

스르르…….

누워 있던 자세 그대로 몸을 일으킨 비강의 두 눈이 활짝 떠졌다.

두 눈에서는 푸른 안광이 번쩍이며 흘러나와 늑대 무리를 비췄다.

끄으응…… 끙…….

푸른 안광을 접한 늑대 무리는 앓는 소리를 내며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퍽!

또다시 날아간 검은 늑대의 목을 잘라 버리고 비강의 손안으로 돌아왔다.

그 광경에 늑대 무리가 달아나고, 비강은 정좌를 하고 앉았다.

푸른 청광을 번뜩이던 눈이 눈꺼풀 속으로 사라졌다.

‘당신은…… 정말로 신기한 사람이로군요.’

장경주는 비강 옆에 나란히 앉았다.

 

* * *

 

이십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약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마을 사람들이 먹고사는 방법은 화전과 약초였다.

얼마 되지 않는 산비탈의 거친 땅을 일궈 식량을 마련하고, 모자라는 식량은 인근의 산을 뒤져 약초를 캐 팔았다.

장경주는 비강을 업고 남쪽 산기슭에 있는 집을 찾아들어갔다.

앞마당 가득히 약초를 널어 말리고 있던 나이 든 노인은 정체 모를 사내를 업고 들어오는 장경주를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는 것이야. 나는 의원을 그만두었다니까.”

“제발 이분을 살려주세요, 일노.”

“일없다. 내 집에서 썩 나가거라.”

매몰찬 노인의 반응에 장경주는 비강을 옆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부탁할게요, 일노.”

허어…….

노인은 의미 모를 탄식을 터뜨리더니 바닥에 누워 있는 비강과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장경주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네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내인 모양이로구나.”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장경주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아, 아니에요.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쯧쯧…….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찬 노인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허리를 두드렸다.

“방 안으로 들어가 뉘어 놓아라.”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금세 환해지는 장경주의 표정에 노인은 고개를 흔들며 방으로 들어갔다.

“네 애비는 여전한 것이냐?”

“네.”

“꿈이 길면 절망도 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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