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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83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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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83화

제83화. 휘몰아치는 혈풍(2)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비강의 눈에서 푸른 섬광이 일렁였다.

들어 올린 검첨이 하늘을 향해 하염없이 늘어났다.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며 검을 뻗어 내던 임정사태의 눈에 점점 커지고 있는 검은 점 하나가 보였다.

쾅!

검은 점을 후려친 임정사태는 그대로 비강의 목을 꿰뚫었다.

아니, 꿰뚫으려 했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비강이 오른손에 쥐고 있는 검이 아니라 왼손에 쥐고 있던 철봉이었다.

임정사태는 공중에서 몸을 뒤집으며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는 철봉을 후려쳤다.

쾅! 컥!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철봉은 막았으나 그녀의 복부에는 비죽한 붉은 검신이 튀어나와 있었다.

“오늘…… 오늘은…….”

얼마나 오늘과 같은 날을 고대했던가.

그런데 바로 그 오늘이 운명을 달리하는 날이었을 줄은 그녀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강호에 아미파의 부활을 손꼽아 기다리던 임정사태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널브러졌다.

“장문인……!”

“장문!”

장문인들과 가주들의 안타까운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혈인이 된 비강이 바닥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 *

 

성벽 위에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약철빙은 두려움과 전율에 몸을 떨고 있었다.

짐작대로 성 안에서 나온 무인들은 북은각의 고수들이 맞았다.

눈으로 쫒기 힘든 저들의 움직임은 그들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북은각에 맞서는 적들의 정체였다.

저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렇다는 것은 저들 또한 북은각의 고수들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었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강호가 있었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강호가…….’

그녀의 시선은 북은각의 고수들 너머로 넘어갔다.

수천 명의 백건적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비강의 모습은 살이 떨리게 할 정도였다.

도무지 믿기 어려운 경이로운 무공은 약철빙이나 북림의 무인들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미 혈연이 되다시피 한 상태에서도 적들과 당당히 맞서고 있는 비강을 눈 안에 넣은 약철빙은 급하게 약추완을 찾아갔다.

약추완 또한 문루 위에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지금 공격을 해야 합니다.”

“아직 림주님의 영을 받지 못했다.”

“적들이 쳐들어와 싸움이 벌어졌는데 림주님의 영만 기다릴 건가요?”

“내가 가서 허락을 받아오마.”

약추완도 지금 공격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심중의 불안감이 쉽사리 공격 명령을 내리지 못하게 했다.

지금쯤이면 림주에게서 분명 무슨 명령이 내려왔어야 했다.

저 위에는 강호 무림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사천존이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림주의 허락은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뭔가 있어. 내가 모르고 있는 뭔가…….’

“감찰단주, 자네가 나 대신 이곳을 맡고 있게. 나는 림주님을 만나고 올 터이니. 만약 적들이 성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면 주저 없이 공격 명령을 내리게.”

“아, 알겠습니다.”

감찰단주 약추명은 불안한 가운데에서도 선뜻 명령을 받들었다.

“부림주! 이곳을 책임져야 할 분이 어디로 가십니까!”

더 이상 참지 못한 약철빙은 문루를 내려가는 약추완을 소리쳐 불렀다.

“림주님의 허락을 받아 온다고 하지 않았더냐!”

화가 난 약추완도 노기를 드러내며 얼굴을 붉혔다.

“공격을 더 이상 늦췄다가는 북은각의 고수들은 물론이고 연 부관까지 전부 전사할 것입니다! 지금 당장 공격을 해야 합니다!”

“시끄럽다! 그렇게 애가 탄다면 네가 직접 수하들을 이끌고 나가면 될 것이 아니더냐!”

낯빛이 상기된 채 소리를 질러 대던 약철빙의 안색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역시, 당신은 변하지 않았군요. 사위를 직접 베었던 그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어요.”

“이런, 망할 년!”

약추완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북림의 무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난날의 추악한 치부를 들춰낸 약철빙은 아버지 약추완을 무섭게 노려보다가 몸을 돌렸다.

“순찰단은 모두 성 밖으로 나가 적들을 물리쳐라!”

그녀의 단호한 명령에 공손황을 비롯한 오십여 명의 조원들은 성벽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하지만 부단주 엄숭하와 일부 순찰조는 약추완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렸다.

“부단주!”

“죄송합니다, 단주님…….”

부단주 엄숭하는 머리를 숙여 약철빙의 명령을 거부했다.

냉엄한 눈으로 엄숭하를 쏘아보던 그녀는 곧 성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 * *

 

삐걱……!

신경질적인 소음과 함께 거대한 성문이 열리고, 순찰단이 싸움터로 달려 나왔다.

순찰단의 뒤를 이어 무력대도 성 밖으로 줄줄이 빠져나와 적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공손황은 황곡의 고수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북은각 고수들을 지나쳐 백건적을 향해 달렸다.

서걱!

번뜩이는 검광은 적들의 목을 관통하고 가슴을 갈랐다.

순찰단과 무력대가 합세하자 전쟁은 전면전으로 격화되어 갔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난무하고 피는 내를 이루며 흘러내렸다.

“지독한 놈.”

오진권과 남궁휘는 또다시 몸을 일으켜 검과 철봉을 들어 올리고 있는 비강을 질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연이어진 합공에 비강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무복은 걸레 쪼가리처럼 갈라졌고, 흘러내린 피로 인해 얼굴과 온몸은 온통 검붉은색이었다.

쐐애액!

오진권의 손을 떠난 검은 빛을 뿜어내며 비강의 목 줄기를 향해 날아갔다.

쾅!

철봉으로 날아오는 검신을 후려친 비강의 신형이 사라지고 오진권의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남궁휘의 검이 비강의 허리를 갈랐다.

까강!

그러나 남궁휘의 검은 어디선가 날아온 검에 의해 방향을 꺾어야 했다.

스악.

남궁휘의 검에 스친 비강의 허벅지가 얇게 갈라졌다.

까강! 깡……!

간신히 오진권의 검을 막아 낸 비강이 뒤로 물러서며 피를 흘리고 있는 여인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이연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이연은 땅바닥에 꽂혀 있는 주인 없는 검을 들어 올리며 비강을 향해 흐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연!”

오진권은 비강을 향해 검을 날리고 남궁휘는 이연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까깡! 깡……!

남궁휘와 격렬하게 싸움을 이어 가던 이연의 눈앞으로 부러진 검날이 날아올랐다.

가슴을 내려다보니 깊게 갈라진 살 속에서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이만하면 됐어.’

이제 남편과 아이를 만나러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흐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손에 쥐고 있는 검에 마지막 힘을 쏟아 넣었다.

쐐애액……!

반 토막 난 검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고, 그녀의 신형도 뒤로 힘없이 널브러졌다.

쾅!

비강을 몰아붙이고 있던 오진권은 급히 신형을 들어 뒤통수를 향해 날아오는 검을 쳐 냈다.

스걱―!

그 찰나의 순간에 비강의 검이 오진권의 허리를 가르며 지나갔다.

‘빌어먹을.’

오진권은 조금 깊게 베인 허리를 살필 겨를도 없이 이어진 공격을 피해 냈다.

아아…….

비강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누이고 있는 이연은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연이 어머니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으아아아……!

비강의 입에서 울분에 찬 노성이 터져 나오고 짙은 서기는 검을 휘감고 돌았다.

“피해!”

꽈콰콰콰……쾅!

검을 빠져나온 다섯 마리의 용은 적들의 살점과 비명 소리를 마구 집어삼켰다.

후욱…… 후…….

비강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피와 살점의 도랑을 만들어 놓은 비강은 검을 땅에 짚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직도 적은 많았고 힘은 거의 다했다.

 

* * *

 

“이제 거의 힘이 다했군.”

산 정상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던 시천세는 흐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다섯 마리의 흉포한 용을 만들어 내고 있는 연비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지난날의 자신이 떠올랐다.

그래서 위험했고, 살아 있어서는 안 될 놈이었다.

시천세의 옆으로는 사천존이 나란히 앉아 성 입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구경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앞에는 술상이 마련되어 있었고, 이미 비어 버린 술병이 열 병 남짓 나뒹굴고 있었다.

“선주님!”

멀찍이 떨어져 초조하게 서성거리고 있던 북궁도는 도운패를 소리쳐 불렀다.

북궁도가 서 있는 자리에서는 산 아래가 보이지 않지만 눈치로 보아 비강이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비강이 지금 적들과 어려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곳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인다면 너와의 인연은 끝으로 알겠다.”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으로 비강의 모습을 바라보던 도운패는 엄한 목소리로 제자를 꾸짖었다.

“제 벗이 저 아래에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 주십시오!”

그러나 북궁도는 조금도 겁을 먹지 않았다.

“시끄럽다, 이놈! 관을 봐야 입을 다물겠느냐!”

으아아…….

“제기랄!”

북궁도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강호 무림을 오시하는 사천존이 있는 자리였지만 거리낌조차 없었다.

그의 그런 모습에 한쪽에 조용히 서 있던 한조와 벽사군, 악추산, 오기륭, 여문탁은 안색이 변해 어찌할 줄 몰라 했다.

하지만 사천존이나 시천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편안한 얼굴이었다.

“아무렴, 벗을 사귀려면 저 정도는 돼야지. 이제 우리도 시작을 해야겠지. 어떻게 하겠느냐?”

시천세의 물음에 검신과 신후의 시선은 풍천양에게 쏠렸다.

“사형과의 거리를 홀로 확인해 볼까 합니다.”

끌끌…….

“그럴 줄 알았다. 그래야 내 사제지. 이제 마지막 잔을 들자꾸나.”

시천세와 사천존은 잔에 술을 채워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림주님.”

막 잔을 비우려던 풍천양은 급하게 올라온 부림주 약추완의 등장에 잠깐 손을 멈췄다가 잔을 비웠다.

“무슨 일이오?”

“저, 적들의 공격을 어찌해야…….”

약추완은 시천세의 눈치를 살피느라 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끌끌…….

그런 그의 모습에 시천세가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느냐. 개는 개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래도 부려 먹기 좋은 개였습니다.”

응?

크하하하하……!

호탕한 웃음을 터뜨린 시천세는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약추완을 돌아보았다.

“강호 무림에 인물은 이협밖에 없었지. 어떠냐? 약추완. 이번에도 네가 살아날 것 같으냐?”

“무슨…… 무슨 말씀이시오?”

약추완은 두려움에 질려 몸을 벌벌 떨었다.

“내가 너를 살려 준다고 약속하면 천양을 배신하고 내 밑으로 들어올 수 있겠느냐?”

약추완은 슬쩍 고개를 들어 시천세와 풍천양의 눈치를 살폈다.

시천세는 개구쟁이인 양 짓궂은 웃음을 짓고 있었고, 풍천양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저 말이 정말 사실일까?

그렇다면 이번 전쟁에 패하더라도 가문과 자신이 다시 한번 살아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저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저자는 백건적의 수장이었다.

이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잔당들을 토벌했던가.

그들이 자신을 살려 둘 리 없었다.

더군다나 백건적은 자기 사위 집안인 악가를 공격해 불태우지 않았던가.

시천세는 약추완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대답은 잠시 후로 미루지.”

시천세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풍천양도 의자에서 일어났다.

넓은 공터로 나온 두 무신은 삼 장을 격하고 서로를 마주했다.

스으으…….

풍천양은 뒤쪽 전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전각 옆에 세워 두었던 장창 한 자루가 이십여 장을 날아 그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형이 사부를 좇듯, 나도 사부를 좇고 있소.”

“네가 살아남는다면 이 도는 너의 것이다.”

시천세도 허리에 차고 있던 도를 천천히 뽑았다.

 

* * *

 

“북림을 함락시켜라!”

북은각의 고수들과 혈전을 벌이고 있던 종예는 북림을 향한 공격을 명했다.

아무리 북은각의 무인들이 고수 중의 고수들이라 하지만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이었다.

황곡의 고수들은 칠십 명이 넘었고 북은각의 고수들은 채 오십 명이 안 되었다.

특히 황곡의 고수 중에도 종예와 백산의 무공은 발군이었다.

종예의 대부와 백산의 대도에 북은각의 고수들이 하나둘씩 차례로 죽어 나갔고, 이제 열 명 남짓만 남아 어려운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와아……!

명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던 백건적들은 성을 향해 달렸다.

중과부적으로 백건적들을 막고 있던 순찰단과 무력대는 많은 희생을 치른 채 뒤로 또 뒤로 밀렸다.

쏴아아…….

성벽위에서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으나 백건적들의 발을 멈추기에는 많이 모자랐다.

쾅! 쾅!

굳게 닫혀 있는 성문을 향해 도끼질이 시작되었고 일부 고수들은 성벽을 차고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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