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81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81화
제81화. 풍운(4)
“백건적들이 서안을 통과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화급을 다투는 보고에 새벽잠을 깬 약추완은 급히 수하들을 불러들였다.
“너희들은 객관에 머물고 있는 악가로 달려가 지금의 상황을 알려라. 이번엔 한 놈도 도망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존명.”
수하들을 내보낸 약추완은 다른 수하들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북림에 비상을 알리고 채비를 서둘러라!”
“존명!”
수하들을 전부 내보낸 약추완은 천천히 옷을 갈아입었다.
끌끌끌…….
그의 입에서는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전에는 뜻밖의 기습을 받아 피해가 컸지만 이번은 다를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백건적들을 일망타진할 절호의 기회였다.
“백건적들로 인해 어지러웠던 강호 무림이 이제야 본모습을 찾게 되었구나.”
* * *
댕댕댕댕……!
비상을 알리는 요란한 종소리는 북림의 새벽을 깨웠다.
일찍 일어나 무공을 연마하던 무인들은 손을 멈추고 이제 막 자리에서 일어난 무인들은 병기를 챙겨 들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적들이 몰려오고 있다!”
북림이 긴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백건적들은 북림과 멀지 않은 곳까지 다가와 있었다.
대로 양편의 산등성이 위로 북림의 경계 초소가 보이고, 저 멀리 반짝이는 불빛으로 가득한 북림의 본거지가 보였다.
헐헐헐…….
“이런 날이 오기는 오는구먼.”
아미의 늙은 장문인은 북림에 시선을 둔 채 감회에 젖었다.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장문인들은 대부분 미래를 염두에 두고 젊은 제자와 가인들을 보내 무인들을 이끌게 하였다.
하지만 아미와 개방, 곤륜만은 나이 든 장문인이 이끌고 있었다.
그들은 장문인의 자리에서 강호로 돌아가는 날을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흑수개(黑手丐)도 감개무량하시지요?”
깨끗하고 하얀 도복을 입고 있는 노인은 이글거리는 열망을 감추지 않았다.
“죽기 전에 다시는 이 땅을 밟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소이다. 이제 살아서 이 땅을 밟게 되었으니 여생은 변절자들을 쳐 죽이는 일로 보낼 것이오.”
흑수개는 개방에서도 성정이 난폭하고 잔인하기로 유명했었다.
원래 없는 삶을 사는 자들이라 그런지 성정이 사나운 것은 당연지사였으나, 흑수개는 특히 그 정도가 심해 거친 강호인들조차 얼굴을 마주하기를 꺼려 했었다.
“이제 가시지요.”
전진의 오진권과 남궁의 남궁휘가 걸음을 옮기자 멈췄던 행군은 다시 시작되었다.
날이 조금씩 밝아 오고, 멀리 보였던 북림은 천천히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저곳에서 팽가의 가주 팽옥수 대협께서 동생분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하셨소.”
가주 팽옥현은 팽옥수의 사촌 동생으로 작년에 있었던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았었다.
덕분에 새로 팽가의 가주가 되기는 했지만 지략이나 무공 면에서는 팽옥수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야심만은 누구보다 대단해, 반드시 팽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강호에 우뚝 설 야망을 품고 있었다.
이는 팽옥현뿐 아니라 여기 모인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오늘, 구파일방과 육대세가는 사패를 무너뜨리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리라.
사천존을 죽이고, 그들의 집에서 축배를 들리라!
* * *
쿠웅―!
거대한 성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북림이 무인들이 입구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성벽 위에서는 활시위에 화살을 얹은 무인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성문 앞으로 쏟아져 나온 북림의 무인들은 입구를 막아서듯 진세를 펼쳤다.
‘이천 명이 조금 넘겠군. 풍천양이라면 우리가 올 줄 예상을 하고 있었을 텐데, 예상 밖이야.’
성문을 향해 다가가던 오진권이 걸음을 멈추자 뒤를 따르던 자들도 걸음을 멈췄다.
북림과 백건적, 양쪽 진영은 조용히 상대방을 노려보기만 할 뿐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북림의 진영이 갈라지며 그 중앙으로 약추완이 걸어 나왔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군.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도 있고…….”
약추완은 득의만면한 얼굴로 백건적들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적들과의 전쟁을 앞두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선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문광이 죽었지만, 덕분에 북림은 백건적들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고, 습격에 대비해 모든 준비를 다 했다.
안쪽에는 이미 무력대를 배치시켜 놓았고, 림주의 명령으로 북은각의 고수들까지 나와 있는 상황.
패전은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승전하여 놈들을 멸절시키리라.
백건적들이 도망칠 곳은 없었다. 객관에 머물고 있던 악가의 가인들을 은밀히 내보내 퇴로를 막아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강호 무림의 전부라 할 수 있는 무신들이 전부 이곳에 있는데 걱정할 것이 무에 있겠는가!
“죽을 자리로 들어왔군.”
약추완의 조소에 나란히 서 있던 오진권과 남궁휘는 거리를 벌리며 양옆으로 물러섰다.
마치 바다가 갈라지듯 백건적들 또한 양옆으로 물러서고, 그 중앙으로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는 무인들이 걸어 나왔다.
낄낄낄…….
“추완이, 오랜만이야.”
나이 든 사내 하나가 약추완을 향해 반갑게 손을 들어 보였다.
“네놈은…… 네놈이 어찌하여 그곳에 있는 것이더냐?”
사내는 이십여 년 전 강호 무림에서 혈란을 일으켰던 황하광마(黃河狂魔) 염산웅이었다.
황하를 중심으로 강호의 협객들은 물론이고 힘없는 양민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학살해 이협 연서문이 추격에 나섰었다.
결국 이협 연서문에게 쫓겨 다니다가 약추완과 마주하게 되었는데, 무공이 고강해 놓치고 말았다.
그때 약추완은 염산웅의 뺨에 긴 검상을 만들어 놓았었다.
염산웅은 깊게 파인 자신의 뺨을 쓰다듬으며 약추완을 향해 히죽 웃었다.
‘황하광마뿐만이 아니로구나. 흑사겁(黑蛇刦), 추면색검(醜面色劍), 백척도(白拓刀), 녹산주(綠山主), 장강호(長江虎)…… 강호 무림을 진동시켰던 거마들과 녹림, 수채의 고수들이 모두 모여 있다니…….’
굳어졌던 약추완의 안색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아무리 저들이 준비를 단단히 했어도 이곳에는 사천존이 있다.
“어리석은 자들. 공격을 준비하라!”
채챙! 챙……!
약추완이 명령을 내리기 무섭게 북림의 무인들은 병기를 뽑아 들었다.
차창! 창……!
그에 맞춰 백건적의 진영에서도 일제히 병기를 뽑아 들었다.
곧 싸움이 시작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림주의 제자 한조가 뛰어나와 약추완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사실인가?”
“예. 중요한 손님이 오셨으니 정중히 모시라 하셨습니다. 또한 다른 명령이 있기 전까지 공격을 금하라 하셨습니다.”
크흐흠…….
침음을 흘리던 약추완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묻겠다. 중요한 손님이 누구더냐?”
약추완의 물음에 수십 명의 무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후예들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살이 떨릴 정도로 형형한 기세를 뿜어내는 고수들의 등장에 약추완조차도 긴장이 될 정도였다.
고수들의 앞쪽에는 일남일녀가 서 있었는데 그들 중 하나는 덩치가 마치 산처럼 거대했다.
일남일녀가 뒤로 돌아서며 머리를 조아리자 수십 명의 고수들과 흉마난적(凶魔亂賊)들도 허리를 굽혔다.
더 놀랍게도 오진권을 비롯한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장문인들도 허리를 굽혀 머리를 조아렸다.
“오랜만에 보는군. 그렇지 않은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듯 넓게 뚫린 길로 사십 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중년인이 들어섰다.
“당, 당신은…….”
사내의 모습을 보자마자 약추완의 몸은 공포로 덜덜 떨려 왔다.
저 사내의 얼굴을 어찌 잊겠는가?
황곡으로 쳐들어갔던 강호의 절대고수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던 그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약추완이 공포로 몸을 떨든 말든 시천세는 유유자적한 걸음을 걸으며 북림을 올려다보았다.
“사제는 좋은 곳에서 살고 있었구나.”
북림을 올려다보던 그의 시선은 문루를 따라 왼쪽 성벽으로 옮겨 갔다.
흐음…….
여유가 가득했던 표정은 관심으로 바뀌고, 걸음은 그쪽으로 향했다.
성벽 앞을 막아서고 있던 북림의 무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길을 비켜 주겠느냐?”
허억…….
단 한마디였다.
말 한마디에서 전해져 오는 거대함을 느낀 약철빙은 한쪽 무릎을 털썩 꿇으며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약철빙이 무릎을 꿇자마자 북림의 무인들이 길을 비켜섰다.
그들은 자신들의 왜 저 사내를 위해 길을 비켜서는지를 몰랐다.
몸이 저절로 움직인 것이다.
성벽을 향해 다가간 시천세는 깊게 파인 벽면을 어루만졌다.
“이곳에도 이무기가 있었구나, 백산.”
“예, 주공.”
덩치 큰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숙였다.
“누구더냐?”
“백리혈 연비강의 짓입니다.”
아…….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 시천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몇 번 들어 본 이름이었다.
강호 무림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 고수로 자신의 일을 몇 번인가 막아섰다고 했었다.
“이곳에 그놈이 있으면 좋겠군. 다른 명령이 있을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하라.”
시천세의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약추완을 대신해 한조가 안내를 맡았다.
그러나 그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몸을 누르고 있는데, 도무지 그것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한조의 등장에 이채를 머금은 시천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따랐다.
“사부가 제법 잘 가르쳤구나.”
성 안으로 들어간 시천세가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것은 바로 북림의 무력대였다.
그들은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바로 성 밖으로 달려 나가 적들의 진세를 반으로 갈라놓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무력대는 시천세의 정체는 몰랐으나, 그가 적이라는 것만은 짐작하고 있었다.
살기 어린 시선들을 쏟아 내던 무력대의 대원들이 갑자기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털썩털썩 무릎을 꿇었다.
커억……!
본능적으로 무형의 힘에 대항하던 일부 고수들의 입가에 핏물이 흘러나왔다.
끌끌끌…….
“기세 사나운 놈들이로구나.”
허허로운 웃음을 흘린 시천세는 식은땀까지 흘리며 서 있는 한조를 지나쳐 그대로 산 위로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가던 시천세의 눈앞에 다시 수십 명의 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시천세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곡주님을 뵙습니다.”
무인들은 시천세를 향해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하하하…….
“오랜만이로군. 나를 환영해 주기 위해 나온 것인가?”
“곡주님을 막기 위해 나왔습니다.”
“아무렴 그래야지. 그전에 밖에 있는 형제들과 인사라도 나누겠느냐.”
“알겠습니다. 그럼, 곧 뵙겠습니다.”
예를 마친 북은각의 고수들이 산 아래로 내려가고 시천세는 계속 산을 올랐다.
그렇게 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 사제 네 사람이 그를 반겨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사형.”
“사형을 뵙습니다.”
하하하하…….
“이십 년을 넘어 우리들이 한자리에 모였구나.”
* * *
서안에 도착한 비강은 눈앞에 보이는 포목점을 찾아 들어갔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열고 있었다.
“내가 입고 있는 무복과 비슷한 무복으로 두 벌 주시오. 한 벌은 이곳에서 갈아입고 가겠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주인은 비강이 입고 있는 무복과 아주 비슷한 무복 두 벌을 내왔다.
“이것이면 되겠습니까?”
“좋소.”
“그럼,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안으로 들어가 깨끗한 무복을 갈아입고 나온 비강의 모습은 훤칠하기 그지없었다.
“얼마요?”
“은자 석 냥만 내십시오. 한데 혹시 북림의 백리혈 대협이 아니신지요?”
비강은 전낭에서 은자를 꺼내 건네며 대답했다.
“맞소.”
“북림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지요? 새벽에 강호인들이 엄청나게 몰려가던데…… 혹시 저번처럼…….”
스아아―!
비강의 신형이 사라졌다.
포목점 주인은 눈앞에 서 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방금 뭐였지?”
꿈이라고 하기에는 손에 쥐고 있는 은자가 너무나 확연했다.
스아아…….
길을 오가던 사람들은 얼굴을 때리며 지나가는 바람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웬 돌풍이야?”
거리를 막 빠져나오던 비강은 길옆에 앉아 있는 담노를 발견하고는 경공을 멈췄다.
“담노.”
“드디어 주인께서 돌아오셨군요.”
“어찌하여 이곳에 나와 계십니까?”
“혹시 주인께서 돌아오실까 하여 나와 봤습니다. 다른 길에는 수연이가 나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담노는 비강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급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새벽에 백건적들이 북림으로 몰려갔습니다. 숫자는 대략 사천 명이 넘었고 그 뒤로 또 다른 고수들이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렇다면 담노는 집으로 돌아가 당분간 밖으로 나오지 마십시오.”
“주인, 이제 주인께서도 북림으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돌아가는 형편을 보건대 백건적이 단단히 준비한 모양입니다.”
비강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할 수는 없습니다. 원수의 목을 다른 자에게 맡기다니요. 또한 림주와 약속한 것이 있어 돌아가 봐야 합니다.”
“그럼, 저도 같이 움직이겠습니다.”
“아닙니다. 저 혼자 움직이는 것이 편합니다.”
“주인…….”
담노는 비강의 앞을 막고 싶었으나 막지 못했다.
천하제일인을 꿈꾸는 사람의 앞을 어찌 가로막는단 말인가.
“그럼, 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