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79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79화
제79화. 풍운(2)
키가 작고 몸집이 단단해 보이는 사내 우동문은 냉랭한 살기를 줄기줄기 쏟아 내며 비강을 노려보았다.
사랑하는 누님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내였다.
하오문은 백건적과 사패 사이에 중립을 지키고 있지만, 누님 장경주는 저자를 위해 문주의 엄명까지 어기고 있었다.
‘재수 없는 새끼.’
우동문은 시야에 비강의 머리끈이 잡혔다.
작은 보석이 달린 저 머리끈은 원래 장경주가 팔에 묶고 다니던 장신구였다.
‘죽이고 말리라.’
진한 살기를 느낀 비강은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검의 고동(古銅)을 슬쩍 밀었다.
“하오문인가?”
“그렇다, 백리혈.”
“하오문주가 북림을…… 아니, 나를 적으로 돌리려는 모양이군.”
비강의 조소에 우동문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백리혈은 몰라도 북림은 절대 하오문의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도 하오문이 북림의 눈 밖에 나면 강호 무림에서의 활동은 끝이라 봐도 무방했다.
문주는 백리혈의 생사만 확인하고 돌아오라고 했었다.
“전진과 우리 하오문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나는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너를 추격한 것뿐이다.”
하하…….
우동문의 대답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비강은 실소를 짓고 말았다.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눈치챈 우동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묻지도 않은 전진의 일을 입에 올렸으니 스스로 자백을 해 버린 꼴이었다.
“언제 우리가 만난 적이 있던가?”
비강은 눈앞에 서 있는 하오문도의 살기가 낯설지 않았다.
연이어 날아오는 날카로운 질문은 우동문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어…… 없다.”
“그렇군. 전에 흑산도에 들었을 때 어둠 속에 숨어 살기를 흘리던 자였군.”
이이익…….
참지 못한 우동문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촤악…….
삼 장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 오며 차가운 빛을 뿌리는 검광은 비강의 전신을 난도질하듯 갈라 버렸다.
전광석화 같은 발검과 신법이었다.
그 순간, 비강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이형환위!’
우동문은 검신의 방향을 급하게 꺾었다.
까강! 깡……!
목과 허리를 베어 오는 검을 막아 낸 우동문은 신형을 좌우로 흩었다.
까강! 깡! 깡……!
십여 명의 비강과 십여 명의 우동문이 들판을 가득 메우며 어지럽게 얽혀 들었다.
스악―
언제 검날이 스치고 지나갔는지 우동문의 팔뚝에서는 피가 튀었다.
‘빌어먹을.’
우웅…….
우동문의 검신이 강한 진동을 일으키며 땅을 쓸 듯 비강의 다리를 베어 갔다.
두 사람의 움직임에 이리저리 휘날리던 풀들이 일제히 머리를 쳐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땅을 쓸 듯 베어 가던 검신이 급격하게 방향을 틀며 하늘 위로 치솟아 올랐다.
그 일검에는 장엄하게 쏟아지는 폭포수를 갈라 버릴 것 같은 날카로움과 웅혼함이 숨어 있었다.
까깡! 깡! 깡……!
그러나 비강의 검영도 그에 맞춰 갈라지며 우동문의 검신을 마구 뒤흔들었다.
크윽…….
검을 쥔 손바닥이 찢어졌는지 검법을 펼칠 때마다 손이 아려 왔다.
까깡…… 깡……!
우동문은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검을 막아 내며 주춤주춤 뒤로 밀려났다.
연이은 충격을 받아 찢긴 손바닥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 검병까지 적시고 있었다.
‘젠장. 젠장. 젠장…… 내 짐작보다 훨씬 더 강하잖아.’
뒤로 물러선 그는 고요한 자세로 서 있는 비강을 노려보았다.
자신의 모든 무공을 쏟아 낸 것은 아니었지만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백리혈 연비강은 서안의 거리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는 무공을 아직 꺼내지도 않았다.
“장 소저를 생각해 한 번은 살려 주마.”
무심한 비강의 말은 우동문의 가슴을 후벼 팠다.
으드드득…….
죽여 없애고 싶은 연적에게 동정을 받다니, 당장 혀라도 깨물어 죽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얼마나 억울하고 분한지 붉어진 눈에서는 눈물까지 흐를 정도였다.
그러나 그 억울하고 분함을 풀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비강은 뒤로 슬쩍 물러섰다.
“장 소저를 좋아하나?”
“……!”
저자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몸까지 떨며 분노하던 우동문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며 커졌다.
“아, 아니…… 아니다!”
설핏 미소를 지은 비강은 신형을 돌려 멀어져 갔다.
“림, 림주에게 하오문과 전진의 일을 고변할 것이냐?”
“아니. 하지만 하오문은 나와 이제 적이라는 사실만 알아 둬라.”
우동문은 멀어져 가는 비강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졌다.
조금 더 싸움을 이어 갈 수는 있겠지만 죽음은 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문주님의 말씀이 맞았군.’
문주는 백건적과 사패 가운데 어느 편에도 서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하오문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 보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백리혈의 행방을 전진의 장로에게 말해 주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전진의 뜻대로 된다 해도 걱정이었고 백리혈이 살아남는다고 해도 걱정이었다.
―백리혈이 경주를 생각해 이번 일을 가슴속에 묻어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구나.
문주의 그 말에 격분하여 나오기는 했지만, 막상 일이 문주의 말대로 흘러가니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분하다는 감정이 더 앞섰다.
“젠장, 젠장. 젠장…… 제발 죽어 버려라, 백리혈.”
* * *
“아따! 비강이 그놈이 오지게도 싸웠나 보네.”
북림에 도착한 북궁도는 성벽을 깊게 가로지르는 용트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성벽에 새겨진 용아포의 흔적은 북림을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비강이가 왼쪽 성벽에 저런 흔적을 만들어 놓았으니 너는 오른쪽에 흔적을 만들어 보거라.”
“에이, 사부님. 고쳐 놓고 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쯧쯧…….
“못난 놈.”
혀를 찬 도운패가 입구를 향해 다가가자 북궁도가 먼저 달려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무인들에게 용무를 밝혔다.
“남선에서 사신으로 왔습니다. 저는 북궁도라고 합니다.”
입구를 지키는 무인들은 놀란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북궁도라면 남협이라는 별호로 유명한 협객이었다.
작년에도 사신으로 찾아왔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얼굴은 보지 못했었다.
“북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문루에 있는 조장이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자 앞을 가로막았던 무인들은 양옆으로 물러서며 머리를 숙였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안으로 들어간 도운패와 북궁도는 또 다른 무인의 안내를 받아 산을 올랐다.
산의 능선을 따라 계단처럼 늘어선 수많은 전각들 사이를 걸어 올라간 도운패는 잠시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남선에서 사신 일행이 도착하셨습니다.”
두 사람을 정상까지 안내한 무인은 다시 아래로 내려가고, 전각을 지키고 있던 무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미처 문을 열기도 전에 북림의 림주 풍천양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크하하하……!
“뚱땡이, 어서 와라.”
끌끌끌…….
“미친놈. 네놈이 물에 빠져 죽으면 그 흉측한 주둥아리만 물 밖으로 동동 떠다닐 거다.”
그 광경에 전각을 지키고 있던 무인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림주가 이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거니와, 그런 림주에게 심한 욕설까지 하는 사람도 만나 보지 못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이 키가 작달막하고 뚱뚱한 인물이 강호 무림의 무신, 도신 도운패임을 알아차렸다.
‘맙소사, 도신이 직접 이곳을 찾아오다니.’
서로 욕을 해 대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달려가 두 손을 맞잡았다.
“어서 들어가자. 뭣들 하는가?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잔치 준비를 하라.”
손을 맞잡고 들어가던 풍천양의 엄명에 무인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저기, 선주님. 저는 뭐 할까요? 잠깐 놀러 나갔다가 와도 되죠?”
북궁도의 질문은 사실 자신의 사부인 도운패가 아니라 이곳의 주인인 풍천양을 향한 것이었다.
“금지만 아니면 어디든지 허락하마. 나가 봐.”
그것을 알아차린 풍천양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다.
“감사합니다, 림주님.”
“못난 놈. 성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마라.”
사부가 뭐라 하건 북궁도는 좋아라 하며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 * *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간 북궁도는 바로 순찰단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단주의 집무실을 지키고 있던 광이재와 동평지가 앞을 막아섰다.
“무슨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광이재와 동평지는 처음 보는 자가 스스럼없이 다가오자 경계 어린 눈을 하며 거리를 벌렸다.
“아, 저는 남선의 북궁도라고 합니다. 혹시 비강이는 복귀했습니까?”
광이재와 동평지는 놀라 마지않았다.
“하면, 당신이 바로 남협이십니까?”
“예. 비강이는 안에 있습니까?
“아. 아직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기대에 부풀었던 북궁도는 대번에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였다.
“에이, 뭐 하느라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거야?”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수척한 모습의 약철빙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궁 소협.”
“아, 단주님을 뵙습니다.”
북궁도는 두 손을 모아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연 부관과 은운곡에서 같이 있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얼마 전까지 같이 있었습니다.”
“물어볼 말이 있어요. 안으로 들어와요.”
약철빙은 북궁도를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아…… 예.”
북궁도는 비강이 없는 집무실은 굳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우물쭈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그는 허락도 받지 않고 비강이 앉았던 의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무한에서 그 친구와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배가 풀렸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 그곳에서 헤어졌습니다.”
약철빙이 묻기도 전에 북궁도가 먼저 비강에 관한 일을 털어놓았다.
“그랬군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약철빙은 서랍을 열어 말린 삼마의 잎을 꺼냈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촛불에 불을 붙여 삼마를 태웠다.
하얀 연기가 콧속으로 스며들자 약철빙의 눈에는 기이한 광채가 어렸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약철빙은 대답을 망설였다.
앞에 비강이 앉아 있었다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겠으나, 상대는 남선에서 온 손님이었다.
그러나 곧 마음을 정했는지 고개를 들어 북궁도와 눈을 맞추었다.
“남선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선주께 들으니 여느 때와 다름없다고 했습니다.”
“그런가요? 그나마 다행이로군요.”
“비강이에게 들으니 백건적들이 이곳 북림을 향해 또다시 몰려들고 있다는데 사실입니까?”
“네. 사실이에요. 하지만 순찰조와 무력대, 감찰단이 잘 막아 내고 있어요.”
그렇다면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순찰단주의 얼굴에 어린 초조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가만, 갑자기 사부님이 북림을 방문한 이유가 뭘까?’
“저…… 남선의 선주께서 저와 함께 방문하셨습니다. 지금 림주님을 만나고 계십니다.”
“뭐라고요?”
약철빙은 크게 놀랐다.
남선에서 사신이 온다는 보고는 받았지만, 살펴보지 않았던 탓에 설마 그 사신이 도신 도운패일 줄은 몰랐다.
그 순간, 문밖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이어진 광이재의 목소리에 약철빙은 얼른 정신을 차렸다.
“들어와요.”
안으로 들어온 광이재는 머리를 숙이며 보고를 올렸다.
“방금 성문 입구에서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동천에서 사신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북궁도도 놀랐다.
“어?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동천에서 사신이 방문했다면 자신들처럼 동천의 검신일 가능성이 높았다.
보고를 마친 광이재가 밖으로 나가고 난 후 약철빙의 표정은 더욱 심각해졌다.
“뭔가 거대한 그림자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요.”
북궁도도 약철빙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써 그런 불안감을 떨쳐 내려 했다.
“설마……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잠깐 밝아졌던 북궁도의 안색은 다시 어두워졌다.
벌써 사천존 중 삼천존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렇다면 나머지 일천존도 이곳으로 들어올 것이다.
‘이거 뭔가 북림에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 * *
“저곳이 북림이로군요? 사부님.”
여문탁과 신후 당백요는 웅장하고 오연하게 강호 무림을 내려다보고 있는 북림을 올려다보며 걸음을 옮겼다.
“저곳에 내 벗이었던 사람이 살고 있단다. 내 벗이었던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