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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78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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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78화

제78화. 풍운(1)

 

 

 

비강이 중년인과 젊은이들을 관찰하고 있는 것처럼 중년인도 비강을 관찰하고 있었다.

‘헝겊으로 싼 물건은 병기인 것 같은데 하나가 아니로군. 언제든 발검을 할 수 있게 몸에 붙이고 있는 것을 보면 제법 뛰어난 고수야. 한데…….’

중년인의 시선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비강의 머리 어름으로 옮겨 갔다.

작은 보석이 박혀 있는 머리끈은 강호인이 하고 다닐 만한 장신구가 아니었다.

‘연인이 선물한 것인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한 치 앞도 장담하지 못할 살벌한 강호 무림에서 저런 값비싼 장신구를 드러내다니. 자신감인가, 아니면 만용인가?’

“가주님, 저기…….”

곁에 있던 젊은 가인도 비강의 머리끈을 알아보고는 언뜻 조소를 지었다.

그러나 곧 가주의 안색이 무섭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는 황급하게 비웃음을 지웠다.

“잠잘 준비를 서두르도록 해라.”

“예.”

젊은 사내들은 근처에서 마른 나뭇잎들을 긁어와 바닥에 깔았다.

자리가 마련이 되자 그들은 잠을 청하기 위해 나뭇잎 위에 몸을 뉘었다.

―흉적은 아닌 것 같으나,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거라.

중년인의 전음을 받은 여인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 * *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잠에 들었던 비강은 새벽이 되자 퍼뜩 눈을 떴다.

‘고수일 뿐 아니라 강호 경험이 아주 많은 듯하군.’

잠을 자고 있던 중년인은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게 머리맡에 검을 두고 있었다.

조금은 서늘한 날씨라 마른 나무를 긁어모아 불을 키운 비강은 숲 안으로 들어갔다.

적당한 자리를 잡아 운기행공을 마치고 나니 동쪽 하늘이 환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북궁도 그 녀석은 잘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네.’

평소의 북궁도라면 남선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기루를 찾아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비강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일찍 일어나셨군요. 간밤에는 편안하게 주무셨습니까?”

모닥불을 피워 놓은 곳으로 돌아온 비강은 중년인의 아침 인사를 받았다.

“예. 잘 주무셨습니까?”

“덕분에 편안하게 보냈습니다.”

자리에 앉은 비강은 행랑에서 건포를 꺼내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드시겠습니까?”

비강이 예의상 건포를 건네자 중년인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우리도 건량은 충분히 있습니다.”

중년인의 사양에 비강은 남은 건포를 행랑에 집어넣곤, 바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모르나 동행을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말씀은 고마우나 홀로 움직이는 것이 편합니다. 그럼.”

살짝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비강은 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

비강이 사라지고 난 후 젊은 가인 하나가 몹시 불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무례한 자입니다. 우리는 저를 돌봐 주려 그런 것인데…….”

그러나 중년인은 젊은 가인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굳은 얼굴로 비강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남을 함부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너는 저 사람의 손을 보지 못했느냐?”

“손이라니요? 가주님.”

“검은 반지를 끼고 있었다.”

“예?”

의문에 대한 대답은 젊은 여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백리혈이야.”

“설…… 마. 설마 함께 밤을 보낸 저자가 백리혈 연비강이었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거의 확실해. 천으로 감췄지만 손에 들고 있던 병기는 분명 하나는 검이었고 하나는 봉이었어.”

“맙소사.”

젊은 가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소문에 듣기로는 백리혈 연비강은 성정이 잔인하기 이를 데 없어 상대방에게 말이 아닌 검부터 들이민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밤새 겪었던 백리혈은 말수가 적을 뿐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쉽구나. 강호의 명사를 알아보지 못해 그냥 보내다니.”

 

* * *

 

서둘러 길을 떠난 비강은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자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침에 세안을 하지 못하고 입안을 씻어 내지 못해 찜찜한 기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냇가로 달려가 세안을 하고 입안을 가셔 낸 비강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그의 눈앞에 상인 무리가 들어왔다.

그들은 전날 관제묘에 묶었던 상인들이었다.

등짐을 옆에 내려놓고 그늘에 앉아 쉬고 있던 상인들도 걸어오고 있는 비강을 발견했는지 힐끔힐끔 눈길을 주었다.

비강은 그늘에서 쉬고 있는 상인들을 지나쳐 계속 걸음을 옮겼다.

“이보시오.”

문득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나이 든 탁한 목소리가 비강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내게 볼일이 있습니까?”

비강의 발걸음을 붙잡은 자는 늙은 노인이었다.

“그렇소. 혹시 백리혈이 아니시오?”

‘상인들이 아니었군.’

비강은 늙은 노인의 깊은 눈 속에 잠들어 있는 진한 살기를 발견했다.

“맞소.”

크허허허허허……!

노인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앙천대소를 짓더니 그늘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노인이 몸을 일으키자 다른 상인들도 짐 속에서 병기를 꺼내 들었다.

상인들은 모두 열둘, 비강은 메마른 목소리로 그들의 정체를 물었다.

“백건적인가?”

“전진의 막언이라고 한다.”

“어젯밤에는 왜 나를 모른 척했나?”

“그때는 바람이 불지 않았거든.”

‘바람?’

태연함을 유지하고 있는 비강의 눈에 누른 수피를 끼고 있는 젊은 상인의 손이 들어왔다.

“하독(下毒)이 끝났습니다, 장로님.”

“수고했네.”

막언은 전진의 장로였고, 은운곡의 곡주였던 단우문과 동기이자 가장 친했던 벗이었다.

그는 전진에 단우문과 같이 들어가 무공과 학문을 배우며 항상 함께했다.

어느 날 동기였던 단우문은 전진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 파문을 당했다.

그때 막언의 분노와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주저 없이 함께했던 동기를 원망하고 욕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 진실을 알게 되었다.

가장 친했던 벗은 장문인의 엄명으로 인해 오욕을 짊어지고 사문을 나섰다는 사실을.

얼마나 비통했는지 며칠 밤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오래전의 벗을 만나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 싶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허망하게 끝났다.

불과 열흘을 앞두고 친한 벗은 백리혈이라는 흉적의 손에 고단하고 힘들었던 생을 달리했다.

“네놈은 편안하게 죽지 못할 것이다. 사지를 찢고 목을 거둬 내 친우의 무덤 앞에 바쳐질 것이다.”

막 장로는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살기를 줄기줄기 쏟아 내며 비강을 향해 다가갔다.

방금 당가 출신의 백건적이 하독한 독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당가십독(唐家十毒) 중 하나였다.

내공이 출중한 무인이라 하더라도 족히 한 시진은 운기행공으로 몸을 다스려야 한다.

또한 독에 중독이 되면 그 어떤 무인이라도 지독한 고통으로 인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우웅…….

검집에서 빠져나온 비강의 검이 기이한 진동을 일으키며 흐릿해졌다.

‘내가 특별한 것인지 아니면 독이 형편없는 것인지 모르겠군.’

“피해!”

네 번째 무공, 용아포!

눈치 빠른 백건적들은 황급히 좌우로 신형을 날렸으나 이미 흉포한 용들은 검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꽈과과…… 쾅!

끄아아아…… 악!

사납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용들은 막 장로와 당가 출신 백건적들을 순식간에 휩쓸었다.

콰쾅! 쾅!

꽈드드드…… 쿵!

적들을 휩쓴 용들은 관도 가장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목까지 파괴하고 부러뜨렸다.

끄으으으…….

온몸이 갈라지고 찢어진 막 장로는 핏물이 가득한 얼굴로 비강을 향해 비틀거리며 다가섰다.

이렇게 허망하게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무도 분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지경이었다.

“우문의 원수를……단우문의 원수를…….”

“곧 만나게 될 거야. 저세상에서.”

스악.

비강은 주저 없이 막 장로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러곤 걸레 조각처럼 어지럽게 흩어진 당가 가인들의 몸을 뒤졌다.

으으으…… 쿨럭.

곧 숨이 넘어갈 듯 피를 토해 내는 적 하나가 피에 물든 붉은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붉게 물들었구나.”

“나를 어떻게 찾았나?”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상태라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하오문주를…… 만났었다, 백리혈. 끌끌끌…… 쿨럭,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어렵게 말을 이어 가던 사내의 붉은 눈동자가 빛을 잃어 갔다.

비강은 잠시 멈췄던 손을 움직여 사내의 품속을 뒤졌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품속에서 멀쩡한 검은 가죽 주머니 하나가 흘러나왔다.

바로 조금 전에 하독을 했던 그 독이 들어 있는 주머니였다.

‘하오문은 믿지 못할 것들이로구나.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 그런 것이기는 하겠지만.’

장경주의 얼굴을 떠올린 비강은 머리를 흔들며 북쪽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 * *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를 지나던 비강은 누군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거리에 좌판을 펼쳐 놓고 노리개를 팔고 있는 여인이 보였다.

여인을 지나쳐 걸어가던 비강은 또 다른 시선을 느꼈다.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나를 찾아내는 것을 보면 나를 잘 아는 자가 이곳에 있다는 뜻인데.’

정말 귀찮은 자들이었다.

“맛있는 탕면이 있습니다! 맛있는 홍백어찜과 오리구이도 있습니다! 하남 제일의 숙수가 직접 요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호객을 하는 젊은 점소이의 목소리는 드높기 그지없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면 흔하디흔한 풍경이었지만 비강은 잠시 그를 지켜보다가 객잔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호객을 하던 젊은 점소이는 옆을 지나쳐가는 비강을 향해 허리를 넙죽 숙였다.

“너희들의 우두머리에게 전해라. 만약 또다시 나를 감시한다면 이 마을에 있는 하오문을 멸절시키겠다고.”

나직한 비강의 경고에 점소이의 안색은 하얗게 질렸다.

객잔 안으로 들어간 비강은 요리를 주문하고 하오문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러나 식사가 끝이 날 때까지 아무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온 비강은 주변을 훑어본 후 북쪽으로 난 길을 걸었다.

‘나왔군.’

막 거리를 벗어나던 비강은 은밀한 기척을 느끼고는 바로 신형을 날렸다.

휘리릭…… 파팡!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비강의 신형이 십 장 너머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보통 놈이 아니로구나.’

기척을 느끼자마자 추격에 나섰지만 앞서 도망치는 자와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마을을 벗어나 들과 산을 질주하던 의문의 그림자는 어느 순간 갑자기 종적을 감춰 버렸다.

거리를 좁혀 가던 비강은 빼곡하게 들어찬 수림 앞에서 경공을 멈췄다.

바스락…… 투툭…….

무엇에 놀랐는지 회색빛 산토끼 한 마리가 수풀에서 튀어나와 멀어져 갔다.

사방을 살펴봐도 앞서 도망치던 자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비강의 시선은 수풀이 빼곡한 어느 한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만 나와라.”

째짹…….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새 울음소리만이 기묘한 긴장을 깨뜨렸다.

스릉…….

비강이 검을 뽑아 들자 수풀이 흔들리며 젊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 비강이 북궁도와 함께 흑산도에서 하오문주를 찾았을 때, 자신들을 지켜봤던 무인과 동일 인물.

바로 하오문의 기재 우동문이었다.

 

* * *

 

히야!

“거참, 이상하네. 이쯤 되면 비강이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녀석이 어디가 그렇게 좋은 게냐?”

하하하…….

도운패의 물음에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을 살피던 북궁도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 녀석은 제가 위험에 빠지거나 죽을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에 뛰어들리라는 걸 알고 있거든요. 세상에 그런 녀석을 벗으로 삼지 않으면 어떤 녀석을 벗으로 곁에 두겠습니까. 거기다가 언제나 저보다 앞서가고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은 목표는 강호를 통틀어 단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네놈과 함께하고 있던 적룡조도 기꺼이 네놈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게다.”

“에이,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비강이에게는 다른 뭔가가 있다니까요. 그놈과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도운패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제자 북궁도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북궁도는 자신의 머리 위에 사부의 손이 올라오자 놀라 목을 움츠렸다.

“어찌 이렇게 나와 한 치도 다름이 없단 말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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