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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75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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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75화

제75화. 전운이 감돌다

 

 

 

“갑시다. 은운곡의 사숙께서 우리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자들이 기다리고 있소.”

“북림의 손에 전부 몰살당한 것이 아니었소?”

남궁휘로서는 처음 듣는 뜻밖의 말이었다.

그가 알기로 은운곡은 호북 두 곳에 고르고 고른 낭인들을 보내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 두 곳 중 한 곳은 북은각의 고수들에 의해 흔적도 없이 제거되었고, 또 한 곳은 백리혈의 손에 몰살당했다.

“낭인들 중에서도 특히 젊고 뛰어난 자들만 따로 골라 이곳 안휘에 자리를 마련해 놓으셨다고 하셨소. 그들 중에는 사패에게 쫓겨 들어온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제자와 가인들도 있다고 하니,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오. 사숙의 일은 정말 안됐소.”

“내 불찰이오. 설마 백리혈이 은운곡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그곳에 나타날 줄은 나도 미처 예상치 못했소.”

오진권은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당장 연비강을 찾아내 살을 한 점 한 점 저미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자신보다 연비강을 더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다.

“막 장로께서 많이 아쉬워하셨을 것 같소만.”

“그렇지 않아도 그분께서 연비강을 찾아내기 위해 직접 하오문주를 만나러 가셨소.”

“그랬구려. 하나 비록 막 장로께서 무공이 고절하다고는 하나 백리혈을 잡지 못할까 걱정이오.”

“걱정 마시오. 당가와 함께하고 있으니.”

아아…….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해 어둠 속을 걸었다.

“지금 북림의 약추완이 몹시 심하게 날뛰고 있소. 내부를 감찰하며 우리 편이 될 만한 자들을 전부 잡아들이고 있는 모양이오.”

“원래 앞잡이가 더 지독한 것이 아니겠소이까. 북림으로 이동 중인 다른 문파와 무가가 무탈해야 할 터인데…….”

“북림의 풍천양을 잡을 때까지 희생은 감수해야 하오. 그자만 잡는다면 강호 무림에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니 나머지는 시간 싸움이 될 것이오.”

 

* * *

 

섬서를 향해 흩어져 이동하던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후예들은 연안에 들어서자 하나둘 약속 장소로 모여들었다.

연안 외곽에 위치한 작은 객잔은 상인과 유람객, 그리고 강호인들로 붐볐다.

객잔을 가득 채운 손님들로 인해 기분 좋게 요리들을 내오던 객잔 주인은 뭔가 모를 기이한 위화감을 느꼈다.

‘뭔가 많이 이상한 것 같은데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네.’

“여기 백주 두 병만 내오시오.”

강호인들의 주문을 받은 객잔 주인은 허리를 넙죽 숙이고 주방으로 들어가다가 기이한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짝!

‘바로 그거구나.’

객잔 주인은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치고는 얼른 술을 내갔다.

객잔 안에는 지금 스무 명이 넘는 손님들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느 때와는 다르게 너무 조용했다.

간혹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조용하게 식사만 이어 가는 모습이 평소의 손님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얼마요?”

“열다섯 푼만 내십시오.”

먼저 식사를 끝낸 상인 대여섯 명이 계산을 치른 후 밖으로 나갔다.

객잔을 나선 상인들은 채 삼십여 장을 벗어나기도 전에 세 명의 젊은 강호인들과 마주쳤다.

“우리는 북림의 적룡조원이오. 말씀 좀 묻겠소.”

고개를 숙이며 적룡조원을 지나쳐가려던 상인들은 주춤주춤 걸음을 멈췄다.

“무슨 볼일이신지요?”

“등에 지고 있는 물건은 뭐요?”

“비단입니다. 우리는 전부 비단 장수들입니다.”

“확인을 해야겠소.”

상인들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북림의 무인들이라 하지만 양민들을 함부로 검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강호인이고 자신들은 힘없는 양민이었다.

“어찌 그러시는지요? 우리는 강호 무림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장사치들일 뿐입니다.”

상인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적룡조는 길을 내주지 않았다.

“이것을…….”

상인 중에 한 명이 은자 한 냥을 꺼내 공손하게 건넸다.

순간 적룡조의 안색은 서늘하게 변했다.

“우리 적룡조를 뇌물이나 받는 하찮은 무인들로 보고 있군. 어서 짐을 풀어라.”

상인들은 하나둘 등에 지고 있던 짐을 내려 풀 수밖에 없었다.

짐을 풀던 상인 하나가 슬며시 품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단검을 꺼내 달려들었다.

슈악……!

번개 같은 움직임이었으나 이미 적룡조는 상인의 목을 베어 가고 있었다.

커억!

“죽어!”

동시에 다른 상인들도 일제히 단검을 빼 들며 달려들었다.

아아아악!

예리한 단검을 쥐고 있는 상인들의 손과 목이 잘려 나갔다.

적룡조 세 명에 의해 여섯 명의 상인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중에 다섯 명은 숨을 거두었고 손이 잘린 상인 한 명만이 팔목을 움켜쥔 채 신음을 흘렸다.

으아아아…….

적룡조는 짐을 풀어 비단 속에 숨겨 놓은 병기들을 찾아냈다.

“역시, 백건적이었군.”

적룡조의 조원이 손을 흔드는 것을 신호로 숲에 잠복해 있던 또 다른 적룡조의 조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십여 명에 이르는 적룡조는 객잔을 둥글게 에워쌌다.

준비가 끝이 나자 부조장과 조원 둘이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객잔 주인이 넙죽 허리를 숙이며 그들을 맞이했다.

환하게 인사해 오는 객잔 주인을, 조원 한 사람이 다짜고짜 주방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아니, 왜, 왜…… 이러십니까?”

식사하며 담소를 나누던 손님들이 그런 그들을 흘깃 살피다가 슬며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끌끌끌…….

“어디로 가나? 백건적.”

콰지직……! 콰직!

부조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님들은 나무로 된 창문을 부수며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들의 앞에는 이미 다른 적룡조의 조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 * *

 

기루를 다녀온 지 십여 일쯤 흘러가자 북궁도는 또다시 몸이 달아올랐다.

무공 연마를 마치고 강물에 몸을 씻으며 계속 비강을 힐끔거렸다.

“뭐야? 할 말 있으면 해.”

“북림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냐? 림주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직 수배가 풀리지 않았어.”

비록 수배는 풀리지 않았지만 풍천양을 믿고 있었다.

설사 수배가 풀렸다고 해도 당분간은 북림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요즘 연마하고 있는 무공이 아주 빠른 진전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오늘 저녁 어때?”

하하하…….

비강은 밝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북궁도가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래, 가자. 대신 내일 아침에 일찍 돌아오는 거다.”

“당연하지. 깨끗이 씻어. 몸에 냄새가 나면 기녀들이 싫어하니까.”

비강은 자신의 하체를 박박 밀어 대고 있는 북궁도의 모습에 피식 미소를 짓고는 강물 밖으로 나왔다.

깨끗한 무복으로 갈아입고 땀에 젖은 자신의 무복과 북궁도의 무복을 빨아 나무에 널어놓았다.

“얼른 가자.”

뒤이어 물 밖으로 나온 북궁도도 새 무복으로 갈아입었다.

북궁도는 집으로 뛰어가 창고 바닥에 파묻어 놓은 은자 중 일부를 챙겨 비강이 기다리고 있는 나루터로 되돌아왔다.

수적들의 우두머리가 기거하던 배를 몰아 무한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이미 사방에 짙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 * *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저잣거리를 지나 기루에 도착한 두 사람은 총관의 안내를 받아 방 안으로 들어갔다.

“푸짐하게 술상을 차려 오고 기녀들도 들여보내 주시오.”

주문을 끝낸 북궁도는 바깥으로 난 창문을 열었다.

멀리 어둠 속으로 강을 오가고 있는 불 켜진 배들이 보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고맙다, 도야.”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오는 창밖을 내다보는 북궁도를 응시하던 비강이 생경한 말을 꺼냈다.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의아함이 가득한 북궁도의 표정에 비강은 피식 미소만 지었다.

북궁도는 자신에 관한 소문을 듣자마자 먼 곳에서부터 달려와 지금까지 함께해 주고 있었다.

아무리 친한 벗이라 하지만,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비강이 대답 없이 웃기만 하자 북궁도는 갑자기 짓궂은 표정을 만들어 냈다.

“고마우면 오늘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하는 거다. 알았지?”

“그렇게 해.”

“약속이다.”

“알았다니까.”

북궁도의 진상 짓은 이골이 난 터라 비강도 별다른 생각 없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방 안으로 푸짐한 술상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에 맞춰 두 명의 기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비강은 기녀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하도 어이가 없어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라? 이것 봐라.”

북궁도는 비강과 기녀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아! 서안에서 만났던 못생긴…… 그 기녀!”

“…….”

장경주는 억지로 미소를 만들어 내며 두 사람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백화라 하옵니다.”

“맞아, 맞아. 백화라고 했지. 이제 생각이 났네. 이것 참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서안과 멀리 떨어진 무한에서 그대를 또 만나게 될 줄이야.”

비강은 북궁도의 너스레에 고소를 지었다.

비록 진상이기는 하지만 저 녀석은 눈치가 빠르고 영리했다.

―하오문이야.

―벌써 눈치 깠거든. 네게 무슨 중요하게 전해 줄 말이 있는 모양이야. 자신의 정체까지 탄로 날 것을 각오한 모습을 보면.

역시 짐작대로 북궁도는 장경주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었다.

“소첩은 백죽이라 하옵니다.”

오오오…….

“하얀 대나무 소저. 기명처럼 아주 하얀 얼굴을 가지고 있구려. 그대는 내 옆으로 앉으시오.”

기녀를 옆에 앉게 한 북궁도는 손수 요리를 떠먹이고 술잔에 술까지 채워 건넸다.

“어서 드시오.”

백죽이라는 기녀는 그런 북궁도가 너무 당황스러워 어찌할 줄 몰라 했다.

원래 술은 기녀가 먼저 채우고 요리까지 입에 넣어 주어야 했다.

‘십여 일 전에 괴상한 젊은 손님 둘이 왔었다고 하더니 바로 이 손님들이로구나.’

백죽은 기녀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던 괴상한 젊은 손님에 대해 상기하며 얼굴을 붉혔다.

“네가 우리만 쳐다보고 있으니까 우리 대나무 소저가 심하게 쑥스러워하잖아. 너도 나와 똑같이 해.”

끄응…….

비강도 하는 수 없이 장경주의 잔에 술을 채우고 요리까지 입에 넣어 주었다.

“자, 이제 즐겁게 마십시다.”

북궁도와 비강은 요리를 안주로 연거푸 술잔을 비워 댔다.

워낙 격이 없고 장난기가 심한 북궁도였는지라 기녀 백죽도 곧 분위기에 휩쓸려 즐겁게 술잔을 비웠다.

하하하하…….

“그러니까 우리는 강호의 협객들인데 무림을 떠돌며 협행을 하고 있소.”

“어머, 그럼 흉악한 도적들도 많이 만나 보셨겠네요?”

“당연하오. 하나 우리 두 사람의 일검을 받아 내는 도적들을 만나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소.”

호호호…….

백죽은 입을 가리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어느 누가 봐도 이 젊은 사내는 허풍쟁이였다.

“정말 대단한 영웅들이였군요? 제가 몰라뵈었어요.”

기녀가 자신이 비운 잔에 술을 채우자 북궁도는 더욱 기고만장해 떠들어 댔다.

“아주 가끔 도적들을 떼로 마주칠 때도 있는데 그때는 어떻게 하는지 아시오? 바로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오. 예를 들어 북림의 한조나 공손황, 동천의 오기륭의 이름을 빌리는 거요. 그럼 대다수의 도적들은 이름만 듣고도 꽁무니를 뺀다오.”

“그럼, 요즘은 어떤 분의 이름을 빌리고 계신가요?”

가만히 북궁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경주가 장단을 맞춰 주었다.

“요즘은 내가 남선의 북궁도가 되고, 저 녀석은 북림의 연비강이라 자처하고 있소. 보시오. 저기 저 왼손에 반지까지 끼고 있잖소. 저것만 보이면 놈들은 가지고 있는 재물까지 전부 바친다오.”

호호호호…….

“정말이네요.”

백죽은 비강이 왼손에 끼고 있는 반지를 발견하고는 배를 잡고 웃어 댔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군요.”

장경주는 진정으로 북궁도의 영리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낯짝에 검조차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뻔뻔한 놈이니 적당히 흘려들으시오.”

비강도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며 술잔을 기울였다.

“며칠 전 북림에서 백리혈 연비강 소협에 대한 수배를 풀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

“정말이오?”

비강은 별다른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으나 북궁도는 크게 기뻐했다.

“천한 기녀의 말이니 귀담아듣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하하하하…….

이미 백화라는 기녀가 하오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북궁도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비강도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언제나 그렇듯 북궁도는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이, 백리혈. 뭐 하고 있나? 일어나야지.”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비강과 장경주는 두 사람만의 공간에서 마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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