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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74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0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74화

제74화. 어느 사형제들(5)

 

 

 

“오늘이야말로 그 늙은이를 저승으로 보내 주마.”

수적들은 기세등등하게 살기를 내뿜으며 배가 나루에 닿기를 기다렸다.

배 안에는 열 명이 넘는 수적이 타고 있었고, 그중에 한 놈은 거만한 모습으로 배 한쪽에 앉아 수적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내가 그 늙은이를 상대할 터이니 너희들은 그 늙은이가 도망치지 못하게 포위를 하고 있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소두령.”

배가 나루에 닿자마자 수적들은 집들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려 했다.

“왜 하필 오늘인 거냐? 이 새끼들아! 왜 하필 오늘인 거냐고?”

그때 그들의 앞을 막아서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두 젊은이 중 특히 잘생긴 젊은이는 얼굴까지 붉히며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다.

워낙 갑작스런 상황이라 수적들은 멍하게 비강과 북궁도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하지만 소두령은 부하들과 달랐다.

본능적으로 두 젊은이가 평범한 고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바로 물로 뛰어들었다.

풍덩!

수적답게 헤엄이라면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적 하나가 물로 뛰어들자마자 비강과 북궁도의 병기는 빛을 발했다.

두 사람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수적 사이를 파고들었다.

스악…… 스악……!

크억! 큭……끄아악……!

짧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열 명이 넘는 수적의 몸뚱이가 강물로 굴러떨어졌다.

“올라와!”

수적들을 처리한 북궁도는 바로 배로 뛰어올라 노를 잡았다.

“노 젓는 방법은 알고 있냐?”

“내가 남쪽 놈이잖아.”

삐걱…… 삐걱…….

“배가 커서 그런지 노 젓기가 조금 힘드네.”

북궁도는 노를 저어 헤엄쳐 도망치고 있는 수적을 쫓아갔다.

두 사람을 태운 배가 가까워지자 헤엄을 치던 수적은 물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어쭈, 이것 봐라? 잠수를 해 도망치려 한다 이거지?”

북궁도는 천천히 노를 저으며 수적이 모습을 감춘 주변을 살폈다.

잘아무리 헤엄을 잘 치는 수적이라지만,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에는 한도가 있었다.

푸하!

결국 한계까지 숨을 참으며 물속에서 움직이던 수적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물 밖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퍽!

그때를 기해 북궁도의 손에 들려 있던 거대한 노가 수적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북궁도는 노에 맞아 기절한 수적을 배 위로 끌어 올렸다.

배 바닥에 널브러진 수적은 좀처럼 깨어날 줄 몰랐다.

이에 북궁도는 노를 들어 수적의 머리통을 다시 한번 후려쳤다.

퍽!

끄아아악……!

비명 소리를 지르며 깨어난 수적은 온통 붉은색이 가득한 세상을 이상히 여겨 손으로 눈을 쓸었다.

머리에서 흘러나온 끈적한 피가 손을 적시고, 수적의 입에선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으으으…….

“수채로 안내해.”

차가운 북궁도의 목소리에 수적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응시했다.

“누구……십니까?”

“이쪽은 백리혈, 나는 남협.”

북궁도가 턱짓으로 비강과 스스로를 소개하자 수적의 눈은 경악으로 부릅떠졌다가 절망으로 가라앉았다.

평범한 젊은이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으나, 설마 정체가 백리혈과 남협일 줄은 몰랐다.

“수채는…… 항상 움직이기에 저도 정확한 위치를 모릅니다.”

“이 새끼가 누굴 바보라 아나…… 나도 남쪽 출신이야. 너희들 같은 수적 놈들을 한두 번 상대했을 것 같아? 근처로 가면 다른 수적 놈들이 배를 끌고 찾아올 거 아냐!”

남협의 말이 맞다.

큰 규모의 수채라면 한 곳에 자리를 정해 어지간하면 이동하지 않지만, 작은 규모의 수채는 항상 강물을 따라 이동한다.

토벌대의 추격을 피하고 약탈하기 수월해 그리하는 것이었다.

“안내…… 하겠습니다.”

외통수에 걸렸다 싶었는지 수적은 더 이상 발뺌을 하지 못했다.

“네놈이 해.”

북궁도는 수적에게 노를 던져 주고는 비강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배가 움직이고 두 사람은 어두워져 가는 강물을 응시했다.

“소문난 협객의 입이 너무 거친 거 아니냐?”

“내게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놈들이 바로 이런 놈들이야. 재물을 약탈하기 위해서라면 남의 목숨 정도는 우습게 알거든. 강호인들을 털어먹고 산다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이놈들의 대상은 강호인이 아니라 힘없는 양민이야.”

날이 어두워지자 노를 젓던 수적은 등불을 켜 둥글게 원을 그렸다.

그것이 무슨 신호라도 되는지 저 멀리 작은 불빛 하나가 반짝이더니, 그 불빛이 점점 두 사람을 태운 배를 향해 다가왔다.

컥.

배와 배의 거리가 십여 장쯤 남았을 때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비강은 바로 수적의 목을 벤 후 물속으로 처박았다.

“정말 잔인해.”

북궁도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다가오고 있는 작은 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배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비강과 북궁도는 뱃전을 박차고 어둠속으로 날아올랐다.

 

* * *

 

상관국은 창강과 한수를 오가며 약탈을 일삼는 수적들의 우두머리였다.

원래 그는 상관세가라는 유명한 무가의 적자였다.

상관세가는 구파일방이나 육대세가와 두루 깊은 친분을 맺고 있었기에 황곡 고수들과의 싸움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싸움의 대가는 참으로 비참했다.

상관세가는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고, 먼 방계가 가주 자리에 올랐다.

간신히 추격을 피한 상관국은 우연히 수적들과 마주쳤다.

숨어 있을 곳이 필요했던 그는 수적들을 협박해 수채를 알아냈지만 수채의 우두머리에게 패해 붙잡히고 말았다.

수채의 채주는 잔인한 자였으나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은 있었다.

목숨을 구한 상관국은 채주를 보좌하며 살게 되었는데 그 시기가 얼마 가지 못했다.

강호를 평정한 사패가 대대적으로 녹림과 수적들을 토벌하기 시작한 것이다.

토벌 과정에서 채주는 전사했고, 상관국은 채주의 재물을 챙겨 피신했다.

이십 년 동안 조용한 삶을 이어 가던 그는 백건적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사패를 강호 주인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하는 집단, 백건적.

잘하면 가문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상관국은 창강과 한수로 나와 그곳에서 막 활동을 시작하던 이십여 명의 수적들을 제압했다. 가문을 되찾기 위해서는 재물과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짐작대로 북림은 백건적들로 인해 수적들에 대한 감시가 느슨해진 상태였다.

“오늘은 몇 명이나 들어왔느냐?”

이제는 나이 사십을 넘긴 상관국이 수채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물었다.

“두 명이 들어왔습니다. 이십 년 전에 이곳 한수에서 수적으로 있었다고 합니다.”

“무공은 어떠하더냐?”

“무공은 뛰어나지 못하지만 뱃일에 능하고 헤엄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고 합니다.”

“뱃일과 헤엄에 능하지 못한 수적들도 있다더냐? 잡일이나 시켜라.”

“예.”

부드럽게 밀려오는 물길을 느끼며 방 안에 앉아 술을 마시던 상관국은 문득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섬뜩한 느낌은 이십 년 전에 한 번 경험했었다.

끄으으…….

신경을 거스르는 미묘하고 가는 신음 소리가 상관국의 귀에 잡혔다.

그는 벽에 걸어 두었던 검을 잡았다.

바로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수적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채주님, 적들이 침입…….”

그러나 그 수적은 말을 끝내지 못한 채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앞가슴으로 비죽하게 튀어나온 피에 젖은 검날이 그의 시야에 잡혔다.

으으으…… 쿨럭…….

문을 막아섰던 수적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검을 쥐고 있는 사내의 얼굴이 상관국의 시야에 들어왔다.

“누구냐?”

상관국은 침착하게 침입자의 정체를 물었다.

“백건적인가?”

그러나 상대방은 대답 대신 오히려 되물었다.

“백건적?”

백건적들을 찾는 것으로 보아 이자는 북림의 고수인 모양이었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백건적이…….”

“아니라도 상관없어.”

챙!

비강이 검을 들어 올리자 상관국도 급하게 검을 뽑았다.

순간 상관국의 눈에 상대방의 신형이 뿌옇게 흐려지며 검은색 점 하나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 검은 점은 느리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것을 막거나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검은 점은 세로로 가늘게 갈라지며 상관국의 이마를 뚫고 지나갔다.

털썩…….

상관국이 풀썩 쓰러지자 비강은 피 묻은 검을 그의 옷에 닦고는 검집에 집어넣었다.

“방금 무슨 무공이었냐?”

“새로 만들고 있는 다섯 번째 무공이야.”

비강은 신형을 돌리며 대답했다.

“잘난 놈. 나중에 정말 천하제일인이라도 되면 잘 좀 봐줘라.”

헝겊으로 도신에 흐르는 피를 닦아 도집에 집어넣은 북궁도는 여러 척으로 이어 놓은 수적들의 선단을 풀고 돛을 올렸다.

수채에서 따로 떨어져 나오는 배는 수적들의 재물이 쌓여 있는 채주의 배였다.

북궁도가 돛을 움직이는 동안 비강은 상관국의 시신을 물에 던졌다.

“무한으로 들어갈 거다.”

 

* * *

 

“네가 그때 남궁석이 품에 안고 떠났던 그 아이로구나.”

“그렇습니다. 휘라고 합니다.”

“가문에서 그나마 나를 이해해 준 녀석은 석이뿐이었지. 석이는 어디 있느냐?”

“먼저 목숨을 살려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아버님은 청해에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계십니다.”

검신 남궁악은 대장부가 되어 찾아온 남궁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남궁세가의 수많은 가인들을 죽이고 짓밟았으나 오직 남궁석만은 살려 보내 주었다.

‘기다려라, 남궁악! 언젠가 남궁의 이름으로 너의 목을 벨 것이다!’

아직도 생생한 남궁석의 울부짖음은 남궁악의 기억 속을 맴돌고 있었다.

“내 목을 취하러 왔느냐?”

“무신의 목을 취할 자는 강호 무림에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황곡의 심부름으로 이곳을 찾아온 것뿐입니다.”

남궁휘는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하게 서신을 바쳐 올렸다.

봉서를 받아 든 남궁악은 서신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너도 이 서신의 내용을 알고 있겠지?”

“예. 너무도 궁금하여 봉서를 뜯었습니다.”

남궁휘는 봉서를 미리 살핀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대로 할 것이라 전해라.”

“알겠습니다. 그럼, 남궁세가의 남궁휘는 물러가겠습니다.”

크흐흐흐…….

남궁악의 입에서 말로 형언하지 못할 괴이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남궁휘의 어깨가 갈라지며 핏물이 튀었다.

“남궁의 가주가 되고 싶다면, 이 자리에서 내 목을 취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

부드럽고 인자했던 남궁악은 이제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목을 취할 것 같은 남궁악의 공포와도 같은 살기에 남궁휘는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남궁휘는 검신의 위엄을 절대로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여움을 푸십시오.”

“물러가라.”

다시 한번 머리를 숙여 검신의 아량에 고마움을 표한 남궁휘는 천주의 전각을 나와 남궁세가를 벗어났다.

뒤를 돌아보니 황산 아래 넓디넓은 장원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은 오래전 남궁세가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동천의 본거지이자 강호를 사분하고 있는 사패의 주인이 머물고 있는 곳이었다.

‘평생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저곳을 되찾고 말리라.’

 

* * *

 

동천을 벗어난 남궁휘는 추격이 붙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좋지 않아.’

뒤를 따라붙은 추격은 은밀하고도 조용해 쉽게 따돌릴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남궁휘는 태연을 유지하며 어둠 속을 천천히 걸었다.

거의 반 시진 넘게 어둠 속을 걸었지만 추격은 여전히 그의 뒤를 따라붙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전진의 오진권이 기다리고 있는 폐가가 나타난다.

마음이 초조해진 남궁휘는 걸음을 멈추며 몸을 돌렸다.

“그만 나오시오.”

스아아아…….

고요한 산길을 따뜻한 봄바람만이 스치고 지나갔다.

‘사라졌군.’

끈질기게 따라붙던 기척은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남궁 가주.”

은밀한 추격자의 기척을 대신해 오진권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오 장문.”

“검신을 만나 본 소감이 어떻소?”

“소감이랄 것이 무에 있겠소. 어차피 죽여 없애야 할 원수일 뿐인 것을.”

“사천존 중에 가장 영악한 자가 바로 남궁악이오. 조심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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