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7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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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73화
제73화. 어느 사형제들(4)
“그냥 전해 주기만 하면 된다.”
“제게 이런 막중한 임무를 맡겨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장문인.”
전진의 제자 장당호는 감격에 겨워 눈물까지 보였다.
“너의 이름은 강호 무림에 길이 전해질 것이다, 당호.”
“영광…… 입니다.”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무신과 마주해라. 너는 강호제일 무문인 전진의 제자다.”
장당호는 급히 눈물을 훔치고 강 건너에 자리 잡고 있는 남선의 본거지를 응시했다.
저곳에는 남쪽의 무신 도운패가 있다.
무신을 만나 서신을 전하는 막중한 임무가 자신에게 주어졌다.
“나는 네가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마.”
“다녀오겠습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장당호는 당당한 걸음으로 나루터를 향해 걸었다.
나루터에 도착한 그는 바로 배에 올랐다.
장당호를 태운 배는 남선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난간에 서 있던 그가 고개를 돌려 보니 언덕 위에 서 있는 오진권의 모습이 보였다.
장당호는 마음을 다잡으며 점점 더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남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멀어져 가는 장당호를 지켜보던 오진권은 배가 남선의 입구에 닿자마자 신형을 돌렸다.
장당호는 전진의 젊은 제자들 중 가장 미련했다.
무공은 그럭저럭 쓸 만했지만 시기와 질투가 심해 제자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 자는 언젠가 아군에 큰 피해를 입히기 마련이었다.
‘너의 이름은 기억하겠다, 장당호.’
* * *
남선에 도착한 장당호는 무인들의 안내를 받아 무신 도운패의 거처로 향했다.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왔구나.’
장당호는 미래의 강호 무림을 준비하고 있었다.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다시 강호의 주인이 된다면 주어지는 권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때는 사패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자들이, 그저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겁쟁이들 위에 서서 더욱 큰 권력을 움켜쥐게 되리라.
‘두고 봐라. 나를 무시한 놈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를 테니.’
무인들은 장당호를 커다란 전각 앞까지 안내하고 돌아갔다.
“선주님, 황곡에서 손님이 방문하셨습니다.”
“들라 하시오.”
전각 안에 있던 호위가 나와 선주의 허락을 전했다.
장당호는 당당한 모습을 유지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긴 복도를 지나 방 안으로 들어간 그는 넓고 긴 탁자 끝에 앉아 있는 오십 대 초반의 사내를 응시했다.
무신 도운패가, 의자에 앉아 서책을 읽고 있었다.
“전진의 장당호가 남선의 주인께 인사 올립니다.”
그러나 무신은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허험…….
“전진의 장당호가…….”
어억!
헛기침까지 하며 다시 예를 올리던 장당호는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탁자 너머에서 시퍼런 불길이 쏟아진 것이다.
그 불길을 마주한 장당호의 온몸은 두려움으로 벌벌 떨렸다.
처음의 그 당당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방금 전진이라고 했느냐?”
장당호는 무신의 질문조차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시퍼런 불길이 무신 도운패의 안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음에도 온몸을 지배하는 공포는 가시지 않았다.
무신은 소문으로만 접했었다.
이렇게 대단한 자인 줄 알았다면 이번 일은 절대로 맡지 않았을 것이다.
심장을 칼로 쑤시는 극심한 고통을 느낀 장당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파를 잡았다.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본능이었다.
쯧쯧…….
“미련한 놈이로다.”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장당호의 심장을 옥죄던 살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컥!
살기가 사라지자마자 그는 온몸에 힘이 풀려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어야 했다.
“무슨 일로 왔느냐?”
“이…… 것을…….”
장당호는 품에서 급히 서신을 꺼내 두 손으로 바쳐 올렸다.
그러나 도운패는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의자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장당호는 허리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도운패에게 다가갔다.
탁.
서신을 낚아챈 도운패는 봉서를 뜯어 내용을 살폈다.
“누가 보냈느냐?”
서신을 접은 도운패가 무감정한 눈으로 물었다.
“오진권 장문인이……서신만 전해 달라고…….”
“오진권이라…… 나가 봐.”
“예? 예.”
짧은 축객령에 장당호는 얼른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는 뛰듯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제거하겠습니다.”
도운패 홀로 앉아 있는 회의실 안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려 보내도 우리에게 해로운 놈은 아니야.”
“저런 놈의 칼에 남선의 무인들이 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자와 접선하는지 살펴보고 처리하겠습니다.”
“네 뜻대로 해라.”
* * *
장당호는 너무나 두려웠던 나머지 어떻게 남선을 빠져나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배에서 내린 장당호는 오진권 장문인이 기다리고 있을 언덕을 향해 한달음에 달려 올라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장문인.”
혹시 인근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들을까 봐 작은 목소리로 장문인을 찾았지만 그는 어디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이럴 수가…….”
장당호는 그제야 이번 일의 전모를 알아차렸다.
다른 전진의 제자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신을 보낸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그의 눈 밖에 난 자신을 이용한 것이다.
으드드득…….
“나, 나를…… 장문…… 오진권 이 개자식이…….”
솟구치는 분노에 이가 갈리고 세상은 노랗게 변해 갔다.
바로 그때 장당호의 등 뒤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의 본거지가 어디냐?”
흐업!
스악…….
화들짝 놀란 장당호는 급히 검을 뽑으며 등 뒤쪽을 십여 갈래로 갈라 버렸다.
“다시 묻겠다. 너희들의 본거지가 어디냐?”
그러나 서늘한 목소리의 사내는 검신이 미치지 못하는 삼 장 너머에 서 있었다.
“누…… 누구냐?”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사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키가 큰 사내는 한 손에 날렵한 유엽도를 들고 있었다.
우수에 찬 눈빛과 어울리는 잘생긴 얼굴은 젊었을 적에는 여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만했고 장발의 머리카락은 허리 어름까지 내려와 있었다.
“내, 내가 전진을 배신할 것 같으냐?”
장당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억울하지 않나?”
으으으…….
장당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울상이 되었다.
사문인 전진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문의 장문인이 먼저 배신하지 않았는가.
“워…… 원래 본거지는 청해에 있었다. 작년 말쯤에 섬서 북쪽과 산서로 옮겼으나 그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른다.”
“홀로 찾아갈 수 있겠나?”
억울하게도 홀로 그곳을 찾아갈 자신이 없었다.
넉넉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찾을 수는 있겠지만 당장은 어려웠다.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찾을 수는…….”
스악. 철컥.
유엽도를 들고 있는 사내의 왼손에서 빛이 번쩍하고 뿜어져 나왔다가 순식간에 되돌아 들어갔다.
툭. 떼구르르…….
“미련한 놈.”
사내는 장당호의 시신을 언덕 아래 강물로 던져 버렸다.
* * *
무공을 연마하던 두 사람은 흐르는 땀을 식히기 위해 나무 그늘에 나란히 앉았다.
날은 따뜻하고 나뭇가지마다 울긋불긋한 꽃들이 활짝 펴 무릉도원이 다른 곳에 있지 않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하아……!
“제기랄, 화창한 봄날에 꽃놀이 한 번 못 가 보고 무공 수련이나 하고 있어야 하다니. 밖에 봄나들이 나온 미녀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도를 쥐고 있을 때는 누구보다 진중한 북궁도였으나 도를 내려놓으면 진상으로 돌아갔다.
“여기도 사방이 꽃이야.”
“나는 이런 꽃 말고 사람 꽃이 필요해.”
후우!
한숨만 푹푹 내쉬던 북궁도는 짜증까지 부렸다.
“그런데 이 새끼들이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목 빠지게 기다리는 중인데.”
“올 때가 되면 오겠지. 잡기 쉬운 놈들이었으면 벌써 무한 지부에서 해결했을 거야.”
“아…… 진짜 심심해 미치겠네. 비강아, 우리 오늘 저녁때 기루에 갈까?”
“애들은 어떻게 하고.”
북궁도는 고개를 푹 늘어뜨렸다.
“그렇지. 애들이 있었지.”
매일 저녁마다 밥을 얻으러 오는 마을 아이들이 문제였다.
원래 그 아이들은 길거리에 버려졌던 아이들이었는데 이 마을에 사는 노인이 데려와 길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비강과 북궁도가 이곳에 도착하기 열흘 전 대여섯 명의 수적이 찾아왔다고 한다.
노인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들어 싸웠고 수적들을 물리쳤지만 작지 않은 부상을 입고 말았다.
수적들과 싸움을 벌인 것으로 보아 노인은 젊었을 적에 칼밥으로 먹고살던 강호인이었던 모양이었다.
물고기를 잡아 연명하던 노인이 부상을 당하자 식량은 바닥났고 아이들은 굶게 되었다.
이 마을에 도착한 비강과 북궁도는 우선 그 노인을 의원에 데려가게 했고 매일 밥과 탕을 넉넉하게 만들어 아이들을 먹이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큼지막한 통돼지까지 구해 아이들에게 먹였다.
“뱃사공 도착할 시간이 거의 다 됐어. 나갔다가 올게.”
“같이 가자.”
두 사람은 숲을 나와 마을 앞쪽 강가에 만들어 놓은 작은 나루로 향했다.
나루터에 도착한 두 사람은 멀리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작은 배 한 척을 지켜보았다.
“정말 시간 하나는 귀신같이 맞추는 사람이야.”
이틀마다 한 번씩 식량과 식재료를 구해다 주는 뱃사공은 처음 두 사람을 태웠던 바로 그 젊은 뱃사공이었다.
나룻배가 점점 더 가까워지자 배 안에 타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어? 저 사람은…… 드디어 왔구나!”
북궁도는 너무 기뻐 환호성까지 질렀다.
배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아이들을 돌보던 늙은 어부였다.
“대엿새는 더 있다가 올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일찍 왔네. 아주 잘됐어. 비강아, 저녁때 기루에 가자.”
늙은 어부가 집으로 돌아왔으니 이제 그에게 아이들을 맡기면 그만이었다.
배는 더 가까워지고 젊은 뱃사공도 두 사람을 확인했는지 손까지 흔들었다.
늙은 어부도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숙였다.
나루에 도착한 사공은 안에서 식량과 식재료를 내렸다.
“두 분의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배에서 내린 늙은 어부는 두 사람을 향해 다시 한번 머리를 숙였다.
“조금 더 계시다가 오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럴 수야 없지요. 아이들도 걱정이 되고 무엇보다 아무리 누추해도 제집이 편하더군요.”
“어서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저녁때 밥과 탕을 준비해 놓겠습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제 다 나았으니 제가 직접 식사를 마련하겠습니다.”
늙은 어부는 극구 사양을 했으나 두 사람이 보기에는 식사를 준비할 만큼 몸 상태가 좋지 못했다.
“뱃사공도 수고하셨소, 이틀 후에 봅시다.”
젊은 뱃사공에게 은자를 쥐여 준 두 사람은 늙은 어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아마 저 아래쪽 강어귀에서 낚시를 하고 있을 겁니다. 저녁때 돌아올 것이니 집에 들어가 쉬십시오.”
“감사합니다.”
늙은 어부가 집으로 향하자마자 북궁도는 서둘러 식사를 준비했다.
일찍 저녁 식사 준비를 끝내고 기루에 가려는 것이었다.
밥과 탕을 넉넉하게 준비한 두 사람은 아이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귀여운 놈들. 저놈들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지 평소보다 일찍 돌아오네.”
멀리서 급하게 뛰어오는 흐릿한 아이들의 발 소리에 북궁도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 아저씨!”
밖에서 아이들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오냐, 이놈들아. 여기 밥과 탕을 준비해 놨으니 얼른 가져가라. 그리고 오늘 아주 반가운…….”
“그게 아니고요, 아저씨…….”
아이들은 부엌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손가락으로 강을 가리켰다.
“저쪽에서 배 한 척이 이곳을 향해 오고 있어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두 사람의 안색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알았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너희들은 밥과 탕을 가져가. 할아버지가 돌아오셨어. 그리고 오늘은 집밖으로 나오지 마라.”
“할아버지가요?”
“정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