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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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71화
제71화. 어느 사형제들(2)
끄으으으…….
상처를 꿰매는 노인의 손길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옆에 있던 북궁도가 한마디 참견할 정도였다.
“살살…… 살살 좀 해 주십시오.”
“내 치료가 싫으면 다른 의원을 찾아가게.”
의원은 거친 손길만큼이나 목소리도 무뚝뚝했다.
“그냥 해 본 말입니다.”
거칠게 치료를 끝낸 늙은 의원은 상처 부위를 깨끗한 헝겊으로 싸맸다.
“은자 다섯 냥일세.”
“아니…… 이런 바가지가…….”
두 사람은 그제야 이곳에 손님들이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치료가 끝난 상황이라 한마디 따져 보지도 못 하고 은자 다섯 냥을 지불했다.
은자를 받아 챙긴 늙은 의원은 밖으로 나가더니 따뜻한 약차 두 잔을 내왔다.
약차를 담은 찻잔조차 이가 듬성듬성 나간 볼품없는 것이었다.
“들게.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일세.”
두 사람은 아무 소리 없이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상처를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를 마시던 비강은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비록 상처를 치료하는 손길은 거칠기 그지없었으나 솜씨는 좋은 의원이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비강의 인사에 북궁도도 뒤늦게 머리를 숙였다.
그런 두 사람이 너무 뜻밖이었는지 늙은 의원의 완고했던 표정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강호는 잔인한 괴물과 같은 곳이라네. 조심하게나.”
“강호에 대해 잘 아시는군요.”
“나도 예전에는 강호를 전전하며 살았다네. 저녁때가 다 되었는데 식사나 하고 가겠는가?”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젊은이들을 접해 예의상 식사를 권했는데 상대는 진상으로 이름 높은 북궁도였다.
“주신다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 종일 쫄쫄 굶은 탓에 배가 몹시 고팠습니다.”
“그…… 런가? 찬이 없는데 괜찮겠는가?”
적잖이 당황한 늙은 의원이 핑계를 댔지만 북궁도를 상대로는 어림도 없었다.
“괜찮습니다. 우리는 맨밥도 잘 먹습니다.”
“그렇다면 잠시 기다리게. 부엌에 밥을 차려 놓을 테니.”
방을 나간 늙은 의원은 밥을 짓고 찬을 마련하느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방 안에 앉아 있던 북궁도는 식사를 기다리며 침상에 엎드렸다.
“등을 크게 다쳐서 편하게 잠을 자기가 불편해.”
“이제 그만 남선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냐?”
“무슨 소리. 남선으로 돌아가면 재미없게 또 갇혀서 지내야 한단 말이야. 너랑 같이 무공 연마나 하다가 가끔 기루에 들러 재미나게 놀 거야.”
비강은 더 이상 북궁도의 귀가를 재촉하지 않았다.
북궁도만큼 마음 편한 상대는 강호 무림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 마음대로 해.”
두 사람이 방 안에서 한참 동안 쉬고 있으려니 밖에서 늙은 노인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나오게.”
병기를 챙겨 방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은 부엌으로 들어가 허름한 식탁에 둘러앉았다.
“정말 찬이 없네.”
북궁도의 불만처럼 식탁 위에는 밥과 물고기를 삭힌 젓갈, 그리고 푸성귀 한 그릇이 전부였다.
늙은 의원은 북궁도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정말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놈이로구나.’
“잘 먹겠습니다.”
언제 반찬 투정을 했냐는 듯 북궁도는 게걸스럽게 밥을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의원 어르신도 드십시오.”
비강도 식사를 시작하고 늙은 의원은 식탁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늙은 의원은 젓가락을 집다 말고 허겁지겁 식사를 하고 있는 두 젊은이들을 응시했다.
그간의 경험과 안목으로 판단해 볼 때 이 두 젊은이는 절대로 보통 강호인들이 아니었다.
깊은 부상을 입고도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니는 인내심이나 항상 병기를 몸에 붙이고 다니는 습관은 처절한 강호의 삶을 살아 보지 않고는 얻기 힘든 것들이었다.
의원의 눈길은 의자 뒤에 세워 놓은 병기로 옮겨 갔다.
하얀 천으로 싸맨 병기는 언제든 뽑을 수 있도록 검파를 살짝 드러내고 있었다.
‘쌍검인가?’
“한 그릇 더 주십시오.”
북궁도가 내민 비어 버린 밥그릇을 무심결에 받아 든 늙은 의원은 얼른 정신을 차리며 밥을 더 퍼 왔다.
* * *
“잘 먹었습니다.”
배부르게 식사를 끝낸 두 사람은 짐과 병기를 챙겨 들고 의원을 나섰다.
북궁도는 허리에 그대로 도를 꽂았지만 비강은 헝겊으로 감싼 검과 철봉을 등에 둘러멨다.
“혹시 조용히 지낼 만한 장소로 아시는 곳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하려면 장강이나 한수로 나가 보게.”
“감사합니다.”
* * *
비강과 북궁도는 늙은 의원의 말대로 장강과 한수가 만나는 곳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멀리 보이던 황학루가 점점 눈앞으로 다가왔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각이라 황학루에는 등불을 내걸고 있었다.
“저 황학루에는 전설이 있는데 원래 저곳에는 객잔이 있었대. 어느 날 도사가 객잔에 들러 술값 대신 그림 하나를 벽에 그려 주고 갔는데 노래를 부르면 그림 속의 황학이 나와 춤을 추었다고 해. 덕분에 그 객잔은 손님들이 많이 몰려 큰 부자가 되었고 나중에 벽만 남긴 채 객잔을 허물고 누각을 지었다고 하더라고. 아직도 저곳은 시인 묵객들이나 유람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야.”
북궁도의 말대로 황학루 근처에는 봄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밤놀이를 나온 사람들을 맞아 강가에 늘어선 객잔들도 불을 밝히고 손님들을 맞아들였다.
“잘난 귀공자들이 많구나.”
비강의 감탄처럼 밤놀이를 나온 선남선녀 중에는 아주 부유해 보이고 잘생긴 귀공자들이 여러 명 눈에 띄었다.
“다 남의 집 자식들이지.”
“무슨 뜻이냐?”
“사부님은 내가 말썽을 부릴 때면 기재들과 나를 비교하시거든. 누구네 집 자식은 얼마나 잘났고, 뭐가 어떻고 하면서 말이야. 너도 그중에 하나야.”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에게 애정 어린 잔소리 한 번 못 들어 본 비강은 북궁도의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예상과는 달리 비강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북궁도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길을 재촉했다.
“얼른 가자. 더 어두워지기 전에.”
나루터에 도착한 두 사람은 등불을 밝히고 있는 작은 유람선 한 척을 손짓해 불렀다.
“어디로 모실까요?”
“경치 좋은 곳으로 부탁하오.”
두 사람을 태운 젊은 뱃사공은 노를 저어 쪽배를 강물 한가운데로 몰아갔다.
삐걱…… 삐걱…….
노 젓는 소리와 쪽배가 물을 가르는 소리는 두 사람의 귀를 즐겁게 했다.
“혹시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빈집은 없소?”
“빈집이야 많지요. 하지만 그곳에서 지낼 생각일랑은 꿈에도 하지 마십시오.”
하하…….
“왜 그래야 하오?”
북궁도는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으나 뱃사공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북림과 남선의 위세에 종적을 감췄던 수적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지요. 수적들이 두려워 강기슭에 자리 잡았던 어민들도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는 형편입니다요.”
“그럴 리가…… 북림과 남선 지부에서 수적들의 활동을 그냥 두고 볼 리 없을 텐데…….”
허허허…….
“그분들은 지금 백건적을 잡으러 다니느라 바쁘지 않습니까요? 쇤네는 강호인이 아니지만 강호가 돌아가는 사정쯤은 잘 알고 있습지요.”
후우…….
비강과 북궁도는 서로를 돌아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은운곡에서 마주했던 남궁휘의 말이 떠올랐다.
‘너희들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밀려오는 파도는 막지 못해.’
북궁도는 조용한 목소리로 자신의 바람을 말했다.
“너는 꿈이 천하제일인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내 꿈은 천하제이인이다. 커다란 기루를 가진 천하제이인. 그때는 나와 함께 세상을 바꿔 보자.”
* * *
‘드디어 나의 집으로 돌아왔구나.’
오진권은 하늘마저 가릴 정도로 높게 솟아 있는 바위산을 올려다보며 감회에 젖어 들었다.
깎아지른 바위산 중간마다 전각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전각과 전각 사이마다 바위를 깎아 만든 계단들이 선을 그리며 조화롭게 이어져 있었다.
이곳이 바로 이십 년 전에 등을 졌던 그의 집이자 전진의 본거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주인이었던 자신들을 겁박했던 서패의 둥지이기도 했다.
‘저곳에서 사형제들과 낚시를 즐겼었지.’
바위산 아래로 흘러가는 오 장 넓이의 강은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은 모습이었다.
오진권은 바위산으로 이어지는 돌다리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돌다리 너머에는 서패의 무인들이 다리를 건너오는 오진권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다리를 건너자마자 무인들은 앞을 막아섰다.
“황곡에서 패주를 만나러 왔소.”
“황곡?”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던 무인들은 곧 조장을 불러 오진권의 말을 전했다.
‘병신 같은 것들. 사천존과 떨거지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벌써 잊었단 말이냐. 오냐. 기다려라. 곧 너희들을 전부 죽여 줄 테니.’
속으로 불같이 들끓는 노기는 부드러운 미소로 대신했다.
“패주께 전해 주십시오.”
“기다리시오.”
오진권은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무심한 얼굴로 강물을 바라보며 분노를 삭였다.
마음 같아서는 이들을 단칼에 베어 버리고 곧장 패주에게 쳐들어가 그녀의 목을 날려 버리고 싶었다.
“들어오시오.”
거의 반 시진이나 기다린 끝에 허락이 떨어졌다.
오진권은 서패 무인들의 안내를 받으며 자신의 집으로 들어섰다.
‘내 집에 들어가는데도 도적놈들의 안내를 받아야 하다니…….’
크크크크…….
오진권의 웃음소리에 양옆에서 그를 안내하던 무인들도 미소를 지었다.
“평생 영광으로 알아야 할 거요. 패주님은 함부로 뵐 수 있는 분이 아니니 말이오.”
하하하하…….
“그렇지요. 평생 이날을 기억할 것입니다.”
늙어 죽을 때까지 이 치욕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곳을 찾는다면 다시는 이 도적놈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리라.
발을 옮길 때마다 돌계단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며 아련한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으로 수많은 사형제들이 지나갔다.
전진의 위명에 감복한 자들도 이 계단을 밟고 밟아 위로 올랐다.
전각과 전각으로 이어진 계단을 밟아 올라간 오진권은 가장 높은 곳에 발을 내디뎠다.
웅장한 전각들과 어울려 돌을 깎아 만든 연무장은 눈이 시릴 정도로 찬란했다.
* * *
“들어가시오.”
오진권을 안내해 온 무인들이 내려가고, 거처를 지키고 있던 무인들이 그를 인계받아 안으로 들였다.
은은한 향내가 흐르고 있는 방 안으로 들어온 오진권은 맞은편 상석에 앉아 있는 여인을 올려다보았다.
귀밑의 흰 머리카락을 단전하게 빗겨 넘겨 붉은 비녀를 꽂고 있는 여인이 바로 서패의 주인 당백요였다.
“오진권이 서패의 주인께 인사 올립니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당백요는 오진권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신후의 은혜는 지금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진권은 품에서 서신을 꺼내 당백요가 앉아 있는 방향으로 밀어냈다.
서신은 공중을 날아 신후의 손안으로 들어갔다.
“몰라보게 강해졌어.”
“그 또한 신후의 은혜입니다.”
“일찍 죽여 없앴어야 했거늘…….”
신후 당백요는 못마땅한 기색을 내보이며 서신을 펼쳤다.
으음…….
서신을 읽어 내려가는 신후의 눈빛은 가는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더 전할 말은 없느냐?”
서신을 향로에 태우며 신후는 오진권을 응시했다.
“없습니다.”
“오랜만에 사문으로 돌아온 기분이 어떻더냐?”
가슴이 벅차오르고 그만큼 분노도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오진권은 별다른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감흥이 없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신후의 입가에는 서늘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이곳은 나의 집이니 행여 되찾을 생각일랑 말아라.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내보인다면 너는 죽을 것이야.”
죽음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신후가 얼마나 무서운 고수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아직은 내가 네년의 경지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나 머지않아 반드시 내 손으로 직접 그 잘난 목을 베어 주마.’
오진권은 신후를 향해 정중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달리 전할 말씀이 없다면 저는 그만 나가 보겠습니다. 남선에 들려야 합니다.”
“나가 봐.”
“그럼, 또 뵙겠습니다.”
방을 나가는 오진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신후의 눈길은 스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