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54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54화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을 타인에게 설명하는 것은 설명하지 않는 것만 못한 것이다.
“그냥 심검이라는 것은 지고한 경지라고만 알고 있게.”
조금은 궁색한 허명진인의 답변이었지만 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학사인 호현으로서야 심검이든 신검이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지금 그의 관심은 광구 안에 있는 운학의 상태뿐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호현의 물음에 허명진인이 고개를 저었다.
“이 안에서 사부님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태상노군뿐일 것이네.”
“스스로 나오셔야 한다는 말이군요.”
“그러하네.”
허명진인의 말에 호현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어르신…….’
광구를 바라보던 호현은 운학이 마지막에 봤던 물건들을 떠올렸다.
“허명진인께서 가지고 오신 물건들을 보시고 어르신께서 충격을 받으신 것 같던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부님께서 가지고 있으시던 물건들이네. 예전 기억을 찾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가지고 왔는데…… 아무래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었던 듯싶네.”
허명진인과 호현이 광구를 보고 있을 때 뒤에서 명인과 명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호현은 광구에서 시선을 떼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들어왔는지 청운진인과 청수진인이 그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청운진인과 청수진인을 뵙습니다.”
호현의 예에 고개를 끄덕인 청운진인이 그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호현 학사, 몸은 괜찮은가?”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무량수불……. 그것이 어찌 호현 학사의 잘못이겠는가. 생각해 보면 자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무당의 잘못인 것이지.”
“아닙니다.”
호현의 말에 청운진인이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허명진인을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사숙, 사조께서는 여전하십니까?”
“그렇다네.”
허명진인의 말에 청운진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광구에 눈길을 주었다가 호현을 바라보았다.
“호현 학사가 왔는데도 반응이 없으십니까?”
청운진인의 물음에 허명진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청운진인이 한숨을 쉬었다.
“호현 학사가 있으면 무언가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청운진인의 말에 호현은 자신이 잘못을 한 것 같은 생각에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 모습에 허명진인이 고개를 저었다.
“호현 학사의 잘못이 아니네.”
“사숙의 말대로 호현 학사의 잘못이 아니니 그리 신경 쓰지 마시게. 칠 일 동안이나 누워 있어 원기 손상이 심할 것이네. 호현 학사는 이만 물러가서 쉬시게나.”
청운진인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저었다.
“어르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사조께서 언제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네. 그리고 자네 몸도 생각을 해야겠지.”
“무슨 말씀을 하셔도 저는 이곳에서 어르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자리를 지키겠다는 호현의 고집에 청운진인이 그를 바라보다 허명진인 등을 향해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따라 나가려던 청수진인이 걸음을 멈추고는 호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호현 학사.”
“하명하십시오.”
“청진과 청기가 자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 달라 하였네.”
“두 분께서 저에게 왜……?”
호현의 말에 청수진인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호현 학사 덕에 그 둘이 무아에 들었는데, 자네는 몰랐나 보군?”
“몰랐습니다.”
“그래?”
“그럼 두 분은 괜찮으십니까?”
“자네 덕에 얻은 깨달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 폐관수련에 들었네.”
“폐관수련?”
“그런 것이 있네.”
호현을 보던 청수진인이 문득 밖을 바라보았다. 밖에서 전음이 온 모양이었다.
“알았다. 곧 갈 터이니 보채지 말거라.”
밖을 향해 중얼거린 청수진인이 한숨을 쉬었다.
“진무각이 이렇게 바쁜 곳인 줄 알았으면 맡지 말 것을 그랬군.”
“그게 무슨…….”
“그런 것이 있네. 그럼 몸 조리 잘 하시게나.”
청수진인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다가 호현은 광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인세(人世)의 것으로 보기 어려운 빛을 뿜어내고 있는 광구를 보고 있자니 운학에 대한 걱정이 커지는 호현이었다.
‘어르신, 무사하신 것입니까?’
제3-4장 태극음양경을 찾아라
호현은 삼 일 동안 장생각 대청에서 머물며 광구를 지키고 있었다. 밥도 광구 옆에서 먹고, 잠도 광구 옆에서 잤다.
하지만 삼 일이 지나고 또 삼 일이 지나도 광구에서 운학이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칠 일째 되는 날 아침, 호현은 허명진인에게 부탁해 운학의 물건들을 보고 있었다.
부러진 검, 피 묻은 도복, 그리고 한 권의 서책.
이 세 물건을 보던 호현이 부러진 검을 손에 들었다.
운명
‘운학 어르신의 사형이 사용하시던 검…….’
부러진 검을 보던 호현이 피 묻은 도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허명진인의 말에 의하면 도복과 부러진 검은 운학의 사형인 운명이 죽을 때 사용하던 물건이라고 했다.
그것을 운학이 수습해 평생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물건들이 사형의 죽음을 떠올리게 한 원인이 된 것인가?’
두 물건을 바라보던 호현이 옆에 놓여 있는 서책을 집어 들었다.
태극음양경
서책에 적혀 있는 제목을 본 호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건…… 운학 어르신이 자신의 보물이라고 보여주셨던 책?’
전에 보다 말았던 태극음양경을 떠올린 호현이 급히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태극과 음양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본 도의 사형인 운명진인은 늘 그것을 생각하셨다.
태극이란? 음양이란? 과연 그것은 우리 무당인들의 생각처럼 무공의 도리로만 여겨야 하는 것일까?
본 도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 무당에 있는 태극혜검과 태극권, 그리고 태극충뢰공들을 생각해보자.
태극과 음양의 도리에 따라 만들어진 무공이기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공의 도리에 따라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태극음양경에 적힌 글을 읽던 호현의 얼굴에 의문이 어렸다.
‘어르신이 보여준 책과 내용이 다른 듯한데?’
물론 호현이 태극음양경을 모두 다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서장에 적혀 있는 내용과 지금 보고 있는 책의 내용이 전혀 다른 것이다.
그 생각을 한 호현이 문득 광구를 바라보았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라고 하셨던 태극음양경, 그 말은 운학 어르신에게 그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말이다.’
잠시 생각을 하던 호현이 옆에서 정좌를 하고 있는 허명진인을 바라보았다.
“저는 선학전에 가봐야 할 듯합니다.”
호현의 말에 눈을 감고 있던 허명진인과 허학진인이 눈을 떴다.
“선학전에는 왜?”
“호현 학사가 없더라도 선학전 정리는 잘 되고 있으니, 굳이 자네가 가지 않아도 될 것이네.”
두 사람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저었다.
“가서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호현의 말에 두 사람이 서로를 보다가 허명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하도록 하시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호현이 장생각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그를 보던 허학진인이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자신의 뒤를 따라 나오는 허학진인의 모습에 호현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하명하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호현의 물음에 허학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현 학사, 무공을 익히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 이야기라면, 선학전 일이 끝이 나면 하기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맞네. 하지만…… 한 가지 사정이 바뀌었네. 자네는 이미 무공을 익히고 있네. 그것도 무림에 몇 되지 않는 최상승의 무학을 말이네.”
허학진인의 말에 호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가 익힌 것은 명인 도사에게 배운 태극호신공 하나뿐입니다.”
“맞네. 하지만…… 그 태극호신공은 사부님의 손에 의해 변했네.”
“변해요?”
“그렇다네. 아무래도 사부님께서 기존의 태극호신공에 사부님의 심득을 섞어 새로 창안하신 듯하네.”
허학진인의 설명에 호현이 그날 운학이 태극호신공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이야기해 주던 것을 떠올렸다.
“태극호신공요? 아닌데? 사형이 한 것은 태극호신공이 아니라 체조인데?”
“아닙니다. 무당 도사분께 직접 배운 것인데 어찌 태극호신공이 아니겠습니까?”
“태극호신공은 이게 태극호신공이에요.”
그 기억을 떠올린 호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허학진인은 태극호신공에 어르신이 자신의 심득을 섞었다고 했는데…… 그 날 어르신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 심득을 섞으신 것이 아니야. 그럼…….’
“무당파에 잘못 전수되고 있었다는 건가…….”
호현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허학진인이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가?”
“어르신께서 저에게 태극호신공에 대해 알려 주실 때를 돌이켜보면, 심득을 섞은 것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호현이 그 날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자 허학진인이 생각이 잠겼다.
무언가 심각한 생각을 하던 허학진인이 양팔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팔과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호현도 익히 알고 있는 태극호신공의 움직임이었다. 태극호신공을 펼치며 생각에 잠긴 듯한 허학진인의 모습에 호현은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선학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호현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한참을 태극호신공을 시전 하던 허학진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르겠구나. 사형하고 상의를 해보아야겠다.”
자신의 머리로는 태극호신공에 숨겨진 비밀을 풀 수 없다는 생각을 한 허학진인은 장생각 안으로 들어갔다.
*
*
*
선학전에 도착한 호현은 자신을 반기는 도사들과 학사들의 인사를 받고 있었다.
“호현 학사, 몸은 좀 괜찮으시오?”
“호현 도우가 깨어났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호현 학사…….”
“호현 도우…….”
사람들의 인사에 호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인사를 해대는 바람에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을 걱정했다는 것이 감사해 호현은 일일이 인사를 받았다.
“이제 몸은 다 나았습니다. 걱정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갈 노사께서는……?”
호현의 물음에 유경이 선학전을 바라보았다.
“제갈 공은 도경들을 정리하고 계실 것이네. 아! 호현 학사가 없는 동안 선학전 도경 정리가 거의 다 완료되었다네.”
“벌써요?”
호현의 말에 유경이 입을 떼기도 전, 학사들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현 학사가 선학전에 오지 않은 지가 거의 보름이 다 되어 가는데, 그 사이 우리가 놀고 있을 줄 알았습니까?”
익숙한 진만의 목소리에 호현이 웃으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학사들 뒤쪽에는 진만이 도경을 들고 서 있었다.
장생각에서 일이 생긴 후 진만은 처소를 다른 곳으로 배정 받았다.
“진만 학사, 오랜만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저는 누구와 다르게 무당파에 고용된 몸이라 이만 일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선학전 정리를 위해 무당파에 고용된 사람이 일은 하지 않고 무위도식을 하고 있다는 뜻으로, 진만이 호현을 비꼬아 말한 것이다.
그 말의 의미를 아는 호현은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진만의 말대로 호현이 잘못을 한 것이니 말이다.
진만은 도경을 들고 천막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 모습을 보던 유경이 웃으며 호현을 바라보았다.
“호현 학사, 진만 학사의 말을 너무 신경 쓰지 마시게나. 말은 저렇게 해도 진만 학사가 호현 학사 걱정을 많이 했다네.”
“진만 학사가 말입니까?”
“그렇다네. 도사들에게 호현 학사의 안부를 자주 묻고는 했지.”
유경의 말에 호현이 뜻밖이라는 듯 천막 쪽에 서 있는 진만을 바라보았다.
‘내 안부를 물었다고? 저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