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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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52화
“알고 있습니다.”
“응? 알고 있다?”
허명진인의 물음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이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운학이 태극호신공을 가르쳐주면서 그에게 직접 느끼게 해준 것이니 말이다.
“자연과 제가 하나가 되는 것을 태극호신공을 통해 느꼈습니다.”
호현의 말에 사람들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지금 호현이 한 말은, 자연과 소통을 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노자의 가르침이신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보면 인위(人爲)를 가하지 않은 자연처럼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갑자기 노자의 무위자연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호현의 모습에 청운진인이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가?”
청운진인의 물음에 호현이 미소를 지었다.
“인위를 가하지 않은 무위자연은 도와 겸손의 덕을 갖추는 삶으로써 만물을 널리 이롭게 하고, 모두가 싫어하는 가장 낮은 곳에 처하는 덕이 있음을 말합니다.”
갑자기 무위자연에 대해 설명을 하는 호현의 모습에 청운진인 등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리둥절한 청운진인 등과는 달리 명균과 명인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호현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은 호현이 이런 식으로 말을 했을 때 벌어졌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무아에 든 청진진인 등과 화산의 매화검룡 현오의 일을 말이다.
‘화산의 현오도 무아에 들었으니, 나에게도 기연이 올 수 있지.’
‘호현 학사와 가장 오래 있었던 사람은 나다.’
사람들의 그런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현은 자신이 하려던 말을 마저 이었다.
“무학에 대해 잘 모르는 저이기는 하지만 자연과 하나가 되는 무공이라면 상승의 절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승의 절학을 아무런 대가도 원하지 않고 양민들에게 전한다는 것은 정말 도의 본산인 무당이 아니라면 아무도 행하지 못할 대인대덕의 본보기일 것입니다. 천하에 무당의 이름이 높은 것은…… 아는 것을 실천하는 지행일치(知行一致)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정말 존경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여 보이는 호현의 모습을 사람들은 무안한 듯 바라보았다.
만약 태극호신공에 정말 그러한 공능이 있고, 무당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런 태극호신공을 익히고 있었다면, 무당은 온힘을 다해 그자를 잡아 죽였을 것이다.
아니면 무당의 사람으로 만들거나 말이다.
결코 호현이 말한 대인대덕의 표상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을 잘 알기에 호현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 중 한 명의 얼굴만은 굳어져 있었다.
호현이 한 말을 듣고 현실을 깨달은 사람, 바로 청운진인이었다.
‘그렇군. 호현 학사는 본문의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나온 절학을 익혔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살인멸구?’
살인멸구에 대한 생각을 하던 청운진인이 고개를 저었다. 비록 호현이 무당의 사람은 아니나 무당이 그에게 은혜를 입었으니, 은(恩)을 원(怨)으로 갚을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무당의 절학을 호현이 몰래 배운 것도 아니고 운학이 가르쳤으니, 그 책임을 묻기도 어려웠다.
원래대로라면 청운진인은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무당의 절학을 몰래 익혔다면 참하면 될 것이고, 그렇지 않고 운학과 같은 무당의 기인이 무공을 가르쳤다면 본산 제자나 속가 제자로 삼으면 그만이었다.
무당의 기인이 무공을 가르쳤다면 그만한 성품과 재능이 있거나, 아니면 무당과 그만한 인연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니 말이다.
허나, 지금 호현과 같은 경우는 전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후자로 하자니 호현이 무당의 제자가 되겠다고 할지도 의문이었다.
게다가 전에 호현은 허명진인의 제자가 되기를 거부하기도 했었다. 아니, 그 이전에 호현에게 무공을 가르친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운학이었다.
만약 호현이 무당에 입문을 하게 된다면…….
‘무량수불……. 스물도 채 되지 않은 호현 학사가 내 사숙이 되는 것인가?’
그에 생각이 미치자 청운진인은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호현을 보던 청운진인은 주위에 있던 장로들을 데리고 장생각을 나섰다.
호현의 일을 사제들과 상의한 후 처리 하려는 것이다.
장생각을 나서는 무당 장로들의 모습에 호현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어려 있었다.
‘어쩐지 걱정이 깃든 얼굴들인데…… 장생각이 부서져서 그런 것인가?’
장로들이 자신이 장생각을 부순 일에 대한 뒤처리로 고민을 한다고 생각한 호현의 얼굴에 미안함이 어렸다.
‘나 때문에 장생각이 부서진 것이니 어떻게 해서든 수리비를 마련해야겠구나.’
호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허명진인과 허학진인은 전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사부님의 진전을 이은 호현 학사 때문에 청운 사질이 고민이 많겠습니다. 졸지에 호현 학사를 사숙으로 모시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허학진인의 전음에 허명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전음을 보냈다.
-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이 나이에 저렇게 어린 사제를 들이게 생겼으니 말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호현 학사가 사부님을 사부로 모시지 않게 됐을 때이다.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부님의 진전을 이었으니 이미 사부님은 호현 학사에게도 스승이 되는 것 아닙니까?
- 아까 호현 학사가 한 말을 듣지 못했느냐? 호현 학사는 사부님께서 태극호신공의 자세만을 수정했다고 했지 않느냐.
-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잖습니까? 호현 학사가 익힌 것은 틀만 태극호신공이지, 전혀 다른 무학이잖습니까?
- 그렇게 따지면 명인 그 아이 역시 호현 학사에게는 사부가 되는 것이다.
허명진인의 전음에 허학진인은 입을 다물었다. 만약 호현이 운학과 명인을 사부로 모시게 된다면…… 배분이 꼬이게 되는 것이다.
둘이 전음을 나누고 있을 때 호현은 문득 허기를 느꼈다.
‘그러고 보니 먹을 것을 구하러 나온 것인데. 그나저나 어디 가서 먹을 것을 구한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디에서 음식을 구하나 걱정을 하던 호현은 허명진인을 슬쩍 바라보았다.
‘허명진인께 물어볼까?’
허학진인과 전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허명진인은 자신을 바라보는 호현의 시선을 느꼈다.
“호현 학사,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인가?”
“사실은, 점심 이후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습니다.”
“흠, 그럼 배가 많이 고프겠군.”
허명진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현의 배가 그 물음에 답을 했다.
꼬르륵!
그런 호현의 모습에 허명진인이 고개를 젓고는 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 호현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이들에게 요기할 것을 가져오라 했으니 조금만 기다리게나.”
“제가 가서 먹고 와도 되는데…….”
“아니네. 내 호현 학사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말게.”
허명진인이 한쪽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자 호현과 운학도 주위에 있는 의자에 가 앉았다.
잠시 호현을 보던 허명진인이 입을 열었다.
“호현 학사 자네는 우리 무당과 인연이 깊은 듯하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무당을 어떻게 생각하나?”
단지 무당이 싫으냐 좋으냐를 묻는 질문이 아님을 안 호현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의미이십니까?”
“자네가 본문에 들어와야겠네.”
“안 됩니다.”
호현이 자신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는 모습에 허명진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호현의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가 무당을 좋아하고 도교를 숭상하는 것은 사실이나…… 도사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도사?”
허명진인의 중얼거림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위정자의 길을 걸어야하는 학사입니다. 그리고 제가 도사가 된다고 한다면 제 스승이신 죽대 선생께서…….”
하얀 도복을 입고 스승인 죽대 선생 앞에 나타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호현의 몸이 순간 부르르 떨렸다.
“꿀꺽!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호현을 보던 허명진인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당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꼭 도사가 된다는 의미는 아니네. 일반인 신분으로 무당의 제자가 되는, 속가제자라는 형태가 있으니 말이네.”
“속가제자라면 호불위 국주와 같은 것입니까?”
“호불위 국주?”
“저를 무당에 소개해 준 방헌현의 무단표국의 국주이십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자네 말을 들으니 본문의 속가제자인 듯하군. 아무튼 그렇다네. 호불위 국주처럼 속가제자로 들어온다면 굳이 도사가 되지 않아도 무당의 제자가 될 수 있네.”
허명진인의 말에 호현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 호현은 도의 본산인 무당의 제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스승님의 허락 없이 다른 문하에 들 수는 없습니다.”
“그럼 죽대 선생의 허락이 있다면 무당의 제자가 될 생각이 있는 것인가?”
허명진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호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알겠네.”
‘그건 일단 이야기를 나눠보면 알게 되겠지. 아무리 죽대 선생이라도 나와 사제의 말을 거역할 정도로 담이 크지는 않을 게야.’
속으로 중얼거린 허명진인은 호현의 손을 잡고 있는 운학을 향해 동굴에서 가지고 온 물건들을 내밀었다.
“사부님이 사용하시던 물건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네? 제 물건이라고요?”
“그렇습니다.”
허명진인의 말에 운학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보자기와 길쭉한 물건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길쭉한 물건을 감싸고 있는 천을 풀어헤쳤다. 천이 풀어지고 그 안에 감싸여 있던 검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배에 소나무 모양이 새겨진 투박한 외형을 가진, 무당파 사람이라면 한 자루씩 가지고 있는 송문고검이었다.
운학
검자루 밑에는 운학의 이름이 작게 새겨져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검을 운학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운…… 학.”
운학의 부름에 검이 작은 울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
마치 그 동안 자신을 두고 어디 갔다가 이제야 왔냐는 듯이 말이다.
그 모습에 허명진인과 허학진인의 얼굴에 감탄이 어렸다.
그 둘 역시 검과 합일하는 신검합일의 경지는 예전에 넘어섰다.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들도 운학처럼 검명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검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검이 스스로 울게 만들 수는 없었다.
‘내공을 끌어 올린 것도 아니거늘 검이 스스로 검명을 울리다니……. 역시 사부님이시다.’
‘마음과 검이 하나로 연결된 것인가?’
우우우웅!
검명을 토하는 검을 바라보던 운학이 보자기를 풀었다. 보자기 안에는 낡은 백의 도복과 서책 한 권, 그리고 부러진 검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멍하니 백의 도복과 부러진 검을 보던 운학의 눈빛이 순간 변하기 시작했다.
“사, 사형?”
운학의 떨리는 목소리에 호현이 왜 그러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이, 이상해…….”
부들부들.
눈에 보일 정도로 몸을 떨던 운학은 보자기에 있는 부러진 검과 도복을 집었다.
운명
부러진 검자루에는 운명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운학의 손에 들린 도복이 펼쳐지자 붉은 선혈의 흔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멍하니 도복과 검을 바라보던 운학의 눈이 순간 붉어졌다.
“사, 사형? 우엑!”
순간 운학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어르신!”
“사부님!”
“사부님!”
그 모습에 호현과 허명진인 등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운학의 몸을 잡았다.
뻥!
운학의 몸을 잡는 것과 동시에 강력한 반탄력에 의해 세 사람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뒤로 튕겨져 나가던 허명진인이 급히 내기를 다스리며 천근추를 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