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10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0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10화
제110화. 배신(1)
비강은 벌써부터 하오문도들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머리 좋은 놈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군.’
잠시 후 담혁수도 적들의 기척을 느꼈으나, 별다른 내색 없이 들짐승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걸었다.
슈슉― 슉!
비강과 담혁수가 무성한 나무 그늘을 벗어났을 무렵, 검은 암기들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스아악―!
담혁수의 허리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따다당! 땅……!
비강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암기들을 전부 쳐 낸 담혁수는 노성을 토해 냈다.
“죽여라!”
그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비강을 호위하고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신형을 뽑아 올렸다.
‘우동문이라고 했던가. 하오문의 무인들이 확실하구나.’
비강은 적진 한가운데 있는 우동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따당! 땅!
비강은 자리에 멈춰 서 담혁수와 제자들의 무공을 지켜보았다.
휘황한 칼부림이 벌어지고, 하오문도들이 하나둘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크억!…… 끄으으아……!
하오문도들의 무공이 뛰어나기는 했지만, 담혁수와 제자들의 무공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담혁수는 우동문과 어울리고 있었는데 제법 팽팽하게 대치 중이었다.
“이런 육시랄! 네놈들의 정체가 뭐냐?”
우동문은 담혁수의 검을 튕겨 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건 알아서 뭐 하려고? 어차피 뒈질 놈이.”
평소에는 서글서글한 모습을 보이던 담혁수였지만, 막상 적과 마주하자 야차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까강! 캉……!
우동문과 담혁수의 검이 부딪치며 불꽃을 튀겼다.
콰직…… 꽈드드드……!
콰쾅! 쾅!
어른 몸통만 한 거목들이 두 사람의 싸움에 휘말려 아우성을 쳤다.
쓰러지는 거목들을 피해 잠시 거리를 벌렸던 우동문과 담혁수는 동시에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까깡! 깡……!
담혁수와 우동문의 일전을 지켜보던 비강이 문뜩 인상을 찌푸렸다.
그 순간, 허리에 있던 검이 날아올라 담혁수를 공격하려던 하오문도를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커억……!
검이 공중을 날아 하오문도의 목을 휘감고 돌았다.
투툭, 떼구르르……!
하오문도의 목이 떨어지고, 돌아온 검을 받아 쥔 비강은 사선으로 검을 쳐올렸다.
스아악!
희뿌연 광채는 십 장 너머까지 날아가 공간을 사선으로 갈라 버렸다.
끄어억! 끄아아악!
희뿌연 광채는 하오문도들의 몸과 근처에 있던 거목들을 관통했다.
꽈직, 꽈드드득…… 쿠쿵! 쿵!
하오문도들의 몸통이 사선으로 잘려 떨어지고 거목들도 요란한 굉음으로 내며 쓰러졌다.
“제기랄!”
우동문은 하오문도들이 순식간에 죽어 나가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는 백리혈이 아직까지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강이 순식간에 하오문도들을 베어 버리는 것을 보니, 자신의 짐작은 완전히 빗나갔음을 깨달았다.
까강!
담혁수와 검이 부딪친 순간, 우동문은 그 반동을 이용해 뒤로 훌쩍 날아올랐다.
그러나 담혁수는 우동문을 바로 따라잡으며 검을 앞으로 강하게 뻗었다.
쾅!
검에서 뻗어 나간 강렬한 기운은 우동문의 검을 때리고 상대의 손목까지 비틀어 놓았다.
우동문은 꺾인 손목을 억지로 휘돌려 뒤이어 날아오는 검을 쳐 내려 했으나.
스걱―!
그러나 손목은 그의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검을 잡은 손이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핏물이 튀었다.
으아아악!
우동문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며 비명을 질러 댔다.
담혁수는 이 기회에 적의 목숨을 완전히 끊어 버리려 했다.
이렇게 집요한 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으리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땅―!
우동문의 목을 갈라 가던 담혁수는 급히 몸을 비틀며 등 뒤로 검을 휘둘렀다.
검과 부딪친 단검 한 자루가 공중에서 팽그르르 회전하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
담혁수의 안색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새로 나타난 적들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적들 한가운데엔 여인도 있었는데, 그 여인은 자신이 모시고 있는 비강을 응시하고 있었다.
“누구냐?”
담혁수는 급히 숲을 빠져나가는 우동문의 뒷모습을 흘깃 바라보다가 적들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새로 등장한 적 중에 아주 잘생긴 청년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머리를 숙였다.
“미안하오. 하오문에 사적인 빚이 있어 목숨만은 살려 주고 싶었소.”
담혁수는 새로 등장한 적들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비강은 저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공손 소협, 오랜만이오.”
“오랜만에 뵙소, 연 대협.”
새로 등장한 적들의 정체는 바로 옥독조의 공손황과 순찰단주 약철빙이었다.
“당신도 내 목을 가지러 오셨소?”
약추완은 중천의 무인들을 이끌고 왔었다. 그리고 그들은 완전하게 적이 되어 비강의 목숨을 노렸다.
그러니 약철빙과 공손황도 적으로 보는 편이 사리에 맞았으나, 공손황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와 달랐다.
“아니오. 그만한 실력도 없고.”
공손황의 겸양에 비강은 설핏 미소를 보였다.
그 미소를 접한 공손황도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강의 시선은 공손황에게서 약철빙으로 옮겨 갔다.
그녀는 조용히 비강의 얼굴만 응시하고 있었다.
“저를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약철빙과 마주하고 있는 비강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도 묻어나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 중이지?”
이윽고, 약철빙의 입이 열렸다.
목이라도 잠겼는지 흘러나온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흐릿했다.
“저도 모릅니다.”
“그…… 래?”
약철빙은 비강을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는 무인들을 둘러보았다.
아마도 저들은 비강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비강에 대해서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과연 저들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약철빙은 공손황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공손황은 옥돈조를 이끌고 숲으로 사라졌다.
이에 비강도 담혁수에게 눈짓을 보냈다.
담혁수 또한 그 눈짓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는지 제자들을 이끌고 반대편 숲으로 사라졌다.
자리에 오직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약철빙은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던 말을 꺼냈다.
“연 부관을 계속 찾아다녔어.”
비강은 대답 대신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언젠가…… 언젠가…… 다시 함께할 수 있을까?”
그녀가 진정으로 묻고 싶은 말이었다.
비강은 고개를 저었다.
“왜? 왜, 안 되는 거지?”
“우리는 이제 적이지 않습니까.”
약철빙의 눈망울이 잘게 떨렸다.
“내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아주 많은 것 같아.”
“아마도 그럴 겁니다.”
비강의 솔직한 대답이었다.
“내가 물어도 말해 주지 않겠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래.”
그녀는 잔잔한 비강의 눈을 마주하다가 몸을 돌렸다.
“앞으로 조심해. 중천의 추격은 계속될 거니까.”
“알고 있습니다.”
비강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참으로 많았던 약철빙이었다.
그런데 흔들림 없는 저 눈과 마주하고 있자니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저랬어. 언제나 저런 눈을 하고 있었지.’
약철빙은 나무들이 우거진 숲 안으로 사라져 갔다.
그녀가 사라지고, 잠시 후 담혁수가 제자들을 이끌고 다가왔다.
“혹시 저들은 중천의 순찰단주와 순찰조가 아닌지요?”
“맞소. 순찰단주 약철빙과 옥돈조의 공손황이오.”
담혁수는 무거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우리 행적이 저들에게 발각되었으니 분명 앞쪽에 다른 무인들을 끌어들여 매복을 할 겁니다.”
“그럴 사람들은 아니오.”
비강의 장담에 조금 마음이 놓이기는 했지만, 언제나 만약이라는 것을 대비해야 했다.
“교대로 정찰을 나갔다 와.”
담혁수의 말을 알아들은 제자들은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앞쪽으로 정찰을 나갔다.
뒤를 이어 담혁수와 남은 제자들은 비강을 호위하며 산짐승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걸었다.
비강의 옆에서 길을 걷던 담혁수가 흘깃흘깃 눈치를 살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으시오. 대답해 줄 테니.”
비강이 미소를 짓자 담혁수는 민망해하며 머리를 긁었다.
하하…….
“예. 사실은 그 순찰단주라는 여자와 주공 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주공을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 보여서…….”
“남녀 간의 일을 묻는 것이라면 없소. 불가능하기도 하고.”
“불가능하다니요?”
하아…….
비강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그 여자는…… 원래대로라면 내가 이모라 불러야 할 여자였소.”
* * *
손목을 잃고 도망쳐 나온 우동문은 한 시진 만에 하오문의 다른 문도들을 만났다.
“백리혈이 산짐승들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는 보고를 급전으로 올려라.”
“예.”
일부 하오문도들은 전서를 보내기 위해 급히 뛰어갔고, 남은 하오문도들은 우동문의 손목을 치료했다.
“용한 의원에게 보여야 합니다.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살이 썩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게 급한 것이 아니다! 중천의 부천주는 어디에 있느냐?”
“경공으로 뒤쪽 반 시진 거리에 있습니다.”
“알겠다.”
우동문은 상처도 보지 않고 약추완을 찾아 나섰다.
사방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들으며 초조해하고 있던 약추완은 손목이 잘린 우동문이 달려오자 놀라 물었다.
“백리혈을 발견한 것이냐?”
“예. 하오문도들이 전멸하고 저만 살아나왔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약추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물었다.
“여기서 서쪽으로 한 시진 반 정도의 거리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것입니다. 그자들은 산짐승의 이동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뭐 하느냐? 어서 움직이지 않고! 주공께 전서부터 보내고 백리혈을 추격하라!”
양옆에 붙어 있던 악추산과 벽사군에게 명령을 내린 약추완은 손목을 부여잡고 있는 우동문을 살폈다.
손목이 잘렸으니 무인으로서는 거의 끝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왼손으로 검을 잡을 수는 있지만 예전의 무공을 회복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하오문도는 눈치가 빠르고 영리하다.
곁에 두고 부린다면 큰일을 할 것이다.
“백리혈을 발견한 곳으로 앞장서게.”
“예.”
우동문은 두말 않고 안내를 맡았다.
약추완은 약가의 가인들과 중천의 무인들을 이끌고 우동문의 뒤를 따랐다.
“우동문이라고 했나?”
“예.”
“혹시 내 밑에 있을 생각은 없나? 중천의 무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차후 중요한 자리에 앉게 해 주지.”
앞서 급하게 경공으로 달리던 우동문의 몸이 움찔 떨렸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다.
“당장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하루 정도는 시간을 주지.”
“예. 감사합니다.”
급하게 걸음을 옮기는 우동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손목이 멀쩡했다면 거절했겠으나, 지금은 충분히 욕심이 나는 제의였다.
자신의 손목이 잘렸으니 하오문이 백리혈의 목을 얻어 양지로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지금이야 백리혈을 잡기 위해 하오문의 활동을 인정해 주고 있지만, 이번 일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멸시하고 업신여길 것이다.
‘내가 중천의 요직을 차지하게 되면 연 누이를 얻을 수 있을까? 그래. 연 누이나 하오문을 위해서라도 내가 중천에 들어가는 것이 나을지도 몰라. 요직을 차지하게 되면 하오문을 도울 수 있으니 말이야.’
* * *
두 시진가량 경공으로 달리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공.”
“그렇게 합시다.”
비강에게 허락을 구한 담혁수는 적당한 자리를 마련했다.
쫓기고 있는 와중이라 불조차 피우지 못한 그들은 간단하게 건포를 꺼내 배를 채웠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평요가 나옵니다. 우리들의 본거지는 평요의 태청산에 있습니다.”
“태청산은 어떤 곳이오?”
“아주 깊고 험한 곳입니다. 약초꾼들조차 들어오지 않을 정도이니까요. 놈들도 그곳까지는 추격하지 못할 겁니다.”
“중천을 우습게 보지 마시오. 어쩌면 이번 일로 인해 본거지를 옮겨야 할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