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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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05화
제105화. 광야에서(4)
―백리혈의 수급을 가져오는 자에게는 은자 십만 냥을 지급한다더라.
강호 무림에 급속하게 퍼진 소문이었다.
그 소문으로 인해 강호 무림은 벌집을 쑤셔 놓은 듯 들썩거렸다.
허리에 녹슨 칼 한 자루라도 차고 있는 무인들은 부와 명성을 위해 백리혈을 잡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들 또한 자신들의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은자 십만 냥의 유혹은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고 있었다.
혹시 아는가.
백리혈이 크게 부상을 당하기라도 했다면 자신들에게도 기회가 돌아올지 말이다.
강호를 떠도는 삼류 무인들과 낭인들은 물론이고, 은운곡의 낭인들까지 백리혈을 잡기 위해 거처를 박차고 나섰다.
백리혈에게 달려드는 이들은 강호의 무인들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거처하는 곳을 신고하면 따로 은자 일백 냥의 포상금이 쥐어지기에 일반 양민들도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하지만 백리혈은 쉽게 그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
* * *
“계십니까?”
산속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마을을 찾아낸 비강은 가까운 초가집 앞에서 방문을 알렸다.
잠시 후 방 안에 불이 켜지고 중년 부부가 밖으로 나왔다.
“뉘, 신지요?”
중년 부부는 검을 차고 있는 비강을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산에서 길을 잃어 그러는데 밥을 얻어먹을 수 있겠습니까? 사례는 충분히 해 드리겠습니다.”
비강은 전낭에서 은자 한 냥을 꺼내 건넸다.
“찬이 없는 찬밥밖에 없는데 괜찮겠습니까?”
중년 사내는 비강의 겸손한 모습에 조금 안심하며 은자를 받아 들었다.
“괜찮습니다.”
“여보, 뭐 해? 얼른 밥을 차려와야지. 거기 앉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사내는 부인에게 밥을 차려오게 시키고는 비강에게는 마당에 있는 평상을 권했다.
“감사합니다.”
비강이 평상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려니 사내까지 부엌으로 들어가 부인을 거들었다.
그러나 비강은 중년 부부가 준비하던 찬밥조차 얻어먹지 못할 신세에 놓였다.
산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작은 마을에도 무인들의 기척이 느껴진 것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가벼운 발소리를 들은 비강은 바로 몸을 일으켰다.
마당을 나와 마을로 이어진 길을 살펴보니 다섯 명의 무인이 걸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비강은 그들을 향해 마주 걸었다.
곧 마을로 들어서던 이들도 걸음을 멈추고 비강을 살폈다.
“백리…… 혈?”
챙!
다섯 명 중 누군가의 입에서 비강의 별호가 흘러나온 그 순간, 그들은 일제히 병기를 빼 들었다.
스악…….
투툭, 툭. 털썩…… 털썩…….
그들 사이로 한 줄기 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다섯 개의 머리는 차례로 땅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순식간에 다섯 명의 적을 처리한 비강은 그들의 시신을 숲으로 치우려 했다.
그러나 곧 또다시 느껴지는 기척에 긴 한숨만 토해 냈다.
후우!
피…… 융!
긴 한숨을 토하기 무섭게 산 중턱에서부터 밤하늘로 밝은 빛을 발하는 불화살이 날아올랐다.
비강은 불화살이 날아오른 곳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곧 수많은 적이 이 마을에 들이닥칠 것이다.
* * *
우우……!
늑대들이 울어 대며 동료를 끌어모았다.
멀지 않은 곳에 사냥감이라도 발견한 모양이었다.
여름밤을 밝히는 반딧불처럼 십여 쌍의 푸른 안광이 커다란 바위를 포위하며 몰려들었다.
크르르…….
우두머리 늑대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을 알리는 흉포한 울음을 토해 냈다.
크르…… 크르르…….
그러나 곧 그 소리는 공포에 가까운 울음으로 변해 갔다.
늑대들의 푸른 안광보다도 더 짙은 안광이 바위틈에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깨깽……!
늑대들이 겁에 질려 줄행랑을 치자 푸른 안광도 서서히 잠겨 들었다.
“저곳이다!”
어둠을 흔드는 외침 소리에 잠겨 들던 푸른 안광이 밝은 빛을 뿜어내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스으으…….
커다란 바위들이 들어찬 산자락을 따라 바람 한 줄기가 산 정상을 향해 흘러 올라갔다.
순식간에 산 정상에 올라선 비강은 산을 포위하며 올라오는 무수한 기척들을 둘러보았다.
적들의 추격은 끈질김을 넘어 질리기까지 했다.
‘나 하나를 잡기 위해 무림 전체를 동원한 것인가. 도대체 왜?’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무인은 물론이고, 중천과 하오문의 무인까지 추격에 동원되었다.
중천에서 나온 무인 중에는 약가와 악가의 가인이 특히 많았다.
때문에 호북을 넘어 하남에 도착할 때까지 수없이 많은 추격자를 따돌려야 했다.
하지만 언제나 더 많은 추격자들이 앞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적들의 기척을 느끼며 사방을 둘러보던 비강은 빈틈을 찾아내고는 바로 신형을 날렸다.
스으으…….
바람이 흐르듯, 높게 솟은 바위를 타고 올라간 비강의 신형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팡!
공중으로 날아오른 비강의 신형은 쏟아지는 별빛들을 가리며 산 아래로 사라져 갔다.
“포위망이 뚫렸다!”
비강이 내려간 방향에서 횃불이 불타오르고, 포위망을 좁히며 올라가던 자들이 일제히 그쪽으로 몰려들었다.
“젠장!”
가인들과 함께 포위망을 형성해 가던 약가의 장로는 비강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귀신같은 자입니다. 도저히 저자를 잡을 방도가 없습니다.”
“무슨 소리. 반드시 저놈을 잡아야 한다. 신향에 전서를 띄워라!”
장로의 영을 받은 가인들이 전서를 띄우기 위해 산을 뛰어 내려가고,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무인들도 신향에 전서를 보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약가의 장로 약귀철은 뒤쪽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하오문의 간부를 불러들였다.
“놈의 목적지를 알아냈느냐?”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백리혈이 산서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쓸모없는 놈들.”
참기 힘든 굴욕스런 말을 들었지만 하오문의 간부는 감히 약가의 장로에게 맞서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수그렸다.
“우리…… 하오문에서 일만 냥의 현상금을 걸었으니 신향에서는 반드시 놈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놈을 잡기 위해 하오문의 모든 힘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흥!
약귀철은 코웃음을 쳤다.
지금까지 하오문의 도움이 없었다면 백리혈의 추격은 감조차 잡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 하오문의 무리를 하찮게 여기고 있던 약귀철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서 출발하라. 신향에서는 반드시 놈을 잡아야 한다!”
* * *
어스름한 새벽의 어둠 속을 이동해 신향에 도착한 비강은 마을 입구에서 발을 멈췄다.
‘여기도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군.’
적들은 마을 곳곳에 숨어 자신이 들어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가지를 못하니 건량조차 구입할 수 없었다.
건량은 주로 관도 옆이나 큰 마을에 있는 객잔과 푸줏간에서 구할 수 있었다.
비강은 새삼 등에 지고 있는 행랑의 무게를 느끼며 쓴웃음을 지었다.
행랑 속에 있던 건량은 이미 바닥이 난 상태였다.
‘아군은 하나 없고, 전부 적만 보이는구나.’
비강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마을을 떠났다.
건량을 구할 수 없으니 산에서 사냥해 주린 배를 채우겠다는 심산이었다.
사냥하려면 깊은 산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눈에 보이는 산들은 전부 높이도 높지 않고 깊어 보이지도 않았다.
“백리혈이다!”
마을 쪽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외침 소리는 비강의 움직임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휘익…….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급히 경공을 발휘하던 비강은 절벽과 절벽 사이에 난 소로를 가로막고 있는 일단의 무리들과 마주했다.
비록 거리가 멀긴 했지만 길을 막고 있는 자의 얼굴은 충분히 알아보았다.
“우동문.”
길을 막고 있는 자들은 우동문과 하오문도들이었다.
비강은 우동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어떻게 알았나?”
비강의 질문에 우동문은 짙은 살기를 흘렸다.
“우리 하오문은 네놈의 수급을 취하는 일에 사활을 걸었다.”
시천세가 개파를 조건으로 걸었으니, 하오문이 사활까지 걸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너는 앞으로도 술 한 잔, 음식 한 그릇조차 먹을 수 없다. 또한 어느 마을에 숨어들어도 우리 하오문의 눈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동문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을 겪으며 이곳까지 왔으니.
타탁…… 타타탁…….
우동문이 말을 하는 와중에 그들의 뒤로 새로운 무리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숫자는 대략 일백 명이 넘었다.
뿐만 아니라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추격자들의 기척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끼릭…….
비강은 허리와 등에 있는 검과 봉을 뽑아 맞춰 돌렸다.
이렇게 된 이상 저들을 모두 베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물러나라!”
그러나 우동문은 무슨 생각인지 공격 명령을 내리는 대신 뒷걸음을 치며 데리고 있는 무리들을 양옆으로 흩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 의아해하던 비강은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자들을 발견하고는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하……!
이번에는 정말 된통 걸린 모양이다.
저 멀리서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자들은 익히 낯이 익은 자들이었다.
약추완과 악추산, 그리고 벽사군까지.
그들이 이끌고 있는 무인들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오백 명은 넘어 보였다.
크크크크…….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비강은 숨을 참기 힘들 정도였다.
이쪽으로 달려오던 약추완이 발을 멈추자, 뒤를 따르던 자들이 넓게 거리를 벌려 앞을 막았다.
약추완까지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면 이 인근은 이미 적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을 것이다.
“결국 하오문이 해냈군.”
약추완의 말에 우동문은 허리를 넙죽 숙였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우리 하오문은 앞으로도 목숨을 바쳐 중천을 따르겠습니다.”
“그래야지.”
우동문을 격려한 약추완은 비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금까지 잘도 버텼구나?”
비강은 대답 대신 뒤쪽을 흘깃 살폈다.
신경을 자극하는 미세한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곳은 싸움을 벌이기에 좋지 않아. 빠져나갈 곳이 없어.’
스으으…….
연기가 흩어지듯 비강의 신형은 미세한 바람을 남기고 사라졌다.
약추완은 순간적으로 따라잡지 못한 비강의 신법에 크게 놀랐으나 곧 마음을 다스렸다.
‘어차피 너는 이곳에서 죽는다.’
“추격하라!”
* * *
한참을 달리던 비강의 앞에 짙은 안개가 깔린 들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르르…… 졸졸…….
그리고 그 들판 가장자리를 가로질러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비강은 개울에 머리를 숙이고 흐르는 물을 들이켰다.
목을 축이고 고개를 든 비강은 짙은 안개가 깔린 들판을 바라보았다.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면 수많은 적들을 맞아 싸우기에 이만한 싸움터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을 살펴보니 곧 해가 뜨고 안개가 걷힐 것 같았다.
“싸움을 벌이기에 제법 괜찮은 장소를 찾았어.”
비강은 짙은 안개가 깔린 들판 한가운데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안개 너머로 적들의 흐릿한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적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사방을 조여 오는 적들의 기척은 점점 더 많아지고, 해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던 짙은 안개는 힘을 잃고 빠르게 사라져 갔다.
일 장, 이 장, 삼 장, 사 장…… 십 장…… 백 장…….
안개가 사라지며 백 장 너머가 비강의 눈 안으로 들어왔다.
넓디넓은 벌판 위에 수없이 많은 적들이 서 있었다.
입고 있는 무복은 전부 제각각이었지만, 대부분은 값비싼 재질이었다.
적들은 바로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후예들이었다.
비강은 좌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좌측에도 수많은 적들이 비강을 응시하며 서 있었다.
언젠가 한 번 봤던 인물들이 섞여 있었다.
“은운곡에서도 나왔군.”
좌측에 서 있는 자 대부분은 강호의 낭인들이었다.
비강의 시선이 우측으로 돌려졌다.
그곳에도 수많은 적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행색은 좌측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들은 강호에서 흉명을 떨치고 있는 산적들과, 수적, 그리고 강도들이었다.
“겨우 도망친 곳이 여기로구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비강은 다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