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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103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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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03화

제103화. 광야에서(2)

 

 

 

산길을 통해 말을 몰던 비강의 눈앞에 큰 마을이 나타났다.

늘어선 집들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다.

말을 타고 마을에 들어선 비강은 곧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렸다.

전에 몇 번 거쳐 갔던 이양이었다.

먼저 포목점에 들러 여벌의 새하얀 비단 무복을 구입한 비강은 마을에서 가장 커 보이는 객잔으로 들어갔다.

간단한 요깃거리를 시켜 배를 채우고 일어서던 비강의 앞으로 점소이가 다가와 남몰래 뭔가를 건넸다.

비강은 내심 놀랐으나 태연하게 그것을 받아 밖으로 나왔다.

손에 쥐어진 것은 작은 종잇조각이었다.

‘마을 서쪽 끝에 있는 객잔에서 기다리겠어요.’

종이에는 눈에 익은 글씨체가 쓰여 있었다.

‘정말 귀신같은 여자로군.’

비강은 종이에 쓰여 있는 대로 말에 올라 서쪽으로 향했다.

 

한참을 말을 몰아가 보니 과연 작고 허름한 객잔 하나가 나타났다.

말에서 내린 비강은 바로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중년쯤 되어 보이는 객잔 주인은 비강을 뒤쪽에 있는 방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자리에 앉아 있다가 반겨 맞았다.

“연 소협.”

“장 소저, 오랜만이오. 어떻게 나를 찾으셨소?”

“저는 연 소협이 어떤 모습으로 변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어요. 혹시나 몰라 이 층 다루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연 소협이 말을 타고 거리로 들어서는 모습을 발견했지요. 자, 어서 앉으세요.”

비강은 자리에 앉으면서 질문을 이어 나갔다.

“며칠이나 이 마을에 있었소?”

“이틀이요.”

이틀간 이 마을에 있었다는 것은 이틀 동안 다루에 앉아 비강이 마을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는 뜻이었다.

“허, 어떻게 내가 이 마을에 나타나리라 확신한 거요?”

“확신은 없었어요. 하지만 북쪽으로 움직인다면 이 마을을 거쳐 갈 거란 짐작은 했어요.”

장경주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를 걷어 올렸다.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걱정으로 수심이 가득했다.

“내게 은자 십만 냥의 현상금이 붙었다는 소문은 들어 알고 있소.”

“그 정도가 아니에요, 연 소협. 새로운 중천의 주인은 만약 연 소협이 있는 곳을 알아내거나 제거하게 된다면 공식적으로 하오문의 개파를 허락한다고까지 했어요. 때문에 하오문주는 하오문의 모든 힘을 동원해 연 소협을 제거하려 들 거예요.”

“잘됐군. 하오문과 장 소저가 바라 마지않은 일이었잖소.”

“연 소협…….”

장경주는 자신의 진정을 몰라주는 비강의 모습이 속상했다.

“어찌 되었든 고맙소. 그런데 장 소저는 괜찮은 거요?”

근심으로 가득했던 장경주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네. 저는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연 소협은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지금까지 사패 몰래 숨겨 놓은 하오문의 힘은 무시할 것이 못 되어요. 더군다나 중천의 고수들도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까지 들어왔어요.”

하아…….

비강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중천이 움직였다면 구파일방과 육대세가도 움직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중천의 영역에서 안전한 곳은 없었다.

“연 소협, 남선으로 가세요. 그나마 그곳이 안전해요. 은자 십만 냥은 강호의 모든 사람이 욕심낼 만한 엄청난 금액이에요.”

“조심하리다.”

“제가 직접 연 소협을 숨겨 드리고 싶지만 저도 지금 하오문에 감시를 받고 있는 형편이에요.”

장경주가 막 이 말을 끝마쳤을 때 객잔 주인이 황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밖에 수상한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알겠어요.”

태연하게 말을 받은 장경주는 곧 드러내고 있던 얼굴을 면사로 가렸다.

“연 소협, 부디 조심하세요.”

조금 더 비강과 함께 있고 싶었다.

지금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그러나 마음만 붙잡고 싶을 뿐 비강을 위해서 보내 주어야 한다.

“고맙소. 내가 먼저 나가리다.”

자리에서 일어난 비강은 방을 나와 객잔을 나섰다.

과연 객잔 주인의 말대로 수상한 자들이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상인이나 떠돌이 낭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비강의 눈은 속이지 못했다.

비강이 말에 올라 떠나자 상인의 모습을 한 자는 바로 객잔으로 들어가고, 낭인으로 변장한 자는 비강이 사라진 방향으로 움직였다.

장경주 역시 객잔을 나서려 하였으나.

“문주님께서 지부장님을 데려오라 하셨습니다.”

상인으로 변장한 자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앞장서요.”

“예.”

 

* * *

 

이창을 나온 비강은 다시 산속으로 이어진 소로를 택해 말을 몰았다.

소로를 통해 말을 몰아가던 비강은 문득 말을 멈춰 세웠다.

“그만 돌아가라. 참는 것에도 한도가 있다.”

엄중한 비강의 경고에 몰래 뒤를 밟던 낭인이 숲에서 뛰어나왔다.

“당신의 정체가 백리혈이 맞소?”

맹랑하게도 낭인은 비강의 정체까지 물었다.

“맞다면 어찌할 텐가?”

“다음에 또 보게 될 거요. 그때 나는 홀로 오지 않을…….”

쉬악…….

공중을 격해 빛과 같은 빠르기로 날아간 검신은 낭인의 목을 베어 내고 돌아왔다.

후둑, 툭.

낭인의 목이 떨어지고 몸통은 뒤로 넘어졌다.

장경주를 생각해 굳이 하오문도의 목숨까지 빼앗고 싶지는 않았다.

‘주둥이만 닫고 있었다면 살아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을.’

낭인을 베어 버린 비강은 소로에서 나와 관도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북쪽이 아닌 동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하오문도의 시신을 이용해 저들의 추격에 최대한 혼란을 주기 위함이었다.

 

* * *

 

갈대처럼 빼빼 마른 사내가 무림맹을 찾아왔다.

그의 이름은 석장.

오진권도 익히 알고 있는 사내였다.

몇 달 전,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후예들을 홀로 몰살해 버린 사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원수였으나 오진권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셨소? 석 대협.”

“곡주. 아니, 주공의 전언이다. 주공께서는 백리혈 연비강의 죽음을 원하신다. 만약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그자를 찾아 없앤다면 후에 서패의 영역을 온전히 너희들에게 양보할 것이라 하셨다.”

“정말이오?”

“그렇다. 그러니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가지고 있는 힘을 전부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하오문이 백리혈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는 들어 알고 있었다.

오진권도 여유만 있다면 고수들을 내보내 백리혈의 추적에 나섰을 것이다.

삼패의 일이 더 급하여 백리혈에 관한 일은 뒤로 미뤄 두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시천세가 그자의 죽음을 원하고 있었다.

그것도 서패의 영역을 약속할 정도로 아주 간절하게.

‘어차피 죽여야 할 놈. 기꺼이 명령을 받들어 주지.’

“알겠소. 반드시 그자의 목을 베어 바칠 것이라 전해 주시오.”

“서둘러야 할 것이다. 너희들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니. 그자는 지금 북쪽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을 지나쳐가게 될 것이다.”

전언을 끝낸 석장은 이제 더 이상 볼일이 없는지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 했다.

“주공께서 백리혈을 급하게 처리하려는 이유가 뭐요?”

오진권이 급히 등 뒤에 대고 물었으나, 석장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휘이이…….

“찢어 죽일 새끼.”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올 정도로 석장은 쳐 죽이고 싶은 놈이었다.

크크크…….

언제 살기를 드러냈냐는 듯, 갑자기 오진권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서패. 서패란 말이지. 이거 잘하면…….’

오진권의 머릿속에는 며칠 전부터 진행하기 시작한 계책을 떠올랐다.

아주 적절한 때에 기막힌 기회가 찾아왔다.

“당백요, 그년의 반응이 궁금하군.”

 

* * *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서패의 주인 당백요는 수염이 허연 늙은 노인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사패를 피해 숨어 다니던 삶이 순탄할 리 있겠느냐.”

“고생이 많으셨군요. 장로님.”

“하여 남은 생은 본가에서 보내고 싶구나.”

당백요는 가타부타 말없이 늙은 노인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 지옥 같은 당가에서 온정이라는 것을 눈앞의 노인에게서 단 한 번 받았었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있을 때 주먹밥 한 덩이를 건넸던 젊디젊은 청년은 어느새 죽음을 앞둔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 말씀은 들어드리지 못해 죄송하군요.”

“어쩔 수 없지. 차는 잘 마셨다.”

달깍.

찻잔을 내려놓은 노인은 품에서 봉서 하나를 꺼냈다.

“맹주의 지엄한 영을 받아 온 몸이니 답을 받아 가야 하지 않겠느냐.”

맹주의 지엄한 명령.

당백요는 무림맹을 대단찮게 여기고 있었다.

젊은 맹주와 부맹주가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아직 강호의 무서움을 모르는 애송이들에 불과했다.

만약 맹주의 심부름을 온 자가 눈앞의 노인이 아니었다면 만나 주기는커녕 바로 목을 베라 일렀을 것이다.

촤륵…….

서신을 소리 나게 펼친 당백요의 입가에 서늘한 조소가 가득했다.

“무림맹의 앞날은 앞으로도 어둡겠군요. 이런 자가 맹주의 자리에 앉아 있으니.”

“우리가 힘이 약하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 나는 오히려 살고자 발버둥을 치는 그 모습이 대견해 보였다.”

“그것조차도 욕심이겠지요.”

노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당백요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다.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미래를 위해 무림맹의 요직에 되도록 젊은 고수들을 앉게 했으나, 젊은 만큼 혈기가 넘쳐 일을 서둘렀다.

“이제 그만 답을 다오.”

노인의 말에 당백요는 서신을 접어 봉투에 넣었다.

“이제까지 제가 한 말이 답이 되겠지요.”

“그렇구나. 그대로 전하마.”

“안녕히 가십시오.”

축객령을 내린 당백요는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 앉았다.

아래쪽에 앉아 있던 늙은 노인은 그런 당백요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사천당가의 장로, 당기전이 패주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마친 노인은 방을 나갔다.

‘전진의 근거를 포기한다? 정말 웃기는 놈이로군.’

서늘한 조소가 가득했던 당백요의 얼굴에 미약한 살기 한 줄기가 어른거렸다.

“이제 그만하는 것이 어떠냐? 백산. 나도 더 이상 참기 어렵구나.”

스르륵…….

당백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용히 문이 열렸다.

그리고 열린 문으로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들어섰다.

“엿듣고 싶어서 엿들은 것이 아닙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안으로 들어선 백산은 당백요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무슨 일로 며칠 만에 또 찾아왔느냐.”

“주공의 영을 전하러 왔습니다. 주공께서는 백리혈의 목을 원하고 계십니다.”

“전언은 잘 전해 들었다.”

“예. 그럼 저는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백산이 물러가고 난 후에도 당백요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사형과 백리혈이라는 애송이 사이에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어. 분명히.’

되도록 사형과의 싸움은 피하고 싶었다.

사형의 야심은 알고 있지만, 눈앞에 다가올 때까지는 검을 뽑고 싶지 않았다.

“나도 사형에 못지않은 야망이 있어요.”

 

* * *

 

으음…….

도운패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자 북궁도는 넙죽 무릎을 꿇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사부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그 소리는 지금까지 일백 번 하고도 열두 번을 더한 것 같은데.”

“믿어 주십시오, 사부님. 이번에는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늦었습니다.”

스르…….

도운패는 허리에 차고 있던 도를 천천히 뽑아 들었다.

“비강이를 만나 신나게 놀았다는 소리는 벌써 들어 알고 있다.”

“신나게 논 것이 아니라 도적들을 토벌하느라…….”

“잔말 말고 도를 뽑아라.”

“그냥 패십시오, 사부님.”

흥!

“잘 생각했다.”

콧방귀를 뀐 도운패는 무릎을 꿇고 있는 북궁도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바로 그 순간 무릎을 꿇고 있던 북궁도의 눈에 기광이 스쳤다.

‘이번에야말로.’

스악…….

왼손에 들려 있던 도집에서 빛이 번뜩이는 순간 북궁도는 도운패의 허리를 베며 지나가고 있었다.

“제길.”

그러나 북궁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낭패와 실망의 탄식이었다.

퍽! 컥!

수십 줄기의 광채가 쏟아지고. 그중 하나가 북궁도의 뺨을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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