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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101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0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01화

제101화. 사부와 무신

 

 

 

종예와 백산이 영을 받아 나갔다.

벽 총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방을 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때, 시천세의 말이 떨어졌다.

“벽 총관이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나 보군.”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벽 총관은 바로 몸을 돌려 머리를 조아렸다.

“주공께서 옳게 보셨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쌓아 두고 있으면 병이 생기는 법이야. 말해 봐.”

“예. 그럼 감히 여쭙겠습니다. 주공께서는 세상을 아우를 만한 힘과 지략을 가지고 계십니다. 동천과 서패는 주공을 두려워하고 있어, 이제 강호는 거의 대부분 주공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곳이라고는 남선 한 곳밖에 없는데 어찌하여 두고 보고만 계시는지요?”

“겉보기에는 그렇지.”

“예? 무슨 말씀이신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인 시천세는 벽 총관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벽 총관은 나의 사제들과 내가 일전을 겨루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 같나?”

총관 벽하원은 얼른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검신 풍천양과의 일전에서 승리해 천하제일의 자리에 오른 시천세라지만, 삼패의 주인들 역시 지금까지 무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삼천존이었다.

시천세는 총관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스스로 대답을 내놓았다.

“강호에서 나를 쓰러뜨릴 만한 자들은 오직 내 사제들밖에 없지. 내가 황곡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을 때, 사제 하나가 찾아와 이런 말을 하더군. ‘사형께서 강호에 출도하신다면 강호 무림은 사형의 것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이야.”

총관 벽하원은 시천세의 이야기 속에 숨은 뜻을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 곧 뒤통수가 쩌릿한 충격을 받았다.

벽 총관의 안색에 핏기가 사라지는 것을 본 시천세는 크게 웃었다.

껄껄껄…….

“내 사제는 예전부터 음흉했었지. 어지간해서는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어. 나는 사제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고 있는 중이야.”

“그분이 누구십니까?”

“총관이 한번 찾아봐.”

 

* * *

 

고요함을 넘어 적막했다.

불 꺼진 전각 안에는 오직 시천세 혼자만 남아 있었다.

밤늦게까지 회의실에 홀로 앉아 있던 시천세는 문득 기이한 기분이 들어 문을 나섰다.

밖으로 나와 어둠 속을 주시하던 그는 몸을 가누지 못해 휘청거렸다.

그것은 공포이자 기쁨이었다.

“오셨습니까?”

시천세는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오랜만이로구나.”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엎드려 있는 시천세의 몸이 또 한 차례 부르르 떨렸다.

“역시…… 역시, 살아 계셨군요. 사부.”

다시 고요한 적막이 찾아왔다.

어둠을 향해 엎드려 있던 시천세는 고개를 들었다.

“저를 죽이러 오셨습니까? 천양의 목숨을 끊어 버린 죄를 물으러 오셨습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저는 사부가 시키는 대로 다 했습니다. 황곡에 머무르라 하여 그곳에 머물렀고 이십 년을 기다리라 하여 기다렸습니다. 이제 또 제가 사부를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합니까?”

잔잔한 분노가 묻어나는 물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제가 사제들과 함께 강호에 나왔다면 천양이가 이 손에 죽을 일은 없었을 겁니다!”

우웅!

울분을 토해 낸 시천세의 외침에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기의 장막이 진동했다.

그제야 사부는 무심한 눈으로 시천세를 내려다보았다.

“너는 사제의 죽음을 내게서 찾는구나.”

으으으…….

시천세는 이를 악물었다.

그런 그를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사부는 저 멀리 산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묘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부는 시천세를 지나쳐 묘지를 향해 다가갔다.

그의 손에는 술 한 병이 들려 있었다.

쪼르르…….

술병에 가득 들어 있는 술로 묘지를 적시는 사부의 입에서 감정이라고는 한 올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제들이 너의 야심을 모를 것 같았더냐. 너의 야심을 몰랐다면 일 년에 한 번씩 너를 위해 은자를 보내 주지는 않았겠지.”

사부의 말이 옳았다.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제들은 자신과 싸우기를 싫어해 매년 은자를 거둬 보내 주었다. 사제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너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니라.”

술병을 비운 사부는 엎드려 있는 시천세를 지나쳐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다 하여라.”

“이…… 저를 막지 않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다.”

바닥을 보고 있던 시천세의 시선이 서서히 들려 뒷짐을 지고 있는 사부에게 향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사부께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어찌하여 우리들을 데려다 키우신 것입니까?”

머리가 여물기 시작하면서부터 묻고 싶은 말이었다.

그러나 사부의 위엄과 은혜가 너무나 대단하여 감히 묻지 못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한다면, 그 질문을 하기 무섭게 자신들이 버려질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나를 대신할 자를 찾고 있었다고 한다면 대답이 되겠느냐.”

시천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사부를 만나 감정이 너무 격해진 나머지 흐르는 바람 소리마저 사부의 목소리로 혼동을 한 모양이었다.

“나는 오랜 세월 혈마, 무극천황, 천마라는 별호로 불리며 살아왔다.”

사부의 이어진 목소리에 시천세의 눈은 급격하게 흔들렸다.

아무래도 자신이 없는 소리를 들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시천세의 입에서 나온 자들은 강호 무림에 홀로 존재했던 절대자들이었다.

혈마는 수백 년 전에 실존했던 강호의 거마로, 어지럽고 혼탁했던 무림을 피로 씻어 낸 인물이었다. 그로 인해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생겨났고, 그 세력은 곧 무림을 지배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여 있는 호수 물이 썩어 가듯, 시간이 지나자 그들로 인해 강호 무림이 다시 어지러워졌다.

그때, 아홉 개의 문파와 여섯 개의 가문이 주축이 된 반란 세력이 있었는데, 그 세력의 선두에 섰던 인물이 바로 무극천황이었다.

“혈마와 무극천황, 천마로서의 삶을 살았으나 강호는 조금도 변하지 않더구나.”

사부는 무심한 눈으로 제자를 내려다보았다.

“너희 중에 나를 대신할 인물이 나왔으면 좋겠구나. 나는 여태까지 여섯 명의 아이를 돌보았느니.”

‘사부는…… 지금까지 자신을 대신할 후계자를 찾고 있었단 말인가.’

불멸하는 무신의 후계자를 찾고 있다는 말은 곧 자신들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리고 시천세는 그 일말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었다.

시천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무신을 넘어선 강호의 신이 되리라.

“반드시…… 반드시 제가…….”

눈물까지 흘리며 결심을 굳혀 가던 시천세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한 채 눈을 치떴다.

여섯 명이라니?

죽은 풍천양까지 더한다고 하여도 다섯 명이 아닌가.

“또…… 어떤 제자를…….”

“그 아이는 제자가 아니니라. 앞으로 너를 다시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휘이이…….

사부를 중심으로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쳤다.

바람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천세는 사부가 사라진 자리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섯 명이라니…… 여섯…….”

넋 놓고 중얼거리던 그의 머릿속으로 젊은 얼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역시, 그놈이었나.’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상하게 마음에 남는 놈이었다.

마치 자신의 지난날을 보는 듯 그 강렬한 무공과 생존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하지만 설마 그놈이 사부의 제자일 것이란 생각은 못 했었다.

“반드시…… 찾아 죽여야 해.”

백리혈 연비강은 자신의 계획에 끼어든 불청객이자 경쟁자였다.

 

* * *

 

오진권은 무림맹으로 돌아온 후에도 한동안 분을 이기지 못했다.

동천과 서패의 강대함에 화가 치밀어 올랐고, 오만한 시천세의 미소에 치욕을 느꼈다.

더욱 그를 화나게 하는 것은 자신들의 약함이었다.

‘오냐. 너의 개가 되어 충실히 움직여 주마. 하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내가 될 것이다.’

간신히 분을 되새기며 화를 가라앉힌 오진권은 곧 부맹주 남궁휘를 불러들였다.

“가셨던 일은 잘되었소?”

이미 시천세에게 어떤 굴욕을 당했을지 짐작한 남궁휘는 착잡한 얼굴로 물었다.

“잘되었소. 동천과 서패의 공격은 멈출 것이오.”

“다행이구려.”

‘다행?’

시천세 앞에서의 굴욕을 떠올린 오진권의 온몸에서 차가운 살기가 흘러나왔다.

“진정하시오, 맹주. 지금은 비록 그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자가 우리 앞에 목을 내밀 것이오.”

남궁휘의 위로에 오진권의 살기가 한풀 꺾였다.

“당분간…… 외부 활동은 멈춰야 하오.”

“알겠소. 그리고 아무래도 아버님께 인편을 보내 고수들을 더 데려와야 할 것 같소.”

남궁휘의 아버지 남궁석은 아직까지 은거지에 남아 고수들을 양성하고 있었다.

남궁석뿐만 아니라,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일부 고수들도 앞날을 위해 따로 고수들을 양성하고 있었다.

“그들을 데려오게 되면 시천세에게 남은 은거지마저 발각이 될 거요.”

오진권은 남궁휘의 의견에 반대하고 나섰다.

“전부 데려오자는 말이 아니오. 백안걸개와 제자 다섯, 거기에 더해 금강선사를 데려왔으면 하오. 백안걸개와 금강선사는 원래 은거하셨던 분이니 시천세도 의심하지 못할 거요.”

“금강선사께서는 나이가 많아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말을 들었소.”

“그러니 그분을 데려와야 하지 않겠소. 생의 마지막을 정파를 위해 힘쓰시다 가셔야 한다는 생각이오.”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오진권은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좋소. 대신 이곳을 곧바로 오게 하지 말고 사천을 통해 오는 것으로 하시오.”

백안걸개는 세수 구십을 넘긴 늙은 개방의 전대 걸왕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힘과 무공은 팔팔한 젊은 고수들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특히 제자들도 그런 그의 무공을 이어받아 차후 개방을 이끌어 나갈 동량들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금강선사는 소림의 제자로, 권법 금강권과 봉법 금강연은 당대 제일로 불렸었다.

“알겠소. 바로 은밀히 사람을 뽑아 보내겠소. 아니, 혹시 모를 적의 추적이 있을지 모르니 내가 직접 가겠소.”

이야기를 끝낸 남궁휘는 방을 나갔다.

‘이제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

아무리 고심을 해 봐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묘책은 이미 물 건너가 버렸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방법은 자멸만 초래할 뿐이었다.

‘이럴 때 강하고 믿을 만한 동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군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적을 동맹으로 만들어? 어떻게…….’

한 가지 계책을 떠올린 오진권은 곧 탁자 위에 깨끗한 종이 한 장을 펼쳤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한번 시도는 해 봐야지.”

 

* * *

 

비강과 북궁도는 희미하게 밝아 오는 여명 아래 갈래 길을 마주하고 섰다.

한쪽은 남으로 향하는 길이었고, 또 한쪽은 북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어…… 나는 이제 남쪽으로 내려가야 돼.”

북궁도는 비강과의 작별을 아쉬워했다.

“잘 가라. 또 보자.”

“이렇게 헤어지는 것도 아쉬우니 어디 기루에 가서 술이라도 한잔…….”

“됐어.”

“매정한 놈.”

입을 삐죽 내민 북궁도는 남쪽을 향해 걸어가다가 문득 몸을 돌려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 근처에 꽤 큰 목장이 있거든. 거기서 말이나 한 필 구해 타고 가야겠어. 걸어 다니는 것도 귀찮아.”

 

푸르렀던 나뭇잎은 누렇고 붉은 단풍이 들기 시작했고, 후텁지근했던 새벽도 어느새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 밝아 오고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이 하나둘 관도로 나오기 시작했다.

두둑…… 두두두…….

어디선가 미약하게 말들이 달리는 소리로 보아 북궁도의 말처럼 근처에 목장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말이나 한 필 구해야겠군.’

마을에서 몰래 빠져나오느라 비강이 타고 있던 말은 송은반의 집에 놓아두고 나왔다.

특별한 목적지라도 있다면 경공으로 달리는 것이 더 빠를 것이나 가고자 하는 곳이 없기에 급할 일도 없었다.

“저기야.”

비강과 북궁도는 말들이 달리는 소리를 따라 숲으로 난 길로 들어갔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목책으로 둘러싼 목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목책 안에서 이리저리 내닫는 말들을 구경하며 안으로 들어서던 비강의 눈에 광채가 일었다.

휘익.

비강이 신형을 감추자마자 북궁도의 신형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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