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0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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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00화
제100화. 역습(2)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주인은 긴장 어린 얼굴로 비강의 말을 받았다.
“지금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자들은 아마도 서패나 중천의 순찰조일 것입니다. 그자들이 우리에 대해 묻거든 이곳을 떠났다고 해 주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비강과 북궁도는 얼른 몸을 피하고 주인 부부는 방 밖으로 나왔다.
“계십니까?”
뒤이어 대문 밖에서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집안의 하인 하나가 급히 달려가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무인 열세 명이 서 있었는데, 중앙에는 차가운 인상의 젊은 여인이 안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서패 당백요의 제자 여문탁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옷을 여민 주인은 대문 밖으로 나가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우리는 서패의 적룡조예요. 이곳에 도적들을 남김없이 제거한 협객들이 머물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어요.”
“그러시군요.”
서패의 적룡조를 처음 마주한 주인은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순찰조들은 몇 번 만난 적은 있지만, 순찰조 중에 최강이라는 적룡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두 젊은 협사들이 베푼 은혜는 목숨을 빚진 것과 같아서 억지로 긴장을 다스렸다.
“실은 어제 그분들이 이곳을 떠나셨습니다.”
“그런가요?”
말을 받는 여문탁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주변을 수색해 봐.”
여문탁의 명령에 조원들은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그녀는 건물 안쪽을 흘깃 쳐다보다가 주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분명 건물 안에서 미세한 기척을 느꼈었다.
“소문을 들으니 두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인상착의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예, 예.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인은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
바로 그 순간 송은반이 아버지를 대신해 나섰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송은반이라고 하며, 이분은 저의 아버님이 되십니다. 아버님이 많이 긴장하신 것 같으니 제가 대신 인상착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두 분은 모두 젊은 분들이었습니다. 한 분은 검을 사용하셨으며 또 한 분은 도를 사용하셨습니다. 두 분 다 키가 크고 잘생겼는데, 검을 사용하시는 분은 코밑에 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를 사용하시는 분은 왼손잡이셨습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여문탁이 다시 물었다.
아무리 강호의 인물들을 떠올려 보아도 선뜻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 외에 다른 특이점은 없었나요?”
“네.”
“알겠어요.”
여문탁은 조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문득 송은반이라는 여인을 살폈다.
얼굴을 별로 예쁘지는 않았지만 가만히 서 있는 자태가 꽤 기품이 있었다.
“혹시 도를 사용하는 젊은 협객은 실없는 소리를 자주 하지 않던가요?”
“아니요. 매우 조용하신 분이었습니다.”
흐흠.
“그렇군요.”
여문탁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조원들이 돌아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상한 자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윽고 조원들이 전부 복귀하자, 그녀는 마을 입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몇 발자국 걸어가던 여문탁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검을 사용하는 젊은 협객의 손가락에 검은 반지가 있던가요?”
“아니요. 없었습니다.”
“그래요?”
“네.”
“그렇다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군. 도적들을 쓸어 버린 자들이 백리혈과 남협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여문탁은 주인 부부와 송은반이 들으라는 듯 조금 높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그들의 안색을 살폈다.
송은반은 태연했지만 주인 부부는 무척이나 놀란 표정이었다.
‘역시, 그들이었군. 백리혈이 이곳에 숨어 있었어.’
그러나 여문탁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조원들을 이끌고 떠나갔다.
* * *
털썩.
허억! 헉!
여문탁과 적룡조가 멀리 사라지고 난 후, 주인 사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세상에, 세상에, 그들이 바로 백리혈과 남협이었다니.”
“많이 놀라신 모양이군요. 아버님, 어머님.”
송은반은 부모의 곁으로 다가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럼, 너는 놀라지 않았단 말이냐?”
“놀랐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리 태연할 수 있느냐?”
“그분들이 어떤 별호를 불렸는지는 상관이 없으니까요.”
주인 사내는 딸아이의 대답에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남협은 협객으로 이름이 높으나, 백리혈은 아니다. 백리혈의 흉포한 혈명은 워낙 대단해 네가 살고 있는 이 작은 마을에까지 소문이 퍼지지 않았느냐.”
송은반은 아버지를 차분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그리 잔인한 분이 협객으로 이름 높은 남협 북궁도 대협과 벗이 될 수 있었을까요, 아버님. 그분들은 저를 구해 주시고, 우리 집을 구해 주시고, 마을 사람들을 구해 주셨어요. 강호의 소문을 전부 믿지 마세요.”
강호에 퍼진 백리혈에 관한 소문은 이러했다.
피에 미친 살인귀.
그는 강호에 모습을 보인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가는 곳마다 피바람을 일으켰다.
피가 그를 따라다니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피를 부르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혈풍이 몰아치는 사건마다 반드시 그의 별호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래도 나는 그 사람이 두렵구나.”
아버지의 걱정에도 아랑곳없이 송은반은 집 안으로 들어와 비강과 북궁도를 찾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정말로 그들이 떠나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힘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 *
“아! 독한 년. 기어이 우리 정체를 밝혀냈네.”
두 사람은 여문탁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숨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에 의해 자신들의 정체가 발각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그들은 이 마을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바로 행랑을 꾸려 마을을 빠져나온 것이다.
비강은 마을의 정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절벽 위에 올라섰다.
강호 무림에 나와 가장 마음 편하게 지내던 곳이었다.
정체가 발각되지 않았다면 얼마간 더 이 마을에 머물렀을 것이다.
“다음에 같이 오자.”
북궁도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마을을 내려다보며 비강의 어깨를 두드렸다.
“좋은 곳이었어.”
“당연하지. 너를 좋아하는 여자도 있었으니까.”
* * *
“철송진인과 천환검 대협이 전사하셨소.”
남궁휘의 침중한 목소리에 오진권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미 보고를 받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동천의 무인들은 거칠 것 없이 호북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전진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의 질주를 막던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고수들이 속절없이 깨져 나가고 있다는 보고도 받았다.
그동안 무림맹의 힘을 쏟아부어 평정한 하북의 여러 지역이 다시 동천의 품으로 되돌아갔다.
“사파 우두머리였던 두광생의 적자, 두궁천이 고수들을 이끌고 호북으로 넘어오고 있는 중이오. 우리가 동천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소.”
오진권은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막아야 하지 않겠소.”
막기는 막아야 했다.
하지만 올라오고 있는 보고에 의하면 두궁천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수하들 또한 절대고수에 비견될 정도 막강한 무공의 소유자들이라고 한다.
두궁천의 뜻밖의 등장은 무림맹에 있어서는 대단한 충격이었다.
“중천에서는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소?”
“쥐 죽은 듯 조용하다고 하오.”
그럴 리 없다.
동천이 호북을 넘보고 있는 상황이라면 중천이 반드시 움직여야 했다.
호북은 원래 북림의 영역이었고 지금은 중천의 영역이니, 시천세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고수들을 파견해야 했다.
‘그자는 이미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짐작하고 있었어. 우리가 저지른 일이니, 알아서 처리하라는 뜻이로군.’
처음부터 잘못 생각했다.
시천세는 애초부터 땅따먹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빌어먹을.’
무림맹의 힘을 동원하면 두궁천과 그의 수하들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두궁천과 수하들을 죽이면 동천과 전면전이다.
“서패에서 진행하려던 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완전히 궤멸되었소.”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아직 서패에 관한 보고를 받지 못한 오진권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개망나니 둘이 나타나 세력을 일으키기도 전에 전멸시켰소. 하오문의 정보에 의하면 남선의 북궁도와 백리혈이라 하오.”
하아.
오진권은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쓸었다.
사실 삼천존보다 더 싫어하는 놈이 바로 백리혈과 북궁도였다.
“규필 장로는 어찌 되셨소?”
남궁휘는 대답을 대신해 고개를 저었다.
전사했다는 뜻이다.
고심을 거듭하던 오진권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시천세를 만나고 오겠소.”
* * *
빠른 경공으로 반나절 만에 중천에 도착한 오진권은 바로 시천세를 찾아 올라가려 했다.
하나 오진권은 시천세와 마주하기 전에 총관 벽하원부터 만나야 했다.
총관 벽하원은 여동생 벽사군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진권을 맞아들였다.
“오랜만에 뵙소이다. 오 맹주.”
“오랜만입니다. 벽 총관.”
벽하원과 인사를 나눈 오진권은 벽사군을 향해 흘깃 시선을 주었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여인이군.’
오라비를 만나는 자리라 면사를 벗고 있던 벽사군은 오진권에게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올렸다.
오진권도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받았다.
“주공을 뵙게 해 주십시오, 벽 총관.”
“따라오시오.”
이미 강호의 정세를 환히 꿰고 있던 벽 총관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시천세에게 안내했다.
벽 총관의 안내를 받아 회의실로 들어간 오진권은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예를 올렸다.
“주공을 뵙습니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느냐?”
오진권이 찾아온 목적을 알고 있는 시천세는 짐짓 그렇게 인사를 받았다.
“동천이 주공의 땅을 침범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 사실인가? 벽 총관.”
“사실입니다, 주공.”
흐흠.
“그렇단 말이지.”
시천세는 짐짓 고심을 하는 것 같더니 서랍에서 문서 두 장을 꺼내 던졌다.
문서 두 장은 공간을 가로질러 정확하게 벽 총관의 손 위에 떨어졌다.
문서를 펼쳐 읽은 벽 총관의 얼굴에 가는 미소가 어렸다.
‘역시.’
“오진권에게도 보여 주도록.”
“예.”
총관은 들고 있던 문서를 오진권에게 내밀었다.
문서를 받아 살펴보는 오진권의 손이 경련을 일으키고 눈동자는 급격하게 흔들렸다.
크하하하.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시천세의 입에서 호쾌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가, 내가 여태까지 이자들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었어.’
오진권의 눈에 핏발이 곤두섰다.
문서는 각기 동천의 남궁악과 서패의 당백요에게서 온 것이었다.
문서 안에는 함부로 날뛰고 있는 무림맹을 징치하려 하니 양해를 구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으으으.
들끓는 분노는 머리 꼭대기까지 치달았다.
그러나 오진권은 무림맹의 맹주였다.
급하게 마음을 다스려 진정시키고는 시천세를 향해 무릎을 털썩 꿇었다.
“살려 주십시오, 주공.”
동천과 서패로부터 합공을 받는다면 무림맹은 풍비박산이 날 것이다.
풍비박산이 난 무림맹이 다시 일어서려면 아마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야 가능할 것이다.
시천세는 무심한 눈으로 오진권을 내려다보았다.
“강호에 나오면 당장이라도 원래 자신들이 있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겠지. 하나 내 사제들이 있는 한 그 일은 그저 꿈에 불과해.”
“제발, 도와주십시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었다.
그러나 무림맹을 위해서라면 이 굴욕을 꿋꿋이 참아 내야 했다.
“전에 말하지 않았느냐? 너는 나의 개가 되어 주인을 위해 충실히 움직이라고 말이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한번 믿어 보지. 그만 나가 봐.”
“예.”
바닥에서 일어난 오진권은 넙죽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의 모습을 살펴보던 벽 총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주공.”
“총관은 종예와 백산을 불러오게.”
시천세는 대답 대신 종예와 백산을 불러들였다.
벽 총관이 종예와 백산을 대동하고 들어서자 시천세는 봉서 두 장을 내밀었다.
“종예는 동천에 다녀오고 백산은 서패에 다녀와.”
“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