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95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95화
제95화. 새로운 인연(1)
“자리가 없어 합석을 하셔야 합니다.”
젊은 점소이의 말에 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점소이는 비강을 떠돌이 무인처럼 보이는 자들이 앉아 있는 식탁으로 안내했다.
“합석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손님.”
“그러시오.”
술을 마시고 있던 무인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내주었다.
“면과 소채볶음으로 해 주시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주문을 끝낸 비강은 자리에 앉아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점소이가 주문한 요리를 가지고 나올 때, 문이 활짝 열리며 일단의 강호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비강은 단번에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구파일방과 육대세가.’
그들은 전부 화려하고 깨끗한 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풍겨 나오는 분위기가 흉흉했다.
객잔 안에는 동천의 무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어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백건적들이 감히 동천을 침범하는 것이더냐?”
동천의 무인들도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옷차림으로 정체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클클클―
“언제 적 백건적을 말하는 것이냐? 우리는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제자들이다.”
“어차피 같은 놈들이 아니더냐!”
동천의 무인들이 제법 당차게 맞섰으나,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제자들의 숫자가 월등히 많았다.
“이곳은 원래 우리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관리하던 영역이 아니었겠나.”
이익.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도발에 동천의 무인들은 노기를 드러내며 얼굴만 붉힐 뿐, 선뜻 검을 뽑아 들지 못했다.
“우리를 이길 자신이 있다면 검을 뽑아 보든지.”
그런 그들을 향해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도발은 계속 이어졌다.
“천주께 오늘의 일을 보고 올려 네놈들을 전부 추포할 것이다.”
으하하하하―!
“마음대로 해 봐.”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제자들은 동천의 무인들을 비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동천의 무인들은 그런 그들을 피해 바로 객잔을 나갔다.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제자들은 분분히 자리를 피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바로 그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엇을, 드릴까요?”
젊은 점소이가 두려움에 떨며 물었다.
“이곳에서 가장 잘하는 것으로 내오너라. 술도 있는 대로 다 내오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점소이는 황급히 주방으로 달려가 안주가 될 만한 것들과 술부터 내왔다.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제자들은 다른 손님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마음껏 마시고 떠들어 댔다.
“이대로 안휘까지 들어가 보는 것은 어때?”
“좋지. 동천의 천주가 어떻게 나오는지 반응이나 한번 보자고.”
“아직은 무리야. 맹주나 부맹주께서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지는 말라고 했으니.”
“주인이 제집을 눈앞에 두고 구경만 해야 하다니. 빌어먹을.”
“되도록이면 싸움을 피하고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하지.”
비강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면과 소채로 천천히 배를 채웠다.
객잔을 나온 비강은 다시 말을 타고 서쪽을 향해 내려갔다.
한참을 가다 보니 객잔에서 합석했던 떠돌이 무인 둘이 관도를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비강은 그들을 지나쳐 갔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그러는지.”
“그러게 말일세.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점점 세력을 확장하는 것 같으니, 불안하기 짝이 없어. 동천과 서패에 그자들이 자주 출몰한다는 소식이 들리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다시 강호의 지배자가 될 것 같네그려.”
“동천과 서패에서는 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지 모르겠군.”
“동천의 천주와 서패의 패주가 중천의 새로운 주인에게 겁을 집어먹었다는 소문이 있지 않은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 소문이 사실인 것 같네.”
떠돌이 무인들의 대화를 들으며 말을 몰아가던 비강은 관도 저 너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관도 너머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보니 곧 어둠이 깔릴 것이다.
비강은 말을 재촉해 노숙할 만한 곳을 찾아 움직였다.
* * *
벽하원은 사방에서 수시로 올라오는 보고를 받아 벽에 걸린 지도에 표시했다.
“역시, 주공의 말씀이 맞았어. 동천과 서패는 우리 중천을 등에 업은 구파일방과 육대세가를 막지 못해.”
심유한 눈으로 지도를 쳐다보던 벽하원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얼른 표정을 고치며 몸을 돌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부천주 약추완이었다.
“오셨습니까?”
벽하원은 약추완을 향해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하나 이어진 목소리에서는 조금의 공손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공사가 다망하신 부천주께서 제 방에 어쩐 일이십니까?”
“긴히 상의할 일이 있어 들렀다네.”
부천주 약추완도 가시 돋은 벽하원의 말을 알아들었으나, 짐짓 모르는 척 넘겨 버렸다.
부천주라는 직책은 중천에서 두 번째 가는 권력자의 자리였다.
하지만 지금의 부천주 약추완은 그렇지 못했다.
비록 부천주라는 직책을 맡고 있기는 했지만, 그는 중천에서 그만한 대우를 받고 있지 못했다.
시천세는 종예와 백산 같은 수하들과 함께 벽하원을 총애했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벽하원과 마주 앉은 약추완은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결성한 무림맹의 일을 입에 올렸다.
“오진권 맹주가 우리 중천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소. 초야에 묻혀 사는 기인이사들은 물론이고 예전 북림을 떠났던 고수들까지 영입하고 있는 중이오.”
“그 일은 부천주께서 맡고 계시지 않습니까. 부천주께서 알아서 하셔야지요.”
“알고 있소. 하나 천주께 보고는 올려야 하지 않겠소.”
“그건 그렇지요.”
벽하원은 약추완을 데리고 중천의 주인 시천세가 있는 전각으로 올라갔다.
예전 북림의 림주 풍천양이 사용하던 전각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시천세는 밖에 나와 홀로 차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긴히 보고를 올릴 것이 있습니다. 주공.”
“말해 보게.”
시천세는 벽하원과 약추완을 향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 아랑곳없이 벽하원은 보고를 시작했다.
“오진권이 동천과 서패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주공의 손을 벗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기인이사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북림을 떠난 고수들까지 영입하려는 중이라 합니다.”
끌끌.
시천세는 별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었다.
그의 웃음에 벽하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일은 초반에 잡아야 합니다. 점점 일이 커지면 뒤탈이 있을 것입니다.”
“괜찮네. 곧 오진권이 이곳을 찾아오게 될 테니까.”
벽하원은 차를 마시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시천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다가, 뒤에 서 있는 약추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설마 이에 대한 무슨 지시가 따로 있었냐는 무언의 물음이었다.
하지만 약추완의 표정에도 의문이 가득했다.
끌끌.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내 사제들의 상대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내 사제들을 너무 우습게 봤군.”
“그렇다면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또다시 멸망할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시천세는 여전히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를 생각한다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 물론 그전에 오진권이라는 그 애송이가 구원을 요청할 것이겠지만.”
끌끌, 끌끌끌.
* * *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약추완은 긴 숨을 내쉬며 힘없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천세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극도의 피로감을 들게 한다.
그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풍천양도 자리에 앉아 만 리 밖을 내다보기는 했으나, 시천세는 앞일까지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약추완을 힘들게 하는 것은 가끔 벌레를 보는 것 같은 시선을 보내는 시천세의 눈빛이었다.
쾅! 우지직!
“빌어먹을.”
약추완은 제 분에 못 이겨 탁자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탁자가 주먹에 의해 부서지고 그 위에 놓여 있던 서류 뭉치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쏟아졌다.
“무슨 일이십니까? 할아버님.”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악추산이 들어섰다.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잠시 감정이 격해 네게 못 보일 꼴을 보이고 말았구나.”
악추산은 쏟아진 서류 뭉치들과 부서진 탁자를 둘러보다가 곧 그것들을 밖으로 치워 냈다.
“곧 새로운 탁자를 마련해 놓겠습니다.”
“오냐. 한데 무공 수련을 잘되고 있느냐?”
“예. 전부 할아버님 덕분입니다.”
“그래. 절대 자만하지 말고 무공 수련에 힘써야 하느니라. 강호는 무엇보다 무공이 제일이니.”
“잘 알고 있습니다.”
예전보다는 한층 성숙해진 악추산의 모습이 흡족한지 노기가 가득했던 약추완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만 나가 보아라.”
악추산이 밖으로 나가고 난 후, 숨을 돌리고 있으려니 또다시 방문이 열렸다.
하지만 이번에 들어온 인물은 잠잠해지던 약추완의 노기를 다시 불러일으키게 했다.
“네가 이곳에는 웬일이냐?”
한껏 헝클어진 머리에 취기가 가득한 눈을 하고 있는 약철빙은 한 손에 술병까지 들고 있었다.
“배신을 밥 먹듯 하시는 부천주님께 인사라도 올리려고 찾아뵈었어요.”
벌컥벌컥.
약철빙은 입에 술을 쏟아부으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금 내가 많이 바쁘니 급한 일이 아니라면 나중에 찾아오너라.”
탁!
약철빙은 탁자 위에 거칠게 술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부천주 약추완을 붉은 눈으로 쏘아보았다.
“강호에 나갈 겁니다.”
“누가 막기라도 한다더냐?”
“부천주께서 막고 계시지 않습니까.”
“흥, 네가 밖에 나가려는 이유가 무림맹을 치기 위해서이니 당연히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
쾅! 우지지직!
이번에는 약철빙 앞에 놓여 있던 탁자가 그녀의 주먹에 의해 부서졌다.
“그자들이 죄 없는 순찰단원을 죽였습니다. 당연히 그에 대한 죗값을 치러야 하지 않습니까.”
“그 일은 사소한 말다툼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자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
“시끄럽다!”
약추완은 참고 참았던 노기를 터뜨렸다.
“도대체 너는 언제 철이 들려고 그러는 것이냐! 세상살이가 그리 만만하더냐!”
“세상살이가 힘들어도 부천주님처럼 배신을 밥 먹듯 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년!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라!”
크크크크.
“그러지요. 아, 그리고 그 계집년에게 말씀 좀 전해 주십시오. 제발 내 눈에 띄지 말라고 말이에요. 역겨우니까.”
콰장창!
약철빙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을 들어 창문을 향해 집어 던지고는 밖으로 나갔다.
“저, 저, 으아아아!”
약추완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소리를 지르며 머리카락을 감싸 쥐었다.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된지 모르겠다.
자신은 가문을 위해 사위까지 베어야 했다.
그런 자신의 아픔을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한참을 홀로 식식거리며 분을 삭이던 약추완은 또다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똑똑.
“또 무슨 일이냐!”
“방금 순찰단주 약철빙이 순찰단원들을 이끌고 성을 나갔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 * *
서쪽으로 내려가던 비강은 사천과 호남의 경계쯤에 도착했다.
산이 험해지기 시작하고 여러 갈래의 길이 나 있어, 잠시 고민을 하던 비강은 가장 험한 길로 방향을 잡았다.
어차피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가 보려는 것이다.
험했던 길이 끝나고 다시 넓은 길이 눈앞에 나타났다.
양옆에 절벽이 들어선 길을 따라 한참 동안 말을 몰던 비강의 눈앞에 또 다른 갈랫길이 나타났다.
비강은 이번에도 험해 보이는 길을 따라 말을 몰았다.
얼마나 말을 몰았을까.
사방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가운데 멀리 제법 큰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이 험한 지역과는 달리, 그곳은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식량이 풍부하면 인심도 좋은 법.
비강은 무작정 마을을 향해 말을 몰아갔다.
그러나 길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의 분위기는 짐작과 많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