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92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1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92화
제92화. 활선(活仙)(2)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객잔을 찾아 여장을 푼 비강은 말을 객잔에 맡겨 둔 채 길을 나섰다.
어둑어둑해지는 길을 걸어 대장간을 찾아 들어서니 문을 닫으려던 나이 든 주인이 반겨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찾으십니까?”
“쓸 만한 검 한 자루를 구하고 싶소.”
“명검이나 보검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제법 괜찮은 검이 있습니다. 한번 구경해 보시겠습니까?”
주인의 소박한 자부심이 마음에 들어 안으로 들어선 비강의 눈에 예리한 검 몇 자루가 들어왔다.
비강은 탁자 위에 놓인 검 중에 하나를 들어 손가락으로 검신을 튕겼다.
땅!
듣기 좋은 맑은 음이 귀를 즐겁게 했다.
“이것으로 하겠소. 검집까지 같이 주시오.”
“그 검은 은자 이십 냥은 받아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여기 있소.”
비강은 전낭을 풀어 은자 이십 냥을 건네주었다.
원래 가지고 다니던 백파는 검신이 유별나 남의 눈에 띄기 쉬웠다.
대장간을 나와 거리를 들어선 비강은 거리에서 팔고 있는 대병을 사 입에 물었다.
대병은 밀가루 전병에 썬 돼지고기를 채워 넣은 것인데 꽤 맛이 좋았다.
출출한 배를 채우며 건물과 사람들을 구경하던 비강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무인들을 목격했다.
그들은 골목마다 드나들며 수색을 벌이고 있었다.
‘동천의 무인들이 누군가를 찾는 모양이군.’
저들이 찾고 있는 인물을 대충이나마 짐작한 비강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무인들을 지나쳤다.
“잠깐 봅시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비강은 천천히 몸을 돌려세웠다.
“뭡니까?”
“혹시 신선을 보지 못하셨소?”
“신선? 방금 신선이라고 하셨소?”
어이없어하는 비강의 물음에 동천의 무인은 슬쩍 얼굴을 붉혔다.
“아니외다. 그냥 가시오.”
부리나케 뛰어가는 무인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비강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거리를 걷다 보니 휘황한 빛을 발하고 있는 거대한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은 아마도 기루이리라.
은은하게 들려오는 금음과 사내들과 여인들의 웃음소리, 기루를 지나치던 비강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어둠 속을 그어 가는 한 줄기 바람은 기이하게도 흰빛을 띠고 있었다.
‘신법이 대단하구나.’
비강은 바로 흰빛을 따라 신형을 날렸다.
‘정말 빠르구나.’
어둠 속을 일직선으로 날아가던 흰빛은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더니 건물들이 들어찬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팡!
비강은 그대로 신형을 띄워 늘어선 건물의 지붕 위로 내려섰다.
허어…….
그러나 그 어디에도 흰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 * *
이튿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객잔을 나온 비강은 심양의 북쪽을 수색했다.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아 흉측한 형상을 그려 넣은 대문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헛되이 객잔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용 단주는 상인이니 상행을 위해 이곳에 왔을 거야. 그렇다면 그가 주로 움직였던 곳을 중심으로 살펴봐야겠어.’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며 생각에 잠겼던 비강은 바로 객잔 주인을 불렀다.
“이보시오. 이곳 심양에서 유명한 것은 뭐가 있소?”
“글쎄올시다. 딱히 유명한 것은 없습니다만. 아, 동쪽에 있는 주조장(酒造場)이 꽤 유명합니다. 그곳에서 고정공주(古井贡酒)를 만들거든요. 손님께서 드시고 있는 술도 바로 그곳에서 구해 온 것입니다. 값이 꽤 비싼 게 흠입니다만 향과 맛은 일품입니다.”
“고맙소.”
향과 맛이 좋은 술을 눈앞에 두고도 심양에서 유명한 것을 물었다니…….
피식 미소를 지은 비강은 잔에 술을 채워 천천히 음미했다.
다음 날 다시 객잔을 나선 비강은 심양의 동쪽으로 움직였다.
객잔 주인의 말대로 심양의 동쪽은 술을 만들어 사고파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쾌쾌한 누룩 냄새가 진동하는 시장을 걸어 주변을 살피던 비강의 발길은 시장 끝으로 이어진 오솔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작은 마차 한 대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은 또 다른 마을로 이어지는 길 같았다.
비강은 잠시 산속으로 이어진 길을 응시하다가 몸을 돌려 인근의 건물들을 두루 살폈다.
그러나 어디에도 찾고자 하는 대문은 보이지 않았다.
‘허탕만 쳤군.’
다시 산속으로 이어진 오솔길을 찾아 들어간 비강은 인적 없는 외로운 길을 계속 걸었다.
이리저리 어지럽게 구부러진 길이었으나 주변의 경치는 참으로 뛰어났다.
우뚝 솟아 있는 바위에 그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시원한 폭포도 있었다.
비강은 경치에 취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그렇게 계속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오솔길을 벗어난 비강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렀다.
비강이 도착한 곳은 다른 마을이 아니라 누룩 냄새가 진동하는 시장이었다.
결국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이런 길을 누가 만들었을까?
오솔길에 접어들 때는 해가 중천에 떠 있던 한낮이었는데, 밖으로 나왔을 때는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걸었다고 느꼈는데, 짐작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숲속에서 보낸 것이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이 길을 누가 이렇게 만든 것입니까?”
시장에서 술을 팔고 있는 나이 든 노인을 붙잡고 물으니 노인이 껄껄 웃었다.
허허허허…….
“저 길을 처음 들어가 본 양반이군그래. 원래 저곳은 약초꾼들이 돌아다니며 자연스럽게 만들어 놓은 길이오. 경치가 빼어난 곳이라 사람들이 자주 찾기는 하지만 길을 잃기 십상이라 귀신 들린 길이라 부른다오. 며칠씩 길을 헤매다가 빠져나온 사람 중에는 마귀가 사는 집을 봤다는 이들도 있고 하니 어지간하면 들어가지 마시구려.”
“고맙습니다.”
혹시 용 단주는 이 길로 들어갔다가 헛것을 본 게 아닐까?
비강은 귀신 들린 길을 뒤로하고 시장을 빠져나갔다.
심양의 서쪽과 남쪽을 돌아볼 생각이었다.
* * *
심양을 전부 돌아봤지만 용 단주가 말한 곳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심양을 떠나고 싶어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마귀가 살고 있는 집.
분명 시장의 노인은 그런 말을 했었다.
오솔길 입구에 선 비강은 처음과는 달리 차분하고 세밀하게 길을 살피며 걸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오솔길을 걷던 비강은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폭포 앞에 멈춰 섰다.
아…….
우뚝 솟아 있는 바위를 올려다보던 비강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바위 위에는 정체 모를 노인이 세상을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경이로워 절로 탄성이 인 것이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새하얀 수염, 그리고 하얀 도복과 홍안의 얼굴은 도무지 인세의 사람이 아닌 선계의 신선을 보는 듯했다.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던 노인의 시선이 비강에게 돌려졌다.
허어…….
“아이야, 너는 어찌하여 이곳으로 들어왔느냐?”
넋 놓고 노인을 응시하고 있던 비강이 얼른 정신을 차렸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수미산에서 도를 닦아 득도에 이른 백목(魄目)이니라.”
득도하였다면 정말 신선이 아닌가.
“한데 어찌하여 이곳에 계십니까?”
“내가 머물 만한 곳을 찾고 있느니라. 네가 나를 좀 도와주겠느냐?”
“어찌 도와야 합니까?”
신선 노인의 말을 받고 있는 비강의 눈빛은 점점 깊숙이 침전되어 갔다.
“하늘에 치성을 드리고 인간을 계도하려면 많은 재물이 있어야 하는 법. 우선 네가 지니고 있는…….”
“바로 그 사기꾼이었군.”
비강은 신선 노인의 말을 끊으며 코웃음을 쳤다.
허어…….
“그게 무슨 말이더냐. 사기꾼이라니?”
신선 노인이 시치미를 뚝 잡아떼었지만, 비강은 속아 넘어갈 위인이 아니었다.
“진짜 신선이라면 사람과 달리 죽지도 않겠지.”
비강이 스산한 목소리와 함께 검을 뽑아 들자 신선 노인은 화들짝 놀라며 공중으로 몸을 솟구쳐 올렸다.
공중제비를 돌며 날아내려선 노인의 신형은 희뿌연 잔연을 남기며 흐릿해졌다.
‘역시, 밤에 보았던 바로 그자였군.’
순식간에 사라져 가는 노인을 쫓아 신형을 날린 비강의 눈앞에 하얀 형체가 가물가물하게 나타났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아.’
휘이이…… 휘이…….
신선 노인과 비강의 신형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풀잎과 나뭇잎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몸을 굽혔다.
신선 노인과의 거리가 삼 장 정도까지 가까워졌을 즈음, 신법을 펼치던 비강은 문득 발을 멈췄다.
노인이 지나간 자리에 서 있던 푸른 대나무 잎들이 대부분 바람에 못 이겨 노인이 지나간 방향으로 흔들렸지만, 몇 그루의 대나무는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신기하군.”
비강은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는 대나무 숲을 마주하고 섰다.
손으로 대나무를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던 비강은 오른손을 하늘로 향해 들어 올렸다.
바로 그때 귓가에 미세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쉬아아아…….
비강의 손을 떠난 검은 쏜살처럼 커다란 나무를 향해 날아갔다.
십 장 너머 커다란 소나무를 향해 날아가던 검은 급격하게 방향을 바꿔 소나무를 휘감아 돌았다.
크아아악……!
소나무 뒤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고, 검은 다시 비강의 손으로 되돌아 날아왔다.
척.
검을 잡아 검집으로 되돌린 비강은 소나무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소나무 뒤에는 신선을 닮은 노인이 다리를 움켜쥔 채 주저앉아 있었다.
“이제야 잡았군, 백목 신선.”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 허벅지를 움켜쥐고 있던 노인은 두려움과 경이가 섞인 눈으로 비강을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그런 당신은 정체가 뭐지?”
비강이 오히려 되물었다.
강호에 나온 이래 이만한 신법을 경험한 적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경공만으로 따지자면 벗인 북궁도에 비견될 정도였다.
노인은 체념한 표정으로 머리를 푹 숙이더니 곧 입을 열었다.
“나는…… 오래전에 강호에서 협명을 날리던 동악비선(東惡飛仙)의 제자로, 젊었을 적에는 강호의 의와 협을 위해 활동하다가…….”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비강의 목소리에 살기가 묻어났다.
“죽고 싶소?”
노인의 이야기가 거짓임을 눈치챈 것이다.
끄음…….
허벅지의 상처가 고통스러웠는지, 아니면 자신의 거짓말이 탄로 나 곤혹스러웠는지는 모르지만, 노인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스릉…….
비강이 다시 검을 뽑아 들자 노인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도, 도둑이었소, 도둑! 강호에서는 나를 무진도(無診盜)라 불렀소.”
눈으로 보지 못하는 도둑, 무진도.
무진도에 관해서라면 비강도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당신이 바로 그자였군. 한 번도 잡히지 않았다는 도둑.”
“그렇소.”
워낙 신출귀몰하고 경공이 뛰어나 여태까지 잡지 못한 도둑이 바로 무진도였다.
검을 검집으로 되돌린 비강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노인은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아무리 내가 신출귀몰한 도둑이라 하지만 사패의 추격은 두려웠소. 하여 그동안 산속에서 숨어 지내다가 강호가 뒤집어졌다기에 다시 나오게 되었소. 강호에 나와 크게 한탕하고 다시 숨어 살려고 했는데 일이 이 지경이 된 거요.”
“그렇다면 왜 이곳에 숨어 있었나?”
“당연하지 않소? 이 근방에서 이곳만큼 숨어 지내기 좋은 곳도 없으니 말이오. 설사 동천의 무인들이 이곳을 수색한다고 해도 쉽게 찾아내지는 못할 거요. 그런데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평생 당신처럼 고강한 무공을 소유한 자는 보지 못했소.”
노인은 이야기 끝에 비강의 정체에 대해 다시 물었다.
“알 필요 없소. 그만 내 앞에서 사라지시오.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고…… 맙소.”
노인은 나무를 짚어 어렵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다리를 끌며 비강의 눈앞에서 사라져 갔다.
신선 노인을 살려 보낸 비강은 죽림 앞으로 되돌아갔다.
‘과연 이 안에 무엇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