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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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91화
제91화. 활선(活仙)(1)
북림 순찰단은 예전의 순찰단이 아니었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수가 전사하거나 떠나갔고 또 그만큼의 수가 충원되었지만, 마치 전염병이 퍼진 마을처럼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북림을 떠난 순찰단의 조원 중에는 가문의 멸문과 함께 목숨을 달리한 자들이 여럿이었다.
원한에 사무친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후예들은 기어이 가문을 찾아가 복수를 감행했다.
작은 원한을 맺은 가문들은 굴욕적인 항복을 끝났으나 큰 원한을 맺은 가문은 항복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 하나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보복을 당해야 했다.
가문을 살리려면 중천에 붙어 있어야 한다.
가인이 중천에 적을 두고 있다면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복수를 비껴갈 수 있었다.
매일같이 피바람이 부는 강호 무림이었지만 중천은 구파일방과 육대세가를 막지 않았다.
하하하…….
언제나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약철빙의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흐릿한 눈빛과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그녀가 정상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약철빙은 벌써 네 번째 연거푸 삼마의 잎을 말아 피우는 중이었다.
그녀의 앞에는 부단주 엄숭하가 낯빛을 찌푸린 채 앉아 있었다.
“그만하십시오, 약 단주.”
하하하…….
“배신자 새끼가 잘도 지껄이네. 꺼져.”
약철빙은 엄숭하를 비웃으며 문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약 단주.”
“밖에 뭐 하고 있어! 이 새끼, 내보내지 않고!”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에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옥돈조의 공손황이었다.
“보고할 것이 있습니다.”
“보고? 나 말고 저기 저 위에 앉아 있는 약추완이라는 개 같은 인간에게 가 봐. 아! 나도 개 같은 인간의 자식이었으니까 나 또한 개가 되겠군.”
깔깔깔깔깔…….
약철빙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배까지 잡으며 웃어 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공손황은 웃음이 멈추기를 기다려 보고를 올렸다.
“육대세가의 후예들이 하남에 있는 종가와 저가를 멸문시켰습니다.”
“종가…… 종가와 저가란 말이지. 종가와 저가…… 종가에서 북림에 종태산과 종공형이 몸을 담고 있었지. 저가는 순찰조에 저문표가 있고…….”
순찰조원의 죽음에도 약철빙은 모르는 사람을 이야기하듯 중얼거렸다.
“이번 일은 상부에 보고하고 처결하십시오.”
가만히 듣고 있던 엄숭하의 조언이었다.
“조원이 죽었는데도 상부의 명령에 따라야 한단 말이지. 조원이 죽었는데도 말이야…… 공손 조장은 어떻게 생각하지?”
“죄에 대한 벌은 당연히 받아야 합니다. 제가 조원들과 나갔다가 오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흐릿했던 약철빙의 눈동자에 갑자기 기광이 일었다.
스악―!
그리고 탁자에 놓여 있던 검에서 빛이 번득였다.
푸악…….
엄숭하의 목이 베여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단주님!”
놀란 공손황의 외침 소리에 약철빙은 흐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가 봐. 나가서 죄에 대한 벌을 줘. 이게 내 마지막 명령이야.”
* * *
당소건과 육대세가는 맹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동안의 울분을 피와 술로 마음껏 풀었다.
“조금만 더 가면 잉어조림을 잘하는 객잔이 나온다네. 그곳에서 한잔하고 가지.”
당소건의 제안에 육대세가의 후예들도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좋아. 술값은 자네가 내게.”
“아무렴. 내가 열 번이건 일백 번이건 내도록 하지.”
두둑해진 전낭은 육대세가 후예들의 마음까지 든든하게 만들었다.
기분 좋은 걸음을 서두르던 그들은 관도를 막아선 사내를 발견하자마자 흠칫 몸을 굳혔다.
큰 키에 갈대처럼 빼빼 마른 몸을 하고 있는 사십 대 초반의 사내.
육대세가의 후예 중 몇 명은 저 사내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석장.
저 사람의 이름은 석장이었다.
“석 대협께서 어인 일로……?”
석장은 대답 대신 얇디얇은 검을 허리에서 빼 들었다.
당소건은 단번에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석 대협, 이들은 죄가 없습니다. 울분을 참지 못해 제가 먼저 나선 것이니 이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주공께 받은 명령만 수행할 뿐이다.”
빼빼 마른 몸과 어울리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같이 움직였고 앞으로도 당분간 같이할 것이니 용서를 빈다면 무난히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생각이 잘못이었다.
“빌어먹을. 쳐라!”
아무리 저자가 황곡의 고수라 하지만 이쪽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육대세가의 무공을 물려받은 자신들이 황곡 고수 하나를 못 잡아 낼까.
쏴아아―!
당소건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암기가 비처럼 쏟아져 날아갔다.
흔들.
당소건의 눈에 뿌옇게 흔들리는 석장의 모습이 보였다.
“조심!”
공중으로 날아오른 석장의 신형이 급격하게 방향을 꺾으며 육대세가 무리 왼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스악! 스악……!
예리하고 가는 검이 무인들의 몸을 스치며 지나갔다.
검에 베인 자들은 고통 한 점 느끼지 못해 사내의 움직임을 좇으려 고개와 신형을 틀었다.
퍼퍽퍽……!
바로 그 순간, 목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몸이 갈라졌다.
“원진을 구성하…… 끄아아악!”
제갈세가의 가인이 황급히 명령을 내리다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당소건의 암기는 석장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다.
피핑! 핑……!
양손을 떠난 암기는 석장의 몸을 전부 꿰뚫었으나 그것은 그의 잔상일 뿐이었다.
‘제길……!’
상대가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저 석장이라는 자의 무공을 이곳에서 처음 보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육십 명이 넘던 숫자는 순식간에 반으로 줄어들었다.
육대세가의 가인 중 가장 친한 제갈세가의 제갈공이 검 한 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도망치자.’
그나마 아군이 남아 있을 때 도망이라도 친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있었다.
마음을 정한 당소건은 숲이 우거진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철퍽…….
그는 어느새 땅바닥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으아아악!
그제야 당소건은 자신의 왼쪽 다리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크아악! 크악……!
당소건의 비명 소리와 어울려 여기저기서 무인들의 비명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스걱―
마지막 남은 자의 목을 베어 낸 석장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러고는 당소건을 향해 걸어왔다.
“네놈의 목숨은 살려 주마. 있는 그대로 맹주와 부맹주에게 전하라. 그렇지 않으면 중천이 너희들을 찾아갈 것이다.”
그 말을 남긴 석장은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져 갔다.
으으으으…….
가는 신음을 흘리는 당소건의 눈 안으로 사방에 널브러진 벗들의 주검이 들어왔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황곡은 용서가 없다.
이것은 무지막지하게 잔인한 경고였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전부 몰살시킬 것이라는 죽음의 경고였다.
으아아아아……!
자신들은 늑대들의 아가리를 피해 범의 굴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 * *
“허?”
용 단주가 말해 주었던 요녕성 심양으로 향하던 비강은 줄지어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수십의 양민들이 줄지어 계곡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손에는 따뜻한 음식이나 쌀이나 비단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궁금증을 느낀 비강은 말에서 내려 행렬의 맨 끝에서 걸어가고 있는 사람을 불러 세웠다.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비강의 질문에 길을 걷던 사내가 짜증스런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선을 뵈러 가는 중이니 말 걸지 마시오. 부정 탄단 말이오.”
“신선? 신선이라 하셨습니까?”
“말 걸지 말라니까 그러네. 저기 저 수동(水洞) 안에 활선이신 녹원선인(祿原仙人)이 계신단 말이오.”
사내는 그 대답을 끝으로 급히 걸음을 재촉했다.
비강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궁리를 하다가 다시 말에 올랐다.
신선이 있건 없건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말을 몰아가다 보니 또 다른 행렬이 줄지어 나타났다.
수십 명의 사람이 아까 지나쳐 온 계곡을 향해 걷고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수레에 실린 병자들도 있었다.
‘별난 세상이로군.’
심양 입구의 객잔에서 말을 멈춘 비강은 점소이에게 말먹이를 부탁하고는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옵쇼. 무엇을 준비해 드릴깝쇼?”
염소수염의 주인이 간사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맞이했다.
“무엇을 잘하오?”
“우리 객잔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못하는 요리가 없고, 맛이 없는 요리가 없습니다. 전부 다 잘합니다.”
“면이나 한 그릇 주시오.”
“……예.”
비강은 시무룩한 얼굴로 들어가는 객잔 주인을 뒤로하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 소문 들었나? 어제 말일세. 신선께서 다 죽어 가는 병자를 살려 내셨다 하네.”
“나도 들었네. 하지만 그다음 병자는 죽지 않았는가?”
“그거야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신선께서 말씀하시기를 원하는 일에는 정성이 담겨야 하늘에서 길을 열어 준다고 하지 않으시던가. 나도 다음 달에 안휘로 장사를 떠나는데 그분께 한번 빌어 볼 생각일세.”
“잘 다녀오게. 나는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구먼.”
“이 사람아, 그분을 의심하면 큰 벌을 받게 되어 있어. 얼마 전에도 큰 부자였던 장 영감이 사기를 당해…….”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비강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관심을 거뒀다.
저들의 말을 들어 보니 신선이 아니라 사기꾼 같았다.
잠시 후 점소이가 면을 내오자 비강은 철전 한 닢을 손에 쥐여 주었다.
“뭐 좀 묻자꾸나. 혹시 대문에 흉측한 악마의 형상을 그려 놓은 집을 알고 있느냐?”
“제가 심양에서 나고 자랐으나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되었든 감사합니다, 대협. 헤헤.”
열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점소이는 꾸벅 머리를 숙이고는 물러갔다.
점소이가 물러가고 난 후 비강은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 입에 넣었다.
비강의 미간이 슬쩍 찌푸렸다.
‘이 객잔은 어떻게 된 게 주인이나 점소이나 전부 사기꾼 같군.’
모든 요리가 맛이 좋다는 호언장담과는 달리, 면 요리는 유난히 맛이 없었다.
후루룩…….
면을 삼키듯 단번에 전부 먹어 치운 비강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객잔을 나섰다.
“얼마요?”
“철전 두 푼입니다.”
“여기 있소. 부자 되시오.”
* * *
객잔을 나선 비강은 말에 올라 바로 심양으로 들어섰다.
즐비한 가옥들이 줄지어 서 있는 대로로 말을 몰아가던 중 한 무리의 강호인들이 저 멀리서 마주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동천 순찰조로군.’
동천 순찰조는 대화를 나누며 걸어오다가 말을 탄 채 마주 오고 있는 비강을 발견하고는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별다른 의심점이 없는지 곧 관심을 거두며 지나쳐 갔다.
“아무래도 한번 살펴는 봐야 하지 않겠나?”
“하나 양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 조사하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너무 급격하게 세력을 불리고 있단 말이지. 지난날 태평도나 천사도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자들로 인해 발원하지 않았나.”
“하면 지부의 지원을 받아 움직여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람들 사이로 멀어져 가는 순찰조의 대화가 비강의 귓속으로 전해져 들어왔다.
비강은 순찰조의 대화를 흘려들으며 심양의 저잣거리를 둘러보았다.
‘대문에 악마의 형상을 그려 놓은 집을 찾기가 쉽지는 않겠어.’
처마와 처마를 잇대고 늘어선 집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넓게 늘어서 있었다.
‘하오문이라도 찾아가야 하나?’
비강은 곧 고개를 저었다.
하오문의 도움을 받는다면 자신이 심양에 있다는 사실이 보고될 것이고, 그 보고는 구파일방이나 동천의 귀에 들어갈 가능성이 많았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더라도 발품을 파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