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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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29화
제129화. 파죽지세(2)
사련이 소문을 흘리기도 전에 중천의 약추완이 움직이고 있었다.
약하림으로부터 비강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산서로 향하던 약추완은 악가에서 보내온 소식을 듣자마자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놈이 이 상황에서 다시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놈도 강호의 소문을 들었을 것이니, 지금 몸을 사리고 있어야 합니다.”
우동문의 의문은 당연했지만 약추완은 비강을 추격해 잡는 일이 우선이었다.
“놈이 무슨 생각으로 나왔는지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놈이 움직이는 방향이다. 너는 하오문을 이용해 놈의 현재 위치를 알아 오도록 하라.”
“예.”
우동문이 앞장서 뛰어나가자 약추완은 곁을 따르고 있는 호위를 불렀다.
“너는 호북과 호남, 중경의 각 지부에 전서를 보내도록 하라. 놈이 어느 곳에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니 순찰과 경계를 강화하라 이르라.”
“존명.”
호위를 내보낸 약추완은 하남의 정주를 향해 길을 서둘렀다.
하루만 바삐 달린다면 정주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백리혈이 호북이나 호남, 중경 중에 어느 곳으로 향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추격은 그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타탁…… 타타탁…….
약추완을 따라 경공으로 달리는 무인들의 발소리가 어지러웠다.
“다녀왔습니다.”
우동문이 약추완의 옆으로 달려와 합류했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더냐?”
“예. 약 두 시진 전에 백리혈에 관한 정보가 올라왔습니다. 놈은 호북의 경계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아마도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선으로 넘어가려는 모양이군. 호북과 호남에 놈에 관한 정보를 퍼뜨려라.”
“이미 그렇게 지시했습니다.”
“수고했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놈을 잡고 말겠습니다.”
반드시 놈을 죽여야 한다.
그래야 누이가 자신에게 돌아올 테니까.
* * *
하하하…….
“그러니까 말이야. 동천이나 서패보다는 남선이 낫다니까.”
호탕한 웃음을 짓고 있는 사내는 이십 대 초반쯤 되어 보였고, 큰 얼굴과 더불어 그에 어울리는 듬직한 어깨를 지니고 있었다.
사내의 앞에 앉아 있는 자들 또한 이십 대 초반에서 십 대 후반쯤 되어 보였는데, 검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강호인들이었다.
“사형, 사부님께서는 현재 강호는 중천이 주인으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하셨습니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중천이 온전히 강호를 집어삼킬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남선으로 가는 것보다 중천으로 가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중천은 구파일방을 끌어들여 의와 협을 저버렸고 동천과 서패는 남선보다 의와 협이 부족하다고 말이다. 해서 나는 다른 곳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
“사제의 말이 옳아. 나도 남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어딘가 모르게 고고한 품위가 있어 보이는 여인이 고소를 머금으며 말을 받았다.
하하하…….
“역시, 사저의 안목은 천하제일입니다. 자, 이제 어서 먹읍시다.”
네 사형제는 쇠그릇에 끓고 있는 죽을 떠서 나눠 먹기 시작했다.
한데 죽을 나눠 먹던 네 사형제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그들의 시선에 공터로 들어오고 있는 젊은 사내가 잡혔다.
사형제들은 은근히 긴장하며 한쪽 무릎에 올려놓고 있는 검을 슬며시 잡았다.
강호에 나가면 낯선 자들을 항상 경계하라는 돌아가신 사부님의 말씀이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사형제들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곧바로 불부터 피운 사내는 냇가로 가 세안을 하고 손을 씻었다.
뒤이어 행랑에서 건포를 꺼낸 사내는 그것을 불에 구워 천천히 입에 집어넣었다.
사형제들의 시선은 건포에서 바닥에 놓여 있는 기다란 가죽 꾸러미로 옮겨 갔다.
‘창인가?’
병기를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젊은 사내 또한 강호인이 분명했다.
사형제들이 시선을 떼지 못하자 사내도 사형제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소?”
“아니…… 아니오.”
사형제들이 당황해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얼굴이 큰 사내는 다시 고개를 돌려 건포를 먹고 있는 사내를 훔쳐보았다.
“맛있을까요? 사저.”
얼굴이 큰 사내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물었다.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먹어 보지 못했으니.”
“저게 말로만 듣던 건포 같은데…… 고기 말린 거.”
“사형, 민망하게 뭐 하는 짓이오?”
“아. 미안. 강호에 나와 처음 보는 거라서.”
사형제들의 대화를 듣기라도 했는지 젊은 사내의 입가에는 가는 미소가 맺혔다가 사라졌다.
‘설마 저 거리에서 우리 대화를 듣기라도 했다는 건가?’
사저라 불린 여인은 불빛에 비친 사내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인의 의문에 답하기라도 하듯 사내는 행랑에서 건포 묶음 두 개를 꺼내 던졌다.
건포 묶음은 정확하게 얼굴 큰 사내의 머리 위로 날아와 떨어졌다.
“어?”
당황한 사내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건포 묶음 두 개를 동시에 낚아챘다.
“나는 건포가 많이 남았으니 신경 쓰지 마시오.”
“고…… 고맙소.”
일단 건포 묶음을 받아 들기는 했지만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이에 사형제들의 사저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젊은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귀한 건포를 저희들에게 넘겨주신 이유를 물어도 되겠는지요?”
젊은 사내, 비강은 자리에 앉아 여인을 올려다보았다.
입고 있는 옷은 허름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매우 깨끗했고, 얼굴과 행동에서는 고귀함과 기품이 은은하게 우러나오고 있었다.
“별다른 뜻은 없소. 다만 네 분이 강호초출로 보여 그리한 것이오. 아, 그리고 건포에는 독 같은 것을 바르지 않았으니 마음 놓고 드시오. 하나는 육포이고 또 하나는 어포요.”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여인은 그렇게 짧은 인사로 고마움을 표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맛있네. 너희들도 먹어 봐.”
얼굴 큰 사내는 육포와 건포를 번갈아 가며 뜯어 먹었다.
사제들과 사저도 비강을 살피며 생전 처음 육포와 건포를 입에 넣었다.
‘경계심이 대단한 자들이로군.’
* * *
밤이 지나고 새벽이 찾아왔을 때, 놀랍게도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여인이었다.
바로 뒤이어 눈을 뜬 비강은 냇가로 향하는 여인을 지켜보다가 숲 안으로 들어갔다.
운공을 마치고 세안까지 끝내자, 사형제들은 이미 공터를 떠난 후였다.
비강도 관도로 나와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막 경공을 시작하려던 비강은 관도 너머로 보이는 강호인들을 발견하고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걸었다.
강호인들이 비강과 교차해 지나가며 비강과 설핏 눈을 마주쳤다가 떨어졌다.
그들은 여전한 모습과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하지만 비강은 그들에게서 진한 피 냄새를 맡았다.
비강은 바로 관도를 벗어나 산으로 이어지는 길로 걸어 들어갔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자신의 앞에 거대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산으로 이어진 소로 길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걷지 않아 상인들로 보이는 자들이 등짐을 내려놓고 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강은 그들이 앉아서 쉬고 있는 그 자리를 비켜 지나쳐 갔다.
은밀한 시선들이 등 뒤를 쫓아온다.
몹시 기분이 나쁘고 불쾌했다.
몸을 돌린 비강은 상인들과 눈을 마주했다.
방금 전까지 뚫어질 듯 바라보던 상인들이 딴청을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이윤이 남아야 할 텐데…….”
“걱정하지 말게. 하남에서는 반드시 큰 이윤이 남을 테니까.”
비강은 상인들의 손을 살폈다.
엄지와 검지 사이의 살이 두텁다.
그 살은 짐을 나르느라 굳어진 살이 아니라 병기를 오랫동안 쥐었기에 굳어진 살이었다.
“하오문이 아니로군.”
태연하게 능청을 떨던 상인들의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어디서 나왔나?”
비강의 질문에 상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디서 나오다니요?”
“한 놈만 살려 주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에 앉아 있던 상인들은 일제히 공중으로 박차고 올랐다.
파팍!
제 딴에는 거리를 벌리는 동시에 병기를 뽑으려는 행동이었다.
스각, 스걱……!
희뿌연 빛이 상하좌우를 가르고 사라졌다.
비강은 어느새 가죽을 벗겨 낸 창을 잡고 있었다.
후두둑……!
상인 네 명의 목이 거의 동시에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털썩…… 털썩.
끄아아아아……!
목을 잃은 시신들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지만, 팔을 잃은 상인은 바닥을 나뒹굴며 비명을 질러 댔다.
“어디서 나왔나?”
“사련…… 사련!”
“한 놈만 살려 준다는 말은 거짓이다.”
서걱.
비강은 눈을 부릅뜬 채 죽어 버린 시신을 무감정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 * *
이제 곧 남선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내일쯤이면 아마도 남선의 무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하루가 십 년처럼 무척 길어질 것 같았다.
큰 마을이 아닌 작은 마을이었다.
채 오십 가구도 되지 않는 산속의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이백 명을 간신히 넘길까 말까 한 작은 마을에 일천 명이 넘는 강호인들이 득실거렸다.
비강은 마을을 가득 메우고 있는 강호인들과 마주했다.
저 중에 사파의 고수가 있을 것이고, 중천의 지부에서 나온 무인도 있을 것이며, 낭인이나 하오문에서 나온 무인도 있을 것이다.
“정 지부장께서 이곳에는 웬일입니까? 원래 양양을 맡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비강은 눈에 익은 자를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양양 지부장 정덕초는 좋지 않은 얼굴로 비강의 말을 받았다.
“얼마 전에 호남의 장사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었겠군요. 삶이 그런 거니까.”
정덕초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에 들어서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곳이 평범한 마을이 아니라는 사실을.
흉흉한 살기가 마을 밖까지 진동을 하는데, 어찌 알아보지 못할까.
“백리혈 연비강, 드디어 너를 잡게 되는구나.”
수많은 인물 중 얼굴에 상흔이 가득한 나이 든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말을 걸었다.
“너는 누구지?”
“나는 중천 장사 지부의 임동영이다. 마동의 마왕을 오늘에야 비로소 처치할 수 있겠구나.”
“고작 이만한 숫자로 말이냐?”
비강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기대해도 좋다.”
임동영은 비강을 마주 비웃었다.
“쳐라!”
누구에게서 먼저 튀어나온 외침인지 모른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공격을 알리는 외침 소리가 튀어나오자 마을을 가득 메우고 있던 자들이 비강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촤아악……!
가죽을 벗어난 창날은 공간을 가르며 포물선을 그렸다.
선두에서 달려 나오던 적들의 머리와 팔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비강의 몸은 어느새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희뿌연 기운에 휩싸인 거대한 창날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앙!
땅이 갈라지고 뿌연 먼지가 일었다.
땅을 일직선으로 가른 창날은 적들의 몸까지 갈라놓았다.
크악……! 아아악……!
마을을 메우는 비명 소리는 또 다른 비명 소리에 묻혀 버렸다.
전면에서 달려드는 적의 목을 베고 좌우에서 날아오는 검과 도를 쳐 냈다.
투캉! 따깡!
검과 도가 창날과 부딪치자마자 부러져 날아갔다.
비강은 그들의 허리를 가르고 가슴을 베어 내며 또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쏴아아……!
하늘에서 하얀 빛줄기들이 소나기가 되어 쏟아졌다.
콰콰콰콰…… 콰쾅!
머리와 몸이 터져 나가고, 땅거죽이 뒤집혔다.
비강의 신형은 어느새 마을을 지나 산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대나무들로 가득한 산을 달려 올라가던 비강이 신형을 돌렸다.
산 아래쪽에서 무수히 많은 적들이 달려 올라온다.
스악…… 슥……!
대나무들이 연이어 잘려 나가고, 잘린 대나무들은 산 아래로 쏘아져 날아갔다.
퍼퍽! 퍼퍼퍽……!
푸른빛의 대나무들이 적들의 목과 가슴, 복부를 관통하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