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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128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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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28화

제128화. 파죽지세(1)

 

 

 

호북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던 비강은 이른 점심때쯤 정주에 도착했다.

타고 다니던 말은 장경주의 거처에 남겨 놓았다.

가죽으로 싼 백파를 들고 객잔을 찾아 들어간 비강은 탕과 밥을 시켰다.

객잔 안은 손님들로 가득했고 강호인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백리혈이 마동에서 나온 마왕이라는 소문을 어찌 생각하나?”

강호인들이 주고받는 대화의 화두는 바로 비강에 관한 것이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는가. 나는 그 소문을 참이라 여기고 있네. 산서에서 자취를 감출 때도 그자를 도와주는 고수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정체 모를 세력이 뒤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나 또한 소문을 사실로 믿고 있네. 백리혈은 평소 잔혹한 성정으로 유명한 자였으니 마동의 마왕이 맞을 걸세. 그자는 손가락에 흉측한 마귀의 형상이 그려진 반지까지 끼고 있다지 않은가 말이야.”

“중천뿐 아니라 동천, 서패에서도 마동과 백리혈을 잡아들이기 위해 대대적인 소탕 작전에 들어갔다는 소문까지 떠돌고 있으이.”

강호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비강은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탕과 밥으로 배를 채우고 건포까지 구해 챙긴 비강은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막 정주 중심부를 통과하던 비강은 앞쪽에서 급하게 달려오고 있는 말 탄 무인들과 마차를 발견했다.

마차와 말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며 다가오자 길을 오가던 사람들은 전부 양옆으로 비켜섰다.

비강도 길 한쪽으로 물러나 무인들과 마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불공을 드리기 위해 사찰에 머무셨던 마님께서 돌아오시는 모양이구먼.”

“그런 모양이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비강의 앞으로 마차가 지나갔다.

 

* * *

 

아들 악추산이 손가락을 잘리고 가문으로 돌아오자, 약하림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지아비가 죽은 것도 억울한데 이제는 아들까지 손가락이 잘려 돌아왔으니 그대로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손가락이 잘린 후 아들 추산의 성정이 변해 버렸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추산은 짧은 안부 인사를 끝낸 후 바로 폐관수련에 들어갔다.

이에 마음을 놓은 그녀는 인근의 사찰로 달려가 가문과 아들을 위한 불공을 드리고 이제야 막 돌아오게 된 것이다.

‘추산이의 배필로 어느 가문의 규수가 좋을까…….’

마차 안에 앉아 이것저것 고심을 하던 약하림은 문득 마차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길가에 늘어선 사람들의 마차를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 그녀의 눈 안으로 들어왔다.

개중에는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감히 미천한 것들이…… 두고 보아라. 추산이는 반드시 가문을 강호 제일로 키워 낼 것이니. 그때가 되면 네놈들은 우리 가문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은은한 노기까지 드러내던 약하림의 시야에 머리카락이 짧은 강호인이 하나 잡혔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젊은 강호인의 얼굴이 오래전의 전남편과 많이 흡사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저 얼굴은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백리혈 연비강……! 그자가 분명해.’

변장을 한 듯하지만, 자신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약하림은 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온 강호가 마동의 마왕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만약 악가가 마왕 백리혈을 잡는 데 큰 기여를 한다면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아버님께 사람을 보내 놈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려야 해.’

잊고 싶고, 잊고자 했으나 도저히 잊히지 않는 얼굴이 바로 저 얼굴이었다.

아무리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어도 저 얼굴은 잊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다.

“속도를 높여라.”

“예. 가모.”

약하림의 명령에 마부석에 앉아 있던 가인은 말을 채찍질해 가문으로의 귀환을 서둘렀다.

 

* * *

 

‘나를 알아봤군.’

약하림이 마차의 작은 구멍을 통해 비강을 알아보았듯, 비강도 그 구멍을 통해 약하림의 눈을 주시하고 있었다.

비강은 약하림의 흔들리는 눈빛을 통해 그녀가 자신을 알아봤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쯧…….

“실수했어.”

뒤늦은 후회였다.

비강은 서둘러 호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경공을 펼친 비강의 신형이 순식간에 이십여 장 너머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무공의 경지가 높아짐에 따라 경공과 신법도 빨라졌다.

비강은 도운패와 다시 한번 비무를 해 보고 싶었다.

그와 다시 맞붙게 된다면 언제부턴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의문이 해소될 것만 같았다.

 

늦은 저녁때쯤 호북을 넘어선 비강은 눈에 보이는 객잔을 찾아 들어갔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손님.”

점소이가 달려 나와 반갑게 맞이해 들였다.

이 객잔은 처음이 아니었다.

전에 북림에 있을 때 이 객잔을 두어 번 들러 생선찜을 먹었다.

그만큼 이 객잔의 생선찜 요리는 일품이었다.

“생선찜으로 주시오.”

주문을 마치고 난 비강은 객잔의 분위기를 살폈다.

아무도 자신을 주시하지 않는 것이, 아직 이곳까지 정보가 넘어온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생선찜을 내온 점소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기에 쉽게 알아보지는 못하겠지만 눈썰미가 좋은 자라면 정체를 의심할지도 모른다.

비강은 태연하게 식사를 시작했다.

그때 안으로 들어갔던 점소이가 술 한 병을 내왔다.

“술은 시키지 않았소만.”

“아,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했습니다.”

“그냥 주시오.”

점소이가 건넨 화주를 선뜻 받아 든 비강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들켰나?’

비강은 점소이 등 뒤로 보이는 객잔 주인을 응시했다.

“이놈들아, 빨리빨리 움직여.”

객잔 주인은 점소이들을 몰아대고 있었지만, 눈은 비강을 흘깃거리고 있었다.

‘의심하고 있군.’

아마도 이 객잔의 주인은 하오문일 것이다.

그것도 능력이 제법 뛰어난.

일부러 여유롭게 식사를 끝낸 비강은 값을 치르고 객잔을 나서려 했다.

“손님, 밤이 깊었습니다. 방이 있으니 쉬었다가 내일 아침에 가시지요.”

객잔 주인의 말에 비강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좋은 방으로 내주시오.”

“저를 따라오십시오, 손님.”

기다렸다는 듯 점소이가 비강을 별채로 안내했다.

“이 객잔에서 가장 좋은 방입니다, 손님.”

“수고했소.”

 

* * *

 

객잔 주인은 비강을 방으로 안내하고 돌아오는 점소이를 뒷마당으로 끌고 갔다.

“어떻게 되었느냐?”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네가 보기에 어떻더냐?”

“소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괜히 엄한 사람을 의심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객잔 주인도 아직까지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확신보다도 우선하는 것은 바로 자신들의 목숨이었다.

“그자가 백리혈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너는 얼른 마을로 달려가 백리혈로 의심이 되는 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하고 오너라.”

“알겠습니다. 주인어른.”

점소이가 어둠 속으로 급히 사라지고 난 후, 객잔 주인이 객잔 안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바로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오문인가?”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객잔 주인은 고개조차 돌리지 못했다.

그는 두려움에 질린 나머지 몸까지 비칠거렸다.

“아, 아닙니다. 저는 하오문이…….”

“몸은 그렇다고 하는군.”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객잔 주인은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무릎을 꿇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죽음뿐이었으나,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살려…… 주십시오.”

“소문을 들으니 요즘 하오문은 하오문이 아니라고 하던데. 네가 정보를 전하는 곳은 구파일방이냐, 아니면 중천이냐?”

“사련…… 입니다.”

왜 갑자기 하오문도의 입에서 사련이 튀어나온단 말인가.

하하…….

비강의 입에서 어이없어하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며칠 전에 사련의 고수들이 찾아와 백리혈로 의심이 되는 자가 나타나면 무조건 보고를 올리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소인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전부 죽여 없애겠다고…….”

어이없어하던 비강의 표정은 점점 차갑게 굳어 갔다.

사련이라니. 두궁천은 어떻게 이 객잔이 하오문의 거점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을까.

어쩌면 그놈은 자신의 짐작보다 더 대단한 놈인지도 모른다.

차갑게 객잔 주인을 내려다보던 비강이 몸을 돌렸다.

“소인이 하고 싶어 한 일이…… 아닙니다. 소인에게는 봉양해야 할 늙은 부모님이 계시고 어린아이들이 있습니다. 사련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자들이라 소인이 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객잔 주인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눈물까지 흘리며 끊임없이 주절거렸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죽는구나.’

두렵고 억울하지만 죽음을 피할 수는 없게 되었다.

객잔 주인은 목을 늘어뜨려 죽음을 준비했다.

“주인어른, 거기서 뭐 하세요?”

그때 뒤에서 또랑또랑한 젊은 점소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바보 같은 놈.’

애달픈 객잔 주인의 속내도 모르는지 점소이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손님들이 밀려들어 엄청나게 바쁘다고요! 바빠 죽겠는데 아삼이 이 새끼는 또 어디로 간 거야!”

그제야 객잔 주인은 슬며시 고개를 들어 보았다.

어둠 속엔 아무것도 없었다.

“계…… 십니까?”

혹시나 싶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하하…….

살게 되었다는 안도감에 객잔 주인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왜 그러세요? 주인어른.”

객잔 주인은 너무 기쁜 나머지 점소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백리혈이다. 백리혈이 이곳에 있었어.”

 

* * *

 

밤길을 달려 남쪽으로 내려가던 비강은 아침 해가 떠오를 때쯤 어느 커다란 편백나무 아래 경공을 멈췄다.

정체가 발각된 상황에서는 최대한 그곳과 거리를 벌려야 했다.

밤새 경공으로 달렸기에 객잔과의 거리는 족히 일천오백 리는 넘을 것이다.

후우―

비강은 길게 숨을 가다듬으며 편백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행랑에서 기름에 튀긴 떡을 꺼내 배를 채운 비강은 또다시 경공으로 달리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막 경공을 펼치려던 비강은 문득 나뭇잎을 비집고 올라온 연녹색의 새싹을 발견했다.

‘벌써 봄이 와 있었구나.’

고개를 돌려 보니 새싹들이 이곳저곳에 보였다.

삶이 바빠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사이에 이미 봄은 성큼 다가와 있었다.

비강은 관도를 천천히 걸었다.

하루 정도는 이렇게 걸어도 될 것 같았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들의 머리 위로 해가 떠오른다.

사람들과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며 길을 걷던 비강의 눈에 마주 오고 있는 십여 명의 무인이 보였다.

그들은 중천 순찰단의 흑견조였다.

비강은 얼른 숲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잠시 후 십여 명의 흑견조는 비강이 숨어 있는 곳을 지나쳐 멀어져 갔다.

이제 흑견조에서는 한두 사람밖에 얼굴을 알지 못했다.

대부분 전사했거나 다른 자들로 교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숲에서 걸어 나온 비강은 다시 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비강이 사라진 후, 그곳과 멀지 않은 곳에 일단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호북 인근의 객잔에 백리혈이 나타났다는 정보를 방금 받았다.”

“그곳과 이곳의 거리는 일천육백 리나 되니, 만약 백리혈이 남쪽으로 향하고 있다면 하루나 이틀 후 이곳에 도착할 거야.”

“그건 너의 일방적인 짐작이고.”

“뭐야? 방금 뭐라고 했어?”

“진정해라. 백리혈은 보통 놈이 아니야.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으니 분명 객잔과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 할 거다. 놈이 남쪽으로 향하고 있다면 당장 이곳에 그놈이 나타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 우리는 이곳에서부터 호북으로 이동하며 놈을 포위한다.”

“만약 놈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동쪽으로 놈을 몰아. 그게 내가 련주께 받은 명령이다. 하오문이나, 중천, 무림맹에도 놈의 정보를 흘린다면 곧 수많은 무인이 몰려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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