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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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27화
제127화. 마왕으로(4)
두두두…… 두두…….
말 세 마리가 이끄는 마차는 관도를 달리다가 오른쪽으로 이어진 길을 돌았다.
“하오문은 배신자에 대한 처벌이 잔인하기로 유명하지 않소?”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처벌할까요? 우동문과 무림맹으로 넘어간 자들을 처벌하기에는 우리 하오문의 힘이 너무 약해요.”
장경주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그녀는 급히 마차에 있는 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마음이 굳센 여인도 작금의 상황은 견디기 힘든 모양이었다.
“미안해요, 연 대협.”
“괜찮소. 우동문이 난놈은 난놈이었군.”
“그자는 손목을 잃은 후부터 더욱 집요하고 잔인해졌어요. 연 대협도 조심해야 할 거예요.”
비강은 장경주가 마음을 가라앉히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는 처음과 같은 눈으로 비강을 응시했다.
“연 대협은 강호에서 마왕으로 불리고 있어요. 마동에서 나온 마왕. 누구의 입에서부터 그런 소문이 흘러나온 것인지는 아직 모르나, 저는 무림맹이라 짐작하고 있어요. 그 소문으로 인해 이제 연 대협은 모든 강호인의 공적이 되었어요.”
“마동의 마왕…….”
소문은 개의치 않았다. 비강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으니까.
“중천의 상황은 어떻소?”
장경주는 말없이 비강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연 대협.”
“말하시오.”
“그냥 이대로 은거에 들어가세요.”
비강의 미소에 장경주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늘어뜨렸다.
“아무리 깊숙이 숨어도 언젠가는 시천세가 나를 찾아낼 거요. 그자를 죽이기 전까지 나는 자유롭지 못하오.”
역시,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말이 멈추자 장경주가 먼저 문을 열고 마차에서 내렸다.
마차가 멈춘 곳은 산속의 작고 아담한 집 몇 채가 들어서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안에는 마을 사람 몇 명이 밖에 나와 농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비강은 단번에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이 아님을 알아보았다.
아마도 장경주를 지키는 하오문의 무인들일 것이다.
“들어가요. 연 대협.”
그녀는 비강을 집 안으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소박하지만 정갈한 요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언제나 장 소저에게 신세만 지는구려.”
“그런 말씀 마세요.”
비강이 자리에 앉자 장경주는 손수 밥과 탕을 들여왔다.
* * *
두 사람은 말없이 식사를 끝냈다.
“아주 잘 먹었소.”
“차를 준비해 올게요.”
빈 그릇을 내어 간 장경주는 찻잔과 주전자를 들고 들어왔다.
쪼르르…….
차를 따르는 그녀의 팔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악가의 악추산이 동천의 두궁천에게 손가락을 잃었어요. 왼손이라 그나마 다행이라지만 무공을 펼치는 데 많이 불편할 거예요.”
“쓸데없는 짓을 했군.”
악추산의 이야기에 비강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신의 손으로 도륙 내야 할 자들이었다.
지금 당장도 도륙 낼 수 있지만 복수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아주 천천히 도륙을 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두궁천이 먼저 선수를 쳤으니 속이 매우 불편해진 것이다.
“네?”
장경주가 의아해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자, 비강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남선은 어떻소?”
“북궁 대협은 여전해요.”
하하…….
“다행이오.”
비강의 싱그러운 미소를 바라보는 장경주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제 그만 떠날까 하오.”
차를 비운 비강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장경주는 급히 소매를 잡았다.
“오늘은 이곳에서 쉬었다가 내일 아침 떠나세요.”
“내가 강호에 나온 이유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복수도 겸하기 위해서요. 먼저 하오문주부터 벨 거요.”
비강의 소매를 잡은 장경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는 안 돼요, 연 대협. 제발 문주님만은 용서해 주세요.”
장경주의 간절한 목소리와 눈빛이 마음에 걸렸는지 비강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자신을 여러 번 도와준 전적이 있었다.
“장 소저가 이렇게까지 문주를 감싸고 도는 이유를 알고 싶소.”
장경주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분이 비록 욕심이 많아 일을 크게 그르치고 연 대협의 원수가 되기는 했지만, 제게는 하나뿐인 아버지예요.”
하아…….
비강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러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사각…… 사각…….
가위를 잡은 장경주의 눈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지금 비강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는 중이었다.
“되도록 짧게 잘라 주시오. 다른 자들이 내 정체를 못 알아차리게.”
“네. 그런데 연 대협은 지금까지 어디에 계셨나요?”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소. 원래 거처를 정한 곳은 산서에 있었는데, 중천의 추격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그곳을 떠나야 했소.”
“그럼, 지금은 어디에 거처를 마련하셨어요?”
비강은 눈앞으로 떨어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언젠가 장 소저에게 큰 위험이 닥쳤을 때 십만대산을 찾아오시오. 장 소저 외에는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오. 아시겠소?”
“네. 약속할게요.”
머리카락을 자른 비강은 그녀가 떠 놓은 더운물에 머리를 감고, 그녀가 준비해 놓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겉옷을 벗고 침상에 눕자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비강은 몸을 일으켜 침상 위에 정좌를 하고 앉았다.
스으으…….
공기가 방 안을 휘돌았다.
그때, 방문이 살짝 열리며 장경주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침상에 앉아 운공을 하고 있는 비강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 * *
크크크크…….
서신을 쥐고 있는 남궁악의 입에서 사이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종예는 처음 대하는 그의 모습에 흠칫 놀라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역시, 사형은 영리하단 말이야.”
사이한 웃음을 그친 남궁악의 눈은 기이한 광기로 번들거렸다.
“사형이 내게 전하라는 말은 없느냐?”
“서신만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사형에게 돌아가 알았다고 전해라.”
“예.”
종예는 급히 남궁악의 방을 나갔다.
조금이라도 더 그곳에 있었다가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을 당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만큼 남궁악의 기세엔 광기가 서려 있었다. 그를 잘 알고 있다 생각했던 종예로서도 처음 보는 그의 숨겨진 모습이었다.
크크크…….
“은근히 나를 경계하고 있었단 말이지…… 사형이.”
종예가 나가고 난 후, 남궁악의 입에서 또다시 예의 그 사이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쉽게 되었군. 사형이 강호를 일통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그렇지 않나? 영파.”
남궁악의 부름에 방 안에 흐릿한 그림자가 비치더니 곧 사람의 형체를 이루었다.
팔이 유난히 길고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사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였다.
“하나 아직 천주께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천주께서는 마지막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알고 있어. 하지만…… 말이야…….”
남궁악은 몹시 불쾌한 눈으로 서신을 만지작거렸다.
“여기에 독이 가득 들어 있는데 내가 그만 읽어 버렸지 뭐야. 재미없게 말이지.”
“어떤 독이 들어 있었습니까?”
“그건 아무리 자네라 해도 말해 줄 수 없어.”
“죄송합니다.”
영파라 불린 사내는 바로 머리를 조아렸다.
“백리혈이라 했던가?”
갑자기 남궁악은 강호에서 모습을 감춘 연비강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후기지수의 범위를 넘어선 자입니다. 백산이 그자에게 죽임을 당했을 정도이니 앞으로 더욱 위험한 자가 되어 등장할 터입니다. 더군다나 그자는 마동의 마인들을 거느리고 있는 마왕이 아닙니까.”
“영파가 다른 자를 이렇게까지 칭찬하는 모습을 처음 보는군.”
“그만큼 위험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크크크크…….
“알아. 그런데 그 위험한 놈이 강호에 등장한 이유가 있었어. 서신의 내용이 맞다면…… 아니 맞겠지. 사형이 이 정도로 긴장을 하는 것을 보면. 아무튼 백리혈이라는 놈은 영파의 짐작보다 훨씬 더 위험한 자야. 해서 더 크기 전에 싹을 잘라 버리고 싶어.”
“두궁천이 아주 좋아할 것입니다.”
탁! 탁! 탁……!
크하하하…….
남궁악은 탁자까지 두드리며 즐거워했다.
“맞아. 하북에 있는 그놈에게 가서 전해. 백리혈을 발견하는 즉시 죽여 없애라고.”
“두궁천이 그놈을 상대하기에는 버겁지 않겠습니까?”
“두궁천은 영파가 짐작하는 것보다 더 영악한 놈이야. 무공 또한 영파에 뒤지지 않을걸? 그런 놈이니 절대 혼자서 움직이진 않겠지.”
영파는 두궁천의 무공이 자신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남궁악의 말에 호승심이 일었다.
그러나 남궁악의 명령을 거스르면서까지 두궁천과 일전을 벌일 수는 없었다.
“가서 전하겠습니다.”
영파의 신형이 흐릿해졌다가 사라졌다.
흐음…….
“가만, 죽이기 전에 얼굴이나 다시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크크크…….
* * *
성을 나온 약철빙은 서안의 저잣거리로 들어갔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담노의 장원이었다.
자신의 부관이기도 했던 비강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를 감추고 속였다.
약철빙은 강호에서 떠돌고 있는 마동의 마인들이 누구였는지 대충이나마 짐작은 하고 있었다.
마동의 마인들은 아마도 담노라는 노인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어리석게도 내가 너를 믿었어. 처음부터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삐걱…….
장원의 문을 연 그녀는 느린 걸음을 걸으며 주변을 살폈다.
장원 안은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먼저 부엌과 광을 들여다보았다.
광은 쌀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부엌은 도둑들이 며칠 전까지 이곳에서 밥을 해 먹었는지 불을 피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부엌을 나온 약철빙은 가운데 전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벌컥.
방문을 열어젖힌 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방 안에는 짧은 머리의 비강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약철빙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비강의 얼굴만 멍하게 쳐다보았다.
“들어오십시오.”
비강의 입에서 재차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굳어 있던 그녀의 입이 풀렸다.
“어떻게…… 어떻게 연 부관이 여기에 있는 거지?”
“며칠 되었습니다.”
“간이 부었군.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약철빙은 방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비강 앞으로 걸어가 마주 앉았다.
“왜 이곳에 있었지?”
“단주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나를…… 왜 나를 만나고 싶었지?”
“약추완에게 전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는 아닐 것이 분명했다.
부천주는 얼마 전까지 비강을 추격했었고, 지금도 그 뒤를 추격하기 위해 벌써 산서로 출발했다.
“별로 듣고 싶지 않은데?”
“그럼, 하는 수 없지요. 저는 그만 가 보겠습니다.”
비강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약철빙의 입에서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해.”
비강은 약철빙을 냉정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악규를 죽인 자는 바로 접니다. 또한 가문을 습격해 불을 지른 것도 제가 시킨 일입니다. 약추완에게 그대로 전해 주십시오.”
약철빙은 크게 놀란 것 같지 않았다.
아마도 대강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그 일도 나를 속였군.”
“저는 받은 대로 돌려준 것뿐입니다. 약추완에게 또 전하십시오. 나는 원래 성격이 옹졸하고 잔인하여 받은 대로 돌려줄 것이니, 곧 가문을 방문하겠다고 말입니다.”
약가는 약추완의 가문이지만, 약철빙의 가문이기도 했다.
“……꼭 그래야 하나?”
아무리 약철빙이 가문을 나왔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가문 안에는 그녀를 걱정하고 위해 주는 가인들이 남아 있었다.
“남김없이 도륙할 것입니다.”
“마동의 마왕이 맞았어.”
비강은 약철빙의 눈을 주시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에서는 이미 저를 마동의 마왕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지요.”
“잠깐!”
휘이이…….
약철빙이 자리를 박차며 급하게 앞을 막아서려 했으나 비강은 바람에 흩어지듯 모습을 감춰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