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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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26화
제126화. 마왕으로(3)
“약추완에게 전하여 계속 백리혈을 찾게 하라. 그자는 꽤 유능한 수하를 거느리고 있으니 다소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찾아낼 수 있을 테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주공.”
벽 총관이 방을 나가고 난 후, 시천세는 서신을 작성했다.
“종예.”
“부르셨습니까? 주공.”
밖에 대기하고 있던 종예가 들어오자 시천세는 서신을 그녀에게 건넸다.
“동천에 다녀와라.”
“알겠습니다, 주공. 따로 전할 말씀은 없으신지요.”
“없다. 최대한 빨리 다녀오도록 해라.”
“예.”
종예를 내보낸 시천세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그는 평평한 산 정상을 하염없이 걸었다.
문득 시천세의 발걸음이 북림의 림주이자 자신의 사제였던 풍천양의 묘지 앞에서 멈췄다.
“너는 내 손으로 죽였으나, 다른 사제들까지 내 손으로 죽이고 싶지는 않구나. 너도 내 마음을 이해할 게다. 그렇지 않느냐…… 천양.”
* * *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벽 총관은 부천주 약추완을 불러들이기에 앞서 동생인 벽사군을 먼저 호출했다.
“부르셨어요? 오라버니.”
그녀는 무공을 연마하다가 불려왔는지 아직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
벽 총관은 환한 얼굴로 방 안에 들어온 벽사군을 미소로 바라보다가 의자를 가리켰다.
벽사군이 의자에 앉기를 기다려 벽 총관이 말문을 열었다.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말씀하세요.”
“은운곡을 접수해 그들을 거느리도록 해라.”
깜짝 놀란 벽사군은 오라버니의 얼굴을 응시했다.
“가능은 하지만 삼패와 강호 무림의 수많은 낭인이 우리를 욕할 거예요. 또한 제가 은운곡을 접수하게 되면 많은 낭인이 떠날 것이고, 또 다른 은운곡이 생겨날 게 뻔해요.”
“사군아.”
갑자기 벽 총관의 눈빛과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너는 강호 무림의 무후가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강호사에 길이 남을 전무후무한 무후 말이다. 곧 남선과 서패에 커다란 변고가 발생할 것이다. 네가 그 기회를 잡으려면 힘이 있어야 해.”
벽사군은 놀라 마지않았다.
남선과 서패에 변고가 발생할 것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미 그 사실을 오라버니가 알고 있다면, 천주가 벌써 움직였다는 의미였다.
“무후가 되고 싶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강해져라.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강해져. 알겠느냐?”
벽사군은 얼른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녀는 의와 협을 위해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때문에 아무리 흉한 짓을 저지른 흉적이나 도적이라 하더라도 잘못을 빌고 협객으로 살아갈 것을 맹세한다면 은혜로이 용서해 주었다.
그런데 오라버니인 벽 총관은 자신에게 도적이 되라 하고 있었다.
“네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다른 자에게 은운곡을 넘길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겠느냐?”
벽 총관의 거듭된 재촉과 압박에 결국 벽사군은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알겠어요, 오라버니. 하지만 낭인들 모두에게 기회를 줄 거예요.”
“그건 네 마음대로 해라. 그리고 앞으로 은운곡을 너와 금편복의 본거지로 이용하도록 해라. 지원은 아끼지 않고 해 주마.”
“고마워요.”
벽사군으로서는 강호에 자신의 명성을 드높일 또 다른 기회였다.
은운곡을 거점으로 고수들을 끌어들인다면 머지않아 호남 강호에서 무시 못 할 강대한 세력이 탄생할 것이었다.
“나가 봐라.”
벽사군을 내보낸 벽 총관은 부천주 약추완을 불러들였다.
“무슨 일로 나를 찾으셨소? 총관.”
“죄송합니다, 부천주. 제가 직접 찾아가야 하나 일이 바빠 부천주께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허허.
“별소릴 다 하시오. 조금도 개의치 않으니 말씀해 보시오.”
약추완은 겉으로 허허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으나, 속은 말이 아니었다.
‘언젠가 이 개자식을 반드시 죽이고 말리라.’
벽 총관도 환한 미소로 머리를 숙여 예를 올렸으나 속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다.
‘분명 이를 갈고 있겠지. 더군다나 외손자가 손가락까지 잘린 상황이니.’
주공은 악추산이 동천의 고수에게 손가락을 잘렸다는 보고를 받고도 아무렇지 않게 넘겨 버렸다.
“약한 놈이 강한 놈에게 걸렸으니 당연한 결과겠지.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할 것이야.”
약추완은 주공에게 이 말을 듣고 별다른 소득 없이 물러나야 했다.
그때 약추완은 동천을 공격하라는 답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주공께서 백리혈에 대한 추격을 다시 시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주공께서는 그 일을 부천주께서 맡으라 하십니다.”
“주공의 영은 당연히 받들어야 하오. 알겠소. 바로 백리혈의 추격에 나서겠소.”
“알겠습니다. 저 또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약추완은 마침 잘되었다는 듯 벽 총관의 말꼬리를 붙잡았다.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그렇지 않아도 백리혈을 추격하려면 뛰어난 기재들과 고수들이 필요하오. 벽사군 대주가 하릴없이 쉬고 있으니 나를 도와주었으면 좋겠소.”
벽 총관은 진정으로 안타까워했다.
“이런…… 정말 죄송합니다, 부천주. 벽 대주는 주공께서 내린 다른 명령을 받들기 위해 수하들과 호남으로 출발할 것입니다.”
“정말이오?”
“예. 주공께서는 은운곡을 거두고자 하십니다.”
으음…….
약추완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벽 총관이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아쉽게 되었어. 기회를 봐 그년부터 목을 베어 버리려 했더니.’
벽사군은 멀쩡한데 자신의 손자인 악추산은 손가락을 잃었다.
더욱 분통이 터지는 일은 악추산은 미련하게도 벽사군을 남몰래 사모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가 일이 바빠 더 이상 부천주님과 한담을 나누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음에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정중한 축객령이었으나, 약추완은 더욱 기분이 상했다.
눈에 띄게 굳어진 얼굴로 방을 나가 버렸다.
“말 잘 듣는 개라는 주공의 말씀을 심하다 여기고 있었으나, 이제야 주공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구나.”
* * *
우걱우걱…….
신선 노인은 양민들이 놓고 간 음식을 게걸스럽게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그러다가 동굴 밖에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황급히 입을 닦고 근엄한 표정으로 앉았다.
그런 그의 모습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비강의 입에서는 탄식까지 흘러나왔다.
하아……!
“어찌 저런 인간을 신선으로 추앙하는 것인지…….”
비강이 동굴 안쪽에 앉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쌀을 바친 양민이 바닥에 엎드려 울먹였다.
양민의 옆구리에는 어린아이가 안겨 있었다.
“소인의 아들이…… 많이 아픕니다. 약을 달여 먹여도 소용이 없어 이렇게 신선께 데려왔습니다.”
바닥에 엎드려 울먹인 양민은 옆구리에 안겨 있던 아이를 두 손으로 잡아 앞으로 내밀었다.
허어…….
“불쌍한지고.”
사기꾼 노인 무진도는 아이를 안아 품에 안더니 바로 등을 돌렸다.
“선계의 치료술은 함부로 보이는 것이 아니니라.”
흑흑…….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양민은 그렇게 거듭 고마움을 표하고는 동굴 밖으로 나갔다.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은 무진도는 품에서 침통을 꺼냈다.
그러더니 여기저기 침을 놓는 것이었다.
비강은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침을 다 놓은 무진도는 아이의 온몸을 이곳저곳 주물렀다.
모두 중요한 혈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었다.
이윽고 거칠었던 아이의 숨소리가 점점 안정을 찾아가자, 무진도는 동굴 밖에다 대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
양민이 안절부절못하며 안으로 들어오자, 무진도는 아이를 두 손으로 안아 내밀었다.
“그대의 정성이 선계를 감동시켰느니, 선계에 반드시 재물을 올려 은혜에 보답하라.”
흑흑흑…….
“감사합니다.”
양민도 아이의 숨소리가 안정을 찾았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아이를 안은 양민이 나가고 난 후, 비강이 동굴 안쪽에서 나왔다.
비강이 나오자 무진도는 냉큼 아래쪽으로 내려가 바닥에 엎드렸다.
“그나마 사기 말고도 다른 재주가 있는 모양이군. 한데 아이를 고치지 못하면 어떻게 발뺌을 하나?”
헤헤…….
“그거야 쉽지요. 정성이 부족해 선계가 감동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사기에 도가 텄군. 또 하나 묻지. 왜 나를 일월성신의 사자로 칭했나?”
헤헤…….
“당연히 일월성신이지요. 신께서 자신의 이름을 일(日)이라 하셨고, 그분의 가족인 당신께서는 이름이 월(月)이지 않습니까. 해와 달이 모였고 음양이 합쳐졌으니 어찌 신이 나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혓바닥은 정말 잘 굴리는군.”
“아무리 제가 혓바닥을 잘 굴려 봐야 어디에 쓰겠습니까? 강호인에게 쫓기며 잠시 잠깐 이곳저곳에서 신선 행세나 하는 수밖에요. 저도 이제는 한곳에 정착해 살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이 노인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아저씨와의 인연이 없었다면 진즉에 죽여 없앴을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는 이 노인을 살려 보내고 자신이 있을 만한 곳까지 짐작해 알려 주었다.
끄응…….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비강은 하는 수 없이 거처를 알려 주었다.
“아직 자리를 잡지 않았으나 십만대산에 나의 거처가 있다. 그곳을 찾아가 내 이름을 말하면 동료로 받아들여 줄 것이다. 단 그곳에서도 사기를 친다면 절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 그리 알라.”
“반드시…… 반드시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신선 사기꾼 무진도는 바닥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 * *
추위도 한풀 꺾이고 봄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지,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섬서에 들어선 비강은 태평하게 말을 몰아갔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번화가로 말을 몰아 움직이던 비강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골목길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얼굴을 드러냈다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저 여인이 왜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번화가로 나온 이유는 하오문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곳에 그 여인이 있었다.
비강은 곧바로 규모가 큰 객잔이 보이자 그곳으로 움직였다.
“어서 오십쇼!”
경쾌한 점소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말에서 내린 비강은 말먹이를 부탁하며 수고비를 쥐여 주었다.
“감사합니다.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자마자 또 다른 점소이가 다가왔다.
“요리는 무엇을 준비해 드릴까요? 손님.”
“두부 요리로 해 주게. 아주 맵게.”
“알겠습니다. 술은 필요 없으신지요?”
“술은 되었네.”
주문이 끝나고 잠시 후 뜨끈뜨끈한 두부 요리가 나왔다.
두부 요리로 대충 배를 채우는 비강의 손은 순식간에 그릇 밑으로 들어갔다가 빠져나왔다.
값을 치르고 객잔을 나온 비강은 손바닥 안에 들어 있는 종잇조각을 펼쳐 읽고 주먹을 쥐었다.
푸스스…….
종잇조각이 재가 되어 땅으로 떨어지고, 비강은 바로 말 등에 올라 객잔을 빠져나갔다.
* * *
마을을 나와 관도로 들어서자 마차 한 대가 뒤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비강은 한쪽으로 말을 몰아 길을 비켜 주었다.
“타세요.”
잠시 후, 옆으로 마차가 세워지고 문이 열리며 여인의 목소리 들여왔다.
“오랜만이오, 장 소저.”
마차에 바로 올라탄 비강은 마주 앉아 있는 여인과 인사를 나누었다.
여인은 바로 하오문의 장경주였다.
“오랜만이에요, 연 대협.”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소?”
“잘 지냈어요. 연 대협은 어떻게 지내셨나요?”
“보다시피 잘 지내고 있소.”
“다행이에요.”
장경주의 얼굴은 전보다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고생이 많았던 모양이구려, 장 소저.”
장경주는 살포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 미소는 비강의 눈에 서글픔으로 다가왔다.
“우리 하오문이 이루지 못할 꿈을 꾸었던 모양이에요. 지금 하오문은 예전의 하오문이 아니에요. 중천으로 들어간 우동문은 각 지부의 지부장을 협박하고 회유해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어요. 무림맹도 우리 하오문을 자신들의 하수인쯤으로 여기고 있고…… 이미 여러 하오문도가 그들의 수족으로 있는 형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