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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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25화
제125화. 마왕으로(2)
삐걱.
전각의 문이 열리며 비강이 안으로 들어섰다.
마을에서 가장 위쪽에 위치한 전각이었다.
바닥에 뽀얗게 쌓인 먼지 위로 흐릿한 발자국 몇 개가 보인다.
몇 달 전에 누군가 이곳을 다녀간 것이리라.
비강은 긴 탁자 끝에 놓인 의자로 다가가 앉았다.
삐걱…….
의자가 기괴한 소음을 내며 흔들렸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물건들은 빨리 상한다더니, 의자나 탁자도 마찬가지였다.
이 의자에는 시천세가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아저씨가 앉았을지도 몰랐다.
비강은 의자에 앉아 긴 탁자 너머로 열려 있는 문을 응시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열린 문을 응시하다가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산 위에서 늙은 노인이 지게를 지고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쿨럭…… 쿨럭…….
지게에 나무를 짊어지고 내려오던 노인은 격하게 기침을 토해 냈다.
카악! 퉤!
“망할 놈의 고뿔…….”
노인은 바닥에 가래침을 한 번 뱉고는 지게 작대기를 짚으며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그러다가 누군가 전각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 걸음을 멈췄다.
“누구…… 요?”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비강의 정중한 대답에 노인은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느린 걸음으로 다가왔다.
“이 마을에는 노인장 혼자 살고 있습니까?”
“그렇소.”
노인은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비강의 앞을 지나쳐 갔다.
이에 말안장에서 술 한 병을 내린 비강이 술병을 흔들어 보였다.
“술 한잔하고 가시지요.”
술이라는 소리에 노인은 걸음을 멈추더니 바로 지게를 벗어 내렸다.
“여기 있습니다, 노인장.”
노인은 비강의 눈치를 살피며 술병을 잡아 입으로 가져갔다.
벌컥벌컥…….
쿨럭…… 쿨럭…….
마구 술을 들이켜던 노인은 격하게 기침을 하더니 입에 물고 있던 술을 전부 쏟아 냈다.
“천천히 드십시오.”
쿨럭, 쿨럭.
“고맙소.”
비강은 노인이 술을 마시기를 기다려 궁금했던 일을 물었다.
“이 마을에서 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갔습니까?”
“일부는 무인이 되어 떠났고, 나머진 흉적을 피해 도망치다시피 마을을 떠나 버렸소.”
“흉적이라니요?”
“원래 이 마을은 다섯 분의 신선이 주인으로 있었소. 한데 이십여 년 전에 네 분의 신선이 자신들을 따르던 고수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먼저 떠나고, 남은 신선 한 분은 악선이 변해 갔소.”
노인장은 마을의 과거 일이 가슴에 걸려 왔는지, 비강에게 한탄을 하듯 입을 열었다.
한데, 네 신선과 한 악선이라니. 비강은 노인장이 누굴 말하는지 감을 잡았다.
“흉한 자들이 마을로 들어오기 시작하고, 처음에는 이 마을을 떠나기 싫어 어찌어찌 붙어 있던 사람들도 계속해서 그런 자들이 들어오자 결국 하나둘 마을을 떠나 버렸소. 일 년 전쯤에는 마지막 남은 악선도 그 흉적들과 떠나고, 또 얼마 전에 남아 있던 자들까지 전부 떠나…… 이제 이 마을에는 나밖에 남지 않았소.”
“노인장은 왜 떠나지 않으셨습니까?”
벌컥벌컥…….
“내가 얼마나 더 산다고 나고 자란 고향을 버리고 떠나겠소?”
술병을 비워 버린 노인은 지게를 세워 놓은 곳으로 걸어갔다.
“다섯 분 이전엔 누가 이곳에 있었습니까?”
쿨럭 쿨럭…….
“수호신이…… 쿨럭…… 수호신이 계셨소. 그래서 우리 마을을 황곡으로 불렀다오.”
아마도 아저씨는 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계셨던 모양이었다.
“말씀 고맙습니다.”
“뉘신지는 모르나 이 마을을 얼른 떠나는 게 좋을 거요. 가끔 악신을 섬기는 자들이 찾아오니까 말이오.”
노인은 이런 충고까지 해 주며 지게를 짊어졌다.
비강도 말에 올라 아저씨와 제자들이 살았던 마을을 천천히 벗어났다.
* * *
남쪽으로 내려가던 비강은 문득 말을 멈췄다.
황곡을 나온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어디서 많이 보았던 광경인데…….’
십여 명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손과 손에 먹을 것을 받쳐 든 채 산을 오르고 있었다.
“설마…….”
비강은 한참이나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말 배를 차며 산을 올랐다.
앞서 산을 오르던 사람들은 중턱쯤에 있는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비강도 말에서 내려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굴은 입구가 이 장쯤 되어 보였는데, 입구 한구석에는 흐릿한 신선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곳은 인근의 마을사람들이 신선을 모시던 사당 같았다.
‘이 사기꾼이 장소 하나는 정말 잘 잡았군.’
동굴 안으로 들어간 비강은 석단을 향해 엎드려 있는 사람들과 석단 위에 앉아 있는 신선을 지켜보았다.
“역시.”
석단 위에 앉아 있는 신선은 전에 만난 적 있던 도둑 무진도였다.
그는 아저씨와 헤어질 때 수발을 들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홀로 이곳에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었다.
비강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신성한 신선의 흉내를 내며 눈을 감고 있던 무진도와 그 앞에 엎드려 있던 사람들이 눈을 떴다.
그러나 무진도는 비강의 등장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일월성신(日月聖神)의 사자께서 내려오셨도다.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자들이여, 저분께 앙복하여 심신의 안녕을 누리라…….”
무진도는 아예 비강까지 자신의 사기에 끌어들였다.
비강은 더 이상 무진도의 짓거리를 참지 못했다.
스으―
꺼지듯 비강의 신형이 사라졌다.
순간 무진도의 신형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파팟! 팟!
두 사람은 동굴 안 여기저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강이 쫓고, 신선이 쫓기는 형상.
퍽! 끄어억!
그러나 기어이 비강에게 옷깃을 잡힌 무진도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끄으으으…….
바닥에 엎어진 무진도의 등에 비강은 발을 올려놓았다.
“이제 그만 가시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손을 저으며 밖으로 쫓아냈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금도 움직일 줄 몰랐다.
오히려 비강을 향해 더욱 낮게 바닥에 엎드렸다.
“환장하겠군. 다음에 오시오.”
그제야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동굴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전부 사라지고 난 후 비강은 발에 힘을 주었다.
끄어어억!
“살려…… 살려 주십시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왜 또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거지? 아저씨와 함께 있었지 않나?”
“그분께서는 저와 인연이 없다하셨습니다. 하여 그분께 여쭈어보니 당신께서 북서쪽으로 움직였다고 하여 찾아다니던 중이었습니다.”
“나를 왜?”
“신을…… 뵈었으니 그분과 가장 가까운 당신 곁에 있는 것이 안전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아…….
비강은 길게 한숨을 토해 냈다.
* * *
“한심하고 어처구니없는 소문이기는 하나 강호인들은 그 소문을 전부 믿을 게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님.”
도운패는 뚱한 눈으로 눈앞에 앉아 있는 북궁도를 내려다보았다.
급한 볼일이 있어 어젯밤에 밖에 나갔다가 뜻밖의 소문을 들었다며 뛰어왔는데, 분명 기루에 있다 온 것이 분명했다.
“네가 사숙 걱정을 다 하는 것을 보니 이제야 철이 드는 모양이로구나.”
“사…… 숙이라니요? 사부님. 제 벗…… 입니다.”
북궁도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 나중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감히 사숙을 벗이라 하다니? 네놈이 죽고 싶어 환장을 한 게로구나.”
도운패의 눈썹에 사납게 치솟자 북궁도는 얼른 머리를 조아렸다.
“아직 확인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부님. 비강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밝히기 전까지는 벗이라 부르겠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었던 도운패는 제자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힘을 풀었다.
북궁도는 사부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나오지 않자 슬쩍 고개를 들어 눈치를 살폈다.
보통 이런 때는 주먹이 날아와야 했다.
“사…… 부님, 어디 편찮으세요?”
퍽! 꾸엑!
기어이 주먹을 맞고 나가떨어진 북궁도는 뒤이어 날아들 주먹을 견디려고 잽싸게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더 이상 주먹은 날아오지 않았다.
‘오늘따라 왜 이러시지?’
북궁도는 웅크렸던 몸을 펴며 다시 사부의 눈치를 살폈다.
도운패는 그런 제자를 조용히 응시하다가 한쪽에 놓여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파팍! 척.
번개 같은 속도로 의자에 착석한 북궁도가 조금 음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부님, 정말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니죠?”
“한 대 더 맞고 싶냐?”
도운패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자, 북궁도는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멀쩡하시네. 어쨌든 저는 비강이가 걱정입니다. 해결책을 내놓으십시오.”
“이놈아, 없는 해결책을 어찌 내놓는단 말이냐?”
“정말 없습니까?”
도운패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비강이가 마동의 마왕이라는 소문이 남쪽까지 흘러들었다면 이미 강호 전체에 널리 퍼졌을 것이다.
강호를 떠들썩하게 했던 추격전에서 이미 비강은 정체 모를 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때문에 마동이 존재하고, 백리혈 연비강이 그 마동의 마왕이라는 소문은 진실로 받아들여질 것이 분명했다.
“또 다른 소문은 없더냐?”
“예. 있기는 했습니다. 마동이 원래 강소성에 있다는 소문이 있는가 하면, 서천에 있다는 소문도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산서에 있을 거라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래서?”
“예. 그래서 강호인들은 마동을 찾아내 마왕과 마졸들을 전부 없애야 한다며 떠들어 대고 있답니다. 원래 적에게는 무자비한 놈이라 흉명이 자자했는데, 이제는 마동의 마왕이라는 누명까지 썼으니 강호에서 얼굴 들고 다니긴 다 틀렸습니다. 에휴……! 그러기에 작작 좀 죽이지.”
북궁도의 걱정과는 달리 도운패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강호인들이 마왕으로 대접한다면 마왕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네가 비강이의 입장이었다면 어찌하겠느냐?”
“저라면…… 음, 역시 마왕이 되었을 겁니다.”
아군은 없고 사방이 전부 적군이었던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잔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비강이를 도와주고 있는 자들의 정체가 뭘까요? 사부님.”
“그걸 내가 어찌 알겠느냐. 비강이는 서역에서 넘어온 지 몇 년 되지 않아 바로 북림에 들어갔기에 스스로 세력을 만들어 낼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미 만들어진 세력이 비강이를 끌어들였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
“사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멍청한 강호인들은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비강이 걱정은 그만하고 앞으로 네놈은 무공 연마에만 힘을 기울여라.”
“예. 언제나 무공 연마에 모든 힘을 쏟고 있습니다.”
대답은 곧잘 하지만 제자는 며칠 후에 또 몰래 기루에 들를 것이다.
도운패는 따뜻한 눈으로 북궁도를 지켜보다가 손을 저었다.
“그만 나가 보아라.”
“예. 사부님. 하면 저는 바로 연무장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오냐.”
북궁도가 방을 나가자마자 따뜻했던 도운패의 눈이 깊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는 책상 서랍에서 서신을 꺼냈다.
화르르…….
손에 쥔 서신이 불에 타 재가 되어 흩어졌다.
‘백요, 결국 너도 사형의 마수에 넘어갔구나.’
* * *
크하하하하하…….
시천세는 마치 광인이라도 된 것처럼 웃고 있었다.
벽 총관은 시천세가 웃음을 그치길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웃음을 그칠 줄 몰랐다.
얼마나 웃었는지 시천세의 눈에는 물기까지 묻어나고 있었다.
“정말…… 정말 이렇게 재미있는 소문은 오랜만에 듣는구나.”
이윽고 웃음을 그친 시천세는 벽 총관을 쳐다보았다.
“하여 마동이 있을 만한 곳을 수색…….”
크하하하하…….
벽 총관이 멈췄던 보고를 이어 가자마자 시천세는 또다시 대소를 터뜨렸다.
“벽 총관…… 벽 총관은 정말로 마동이란 곳이 존재한다고 여기는가?”
“그렇지는 않으나 소문의 진위는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크흐흐흐…….
“마동이라…….”
마동이 있기는 했다.
굳이 찾으려 한다면 산서에 남겨진 사부의 유산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어떤 놈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을 만들어 냈는지는 모르나 아예 없는 얘기도 아니야.”
“예?”
벽 총관은 의아한 표정으로 시천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