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23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23화
제123화. 암계
“그가 협객이라면 분명히 우리 산채를 마음에 들어 할 거예요.”
육선풍도 원하던 바였다.
그는 진심으로 독고일이라는 고수를 자신들의 산채로 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고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깊은 교분을 나누지는 못했으나 그 성정은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채주님의 허락을 받은 것으로 해서 산채로 초대하겠습니다.”
채주 추옥민과 대화를 마친 육선풍은 주변을 둘러보며 비강을 찾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비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용 단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 같은데…….’
“용 단주, 독고 대협은 어디에 있소?”
“저쪽으로 가셨습니다.”
용 단주는 손을 들어 어둠 속을 가리켰다.
육선풍은 용 단주가 일러 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참 동안 어둠 속을 걷던 그는 문득 앞쪽에 비강이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독고…….”
우웅……!
기쁜 마음에 비강을 향해 다가가려던 육선풍은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고는 걸음을 멈췄다.
‘맙소사, 어기상인의 경지를 독고 대협을 통해 보게 될 줄이야. 그것도 운공 중에…….’
육선풍은 너무 놀라 비강의 뒷모습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어기상인의 경지는 이야기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거나 경험한 적 없었다.
때문에 이것이 정말 전설로 회자되는 어기상인의 경지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이야기로 전해 오는 어기상인의 경지는 무형의 기운만으로도 상대방을 죽일 수 있다고 했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육선풍은 떨리는 손을 들어 눈앞의 공간으로 밀어 넣었다.
손바닥 전체에 찌릿찌릿한 감각이 전해져 온다.
‘아직 불완전한 어기상인인가?’
어기상인을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대충 추측을 해 보았다.
육선풍은 조금 더 그것을 경험해 보고 싶어 온몸을 집어넣으려 했다.
허억!
막 걸음을 옮기려던 그는 어둠 속에서 불타오르고 있는 푸른 광망을 마주하고는 저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푸른 광망은 넘치다 못해 흐르고 있었다.
“좋지 않은 짓이오, 육 두령.”
손바닥을 찌르는 감각은 씻은 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비강의 나무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독고 대협. 생전 처음 경험해 보는 경지라 저도 모르게 욕심이 일었던 모양입니다.”
육선풍은 얼른 머리를 조아리며 잘못을 빌었다.
그는 비강을 대하는 자신의 말투가 공대로 변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경지? 무슨 경지를 말하는 것이오?”
“예?”
잠시 의아해하던 육선풍이 오히려 되물었다.
“방…… 금 좋지 않은 짓이라고 했던 것은 무엇 때문에 그런 겁니까?”
“적이 아닌 이상 운공을 할 때는 자리를 피해 줘야 하지 않겠소.”
“아…… 죄송합니다.”
육선풍은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인식을 못 하고 있어.’
“그런데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거요?”
비강의 목소리가 조금 풀리자 육선풍도 굳어 있던 안색을 풀었다.
“채주님께서 독고 대협을 산채로 초대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산채를 한번 구경하고 싶었기에 비강은 바로 허락했다.
“고맙소. 한데 왜 말투가 변한 거요?”
“아…… 제가…… 그랬군요.”
육선풍은 도끼로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 * *
“길을 서둘러야 합니다, 가주.”
가인의 재촉에 악추산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가문까지 하루 거리밖에 안 남았는데 무슨 걱정이란 말이냐? 내가 가문으로 들어가면 당분간 밖으로 나오지 못할 터, 술 석 잔으로 고단함을 미리 달랠 것이다.”
“가문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무림맹이 가주님을 노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흥.
“무림맹 따위가 감히 그런 짓을 벌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런 놈들 일천 명이 몰려와도 능히 맞설 수 있느니라.”
호언장담을 하며 술잔을 연거푸 비운 악추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인 중 하나가 값을 치르고, 악추산은 가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객잔을 나섰다.
남쪽으로 뻗은 관도를 따라 한 시진쯤 걸었을까, 악가의 가인들은 나무 아래 정좌를 하고 앉아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삼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는 검은 턱수염이 텁수룩했는데, 무릎 위에 대도를 올려놓고 있었다.
가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길을 걷던 악추산은 사내를 발견하자마자 코웃음을 쳤다.
분위기가 자못 엄숙한 것이 삼류 무인들이 봤다면 대번에 꼬리를 말고 도망칠 것 같았다.
흥!
“개나 소나 고수 흉내를 내고 있군.”
“가주, 되도록 시비를 삼가셔야 합니다.”
이익…… 후우.
막 성질을 부리려던 악추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강호 경험이 적지 않기에 가인의 충고가 틀리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성질을 누르며 사내 앞을 지나쳐 가던 악추산의 귀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고수인가?”
사사삭…….
사내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악가의 가인들이 검을 잡으며 악추산을 에워쌌다.
“당신은 고수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사내는 여전한 목소리로 악추산을 응시하며 물었다.
“고수라 할 수 있지. 그것도 아주 대단한…….”
악추산이 뒷짐을 지며 대답했다.
“어느 정도의 고수인가?”
“네놈 정도는 단숨에 베어 낼 수 있을 정도지.”
악추산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증명하라.”
“무례한……!”
채챙!
사내의 도발에 가인들은 일제히 검을 빼 들었다.
그러나 사내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악추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자신이 없나 보군.”
하하하하…….
악추산은 배를 잡고 웃어 댔다.
무림에 나온 이래로 이런 말은 처음 들어 보았다.
한데 문득 연비강의 얼굴이 떠오른다.
‘젠장. 왜 자꾸 그놈이 떠오르는 거야?’
북림의 무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망신을 당하고 난 후부터 몇 날 며칠을 뜬눈으로 밤을 새웠었다.
몹시 기분이 상한 악추산은 가인들에게 소리쳤다.
“물러나라!”
“안 됩니다, 가주. 저런 자들을 가주께서 일일이 상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주로서의 명령이다.”
“존…… 명.”
가인들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서 길을 열었다.
길이 열리자 나무 아래 앉아 있던 사내는 몸을 일으켰다.
저벅 저벅…….
사내는 나무 그늘을 벗어나 추산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악가의 추산이 바로 나다.”
악추산은 허리에 꽂혀 있던 검 집을 뽑으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추산을 향해 다가서던 사내가 멈칫하며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악가라…….”
분명 자신의 위명을 듣고 당황했으리라. 악추산은 사내의 표정을 즐기며 왼손으로 가볍게 검집을 잡았다.
스슥―
사내가 갑자기 뒷걸음질을 치려 하자 악추산의 입가에 살소가 떠올랐다.
“늦었다.”
스악……!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집에서 검광이 뿜어져 나오며 앞쪽 공간을 갈랐다.
평소 악추산이 자랑하는 발검술이었다.
발검술은 이 년 전에 비강 앞에서 선보였던 그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날카로웠다.
검에 걸리는 감각이 없자 악추산은 급히 검의 궤적을 비틀었다.
툭.
네 개의 손가락이 공중을 회전하며 피를 뿌렸다.
손으로 전해 오는 감각은 없었지만, 저것은 분명 그 사내의 손가락일 것이다.
악추산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러나 사내는 이미 오 장 앞쪽에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악추산의 시선은 사내의 양손으로 옮겨졌다.
“아…… 니야…….”
으아아악!
사내의 두 손은 멀쩡했다.
“가주!”
가인들이 소리치며 악추산과 사내를 향해 달려갔다.
“나는 동천의 두궁천이오.”
사내는 그 말을 남기고 빠르게 사라져 갔다.
“죽여! 저놈을 죽여!”
“가주, 진정하십시오!”
손가락이 잘린 부위를 헝겊으로 싸맨 가인들은 악추산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의 팔다리를 움켜잡았다.
“놔! 이 새끼들아!”
악추산이 발버둥을 쳤으나 가인들은 꿋꿋하게 그의 손을 헝겊으로 동여맸다.
“죄송합니다. 놓쳤습니다.”
추격에 나섰던 가인들이 돌아와 머리를 조아렸다.
“이 병신 같은 새끼들아!”
* * *
휘이이…….
바람을 가르며 관도를 질주하던 두궁천은 앞쪽에 사람들이 모이자 숲으로 방향을 꺾었다.
‘제법이야. 손목을 자르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손가락밖에 못 잘랐어.’
악추산의 발검술이 빠르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짐작보다 훨씬 더 빨라 대응이 조금 늦었다.
‘팔은 다음에 잘라 주지.’
비록 팔까진 자르지 못했지만 손가락을 잘랐으니 남궁악으로부터 받은 임무는 완수한 셈이었다.
산길을 달리던 두궁천은 산속에 작은 마을이 보이자 그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 * *
용중연은 백계산으로 올라가는 비강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그의 부탁대로 산채를 새로 열려면 이만저만한 준비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상단으로 돌아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집을 지을 목재와 양식을 나르는 것이었다.
되도록 강호에 소문이 퍼져 나가지 않게 하려면 가까운 곳에서 물건들을 전부 구해 운반해야 했다.
‘그분께서 앞날을 위해 나를 부르셨다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구나. 그분께서는 이미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전부 알고 계셨어.’
“잘 부탁합니다, 용 단주님.”
“염려 놓으십시오.”
용중연과 헤어진 비강은 육선풍을 따라 백계산을 올랐다.
백계산으로 오르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았다.
수레가 충분히 오를 정도로 넓게 닦여 있었다.
두 시진을 넘게 오른 끝에 멀리 높게 세워 놓은 목책이 보인다.
아마도 저곳이 백계산의 산채이리라.
“다 왔습니다, 독고 대협.”
둘러친 목책 양쪽으로 망루가 보인다.
비강과 육선풍을 태운 말 두 마리가 거리를 좁혀 오자 목책의 문이 열렸다.
“산채가 맞소?”
산채 안으로 들어선 비강은 수십 채의 초옥들을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곳은 여느 산채와는 많이 달랐다.
산채 안에는 아낙들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거주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는데 표정은 티 없이 맑았다.
껄껄껄…….
“산채 형제들의 가족입니다. 우리 산채에는 의원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위한 글 선생까지 있습니다. 강호 무림을 통틀어도 우리 산채와 같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육선풍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곰 아저씨! 이 아저씨는 누구예요?”
마침 골목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던 아이들 몇 명이 육선풍 곁으로 몰려들며 물었다.
“독고 대협이다. 다른 아이들과 나눠 먹어라.”
육선풍은 품에서 건포 몇 조각을 꺼내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아이들은 좋아라 하며 받아 뛰어가고, 육선풍은 그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산적이 아니라 협객에 가깝군.’
비강은 미소로 육선풍을 지켜보다가 마을 안쪽으로 말을 몰았다.
* * *
두 사람이 산채 안으로 들어와 마을을 구경하고 있을 때, 산채 정상에 자리 잡은 초옥 앞마당에선 채주 추옥민이 정체 모를 초로인과 함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자를 영입할 생각인 모양이로구나.”
“영입을 못 하더라도 적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아요, 사부님.”
초로인은 깊은 눈으로 마을을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하아…….
뭔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는지 초로인의 입에서는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천주께서 사파 놈에게 하북을 맡기시려는 모양이더구나. 그렇다는 것은 이제 강호 일통의 대계를 실행하시기로 마음먹었다는 뜻이다.”
“결국 그렇게 되었군요.”
추옥민의 안색도 그리 좋지 않았다.
“나는 평생 협객을 꿈꾸며 살아왔고, 너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천주의 은혜가 크니 협객으로서 어찌 그 은혜를 저버릴 수 있겠느냐.”
“천주님의 바람대로 감숙을 완전한 동천의 세상으로 만들 것입니다.”
“고맙구나.”
초로인은 연민이 가득한 눈으로 추옥민을 응시했다.
천주 덕분에 무공을 완성할 수 있었다.
결국 자신과 추옥민의 무공은 천주에게서 나온 것이니 어찌 그 은혜에 보답하지 않을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