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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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19화
제119화. 십만대산(3)
십만대산에 들어온 지 벌써 사흘이 지나가고 있었다.
“정말 좋은 곳입니다, 주공.”
담혁수는 웅장하게 서 있는 십만대산을 둘러보며 크게 감탄했다.
굽이굽이 돌고 있는 계곡의 물과 뾰족하게 솟아 있는 봉우리들이 첩첩이 둘러싸인 산중은 사람의 출입까지 거부하고 있었다.
“저곳은 어떻소?”
비강은 손을 들어 산봉우리 아래로 보이는 넓을 평지를 가리켰다.
“아주 좋은 장소입니다. 어느 곳에서도 산 아래가 보이고 오른쪽에는 폭포도 있어, 이만한 장소를 찾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아래쪽으로 몇 개의 관문까지 세운다면 철옹성이 될 거요.”
여러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 있어, 능선의 평지로 오르는 길은 단 한 곳밖에 없었다.
그 길로 통하는 입구를 틀어막는다면 어지간한 고수들이라도 함부로 난입하지 못할 터였다.
“이제 그만 내려갑시다.”
산을 내려와 말 등에 올라탄 두 사람은 빼곡하게 들어찬 나무숲을 통해 십만대산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대여섯 개의 봉우리를 돌고 돌아 십만대산을 벗어나긴 했지만, 들어온 곳과 전혀 다른 곳이 나타났다.
“이거 길을 잃은…… 것 같은데요.”
담혁수는 찬 바람이 불어오는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돌아가 다른 곳으로 나가봅시다.”
두 사람은 다시 말을 몰아 산봉우리로 가득한 십만대산 안으로 움직였다.
“건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내일 안으로 길을 찾지 못한다면 굶어야 합니다.”
“며칠 굶는다고 해서 죽지는 않소.”
담혁수의 걱정을 가볍게 받은 비강은 산봉우리 너머로 넘어가는 해를 응시했다.
“저곳으로 갑시다.”
지는 해를 통해 십만대산으로 들어온 방향을 대강이나마 짐작한 것이다.
* * *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자마자 금세 어둠이 찾아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여전히 말을 몰아 움직이고 있었다.
“담 소협은 원래 고향이 어디요?”
하하…….
“원래 이곳이 아닙니다. 저와 누이, 형은 동쪽에서 넘어왔습니다.”
이미 이들이 자신과 같은 동이족이란 사실은 담노의 얘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원래 비강이 묻고자 하는 것은 고향이 아니라 담노와 만나게 된 사연이었다.
“워낙 어릴 때의 일이라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 중에 하나가 말을 탄 악마들이었습니다. 할아버님의 이야기로는, 마적들이 마을 몇 개를 불태우며 어린아이들을 노예로 잡아가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때 저와 함께 형과 누이를 마적들의 손에서 구했다고 들었습니다. 한데 주공께서는 어떻게 서역까지 넘어가셨습니까.”
“아저씨를 따라다녔소.”
“아저씨라면…… 어느 분을 말씀하시는지요? 주공께서는 다른 가족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내 목숨을 살려 주고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신 분이오.”
“그분의 존함은 어찌 되는지요?”
“일. 독고일이오.”
아저씨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
전에 만났던 그곳에 그대로 계실까?
그분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해 주었어야 했다.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이지.’
* * *
이틀 만에 십만대산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섬서를 향해 말을 몰았다.
“이럇!”
조용히 말을 몰아가던 비강은 갑자기 말의 배를 가볍게 차며 속도를 높였다.
낮은 언덕으로 말을 몰아가는 비강의 뒤를 담혁수가 급하게 쫓아갔다.
따당! 땅! 크아악! 아아악……!
언덕 아래에 있는 낮은 평지에서 지금 한창 학살이 벌어지고 있었다.
학살을 벌이는 자는 전에 만났던 소두령 육선풍이었다.
그의 도끼가 미치는 곳에는 반드시 상대의 머리가 떨어지고 가슴이 갈라졌다.
다른 산적이 열 명이나 더 있었으나 오직 육선풍만이 혈전을 벌이고 있었고, 그를 상대하는 적은 오십 명이 넘었다.
“역시, 대단한 무공입니다. 한데 소두령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자들은 누굴까요?”
“백계산에 산채가 차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곳을 자신들의 영역이라 생각하고 있던 자들이 가만히 앉아 지켜보기만 하지는 않겠지.”
비강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도끼질을 해 대는 육선풍의 무공을 구경하다가, 산적들이 보호하고 있는 상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연이 여러 번 겹치면 필연이라고 하더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공.”
“아는 얼굴이 있어서 한 말이오.”
상인들을 이끌고 있는 자는 강호로 넘어올 때 처음 인연을 맺었던 용 단주였다.
“멈춰라!”
육선풍을 공격하던 자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너처럼 강한 고수가 어찌하여 산적 떼 속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이더냐?”
외팔이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오며 육선풍과 마주했다.
껄껄…….
“상인 털어먹고 사는 도적놈들이 별소리를 다 하네.”
육선풍은 호쾌하게 웃으며 상대의 말을 받았다.
“뚫린 입이라고 말을 함부로 하는구나. 네놈들이 먼저 우리 구역을 침범하지 않았느냐? 네놈이 발바닥을 딛고 서 있는 그곳도 원래 우리가 관리하던 땅이었다.”
낄낄…….
“지랄하고 자빠졌네. 땅에 금 그어 놨냐? 이 새끼야.”
육선풍은 외팔이 사내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으드드득…….
외팔이 사내는 이를 악물며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기만 했다.
“죽기 싫으면 돌아가라, 죽고 싶으면 덤비고.”
육선풍이 도끼를 들어 올리자 외팔이 사내가 뒤로 물러섰다.
“차후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너희들 잘못임을 명심해라. 곧 내 얼굴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 말을 남긴 외팔이 사내는 수하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육선풍은 멀리 사라져 가는 외팔이 사내와 그의 수하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차라리 전부 깨끗하게 쓸어 버릴 걸 그랬나?’
뭔가 몹시 불쾌한 느낌이 찾아들었지만, 애써 떨쳐 버리며 입을 열었다.
“시신을 묻어 주어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상인 측을 보호하고 있던 산적들이 말에서 내려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비강은 한참이나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 머리를 돌렸다.
“나는 할 일이 있으니 담 소협은 담노에게 먼저 돌아가시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주공.”
“내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오.”
담혁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주공. 그럼 먼저 돌아가 할아버님을 모셔 오겠습니다.”
* * *
“용 단주, 상행은 잘되셨소이까?”
용가 상단의 용중연은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얼른 육선풍의 말을 받았다.
“덕분에 잘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껄껄…….
“그 일이 왜 내 덕분이란 말이오? 전부 단주가 잘해서 그런 것이지. 아무튼 무사히 돌아오게 되어 다행이오.”
육선풍은 기분 좋게 웃었으나 용중연의 얼굴에는 어딘가 모르게 그늘이 져 있었다.
용중연의 안색을 알아본 육선풍은 도끼로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용 단주, 나는 돌려서 말하는 걸 싫어하오. 뭔가 근심이 있는 것 같은데 내게 말해 보시오.”
육선풍이 그 말을 해 주기를 기다리기라도 했었다는 듯, 용중연은 바로 말을 꺼냈다.
“두령께선 조금 전의 외팔이 사내를 알고 계시는지요?”
“그런 비겁한 놈의 이름까지 알아서 뭐 하겠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육선풍도 외팔이 사내에 관해 알고 있었다.
아니, 외팔이 사내가 모시고 있는 자에 대해 알고 있었다.
청해공왕.
십팔 년 전부터 청해와 감숙 일대에 흉명을 떨치는 자였다.
세간에 자주 얼굴을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가끔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반드시 죽음이 뒤따랐다.
그의 수하 중에는 고수도 여럿 있다고 알려졌으며, 그중에 바로 아까 그 외팔이 검객이 섞여 있었다.
“순전히 제 짐작이기는 합니다만, 청해공왕은 백계산을 공격하려 마음먹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흐흠…….
용 단주의 이야기를 들은 육선풍도 짚이는 것이 있는지 신중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놈들은 한곳에 자리를 잡아 활동하는 도적들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떠돌며 약탈을 하기에 특별히 관리하는 구역이 없었다.
“하면 용 단주께서는 그놈들이 일부러 시비 걸며, 우릴 공격할 명분을 얻으려 했다는 것이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백계산에 산채가 자리 잡은 지 아직 일 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한데 백계산이 빠르게 영역을 넓혀 가니 그자의 심기가 많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약탈할 것이 줄어들고, 피해가 발생하니까요.”
흥!
“아무리 그래도 청해공왕은 우리 채주님을 어쩌지 못할 거요.”
육선풍은 별일 아니라는 듯 바로 걱정을 털어 버렸으나, 채주란 자를 만나 보지 못한 용 단주의 안색은 펴지지 않았다.
용중연과 말 머리를 나란히 해 움직이던 육선풍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혹시 단주께서는 강호 무림에 대해 잘 알고 있소?”
“남들보다는 조금 더 알고 있을 겁니다. 왜 그걸 물으시는지요?”
“아, 얼마 전에 말이오.”
육선풍은 말을 하다 말고 쑥스러워하며 다시 도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얼마 전에 젊은 강호인 둘을 만났는데, 그중에 한 명이 뭐랄까…… 산중의 용맹한 호랑이를 닮았다고나 할까, 아니면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는 용을 본 듯하다고나 할까. 하여간 그런 굉장한 느낌을 받은 젊은 강호인은 처음이었소.”
“이름을 알고 계시는지요?”
“독고일이라 하였소.”
용중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그렇소. 혹시 아는 사람이오?”
허허…….
용중연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역시, 이 사람도 그 젊은 강호인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강호의 숨은 고수이거나 가명일 것이다.
“겉모습이 어땠냐 하면…… 어……? 바로 저렇게 생겼소.”
말을 몰아가던 육선풍은 갑자기 도끼를 들어 앞쪽을 가리켰다.
바람을 피할 만한 절벽 아래에 젊은이가 불을 피우고 앉아 있었는데, 바로 비강이었다.
“오늘은 저곳에서 쉬었다가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한다.”
용 단주는 비강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상인들에게 노숙을 명령하고는 급하게 말을 몰았다.
용중연과 육선풍이 급하게 말을 몰아 다가오자, 불을 피우고 앉아 있던 비강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입니다, 용 단주님.”
“오랜만입니다, 연…… 아니, 독고 소협.”
용중연과 인사를 나눈 비강은 육선풍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또 보게 되었소, 육 대협.”
껄껄껄…….
“그러게 말이오. 어찌하여 혼자 있는 것이오? 같이 다니던 분은 어디 가셨소?”
육선풍은 다시 비강을 만나게 된 것을 무척 기뻐했다.
“일이 있어 먼저 떠났소.”
“그렇구려. 나는 용 단주가 서장으로 넘어갈 때 처음으로 교분을 나누었소만, 독고 소협은 전부터 용 단주와 안면이 있었던 모양이오.”
“일 때문에 몇 번 뵈었습니다, 육 대협.”
용 단주는 서둘러 육선풍의 말을 끊어 버렸다.
육선풍은 거칠어 보이는 겉모습이나 말투와는 달리 감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육선풍도 용 단주와 독고일이라는 젊은 강호인 사이에 뭔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자신에겐 보이지 않는 벽이 쳐져 있는 것 같아 슬쩍 자리를 피해 주었다.
“그럼 말씀을 나누시오. 나는 다른 곳을 돌아보고 올 터이니.”
눈치 빠른 육선풍 덕분에 둘만 남게 되자 비강은 자리를 권했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비강과 용 단주가 마주 앉았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용중연이었다.
“그분을 만나 보셨는지요?”
용 단주는 아저씨와의 관계를 숨기지 않았다.
비강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 단주께서는 그분을 전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알지 못하였습니다. 요녕성에서 그분을 뵙고 난 후에야 비로소 강호에 신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몸이 아니었다.
무언가 자신을 숲으로 강하게 잡아끌었고, 의지와 상관없이 그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잠시 말을 끊은 용중연은 비강의 얼굴을 응시했다.
“또한 연 대협께서 바로 그분의 가족임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