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18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18화
제118화. 십만대산(2)
흐음…….
“총관, 내가 사흘 후부터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일이 있어. 올라오는 보고는 총관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해.”
“얼마나 자리를 비우실 예정이신지요?”
“닷새 정도. 서패에 다녀올 생각이야.”
깜짝 놀란 벽 총관은 자신도 모르게 시천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잠시 중지했던 일을 이제 시작해야지. 내가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은 비밀로 하게.”
멈췄던 강호 일통의 대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벽 총관은 뛰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서패가 아닌 남선부터 시작하실 거라 짐작했습니다.”
“총관의 짐작이 맞아.”
“예?”
시천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목표는 남선이나 결과는 서패가 될지도 모르지. 어쨌든 자네처럼 뛰어난 사람이 필요한데, 찾아주겠나?”
벽 총관은 대번에 시천세의 말을 알아들었다.
남선이나 서패를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 맡기려는 것이다.
벽 총관의 짐작을 확인이라도 하듯 시천세가 말을 이었다.
“벽 총관처럼 내부 일을 깔끔하게 처리해 나갈 인재가 필요해.”
“하면 강호를 일통한 후에도 지금처럼 네 곳으로 나누어 다스릴 생각이신지요?”
“강호를 일통하면 한곳으로 힘을 모아야겠지.”
크크…… 크하하하하…….
시천세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어 젖혔다.
“무림맹 놈들이 나를 위해 그 모든 것을 준비해 줄 거야. 그놈들 스스로 말이지.”
주공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웃음을 그친 시천세는 잠시 벽 총관을 응시했다.
“내 생각을 헤아려 보게. 그럼 총관이 나이고, 내가 총관일 것이니.”
벽 총관은 감격해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다.
신하가 주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믿음이었다.
“감읍할…… 따름입니다, 주공.”
“나가 봐.”
벽 총관은 다시 한번 깊숙이 허리를 숙이고는 방을 나섰다.
‘내가 주공이고 주공이 나라…… 좋군.’
* * *
“주공, 상황이 아주 요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그냥 구경이나 합시다.”
비강과 담혁수는 말 위에 앉아, 상인과 산적들의 실랑이를 지켜보았다.
“나리, 십 리만이라도 호위를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보쇼, 상인 양반. 사십 리를 호위해 주었으면 됐지 무얼 더 해 달라는 거요?”
“감숙성에 도적들이 많다는 것은 대협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 목숨까지 우습게 아는 자들입니다.”
허리는 한 아름이 넘고, 팔 척이 넘는 장신에, 호랑이 같은 뻣뻣한 수염을 하고 있는 산적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상단의 단주를 노려보았다.
“철전 닷 푼에 너무 많이 부려 먹는 거 아니요?”
“삼십 리를 호위해 주신다면 은자 한 냥을 더 드리겠습니다.”
십 리에서 삼십 리까지 순식간에 거리를 늘리는 것을 보면 확실히 상인은 약삭빨랐다.
끄응…….
수염이 덥수룩하고 덩치가 산만 한 산적이 커다란 도끼로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채주님께 혼이 날 텐데…….”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협.”
“뭐…… 좋소. 까짓거 한번 가 봅시다.”
산적의 허락이 떨어지자 상단의 단주와 상인들은 크게 반색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달그락…… 달그락…….
멈췄던 수레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산적들도 말을 몰아 행렬의 앞과 뒤에서 호위했다.
산적은 전부 열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말을 타고 있었다.
소두령쯤 되어 보이는 덩치 큰 산적은 뒤쪽으로 말을 몰아 비강 옆으로 다가왔다.
“보아하니 강호인인 것 같은데, 어디로 향하는 거요?”
“특별한 목적지 없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고 있소.”
“그렇소?”
말은 그렇게 받았지만 그는 비강의 대답을 믿지 않았다.
값비싸 보이는 검은 털옷을 걸치고 있는 비강과 담혁수는 언뜻 보기에도 귀한 가문의 가인들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쉼 없이 움직이던 행렬은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삭풍을 피할 만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이미 여러 해 이곳을 오간 그들이었기에 밤을 보낼 만한 장소를 잘 알고 있었다.
높은 언덕이 양쪽으로 있어 바람을 피할 수 있고 물도 흐르는 곳에 도착한 그들은 먼저 나뭇가지들을 긁어모았다.
불을 피우고 식사 준비가 한창일 때, 덩치가 산만 한 소두령은 문득 수하 산적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눈짓의 의미를 알아차린 산적들 서너 명이 밖으로 나가고, 곧 그들이 사라진 방향에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상단입니다.”
아마도 또 다른 상단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밖으로 나간 산적들이 되돌아오고 잠시 후, 십여 명의 상인이 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선객들이 계셨네. 반갑소이다.”
오십 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말에서 내려 먼저 도착한 단주에게 인사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호가 상단입니다.”
“이번에 서역으로 처음 상행을 하게 된 하북의 양가 상단입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정한 하북의 양가 상단은 호위로 있는 산적들에게도 자신들을 소개했다.
수염이 덥수룩한 소두령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았다.
“대협,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 양가 상단 역시 호위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호가 상단의 호위를 맡고 있어 곤란하오. 조금 더 가다 보면 우리 산채 식구들이 기다릴 것이니, 그들에게 부탁해 보시오.”
“고맙습니다.”
비강은 불을 피워 놓고 건포를 씹으며 저들이 하는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녹림 소두령에게 관심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주공.”
“무공이 제법 뛰어난 자요. 꽤 먼 곳에 있는 상단의 기척을 알아챈 것을 보면. 저런 자가 어찌 산채의 소두령으로 있는 것인지 모르겠소.”
밤은 깊어 가고, 상인들은 바닥에 담요를 깔고 몸을 뉘었다.
코 고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고, 그 소리에 잠을 미룬 비강은 몸을 일으켜 바람이 불고 있는 언덕 너머로 향했다.
언덕 너머에서 경계를 서던 산적 둘이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잠이 오지 않는 거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비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생김새와는 어울리지 않게 무척 예민한 사람이군.’
비강이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걸어 나올 때, 소두령도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따라왔던 것이다.
“아직 이름조차 묻지 않았구려. 나는 백계산의 소두령인 육선풍이오.”
“일, 독고일이오. 가문은 없소.”
그렇게 아저씨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을 대신한 비강은 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칼바람이 얼굴을 때렸으나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 비강에게 관심이라도 생겼는지 육선풍도 조금 떨어진 곳에 나란히 앉으며 술병을 불쑥 내밀었다.
“드시겠소. 추운 밤에는 이만한 것도 없소.”
“고맙소.”
비강은 사양하지 않고 술병을 잡아 술을 들이켰다.
독한 화주가 흘러 넘어가며 목과 가슴을 데웠다.
비강에게 술병을 돌려받은 육선풍도 벌컥거리며 술을 마셨다.
“예전부터 이 지역은 마적 떼와 도둑 떼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오. 북림이 있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소. 한데 워낙 척박한 곳이라 그런지 그곳에서도 신경을 쓰지 않았소.”
비강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북림이 이곳에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은 이곳이 황곡의 영역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천세의 영역이었기에 내버려 두었으리라고, 비강은 그리 생각했다.
아니,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은 풍천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비강은 조용히 소두령의 말을 이어 들었다.
“이곳은 땅이 엄청나게 넓은 곳이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나조차도 아직 모르는 곳이 많을 정도이니 말이오. 때문에 예전부터 강호에서 쫓기던 자들이 많이 숨어들었소.”
껄껄…….
“처음 본 당신에게 내가 왜 이런 말까지 하는지 모르겠소.”
육선풍은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처음부터 눈에 띄었다.
말을 타고 있는 이 젊은 강호인을 보자마자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산중 바위 위에 홀로 앉아 있는 용맹한 호랑이를 보는 듯했다.
그래서 이 젊은 강호인과 대화라도 나누고 싶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니 묻겠소. 혹시 물이 흐르는 경치 좋은 산을 알고 있소?”
“그런 산이 어디 한두 군데이겠소만, 여기서 십여 리 정도 더 가다가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수없이 많은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소. 얼마나 높고 광활한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요. 어지간히 길눈이 밝은 사람이라도 그곳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기 십상이라오.”
“그 산 이름이 뭐요?”
“십만 개의 봉우리가 있다하여 십만대산이라 부르는데, 사실 봉우리는 일백 개도 되지 않소. 하지만 워낙 깊고 험해 그런 이름이 붙었소.”
“고맙소.”
지난날 서역에서 중원으로 넘어올 때 수많은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을 지나쳤었다.
그곳이 십만대산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근거지로 삼기에 아주 적당한 곳이었다.
“그만 쉬시오.”
소두령은 남은 술을 비강에게 넘겨주고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육 대협도 편히 쉬시오.”
* * *
천목자 제갈곤은 낯선 사내들과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중 오십 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한 사람은 지난날 무림에서 혁혁한 협명을 떨쳤었다.
청로도(淸露刀) 장룡.
제갈곤으로서도 일찍이 들어 본 별호와 이름이었다.
―장룡은 푸르른 소나무에서 떨어지는 새벽이슬과 같아, 탁하고 더러운 것들이 범접치 못하리라.
실로 한 사람을 위한 칭송으로는 과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장룡은 충분히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장룡의 일도를 제대로 받아 낸 사마의 무리가 없었으나, 그는 절대로 살인을 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군자도라 불리기도 했었다.
또한 장룡은 구파일방이나 육대세가의 제자는 아니었으나, 그를 흠모하는 자들이 많아 깊은 교분을 맺고 있었다.
“청로도께서 은거를 깨고 우리 무림맹에 합류하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우리 무림맹으로서는 이만저만한 홍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갈곤의 인사에 장룡도 정중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지난날 저와 교분을 나누었던 벗들이 사패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제 무림맹이 다시 일어섰으니, 어찌 한 손 보태 원한을 갚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청로도의 의기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좋은 말로 인사를 나눈 제갈곤은 청로도 장룡과 나란히 앉아 있는 사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분은 저와 오랜 교분을 나누고 있는 벗이올시다. 무공은 물론이고 식견이 남달라 일찍이 황곡의 발호를 짐작할 정도였습니다.”
장룡의 소개에 제갈곤은 정중하게 상대방의 이름을 물었다.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는지요?”
“하찮은 이름을 밝혀 귀를 어지럽게 할까 두렵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지금 무림맹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해 있어 이름난 선비와 협객분들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부디 강호의 협의지사가 되어 주십시오.”
간곡한 제갈곤의 요청에 사내는 마지못한 듯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국원이라 합니다.”
하하…….
사내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곁에 앉아 있던 장룡이 환하게 웃었다.
“저는 이 친구를 마안자(魔眼子)라 부르고 있습니다. 세상을 꿰뚫어 보는 눈이 실로 뛰어나니 무림맹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두 분으로 인해 우리 무림맹은 천군만마를 얻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좋은 말로 두 사람을 맞이한 제갈곤은 직접 접객당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만큼 그들의 합류가 기꺼웠기 때문이었다.
“편히 쉬십시오. 곧 맹주를 만나 두 분이 합류했음을 고하겠습니다.”
그렇게 접객당으로 두 사람을 들여보낸 제갈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괜한 의심인가. 두고 보면 알겠지.’
마안자라는 자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청로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패가 강호 무림으로 쳐들어왔을 때, 홀연히 모습을 감췄던 이였다.
흐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