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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117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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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17화

제117화. 십만대산(1)

 

 

 

강물이 들어오는 동굴 안에 내려선 시천세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박살이 난 바윗덩어리였다.

저벅…… 저벅…….

시천세는 음미라도 하듯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여기저기 부서진 계단과 바위벽.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시천세의 눈에 붉게 변한 계단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피가 흘러내린 자국이었다.

입구에 다다른 시천세는 잠시 그곳을 살피다가 발을 내디뎠다.

세상이 순식간에 변하며 병풍처럼 둘러선 절벽 아래로 몇 채의 전각들이 보였다.

전각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풍파를 견딘 탓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오셨습니까? 주공.”

시천세를 가장 먼저 맞이한 황옥은 바로 무릎을 꿇었다.

뒤이어 전각 안에서 그의 동료들이 달려 나와 무릎을 꿇었다.

“몇 명이나 죽었느냐?”

“다섯입니다, 주공. 이 황옥을 죽여 주십시오. 전부 저의 불찰입니다.”

“수천의 추격자를 따돌린 놈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했어야 했다.”

쿵! 쿵! 쿵……!

황옥은 바닥에 머리를 찍었다.

이마가 찢어지며 피가 흘렀다.

“죽여 주십시오.”

시천세는 조용히 황옥을 내려다보다가 전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시신은 어찌하였느냐?”

“형체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라 화장을 했습니다.”

“놈들의 행적은?”

“산을 넘어갔는데 다섯 방향으로 흩어졌다가 강 상류에서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종적을 놓쳤습니다.”

“밥은 먹었느냐?”

“…….”

“너희들과 내가 먹을 밥과 술을 차려오라.”

황옥이 먼저 몸을 일으켜 움직이고, 동료들도 뒤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시천세는 여러 전각들을 돌아보고 절벽 중앙으로 나 있는 동굴 입구로 향했다.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가던 그의 눈앞에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와 바윗덩어리가 보였다.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던 거냐? 연비강.”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시천세는 몸을 돌렸다.

동굴 밖으로 나와 낡은 전각들과 동굴을 둘러보던 그는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혈마…….”

혈마는 사부의 또 다른 별호였다.

시천세는 다시 몸을 돌려 동굴로 들어갔다.

이곳에 사부의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석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사부.”

크크크…… 크하하하…….

사부의 흔적을 느끼던 시천세는 갑자기 웃음을 토해 냈다.

“과연, 과연 사부는 대단한 분이오.”

사부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혈마에 대해 조사했었다.

혈마는 산서에서 발원해 강호 무림을 제패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렀기 때문인지, 아무도 발원지를 알지 못했다.

“평요의 태청산이 사부의 시작이었구려. 이곳에서 사부는 신이 되었소.”

시천세는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비강이 그랬던 것처럼 절벽 끝으로 걸어가 아래로 흐르는 강물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강이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시천세는 그렇게 서 있었다.

 

* * *

 

“주공, 식사 준비가 끝이 났습니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시천세의 등 뒤로 우화봉이 나타나 머리를 조아렸다.

“가자.”

우화봉은 낡은 식당으로 시천세를 안내했다.

식당은 꽤 넓었으나 몹시 허름했다.

다만 식탁은 아주 깨끗했다.

식탁 위에는 밥과 탕, 요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시천세가 윗자리에 자리 잡고 앉자, 황옥과 동료들이 자리에 앉았다.

“술을 채워라.”

황옥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시천세를 시작으로 모든 동료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술을 채우고 자리에 앉은 황옥이 술잔을 들어 선창했다.

“형제들의 명복을 빌며.”

“형제들의 명복을 빌며.”

시천세를 시작으로 모두가 단번에 술잔을 비워 냈다.

탁.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시천세가 입을 열었다.

“연비강의 추격은 중지한다.”

“주…… 공.”

황옥과 동료들이 모두 놀랐다.

지금까지 시천세는 진행하던 일을 포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백리혈 연비강은 자신의 동료들을 죽인 원수가 아닌가.

“중지라고 했다. 그놈은 언젠가 다시 강호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는 너희들이 앞장서 죽여라.”

“존명.”

“그리고 이곳에 다섯 명이 상주해 전각들을 수리하고 동굴을 원상태로 복구하도록 하라. 은자는 얼마가 들어가든 상관없다. 다만 이곳에서 일하게 될 자들은 입이 무거워야 할 것이다.”

“존명.”

지시를 끝낸 시천세가 젓가락을 들었다.

그에 맞춰 황옥과 동료들도 식사를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계획을 조금 더 앞당길 수밖에. 그놈들을 조금 더 살게 해 주고 싶었는데.’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시천세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다.

 

* * *

 

가죽으로 싼 창을 어깨에 걸친 젊은 사내가 느린 걸음으로 산을 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허리에 검을 찬 젊은 사내가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이 산을 넘어가면 섬서 북쪽이 나올 거요.”

“그곳에 적당한 장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주공.”

“일 년이 걸려서라도 담노가 안전하게 지낼 만한 장소를 찾아야 하오.”

“당연하지요. 할아버님께서 사실 곳인데.”

산을 넘어가던 젊은 사내는 갑자기 방향을 꺾어 깊은 산속으로 통하는 소로로 접어들었다.

“산을 넘으려면 이곳으로 가야 합니다, 주공.”

“알고 있소. 말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가까운 곳에 목장이 있는 모양이오. 말 두 마리만 사서 타고 갑시다.”

“예.”

 

산속으로 들어가자 건초 더미가 산처럼 쌓인 목장이 나타났다.

검을 찬 사내, 담혁수는 좋은 말 두 필을 골라 값을 치르고 말 등에 올라탔다.

사실 그는 수레를 몰아 본 경험은 있으나, 직접 말을 타고 몰아 본 경험이 없었다.

“말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맞추시오. 며칠만 지나면 적응이 될 거요.”

어색해하는 담혁수를 돌아보며 비강이 빙긋 웃었다.

목장을 나온 두 사람을 천천히 말을 몰아 산을 넘었다.

“주공께서는 말을 타는 것을 아주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오.”

산을 다 내려갔을 때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저곳에서 묵어야 할 것 같소. 한겨울에 말먹이를 구할 곳은 객잔이나 농가밖에 없으니.”

 

두 사람은 산 아래로부터 피어오르는 연기를 좇아 객잔으로 들어갔다.

객잔 입구에서부터 수레와 말들이 가득했다.

“상인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서역을 다녀오는 상인들일 거요.”

그러고 보니 서역에서 넘어오며 용 단주를 만났었다.

그 사람은 지금쯤 상인들과 함께 서역에 있을지도 모른다.

“죄송합니다, 손님. 앉아서 식사하실 곳도, 묵으실 방도 없습니다.”

젊은 점소이가 달려 나와 머리를 꾸벅 숙였다.

“그럼 말먹이만 대 주시오. 그리고 혹시 이곳에서 생고기와 장작을 구할 수 있소?”

“그 정도는 가능합니다.”

“부탁하겠소.”

비강은 점소이의 손에 수고비를 쥐여 주었다.

점소이가 좋아라 하며 안으로 달려 들어가고 난 후, 비강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먼저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불부터 피워야겠소.”

“알겠습니다, 주공.”

두 사람은 객잔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우자 점소이가 생고기와 함께 장작을 한 아름 가져왔다.

“은자 한 냥이오. 거스름돈은 필요 없으니 알아서 하시오.”

“정말 감사합니다.”

젊은 점소이는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숙였다.

“저 점소이에게 너무 잘 대해 주시는 게 아닙니까, 주공.”

“두고 보시오, 곧 그 값을 할 터이니. 안으로 발조차 들이지 못할 정도로 바쁜 객잔이 아니오.”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고기를 끼우고 불에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점소이는 술 두 병과 이가 나간 술잔 두 개를 내왔다.

“값싼 화주밖에 구하지 못했지만 성의로 봐주십시오.”

“고맙소이다.”

비강은 술병과 술잔을 받아 들었다.

젊은 점소이가 물러가고 난 후 비강이 웃으며 말했다.

“아마 이 화주 두 병은 저 점소이가 자신이 먹으려고 숨겨 두었던 것일 터요.”

하하…….

비강의 말에 담혁수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나 젊은 점소이의 행동은 비강의 예측을 벗어나고 있었다.

다시 모습을 보인 그는 아주 낡은 담요 두 채를 내밀었다.

“많이 낡기는 했지만, 추운 겨울밤을 나기에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 맙소.”

비강은 전낭에서 다시 은자 한 냥을 꺼내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대협.”

헤죽헤죽 웃으며 점소이가 물러가는 모습을 보며 담혁수는 다시 쿡쿡 숨을 죽여 웃었다.

“주공께서 당하셨습니다.”

“아주 약아빠진 놈이오.”

 

어둠은 깊어 가고, 뒤늦게 도착한 상인들은 방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다고 위험한 밤길을 달릴 수 없어 상인들은 비강과 담혁수가 그랬던 것처럼 적당한 장소를 찾아 자리를 마련했다.

수레에서 술동이가 내려지고 얼어붙은 고기도 솥에 삶아졌다.

비강과 담혁수는 그들을 구경하며 고기와 술잔을 나누었다.

“어이구, 호 단주. 이곳에서 보게 되는구려.”

“유 단주 아니시오? 반갑소이다.”

밤이 깊어 갈수록 상인들은 점점 더 몰려들었다.

객잔 주변은 말 울음소리와 상인들이 떠드는 소리로 가득 찼다.

“어디서 오는 길이오?”

“서역에서 물건을 들여오는 중이오.”

“그렇소? 나는 차를 거래하기 위해 서역으로 넘어가는 길이오.”

“그 소식 들으셨소?”

“어서 말해 보시오.”

“섬서 북쪽에 큰 산채가 들어섰소. 상인들을 상대로 통행세를 받고 있는데 세력을 급격하게 불려 가고 있는 중이오.”

“은자가 생기는 곳에 항상 그런 것들이 끼어들기 마련이 아니겠소.”

비강과 담혁수는 두 상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말이오. 산채의 주인이 여인이라는 소문이 있소. 그것도 젊은 여인인데 아주 대단한 호걸이라는 거요. 우리도 그 지역을 지날 때 산적들이 나타났는데 일인당 철전 다섯 닢만 내고 통과했소. 그리고 거의 삼십 리가량 우리 상인들을 호위까지 해 주더구려.”

허어…….

“세상에 그런 산적들이 다 있단 말이오?”

“그러니 호걸이라 부르고 있는 게 아니겠소.”

상인들은 그 대화를 끝으로 여러 가지 거래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주공께서는 그 산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신경 쓰고 싶지 않소.”

“하지만 산채의 두목이 누구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술 한 병씩을 비운 두 사람은 누더기 같은 담요를 바닥에 깔고 누웠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왔다.

담혁수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이미 비강은 세안까지 깨끗이 끝낸 상태였다.

“언제 일어나셨습니까? 주공.”

“반 시진 정도 되었소.”

뒤늦게 우물물로 세안을 끝낸 담혁수는 건육으로 배를 채우고 말에 올랐다.

두 사람이 말을 타고 떠나자 젊은 점소이가 황급히 달려와 누더기 같은 담요를 챙겼다.

“저런 손님들만 만난다면 금세 부자가 될 텐데.”

 

* * *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지? 아, 하오문도 하나를 얻었으니 소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군.”

약추완을 내려다보는 시천세의 눈길은 서늘하다 못해 얼음장 같은 추위마저 느껴졌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야지. 그렇지 않은가? 총관.”

시천세의 물음에 곁에 서 있던 벽 총관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부천주께서는 우리 중천에 반드시 필요한 분입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약추완은 극심한 모욕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끌끌…….

그런 그를 내려다보는 시천세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상대가 상대이니 한 번만 용서해 주지. 나가 봐.”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어디서 개가 짖는 모양이군.”

약추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방을 나가고 난 후, 벽 총관은 의자에 앉았다.

“너무 심한 모욕이었습니다, 주공.”

“개를 개라 부르는데 그게 무슨 모욕이란 말인가? 나는 저자를 나의 개로 부려 먹기 위해 살려 준 것이야. 말 잘 듣는 개.”

벽 총관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대충 소문을 들으니 벽 총관의 누이가 제법 능력이 있다고 하던데.”

“아직 모자람이 많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사제가 제자로 받아들일 정도면 충분히 그 가능성을 보았을 것인데. 이번에 일백 명이 넘는 수하들까지 끌고 들어왔으니 적당한 직책을 만들어 줘야겠지. 총관이 독립적인 조직을 만들어 누이를 수장으로 앉혀.”

“감사합니다, 주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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