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15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15화
제115화. 무신의 유산(3)
동굴로 들어온 지 벌써 나흘이 지났다.
담노의 걱정에도 비강은 절대 동굴을 나가지 않았다.
“정말 미치겠군.”
비강은 암각화를 두 손으로 쓸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저씨, 도대체 제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겁니까?”
비강은 암각화에 등을 기대며 망연히 동굴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동굴 천정을 쳐다보던 비강의 시선은 멀리 빛이 들어오는 입구로 돌려졌다.
한참이나 동굴 입구를 바라보던 비강은 문득 빛이 들어오는 입구가 반으로 갈라지는 착시를 발견했다.
흐릿했던 눈빛에 광채가 일고 광채는 푸른 광망을 뿜어냈다.
“파천세…….”
오래전에 아저씨가 손으로 한 번 보여 준 바로 그 무공이었다.
비강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벅…… 저벅…….
동굴 입구로 향하는 비강의 시선은 천정으로 고정되었다.
동굴 천정은 요철이 있는 부분마다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는 선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선은 동굴 입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동굴 입구에 다다른 비강은 다시 몸을 돌려 암각화를 향해 걸었다.
암각화를 마주하고 몸을 돌리자 환한 빛이 들어오는 입구가 보인다.
입구 위에 그어져 있는 가는 선에 정신을 집중하니 환한 빛이 반으로 갈라진다.
갈라진 입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래의 환한 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스르르…….
비강은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천천히 뽑았다.
* * *
“동문이가 약추완의 수하로 들어간 모양이더구나. 차라리 그놈에게는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
하오문주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우동문은 하오문의 기재였다.
하오문주는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고, 장차 하오문을 물려줄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백리혈의 추격에 책임자로 임명해 내보냈던 것이다.
“혹시 아느냐. 중천에서 공을 세우면 우리 하오문이 빛을 보게…….”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군요, 문주님. 동문은 절대로 우리 하오문을 위해 일하지 않을 거예요.”
“경주야, 동문은 너를 마음에 두고 있어 쉽게 하오문을 저버리지 않을 게다.”
“아니요. 제가 마음에 없어요.”
장경주의 대답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아니, 차가움을 넘어 살기까지 흘렀다.
“동문이 비록 한 팔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빠른 시간 안에 원래의 무공을 되찾을 게다.”
하아.
“문주님, 동문이 기재라 하지만 그를 능가하는 기재는 강호에도 많아요. 그리고 이제는 하오문의 멸문을 걱정해야 할 거예요.”
장경주의 냉철한 분석에 하오문주는 눈을 감았다.
맞다.
아무리 부정을 해 봐도 지금은 하오문의 멸문을 걱정해야 할 때였다.
사실 백리혈의 추격은 도박이었다.
그를 상대할 만한 고수가 하오문에는 없기 때문이었다.
동문이 비록 고수라 하지만 백리혈에 비하면 모자람이 많았다.
그래도 백리혈의 추격에 성공해 그의 목을 얻게 된다면 하오문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진다.
하오문주는 백리혈이 이번에 반드시 목을 잃을 것이라 생각했다.
중천과 무림맹이 동원되고, 거기다 수많은 낭인들까지 백리혈을 잡기 위해 몰려갔다.
거기다가 하오문의 탄탄한 정보력이 뒷받침되니 백리혈은 틀림없이 목을 잃어야 했다.
백리혈이 도망칠 곳은 남선밖에 없었다.
동천과 서패는 벌써부터 중천에 협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백리혈은 남선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하나 남은 활로를 스스로 걷어찬 것이다.
때문에 이 도박에 어느 정도 자신감까지 생겼었다.
‘백리혈이 그렇게나 강할 줄이야. 또한 우리들이 모르는 조직의 도움까지 받고 있어.’
조직의 도움이 없었다면 하북에서 이렇게 쉽게 빠져나갈 리 없었다.
“너는…… 백리혈의 칼날이 우리 하오문을 향할 것이라 생각하느냐? 그래도 너는 그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지 않았느냐?”
“이미 그 도움의 보답은 충분히 받았어요. 이제 남은 것은 복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연 대협은 받은 것은 분명히 돌려주는 성격이에요. 그것이 은혜이든 아니면 복수이든, 그 상대가 비록 서로 잘 아는 사이라 해도 말이에요. 이제 저는 그만 하남으로 돌아갔으면 해요.”
하오문주는 차갑게 자신을 대하는 장경주가 무척 섭섭했다.
단둘이 마주하고 있음에도 아버지가 아닌 문주라 부르고 있었다.
“나는 하오문의 문주로서 어떻게든 문을 보살필 것이고 보호할 것이다. 그러니 너도 하오문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구나.”
“저는 하오문을 보호하기 위해 전부터 몇 번이나 말씀을 드렸어요. 절대로 연 대협에게 칼을 겨누지 말라고요. 문주님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도 저는 하남으로 돌아갈 거예요.”
장경주는 찬바람까지 일으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남에 있는 하오문 지부는 우동문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새로운 거처를 정해야 한다.
우동문이 모르는 새로운 거처를.
* * *
검신 남궁악은 눈을 가늘게 떴다.
“너는 백리혈이 언제 빠져나갔다고 생각하느냐?”
“산서에서 종적을 감춘 이후부터는 백리혈이 아닌 다른 자들이었습니다.”
두궁천은 공손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럼, 이후에는 어떻게 일이 진행되겠느냐?”
“결국 백리혈에 대한 추격은 포기하게 될 겁니다.”
하하하…….
“역시, 너도 그렇게 보고 있느냐. 하나 그 생각만은 틀렸다. 내가 알고 있는 사형은 한번 마음먹은 일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지. 추격은 계속될 거다.”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인 남궁악은 서랍을 열어 황금으로 된 단검을 꺼냈다.
그 단검은 두궁천이 남궁악에게 맡겨 놓은 사련의 련주지령이었다.
“악가의 애송이 놈이 감히 우리 동천의 죄 없는 양민 하나를 죽였으니,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겠지.”
“괜찮겠는지요. 중천의 천주가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사형은 절대로 화내지 않을 거다. 그 애송이 놈의 팔을 하나 잘라 올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궁천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다른 놈들은 건드리지 말고 그놈의 팔만 잘라 와. 그리고 이건 이제 돌려주마.”
사련의 련주지령은 사련의 모든 고수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두궁천은 련주지령에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이미 천주께 제 목숨을 맡겼습니다. 그것은 이제 제 것이 아닙니다.”
“네 충성심은 알았으니 그만 가져가. 이제 네게 하북을 맡길 터이니 한번 세력을 크게 일으켜라.”
“존명.”
그제야 두궁천은 단검을 거둬들였다.
천주는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그 일을 위해서 전면에서 싸워 줄 아주 거칠고 잔인한 무인들이 필요했다.
중천이 구파일방을 거느리고 있으니 동천은 그에 맞설 사련을 휘하에 둔다.
“숫자도 중요하지만 질에 중점을 둬라. 백리혈은 홀로 수천의 무인들이 포위하고 있는 전장을 헤쳐 나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백리혈은 저의 원수이니 반드시 그자를 제 손으로 베어 천주께 그자의 목을 바치겠습니다.”
“기대하지.”
두궁천을 내보낸 남궁악은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 위에 세워져 있는 경(鏡)을 향해 다가갔다.
잠시 경 속에 자신을 마주하던 그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자 눈가에 주름이 하나 더 생겨났다.
“세월을 거스르는 것도 좋은 것만은 아니군.”
* * *
흉내조차 내지 못했다.
아저씨는 일수로 공간을 완전히 갈랐었다.
스악―!
일 검은 환한 빛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수련을 이어 나갈수록 검이 무겁게 느껴지고, 심지어 팔도 무거워졌다.
검을 들고 있는 팔뿐만이 아니라 온몸에 바위를 올려놓은 것 같았다.
후…….
허연 입김을 뿜어낸 비강은 잠시 휴식을 취할 요량으로 검을 바닥에 꽂았다.
쩌적.
바위로 이루어진 바닥을 파고들어 간 검신에 의해 바위 위로 기다란 실금이 퍼져 나갔다.
환한 빛이 들어오고 있는 입구를 향해 걸어간 비강은 낮은 탄성을 자아냈다.
아아…….
어느새 동굴 밖은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눈이 오는지도 모르고 있었군.”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 위로 첫발을 내디디려던 비강은 문득 눈 위에 살포시 발을 올려놓았다.
스윽…… 스윽…….
눈 위를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듯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
해가 뜨면 눈이 녹아 흉물스럽게 변할 것이나 지금은 이 모양 이대로 남겨 두고 싶었다.
절벽 끝까지 걸어간 비강은 아래쪽으로 흐르는 강과 눈 내리는 하늘을 구경했다.
“일찍 일어나셨군요, 주인님.”
어느새 담노가 뒤에서 다가와 머리를 조아렸다.
“무슨 소리입니까? 담노. 지금은 저녁때가 아닙니까.”
허허…….
“아닙니다, 주인님. 지금 막 새벽이 지났습니다. 주인님께서는 밤새 저 동굴 안에 계셨습니다.”
그럴 리 없다.
분명 동굴 입구로 환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비강이 말없이 눈이 쏟아지는 하늘만 응시하자 담노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주인님께서는 다른 세상을 보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겠지요.”
“다른 세상?”
“예. 다른 세상 속에서는 시간과 사물이 왜곡되어 보인다고 합니다. 저도 이야기만 들었지 아직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일어나셨습니까? 주공.”
“일어나셨습니까?”
비강이 담노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담정천과 담수연, 그리고 담혁수가 밝은 얼굴로 다가왔다.
뽀드득, 뽀드득…….
그들은 하얀 눈밭을 밟으며 다가왔다.
담정천은 이틀 전에 무사히 복귀했다.
그러나 몇 명의 제자는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몇 명이 돌아오지 않았소?”
“셋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공. 오늘이나 내일이면 그들도 전부 도착할 것입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소.”
* * *
으아아악!
손등이 짓이겨진 젊은 사내가 비명을 질러 댔다.
그의 앞에는 키가 작고 몸이 퉁퉁한 사내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말해.”
크크크크…….
손이 짓이겨진 사내의 입에서 괴이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이미 잘려 나간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말하면 살려 줄 거냐?”
“당연히 살려 주지. 나는 보기보다 그렇게 잔인하지 않아.”
크크크크…….
“개소리를 잘도 지껄이는구나.”
황옥의 서늘한 미소가 살짝 일그러졌다.
서걱―!
팔이 잘려 나가고 피가 솟구쳤다.
으아아아악……!
사내가 고통에 몸부림을 치자 황옥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본거지를 말한다면 더 이상의 고통은 없을 거다. 깨끗하게 죽여 주마.”
크크…… 크크크…….
사내는 끝까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멍청한 새끼. 내가 말해도 너희들은 그곳을 찾아가지 못해.”
“걱정도 팔자네. 쥐가 고양이를 걱정하는 격이야.”
크크…….
“너에게 가장 좋은 기억은 무엇이었느냐?”
“가장 좋은 기억?”
이 사내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황옥은 어떻게 해서든 사내의 입을 통해 백리혈의 본거지를 밝혀 내고 싶었다.
“백산 형과 함께했던 시간은 언제나 행복했었다.”
“그러냐. 나 또한 사부님과 함께했던 시간이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삼류 무공밖에 없는 스무 살짜리 떠돌이 애송이를 데려다가 먹여 주고 재워 주었으며 무공까지 전수해 주셨다.”
사내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황옥의 얼굴에서 서서히 미소가 지워졌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동료들의 얼굴도 무거워졌다.
이자는 자신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들이 형과 주공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과 같이, 이자도 사부를 위해 입을 다물 것이다.
“황옥, 이 등신 같은 새끼. 여태까지 헛짓거리 했잖아!”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르며 끼어든 우화봉은 바로 검을 뽑아 들었다.
“미안.”
스악.
우화봉은 사내의 목을 베어 내고는 우물우물 서 있는 황옥을 노려보았다.
“묻어 줘. 너 혼자. 화장을 해 주든지.”
“왜?”
“아니면 나한테 죽어.”
“빌어먹을 년.”
욕설까지 내뱉고 있는 황옥이었지만 그는 어느새 나무를 베어 내고 있었다.
“이거. 앞으로 잡는 놈들의 상태도 이러면 아주 곤란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