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14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0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14화
제114화. 무신의 유산(2)
비강은 장엄한 모습의 암각화와 마주했다.
아저씨가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암각화를 남겨 놓을 리 없었다.
그분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동굴 안을 아무리 둘러봐도 별다른 특이한 점은 없었다.
“주인님, 여기서 무얼 하고 계십니까?”
한참이나 암각화를 올려다보던 비강은 담노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을 깨달았다.
“아침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그럽시다.”
아무래도 식사가 끝이 나고 다시 찾아와 봐야 할 것 같았다.
* * *
따당! 땅! 땅……!
검과 검이 격렬하게 부딪쳤다가 떨어졌다.
땀에 흠뻑 젖은 담혁수가 머리를 숙이며 물러났다.
“감사합니다, 주공.”
담혁수의 뒤를 이어 담수연이 검을 뽑아 들었다.
쉬악!
검을 뽑아 들자마자 담수연의 얼굴은 어느새 비강의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땅!
횡으로 그어지던 빛줄기가 중간에 가로막히며 사선으로 치솟아 올랐다.
따땅! 땅……!
그러나 사선으로 치솟아 오르던 빛줄기도 가로막히고, 검과 검이 격렬하게 부딪쳤다.
스으―
담수연의 검을 막아 내던 비강은 검을 앞으로 짧게 내밀었다.
땅!
담수연은 자신의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검신을 쳐 내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검신은 여전히 다가오고 있었다.
따당! 따다당……!
연달아 검을 쳐 내는 담수연의 신형은 점점 더 뒤로 밀려났다.
헉!
순간 눈앞으로 다가오던 검신이 사라지고 사방에서 담수연을 향해 빛줄기가 쏟아졌다.
따다다당!
담수연의 신형도 여럿으로 나뉘어 사방에서 쏟아지는 빛줄기를 막아 냈다.
스악―!
그러나 어느새 담수연의 어깨는 길게 잘려 나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주공.”
담수연이 물러나자 비강은 둥글게 둘러앉은 제자들을 둘러보며 말문을 열었다.
“내가 남선에 갔을 때 선주 도운패 대협이 사용하던 무공이었소. 선주 도운패 대협의 무공은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렬했소. 나는 그분이 움직이는 반경보다 훨씬 더 좁은 반경에서 공격을 막아 냈으나, 완벽하게 막아 내지 못했소.”
“어떻게 해야 그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습니까?”
앉아서 지켜보고 있던 담혁수가 물었다.
“강하고 빠르면 되오.”
하아…….
제자들은 물론이고 담혁수와 담수연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당연한 소리를 저렇게 태연하게 하다니.
그들의 반응에 빙긋 미소를 지은 비강은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대들도 잘 알다시피 무공에는 경지라는 것이 있소. 경지를 넘은 사람과 넘지 못한 사람은 서로 다른 시간을 보게 된다오. 그대들이 삼류 무인들을 상대할 때도 그런 경험을 했을 게 아니오. 하나 사천존은 그보다 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소. 마치 한눈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 전부 본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주공께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부 볼 수 있으신지요?”
비강은 대답 대신 미소만 보였다.
아직까지 전부 볼 수 있는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열심히들 하시오. 나는 볼일이 있어 이만 가 보겠소.”
비강의 머릿속에는 온통 동굴 속의 암각화만 가득했다.
“감사합니다, 주공.”
담혁수의 인사를 흘려들으며 동굴로 향하던 비강은 입구 앞에 멈춰 서 잠시 안쪽을 주시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입구에서부터 세밀하게 동굴의 벽면을 살피며 안으로 들어간 비강은 어느새 암각화와 마주했다.
“아무것도 없군.”
비강은 하염없이 아저씨를 올려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시간이 보냈을까, 비강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아저씨의 모습이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처럼 점점 커져 갔기 때문이었다.
“주인님,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담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주인님.”
담노가 재차 비강을 불렀다.
그제야 비강은 정신을 차리며 신형을 돌렸다.
* * *
“놈의 흔적을 놓쳤다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주공. 하여 황옥은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보고를 올리는 우화봉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짐작과는 달리 시천세의 목소리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알았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가져가거라.”
“예.”
우화봉이 방을 나가고 난 후, 침묵을 지키고 있던 시천세는 갑자기 미친 듯 웃어젖혔다.
크하하하……!
과연 그분의 선택을 받을 만한 놈이었다.
“그래야 내 사제이지. 암, 그렇고말고.”
백산을 죽인 놈이고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을 놈이다.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뿌듯한 자랑스러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공,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밖에서 총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방 안으로 들어온 벽 총관은 옷깃을 여미며 머리를 조아렸다.
“하북으로 이동한 부천주에게서는 아무런 기별이 없습니다. 아직까지 백리혈의 추격에 별다른 소득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또한 백리혈의 추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무림맹도 계속 추격을 이어 나가고 있다는 보고만 올라오고 있습니다. 역시 아무런 소득이 없는 듯합니다.”
쯧.
“쓸모없는 것들.”
시천세는 몹시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벽 총관은 말을 이었다.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은 역시 하오문입니다. 산서와 하남, 하북에서 활동하고 있는 하오문도들이 전부 동원돼 백리혈을 찾고 있습니다. 또한 하오문의 본거지로 짐작되는 흑산도에서도 수십 명의 무인이 하북으로 출발했다 합니다. 정확한 규모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약추완 부천주에 관한 보고가 있습니다.”
“계속하게.”
“예. 약추완 부천주는 하오문의 기재인 우동문을 수하로 거둬들였습니다. 하오문에서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크크크…… 크하하하……!
“하오문주가 모르고 있다?”
시원하게 웃어젖힌 시천세는 조금은 짓궂은 표정으로 벽 총관을 응시했다.
“예. 소신은 아직까지 하오문주가 그 사실을 모른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하오문도들이 계속 그자에게 정보를 전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척하는 거겠지. 그만한 눈치도 없다면 하오문은 벌써 진즉에 분열이 되었거나 세상에서 사라졌을 게야.”
“죄송합니다, 주공. 소신의 식견이 짧았습니다.”
“신경 쓰지 말게. 어떤 놈이 약추완의 개가 되든 관심이 없으니까. 확실히 풍 사제가 그자를 부림주로 앉혀 놓았던 이유를 알겠어. 개로 쓰기에는 그만한 자가 없어.”
크크크…….
“보고가 끝났으면 나가 보게.”
벽 총관은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보고를 이어 나갔다.
“……조금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습니다. 무림맹에 새로운 인물들이 들어왔는데, 소림의 금강선사와 개방의 백안걸개, 그리고 제갈세가의 제갈곤이라는 자입니다.”
별다른 내색을 않던 시천세의 굵은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금강선사…….”
“예. 은거고인으로, 이번에 무림맹에 힘을 보태고자 합류했다 합니다.”
시천세의 눈빛은 깊숙하게 침전되어 갔다.
황곡에 기거할 때 그의 별호를 들었다.
그에 대해 말하기를 뛰어난 무공에, 소림에서 제일가는 안목을 지녔던 자라고 하였다.
소림에서 제일로 친다면 강호 무림을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아니, 어쩌면 강호 제일의 안목을 지닌 자일지도 모른다.
“제갈곤이라는 자는 어떤 자인가?”
“예. 얼마 전까지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혀 제갈세가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역시…… 총관의 생각을 말해 보게.”
크흠, 큼.
벽 총관은 낮은 기침 소리로 목을 가다듬었다.
“무림맹의 오 맹주가 변절자를 쉽게 용서할 리 없습니다. 그런데 용서하고 맹으로 불러들인 것을 보면 아마도 범상치 않은 능력을 가진 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겠는가?”
“예. 제가 그자를 맡겠습니다.”
“잘해 보게, 총관.”
“감사합니다.”
벽 총관의 가슴에는 승부욕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강호 무림에서 무공이 가장 강한 문파나 세가가 어디인가에 대해선 여러 이견이 있었지만, 가장 머리 좋은 가문은 언제나 제갈세가였다.
그 제갈세가에서도 가장 머리 좋은 자가 제갈곤일 터이니 승부욕이 발동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내게도 기회가 왔어.’
방을 나온 벽 총관은 자신의 전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전각으로 돌아온 그는 바로 서신을 써 내려갔다.
“막 호위, 들어오게.”
서신을 접어 봉서에 넣은 벽 총관은 밖에 대기하고 있는 호위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총관.”
“자네는 바로 내 가문으로 가 아버님께 이 서신을 전해 드리게. 아버님께서는 필시 사람 둘을 내주실 것인데 그자들과 함께 돌아오면 되네.”
“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 * *
하북으로 넘어온 우동문은 하오문도들의 정보를 좇아 백리혈 추격에 나섰다.
백리혈은 하북으로 넘어온 이래 산동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다가 조금씩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동천의 영역으로 넘어와 추격을 따돌릴 생각인 것 같은데, 절대 그렇게는 안 되지.’
동천은 물론이고 서패까지 중천에 협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시간을 오래 끌게 되면 분명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백리혈이 이제 혼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동쪽으로 반나절 거리에 있습니다.”
백리혈은 동쪽으로 이동하며 하나둘씩 동료들을 떼어 내고 있었다.
하오문은 떨어져 나간 동료들까지 감시했다.
백리혈이 동료로 변장해 빠져나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함부로 그를 공격하지는 못했다.
백리혈은 하오문이 잡아들이기에는 무공이 너무 강했다.
하지만 백리혈만 잡으면 하오문의 오랜 숙원이 풀리게 된다.
“알겠소.”
하오문도에게 정보를 전해 받은 우동문은 급히 약추완에게 전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반나절 거리에 놈이 있다는 정보가 방금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잡았군.”
반나절 거리라면 이미 중천과 무림맹의 고수들이 퇴로를 막고 있을 것이다.
이제 백리혈은 독 안에 든 쥐였다.
“어서 움직여라!”
약추완은 절로 급해졌다.
수하들보다 먼저 경공을 펼쳐 동쪽으로 달렸다.
그런 그의 양옆으로 우동문과 악추산, 벽사군이 따라붙었다.
쉬지 않고 경공으로 달린 약추완은 멀리 일단의 행렬을 발견했다.
행렬의 한쪽에는 검과 봉을 찬 백리혈이 상인으로 보이는 자들과 함께 관도를 걷고 있었다.
“백리혈!”
약추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관도를 걷던 상인들이 발을 멈추고 약추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 그들은 두려움에 질려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약추완의 뒤로 구름 같은 무인들이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부천주.”
우동문의 말이 아니더라도 약추완은 방금 목격한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천하의 백리혈이 상인들과 함께 바닥에 엎드려 있는 것이다.
백리혈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약추완의 얼굴을 점점 더 일그러져 갔다.
겉모습은 아주 흡사했으나 얼굴이 달랐다.
저놈은 절대로 백리혈이 아니다.
“백리혈이…… 아닙니다. 부천주.”
우동문의 떨리는 목소리는 약추완의 귀에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이럴…… 리 없어…… 절대, 이럴 리 없어…….”
약추완은 비칠거리는 걸음으로 백리혈로 보이는 사내를 향해 걸어갔다.
“너는…… 너는 누구냐?”
약추완의 몸에서 가공할 살기가 흘러나왔다.
크억…… 컥!…….
바닥에 엎드려 있던 사내가 갑자기 몸을 뒤틀며 입에서 허연 거품을 토해 냈다.
“사…… 살려…….”
“진정하세요, 부천주.”
벽사군이 약추완의 앞을 황급히 막아섰다.
약추완이 가까스로 살기를 거둬들이자 사내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헉…… 헉…….
“대체…… 네놈의 정체가 무어냐?”
죽음의 위협을 느낀 젊은 사내는 눈물까지 흘리며 대답했다.
으헝헝헝…….
“소, 소인은 복사골에 살고 있는…… 농사꾼입니다…… 오늘 아침에 어떤 젊은 사내가…… 제게 은자 두 냥을 주며…… 동쪽으로 이틀만 걸어갔다가 오라고 했습니다…… 이 병기들을 허리에 차고…… 말입니다.”
속았다.
“이, 이…….”
약추완은 너무도 분한 나머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스악―! 턱…… 떼구르르…….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악추산이 바로 검을 뽑아 백리혈로 변장한 사내의 목을 쳐 버렸다.
“추산!”
벽사군의 만류는 너무 늦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