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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112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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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12화

제112화. 오래된 집

 

 

 

태청산은 깊고 험해 저물어 가는 가을임에도 낮엔 해를 보기 힘들었다.

비강은 담혁수를 따라 징검다리 건너듯 넓은 개울에 있는 바위를 건넜다.

“우리는 산을 오를 때 개울을 자주 이용합니다. 그래야 흔적이 남지 않거든요.”

“그럼, 식량을 운반할 때도 개울을 이용하는 거요?

“식량을 운반하는 비밀 통로가 따로 있습니다. 가 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개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던 담혁수와 제자들은 바위 더미가 절벽처럼 서 있는 곳을 끼고 돌았다.

절벽을 돌아 나오자 지금까지 올라온 산보다 더 높고 깊어 보이는 산이 보였다.

후우!

“저 산을 또 올라야 하는 거요?”

비강은 한숨을 내쉬며 높은 산을 가리켰다.

하하하…….

비강의 이런 반응에 담혁수와 제자들은 크게 웃었다.

“주공, 저녁때쯤에 아주 놀라운 광경을 보시게 될 겁니다.”

담혁수의 표정은 자부심으로 넘쳤다.

비강은 그런 그의 자부심이 재미있는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기대하겠소.”

 

비강의 짐작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담혁수는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허리를 타고 돌았다.

소나무들이 빽빽한 곳을 돌아 들어가던 비강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발했다.

아아…….

“대단하구나.”

담혁수가 알려 주지 않았다면 모르고 그냥 지나칠 곳이었다.

절벽 아래쪽으로는 강이 흐르고 강을 따라 깎아지른 절벽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절벽 중간이 움푹 들어간 곳에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큰 전각 세 채와 작은 전각 두 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전각들은 너무 낡아 마치 폐가처럼 보였다.

“바깥에서는 이곳을 볼 수 없습니다. 저 아래 강을 지나가는 배들도 이곳을 볼 수 없고요. 하루 종일 햇볕이 들지 않는 곳이기는 하지만, 이보다 안전한 곳은 없을 겁니다.”

비강은 말없이 전각을 향해 다가갔다.

마당에 들어서 전각을 향해 다가가던 비강이 걸음을 멈추자, 중앙에 있던 전각의 문이 벌컥 열렸다.

열린 문밖으로 담노가 튀어나왔다.

“주인님!”

담노는 신발조차 신지 않은 채 비강을 향해 달려왔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행…… 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비강 앞에 멈춰 선 담노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렸다.

“담노…….”

비강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세상에 이처럼 자신을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비강도 담노 앞에 마주 엎드렸다.

“주인님…… 일어나십시오. 어찌 소인에게 무릎을 꿇는 것입니까. 주인께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무릎을 꿇어서는 아니 됩니다.”

“담노가 일어나면 나도 일어나겠습니다.”

담노도 비강의 고집을 잘 아는지라 어쩔 수없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비강이 일어서며 담노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손자와 제자들이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어서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담노는 비강의 손을 잡아 전각 안으로 이끌었다.

비강이 전각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자 담노는 먼저 손주들을 불러들였다.

“이놈이 첫째인 정천입니다. 그리고 이 녀석들은 주인님께서 잘 아시다시피 둘째와 셋째이고요.”

훤칠한 키의 담정천과 예쁘장한 얼굴의 담수연, 그리고 이곳까지 비강을 안내한 담혁수가 비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주공을 뵙습니다.”

세 사람 모두 안면이 있었다.

첫째 담정천은 북림을 탈출할 때 담노와 함께 추격자들을 막아섰었고, 둘째 담수연은 하남의 장원에서 인사를 나눈 여인이었다.

비강은 지금의 이 상황이 거북하기만 했다.

과연 자신이 이들의 주공이 될 만한 자격이 있을까.

“어서 인사를 받으십시오, 주인님.”

그러나 담노의 성화가 대단해 결국 그들의 예를 받아들였다.

“고맙소. 그만 일어나시오.”

비강이 인사를 받자 담노의 안색은 훨씬 더 밝아졌다.

그는 손주들을 내보내고 제자들을 불러들였다.

“강호를 떠돌다가 거둬들이게 된 아이들입니다. 목숨을 바쳐 주인님을 보필할 것입니다.”

담노의 제자들은 마흔여덟 명이었다.

제자 중에 여인은 열다섯 명 정도 되었다.

“주공을 뵙습니다.”

“주인님…….”

문밖에서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는 그들을 내려다보던 비강은 담노의 재촉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일어나시오.”

제자들이 일어서자 담노는 그들을 물러나게 했다.

“그만 일을 보아라.”

제자를 전부 물린 담노는 눈물 젖은 눈으로 비강을 응시했다.

“저 녀석들 외에도 밖에 십여 명의 아이가 더 나가 있습니다. 소인은 주인님께서 이곳을 찾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디 저 녀석들을 거둬 주십시오.”

담노는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인생을 송두리째 바친 사람이다.

그래서 고맙고도 안타까웠다.

“담노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하나 지금은 적들의 추격을 피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적들은 절대로 추격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 일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인님. 이미 첫째 놈과 제자들에게 일러두었으니 곧 그 녀석들이 하북으로 출발할 것입니다. 첫째 놈을 주인님으로 변장시켜 하북으로 들어간다면 적들의 이목은 그쪽으로 쏠릴 것입니다.”

썩 괜찮은 계책이었다.

그러나 시천세를 속이기에는 부족한 계책이기도 했다.

잠깐은 눈 돌리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랫동안은 속이지 못할 것이다.

“담노, 만일을 대비해 새로운 피신처를 알아봐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담노는 비강의 말에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기 않았다.

“나가시지요, 주인님. 저녁 식사가 마련될 때까지 이곳을 구경시켜 드리겠습니다.”

 

* * *

 

비강과 함께 밖으로 나온 담노는 전각들을 둘러보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저 두 전각은 제자들이 머무는 곳이고, 방금 주인께서 드셨던 전각은 저와 제자들의 거처입니다. 저곳엔 부엌과 창고가 있고 저곳은 뒷간이지요. 워낙 깊은 산에 자리를 잡은 탓인지 소인이 이곳을 발견했을 때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빈집이었습니다.”

“어떻게 이곳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까?”

담노의 노안에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과거, 그 일이 벌어진 날…… 약추완은 소인이 고수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소인은 비록 큰 주인의 곁을 떠났으나, 여전히 그 인근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약추완을 죽여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지요…….”

담노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약가의 가인 놈들이 어린 주인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어린 주인이 살아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준비를 했습니다. 어린 주인께서 장성하여 돌아올 때, 힘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비강과 담노는 전각 뒤에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절벽을 향해 걸었다.

절벽의 중앙에는 시커먼 동굴의 입구가 보였다.

“산서에 들어왔다가 우연히 늙은 노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노인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저기 저 높고 깊은 태청산 안쪽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봉황의 거처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 노인 덕분에 이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동굴 안으로 안내되어 들어간 비강은 커다란 암벽을 마주하고 섰다.

하하…….

비강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도 한 자루를 손에 들고 있는 무인이 새겨진 암각화.

비강은 단번에 그 무인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아저씨가 담노를 이곳까지 인도했구나. 아저씨는 이미 내가 이곳을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암각화의 주인은 아저씨였다.

비강의 허탈한 웃음이 이상했는지 담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비강은 아련한 눈으로 암각화만 올려다보았다.

“그만 나가시지요.”

“먼저 나가십시오, 담노. 저는 잠시 이곳에 있고 싶습니다.”

담노는 비강이 이 암각화와 무슨 연관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별다른 내색 없이 고개를 조아리고 동굴 밖으로 나갔다.

 

담노가 밖으로 나간 후, 비강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저씨는 정말 제가 후계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 * *

 

제갈곤은 탁자 위로 보자기에 싼 긴 목함을 올려놓았다.

“강호 무림의 전쟁은 언제나 정파의 승리로 끝이 났소이다. 현 상황이 암울하다지만 그 옛날 혈마가 강호 무림을 지배할 때만 하겠소이까.”

제갈곤의 눈엔 총기가 서려 있었다.

“산서에서 발원한 혈마는 일백 년 가까이 강호 무림을 지배하였소. 비록 그가 강호를 제패하고 이십 년 후 병으로 죽었다고는 하나,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강대하기 이를 데 없어 그 어떤 세력도 상대가 되지 못하였소. 하나 다행히 우리 정파에 무극천황께서 나타나시어 혈마의 무리을 깨끗이 쓸어 내셨소.”

이야기를 듣고 있는 오진권과 남궁휘의 얼굴에 생기가 감돌았다.

무극천황.

언제부터인가 마음속에 담고 있던 별호였다.

내가 무극천황이 되어 강호를 구하리라.

그들도 집안 어르신으로부터 무극천황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무극천황이 없었다면 정파는 맥이 끊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집안 어른들도 혈마나 무극천황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제가 듣기로 무극천황께서는 어느 날 홀연히 모습을 감추셨다 하였습니다.”

“맞소이다. 그분은 명예나 권력엔 관심이 없으셨소. 또한 제자들조차 남겨 놓지 않아 그분의 무공조차 남아 있지 않소.”

오진권과 남궁휘는 기대라는 감정을 품었다.

“그렇다면 혹시 선생께서는 그분이 은거한 곳을 알고 계시는지요?”

껄껄껄…….

“알지 못하오이다. 다만 그분이 사용하던 검이 남아 있소.”

“그렇다면 이것이…….”

껄껄껄…….

“바로 그렇소이다. 나의 할아버님께서 보관하고 계시던 것이오.”

제갈곤은 호탕한 웃음과 함께 보자기를 풀고 목함의 뚜껑을 열었다.

목함 안에는 고색창연한 검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검파를 감싸고 있는 가죽은 오랜 세월로 인해 헤지고 낡았으나, 검신은 눈부신 백광을 뿌리고 있었다.

“무극천황께서는 이 검으로 혈마의 무리들을 쓸어 내셨소. 만약 두 분께서 그 일을 해낸다면 나는 기꺼이 이 보검을 두 분께 내어 드릴 생각이오.”

오진권과 남궁휘의 눈빛이 탐욕으로 이글거렸다.

저 보검은 대대로 가보로 전해져 영원한 영광의 징표로 남을 것이다.

탁.

제갈곤이 뚜껑을 덮자 탐욕으로 이글거리던 두 사람의 눈빛에 진한 아쉬움이 감돌았다.

“아직 두 분은 강호 무림을 구해 내지 못하셨소이다.”

탐욕으로 가득했던 오진권과 남궁휘의 심중은 차분함을 되찾아갔다.

오진권이 먼저 물었다.

“이제 무림맹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겠는지요?”

“자중하며 고개를 숙이시오. 머지않아 강호 무림은 혈란에 휩싸일 것이오. 남은 삼패의 무리가 시천세를 향해 칼을 겨눌 수도 있고, 삼패의 무리들이 자중지란을 일으킬 수도 있소. 또한 백리혈이 시천세의 손아귀에서 살아남는다면 그를 향해 칼을 겨누게 될 것이오.”

그 말에 오진권이 답을 구하며 물었다.

“그렇다면 저희는 어찌해야 하는지요.”

“그때까지 두 분은 자중하며 힘을 키우시오. 만약 두 분 중에 한 분이라도 삼천존과 자웅을 결할 경지에 올라선다면 강호 무림은 다시 정파의 세상이 될 것이오.”

이번에는 남궁휘가 질문을 이었다.

“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요?”

“동천과 서패에 서신을 보내 그동안의 일을 사죄하시오. 반드시 그래야 하오.”

“남선을 빼놓은 이유는 역시 그 때문이겠지요.”

껄껄…….

“그렇소이다. 남선의 도운패는 절대로 우리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오진권은 제갈곤의 안목에 새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정은 남궁휘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의 말대로 움직인다면 모든 일이 전부 잘 풀릴 것 같았다.

오진권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제갈곤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뒤늦게 남궁휘도 나란히 바닥에 엎드렸다.

“선생께서도 잘 알다시피 아직 무림맹의 힘은 많이 부족합니다. 사패를 피해 숨어 계시던 분들까지 힘써 모셔오고 있으나, 사패에 대적하기에는 여전히 모자랍니다. 부디 고견을 밝히시어 부족한 저희들의 안목을 넓혀 주십시오.”

그런 그들의 간곡하고 정중한 요청에 제갈곤의 얼굴은 흐뭇한 미소가 깃들었다.

이런 젊은이들이라면 머지않아 구파일방과 육대세가는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기다리며 변절자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그때가 되면 진정한 변절자들의 뼈를 추려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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