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50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50화
제150화. 사부를 위하여(1)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이제 우리들도 움직이는 것입니까? 천주님.”
“그래야겠지. 남선에 열 명만 보내라. 운패가 죽었으니 당분간 그곳은 엉망이 될 터, 남선 곳곳에 자리 잡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을 게다.”
영파의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랐다.
“두궁천이 보고를 올리기를, 반년 전부터 남선의 영역에 수적과 산적들이 은밀하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나 남선 순찰단의 왕성해 아직까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 하였습니다.”
끌끌끌…….
“무림맹에서 보낸 놈들이로군. 어디 수적이나 산적뿐이겠느냐. 양민들이 모여 사는 곳에 기생하는 흑도 무리들 중에도 있을 게다. 그래도 제법이로군. 먼 앞날까지 내다보는 것을 보면.”
“무림맹주 오진권이 삼고초려로 데려온 자가 있는데 별호가 천목자라 하였습니다. 원래 제갈세가의 혈족으로, 이름은 곤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안자로 불리는 국원이라는 자가 옆에서 돕고 있다고 합니다.”
“궁천이 무림맹에도 세작을 심어 놓았나?”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북림을 칠 때부터 심어 놓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끌끌…….
“그렇단 말이지.”
남궁악은 속이 조금 불편했다.
두궁천의 뛰어남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훨씬 더 대단한 놈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었다.
‘두광생이 손자에게 사파의 미래를 걸었다고 하더니…….’
기분이 언짢기는 했으나 그만한 일로 두궁천을 내칠 남궁악이 아니었다.
“두궁천은 당분간 내버려 두도록 하고, 남선에 집중하도록 하라.”
“존명.”
“그건 그렇고, 북쪽의 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다더냐?”
“어제 북쪽에서 전서를 보내왔는데, 뜻하지 않은 장애물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산채가 자리 잡고 있는 곳과 멀지 않은 곳에 새로운 산채가 들어섰는데, 그곳으로 굶주린 양민들이 몰려가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채주 놈의 이름은?”
“그것까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젊은 검객이 주인으로 있고, 무공이 대단해 일월성신으로까지 불리고 있다 합니다.”
“무공이 대단한 젊은 검객이라…….”
남궁악은 문득 비강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며칠 전에 들었던 살가와 살몽에 관한 이야기가 스쳐 지나갔다.
끌끌…… 크크크…… 크하하하하……!
“과연…… 과연, 대단해. 여병천에게 그놈은 신경 쓰지 말라 전하라.”
“존명.”
* * *
십만대산으로 들어오는 성벽이 완성되자마자 담노는 문을 닫아걸었다.
끝없이 몰려드는 양민들이 성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아우성을 쳤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성문이 열리지 않자, 낙담한 일부는 떠나갔다.
그러나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십만대산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움막을 짓기 시작했다.
“저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약간씩이나마 식량을 나눠 주시오.”
비강의 뒤를 따르던 권혁수가 머리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주공.”
“은자가 모자라다면 내 방에 있는 행낭에 약간의 패물이 있을 겁니다. 그 안에 있는 무공비급도 적당한 가격에 팔아 버리시오.”
“무공비급이라 하시면…….”
“약가의 장로가 지니고 있었소.”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주공.”
성벽을 내려온 비강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쳐 걸었다.
사람들은 비강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이곳의 주인이 일월성신의 화신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비강이 당사자인 것은 알지 못했다.
그때, 무진도가 모습을 드러내자 일을 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멈췄다.
무진도는 옥황상제에게 미운털이 박혀 하늘에서 쫓겨난 신선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몸이 아픈 자들은 나를 따라오라.”
무진도의 말에 일을 하던 몇몇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진도를 향해 다가갔다.
사기꾼 노인 무진도는 그들을 인도해 산 중턱으로 올랐다.
저들은 의원 이종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사람들은 녹원선인을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설마 담 소협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요?”
하하…….
“그럴 리가요. 하지만 저 모습은 정말 신선 같지 않습니까?”
백발에 가슴까지 늘어뜨린 하얗고 탐스러운 수염, 그리고 아이 같은 홍안의 모습을 누가 신선이라 했을까.
신선이란 존재가 과연 저런 모습일까.
거처로 걸음을 옮기던 비강은 집채만 한 바위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강무화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람들의 경외를 받는 그녀는 이곳에서 아주 특별한 위치를 잡아 가고 있었다.
과거뿐 아니라 앞날까지 내다보는 그녀를 어느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이곳에서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오직 비강과 담노뿐이었다.
늙은 사기꾼조차도 강무화를 두려워했다.
“둘째 담 소저는 어디에 갔소?”
“여기서 일백여 리 떨어진 곳에 제법 규모가 큰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곳에 오십여 명 정도 되는 흑도 무리가 있다고 합니다. 마을의 양민들을 괴롭히고 약탈과 살인을 일삼는 모양이라…….”
“재물을 거두러 갔군.”
하하…….
“예, 맞습니다.”
“당분간 그런 일로 이곳의 자금을 마련하기는 괜찮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질 거요. 앞날을 위해서는 장구한 계획을 세워야 하오. 내 생각으로는 상단을 꾸려 서역으로 장사를 나서는 것이 좋겠소.”
“역시, 주공께서는 대단하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용 단주가 비슷한 말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첫째 형님이 상단을 꾸릴 인재들을 선발하고 있습니다.”
이어 비강과 담혁수가 거처로 올라와 보니, 일하는 여인들이 저녁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은 함께 저녁이나 먹읍시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 * *
조촐한 저녁 식사 자리에 일곱 명이 모여 앉았다.
비강과 담노, 담정천, 담혁수, 강무화, 장경주, 살가가 바로 그들이었다.
식사를 하던 강무화가 비강에게 물었다.
“연 대협은 태어난 날과 시가 어찌 되나요?”
비강은 자신이 태어난 시는 물론이고 나이가 정확하게 어떻게 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건 왜 묻는 것입니까?”
“점을 쳐 보려고요.”
강무화의 대답에 담노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아직까지 주인님이 태어나신 날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큰 주인께서 태몽을 꾸셨는데, 아주 환하고 큰 달을 가슴에 품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연월.
비강은 그제야 자신의 이름이 월(月)이라 지어진 이유를 알게 되었다.
“주인께서는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주 밝은 봄날 아침에…… .”
담노의 이야기를 들은 강무화는 수저를 내려놓고 손가락을 짚으며 점을 쳤다.
그러더니 곧 깜짝 놀란 얼굴로 비강을 쳐다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니에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비강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식사를 이어 나갔다.
“외람되기는 하지만, 저도 한마디 올릴까 합니다.”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 말이 없던 살가가 입을 열었다.
담노는 살가가 말을 하기 시작하자 크게 기꺼워했다.
허허허…….
“나는 그쪽이 벙어리인 줄 알았소이다. 어서 말씀해 보시오.”
담노의 그 말에 살가는 어설프게나마 미소를 지었다.
“연 대협 덕분에 목숨을 구했으니 뭔가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살수 짓밖에 없습니다. 해서 원하는 자들이 있다면 살수를 키워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담노는 생각해 볼 것 없다는 듯 바로 허락했다.
* * *
식사가 끝이 나고 사람들은 각자의 거처로 돌아갔다.
하지만 장경주는 비강의 거처에 남아 있었다.
그녀가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를 짐작한 비강이 말문을 열었다.
“며칠 후에 강호로 나가 하오문주에 대해 알아보겠소.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고마워요, 연 대협. 그때는 저도 함께 가요.”
“아니오. 나 혼자 움직이는 것이 더 안전하오. 그러니 장 소저는 이곳에 남아 있으시오. 흑산도까지 들어가 하오문주를 이곳에 모셔 올 것이오.”
장경주는 눈물까지 흘리며 고마워했다.
“정말……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런 말씀 마시오. 당신도 내 목숨을 구해 주지 않았소?”
눈물을 흘리던 장경주는 비강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정말 고마워요, 연 대협.”
잠시 장경주를 안고 있던 비강은 문득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오늘 많이 피곤했을 것이니 그만 쉬시오.”
“……네.”
왠지 아쉬워하는 장경주와 함께 밖으로 나온 비강은 그녀가 거처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쁜 취미요.”
“미안해요. 나는 단지 당신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에요.”
어둠 속에서 강무화가 걸어 나왔다.
그녀 역시 식사가 끝이 난 후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지 않았다.
“들어갑시다.”
비강은 강무화와 함께 방 안으로 향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비강이 먼저 물었다.
“혹시 식사 때 친 점 때문입니까?”
“네. 당신은 내 점을 믿지 못하겠지만, 꼭 점괘를 말해 주고 싶었어요.”
“어디 한번 말해 보십시오.”
“전에도 한번 말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당신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고 난 비강이 고개를 흔들었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자가 나 하나만 있을 것이 아닐진대…… 그렇다면 나와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자들은 모두 죽은 사람이겠구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점을 칠 때는 현재의 삶을 헤아려야 해요. 하지만 당신에 관한 점괘는 전혀 맞지 않아요.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 같아요.”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에요. 당신의 옆에는 항상 저승사자가 붙어 있어요.”
“잘 들었습니다. 그만 내 방에서 나가 주십시오.”
비강의 축객령에도 강무화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신의 점괘는 나오지 않았지만, 장 소저나 담노에 관한 점괘는 나왔어요.”
“듣고 싶지 않습니다.”
“들어요. 담노에게 남아 있는 삶은 길어야 삼 년이에요. 그리고 장 소저는 당신과 인연이 없어요.”
비강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담노의 죽음까지 입에 올린 것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짓이었다.
거기다가 장경주와 자신이 인연이 없다니.
“장 소저의 인생에는 남자가 없어요. 그리고 상을 보건대, 담가의 첫째는 언젠가 크게 한 번 누군가를 배신할 상이에요.”
“그만합시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으니.”
비강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미안해요. 저도 제 점괘가 틀렸으면 좋겠어요.”
자리에서 일어난 강무화는 비강을 향해 머리를 숙여 보이고 방을 나갔다.
“정말 매번 나를 심란하게 만들어 놓는 여인이로군.”
* * *
내일 아침이면 서패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북궁도는 처연한 눈으로 사부의 도를 손으로 쓸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깃불을 여기저기 피워 놓은 가운데 사십여 명의 무인이 노숙을 하고 있었다.
“내일을 위해 잠을 자 둬야 하지 않겠느냐?”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던 유영이 몸을 일으켰다.
“저는 괜찮습니다. 주무십시오.”
하아…….
유영은 밝은 빛을 뿌리고 있는 보름달과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내일 서패의 영역에 들어서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거다. 너만은 지금이라도 걸음을 돌렸으면 좋겠구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선주께서 원하는 바가 아니다.”
북궁도의 얼굴에 서글픈 미소가 떠올랐다.
“저승에서도 사부님은 제가 옆에 없어 너무 심심한 나머지 몸에 병이 났을 겁니다.”
“바보 같은 소리.”
유영은 그 말을 끝으로 바닥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 잠을 청하기 위해 닫은 눈가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