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47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47화
제147화. 죽음이 전해지다(1)
주이랑은 동료들과 함께 산을 올랐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살갗이 따갑고 속이 울렁거렸다.
“이봐, 나는 아무래도 이만 돌아가야겠어.”
동료 중 하나가 산을 오르다 말고 발을 멈췄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조금만 더 오르면 정상인데 여기서 돌아가겠다고?”
“목숨은 하나밖에 없지 않나.”
“저 위에서는 강호를 아우르는 절대고수들이 일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네. 자네도 알지 않나? 절대고수들의 싸움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렇기는 하네만…… 아무튼 나는 여기서 그만 내려가야겠네.”
동료 하나가 빠져나가자 은근히 겁을 집어먹고 있던 다른 동료들도 덩달아 산을 내려갔다.
결국, 동료들은 전부 산을 내려가고 주이랑 혼자만 남게 되었다.
주이랑은 살을 후비는 살기를 가까스로 참아 내며 산을 올랐다.
정상에 오른 그는 눈앞의 거목을 피해 격전장을 살폈다.
스아악…… 스악……!
뿌연 먼지 속으로 광휘가 번뜩일 때마다 먼지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아아아…….
주이랑은 그 광경에 넋을 잃었다.
산이라도 단번에 반쪽으로 갈라놓을 것 같은 거대한 도와 검들이 사방에서 휘몰아쳤다.
넋을 잃고 지켜보던 주이랑의 눈앞으로 번쩍이는 빛줄기 하나가 날아들었다.
피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날아든 빛줄기였다.
주이랑은 세상에서 가장 밝은 빛을 보았다.
툭…… 떼구르르르…….
주이랑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산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뒤이어 그의 몸도 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콰쾅―!
공중에서 부딪쳤던 검과 도가 주인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아무도 올라오지 말라 했거늘…….”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전부 한결같지는 않겠지.”
“그 대가가 죽음인데도 말을 듣지 않아.”
“이제 그만 결착을 볼까?”
도운패와 당백요는 상대를 향해 달려들며 도와 검을 뿌렸다.
검 하나는 수십, 수백 개의 환영을 만들어 내며 당백요의 몸을 보호했고, 또 다른 검 하나는 수십, 수백의 환영을 만들어 내며 도운패의 전신을 갈랐다.
그에 맞선 도운패의 도는 오직 하나였다.
찬란한 광휘에 휩싸인 일 장 크기의 거대한 도가 빛을 뿜어내는 검들을 박살 내며 지나갔다.
콰콰…… 콰쾅!
쿨럭……!
쿨럭……!
도운패와 당백요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에 피를 토해 냈다.
그러나 그다음은 달랐다.
투툭! 툭, 툭, 툭!
도운패의 전신에서 핏물이 치솟더니 곧 그의 몸이 걸레 쪼가리처럼 터져 나갔다.
퍽!
털썩!
도운패가 땅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왜…… 왜?”
당백요가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쓰러진 도운패를 향해 다가갔다.
방금 전의 일초는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용호상박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중간에 도운패가 힘을 거둬들였다.
바닥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도운패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참으로…… 좋은 날이로구나. 빛이…… 아주 좋아.”
“왜…… 왜 그랬어?”
당백요의 물음에 도운패는 흐릿해져 가는 눈을 그녀에게 돌렸다.
“둘이…… 죽는 것보다 하나가…… 죽는 것이 낫잖아.”
“이…… 이 바보 같은 놈.”
“부…… 탁이 하나 있어. 내…… 제자를 한 번쯤…… 살려 보냈으면…… 좋겠…….”
“그렇게 할게.”
도운패는 당백요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녀는 털썩 무릎을 꿇고는 뜬눈으로 생을 다한 도운패의 눈을 감겨 주었다.
“미안해.”
* * *
산을 울리는 굉음이 끝났지만, 은운곡의 무인들은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보다 못한 총관 마태관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아뢰었다.
“이제 그만 올라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다려요. 어둠이 찾아오면 그때 올라가요.”
“아…… 알겠습니다.”
총관 마태관이 물러나고, 벽사군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가고 어느덧 해가 저물자, 벽사군은 정상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녀의 뒤를 은운곡의 무인들이 따라 움직였다.
정상에 오른 벽사군의 눈에 들어온 것은 흙무덤 하나와 그 앞에 꽂혀 있는 한 자루의 도였다.
도는 도집째 땅속 깊숙이 꽂혀 있었다.
‘결국, 남선의 주인이 패해 죽었구나.’
도운패의 죽음을 확신한 그녀는 무덤 앞으로 걸어갔다.
푹.
벽사군은 땅속에 박혀 있는 도를 뽑았다.
스르르릉…….
도집에서 도를 빼어 보니 여전히 빛을 받아 도신이 반짝거렸다.
가지고 싶다.
이 도를 자신의 소유로 하고 싶은 마음이 뭉클뭉클 샘솟았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었다.
이 도는 금단의 신물이었다.
“내일 중천에 다녀오겠어요.”
“네. 준비해 놓겠습니다.”
마태관의 충직한 대답을 들은 벽사군은 도를 지닌 채 걸음을 옮겼다.
그녀와 함께 산을 올랐던 무인들의 눈에 탐욕이 이글거렸다.
“만약 이 도를 가지려 한다면 중천의 끝없는 추격을 받을 거예요.”
벽사군은 한마디 말로 무인들에게 경고를 전했다.
하지만 그 경고를 알아들을 위인들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는 것보다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해야겠어.’
생각을 바꾼 그녀는 태연을 유지한 채 산을 내려갔다.
하지만 그녀의 걱정은 기우였다.
산을 내려간 벽사군의 앞에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벽사군도 알고 있는 종예였다.
“어떻게 여길…….”
벽사군은 너무 놀란 나머지 말조차 잇지 못했다.
“어떻게 왔겠어? 서패의 주인이 날짜와 장소를 알려 주었으니 왔겠지.”
“그렇군요. 결과는 여기에 있습니다.”
벽사군은 예를 다해 도를 두 손으로 바쳐 올렸다.
기다렸다는 듯 종예가 도를 낚아챘다.
그리고 그녀는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 연기처럼 사라졌다.
* * *
“오랜만에 보는구나.”
“그렇지. 아주 오랜만이야.”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얼굴이 많이 닮았다.
한 사람은 남궁세가의 진골인 남궁석이었고, 또 한 사람은 먼 방계 혈족이었던 남궁악이었다.
가인들의 수가 근 오백 명에 이르렀던 남궁세가였다.
가신 가문과 혼인으로 맺어진 혈맹 가문까지 아우른다면 가인들의 수는 삼천 명을 상회했었다.
가히 대(大) 남궁세가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던 가문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가문도 남궁악의 검을 감당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가문이 몰살에 가까운 혈난을 겪었고, 살아남은 남궁세가의 가인들마저 오십 명이 되지 않았다.
남궁석은 마지막까지 가문에 남아 남궁악과 맞섰었다.
그의 아버지이자 가주가 남궁악의 검에 생을 마감했고, 어머니마저 목숨을 잃었다.
부인이 남궁악의 검 아래 숨을 거둘 때, 남궁석은 자신의 삶을 포기했었다.
그러나 남궁악은 남궁석을 살려 보냈다.
그리고 그의 품엔 어린 남궁휘가 안겨 있었다.
“언제 강호로 나왔나?”
“강호에 나오자마자 너를 찾아왔다. 아니, 나의 집을 찾아왔다.”
“너의 집?”
남궁석은 이를 악물었다.
도망치고 떠돌며 무공을 갈고닦았다.
언젠가 가문을 되찾으리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한 생활이었다.
그런데 막상 원수인 남궁악을 눈앞에 마주하고 나니 반드시 죽여야 할 원수가 너무 대단해 보여 숨이 턱턱 막혔다.
그렇다고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지금까지의 고단함이 헛된 일이 될까 봐, 그것이 두려운 것이었다.
“그래…… 나의 집.”
크크크크…….
“힘이 있으면 너의 집이 되겠지.”
명백한 비웃음이었으나 남궁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화조차 내지 못했다.
“아들이 제법이더군. 거목이 되겠어.”
남궁석은 남궁악의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괜히 왔구나.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남궁석은 남궁악을 찾아온 것을 후회했다.
“열심히 힘을 키워 봐. 어지간하면 건드리지 않을 테니. 나도 남궁세가의 사람이 아니더냐.”
“나를…… 놀리는 것이냐?”
“아니. 진심이야.”
남궁석이 무섭게 노려보았으나 남궁악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다음에 또 보자.”
“언제든 생각이 나면 찾아와라. 술을 준비해 놓고 있을 테니까.”
“너와 술을 마실 일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일은 모르는 거다.”
서늘한 살기를 흘리며 방을 나가는 남궁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남궁악이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영파.”
흐릿한 그림자가 남궁악의 앞에 어른거렸다.
“찾으셨습니까? 천주.”
“북쪽의 일은 어찌 되어 가느냐?”
“여병천을 불러오겠습니다.”
그림자가 사라지고 잠시 후 누군가 방문을 알렸다.
“여 모가 천주님의 부름을 받아 왔습니다.”
“들어와.”
방문이 열리고 안으로 초로인이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들어온 초로인은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일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분부대로 열과 성의를 다하고 있으나, 땅이 워낙 넓어 인재들을 끌어모으기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지금 핑계를 대고 있는 건가?”
“아닙니다. 소신이 어찌 감히…….”
“제자가 제법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아직 미흡하기는 하오나 다른 젊은 기재들에 비할 정도는 되옵니다.”
크하하하하하…….
남궁악은 갑자기 대소를 토해 냈다.
“겸손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여병천이 그리 말을 할 정도란 말이지?”
“전부 천주님의 깨우침 덕분입니다.”
“공치사는 됐고. 일을 서둘러. 지금 마음 놓고 세력을 키울 만한 곳은 북쪽밖에 없으니까.”
“예. 최대한 서두르라 이르겠습니다.”
초로인을 내보낸 남궁악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혀를 찼다.
쯧쯧…….
“너무 고루한 게 탈이야.”
“그래도 무공과 협의만은 대단합니다.”
언제 다시 모습을 드러냈는지 영파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래서 문제야.”
“천주님을 배신할 자는 아닙니다.”
“그래야겠지. 한데 중천에는 아무 일도 없느냐?”
“괴이한 정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부천주 약추완에 관한 정보인데, 하오문의 주요 인사를 추격하던 약가의 가인들이 몰살을 당했다고 합니다. 범인은 오래전에 모습을 감췄던 살가라는 살수인데 그 자리에 살몽도 있었다고…….”
“사실이겠군.”
남궁악은 살가에 관한 정보를 사실이라 확신했다.
몇 년 전 사형을 만나기 위해 황곡을 찾아갔을 때, 우연히 살몽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오문의 주요 인사를 추격하는 자리에 살가가 모습을 드러냈다라…… 하오문주가 보통은 아니었어. 영파, 두궁천에게 이 정보를 전해라.”
“존명.”
명령을 받든 영파가 연기처럼 흩어졌다.
홀로 남은 남궁악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강호의 일이 내 뜻대로만 흘러가지는 않겠지.”
* * *
“천목자, 중천에서 정보 하나가 나왔습니다. 하오문의 인사를 추격하는 자리에 오래전에 모습을 감췄던 살가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그 자리에는 살몽도 있었는데, 살가가 그자를 해치우고 우동문과 약가의 가인들까지 몰살했다고 합니다.”
살가에 관한 정보는 무림맹에도 흘러들어 갔다.
그 정보를 접한 제갈곤은 세력을 확장시킬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이참에 강호의 정보를 관리하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소?”
오진권을 찾아간 제갈곤은 그렇게 첫마디를 떼어 냈다.
“하오문과 비슷한 조직을 만들자는 말씀이십니까?”
“아니외다. 하오문주를 죽이고 우두머리만 믿을 만한 자로 교체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이외다.”
“과연 하오문도들이 명령을 받들겠습니까?”
“지금도 우리 무림맹에 정보를 전해 주는 하오문도들이 적지 않소이다. 그들 중에 쓸 만한 자를 하오문주로 추대한다면 하오문은 우리 수중에 들어오게 되오이다. 우리가 강호를 되찾게 되었을 때에도 버리기 쉬운 것들이니 뒤탈도 없을 것이오.”
“약추완의 충견인 우동문과 같은 자를 만들자는 말씀이 아닙니까?”
껄껄껄…….
“바로 그렇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