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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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43화
제143화. 십만대산의 신(7)
히히힝!
말 울음소리에 약가의 가인들은 물론이고 시위에 화살을 얹고 있던 살몽까지 고개를 돌렸다.
장경주도 말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울음소리는 귀에 익숙했다.
‘하찮은 짐승이 주인이 있는 곳을 찾아왔구나. 불쌍한 것.’
마부 없는 마차를 끌고 있는 말들은 흉흉한 살기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을 두려워하는지 이십여 장의 거리에서 멈춰 섰다.
“재미있군. 미물이 주인을 찾아오다니.”
마차에게 향했던 살몽의 시선은 다시 살가에게 돌려졌다.
이제 황곡에서 연마했던 진정한 궁술을 보여 줄 차례였다.
살몽은 화살 세 대를 시위에 올렸다.
한 대는 살가의 이마에 박힐 것이고, 또 한 대는 가슴에, 그리고 나머지 한 대는 심장에 박힐 것이다.
“잘 가라, 살가…… 억?”
시위를 당기던 살몽의 등 뒤로 서늘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핑……!
세 대의 화살은 살가가 아닌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등이 따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등이 아닌 가슴인 것 같았다.
고개를 숙여 가슴을 내려다보자 그곳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찌……?”
어찌하여 자신의 가슴에서 피가 흐르고 있을까.
살몽은 앞으로 숙여지는 몸을 지탱하려 몸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점점 몸은 앞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천주나 삼패의 주인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가깝게 자신의 등 뒤로 접근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 중에 하나가 이곳에 나타났단 말인가?
살몽은 남은 힘을 다해 고개를 틀어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눈앞은 까맣게 변하고, 몸은 절벽에서 떨어져 내렸다.
철퍼덕!
갑작스럽게 활과 사람이 절벽에서 떨어져 내렸다.
약가의 가인들이 몰려들어 떨어진 내린 살몽을 살폈다.
활과 함께 화살통을 지고 떨어져 내린 것으로 보아 그는 살가가 아닌 살몽이었다.
약가의 가인들이 살몽의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하늘에서는 빛줄기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사람은 오직 살가와 약철빙밖에 없었다.
약철빙은 빛줄기 뒤에 숨어 있는 비강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콰콰콰쾅……!
쏟아져 내린 빛줄기들이 가인들의 몸을 관통하고 돌로 이루어진 바닥을 때렸다.
“저, 적이다!”
수많은 죽음 속에서 살아남은 장로 약세격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 소리가 울려 나왔다.
황급히 뽑아 든 그의 검 앞에 희끗한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커…… 커…… 컥…….
약세격은 괴로운 신음 소리를 흘려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목에서는 붉은 피가 뭉클뭉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검은 바람이 살아남은 약가들 사이를 휘몰아쳤다.
“연비강!”
그때쯤에는 우동문도 연비강을 알아보았다.
아니, 짐작했다.
이만한 무공에 이런 짓을 벌일 자는 그 말고 없었다.
털썩, 털썩…….
살아남았던 가인들이 전부 쓰러지고, 온전히 자리에 서 있는 자는 오직 약철빙과 우동문밖에 없었다.
땅바닥에 붉은 피가 가득한 가운데, 비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또 보는구나, 우동문.”
으아아아아……!
우동문은 비강과 얼굴을 대하자마자 마구 소리를 질러 댔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네놈이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이냐! 동천의 남궁악이 개소리를 지껄인 것이냐!”
이미 이성까지 잃은 탓인지 우동문은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신은 살아남아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약추완에게 잘 보여 중천의 높은 자리에 앉아야 했고, 천주에게 잘 보여 하오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하오문은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듣기 싫구나.”
비강의 차가운 말에 우동문은 붉게 물든 눈을 치떴다.
“하오문과 저기 장 누이는 내 것이 될…….”
서걱―
우동문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그의 머리가 굴러떨어지고 몸도 땅바닥에 쓰러졌다.
“또 봅니다, 약 단주.”
“그, 래.”
무언가 목에 걸렸는지 약철빙의 입에서는 잔뜩 경직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눈에는 가인들의 죽음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 약철빙을 응시하던 비강은 절벽 위를 쳐다보았다.
“내려올 수 있겠소?”
“남아 있는…… 힘이 없구려.”
살가의 대답에 비강은 바로 절벽을 차고 날아올랐다.
동굴 앞에 내려선 비강은 떨리는 두 쌍의 눈을 덥석 끌어안고는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이 의원님!”
땅에 내려서자마자 비강은 소리쳐 의원을 불렀다.
곧이어 이종이 달려오고 강무화와 제자들도 아래로 모여들었다.
“보살펴 주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종은 피가 흐르지 않는 땅을 골라 살가를 눕혔다.
“오랜만이오, 장 소저.”
“그러네요. 연 대협은 여전하시네요.”
비강과 장경주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장경주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살가의 상처를 살피던 의원은 심각한 얼굴로 비강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염독 같은데 이곳에서는 치료가 어렵겠습니다. 깨끗한 물과 뜨거운 불이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오다가 보니, 작기는 하지만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럽시다.”
비강의 허락을 받은 의원은 살가를 안아 마차에 태웠다.
“먼저 가십시오.”
“그…… 러죠.”
비강과 약철빙을 살펴보고 있던 강무화가 마차에 올랐다.
그녀는 마차에 오르다 말고 비강만을 바라보고 있는 약철빙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 그녀는 고개를 돌려 마차에 올랐다.
“장 소저도 함께 가시오.”
“네.”
제자들과 이용까지 마차에 올라타자 마부석에 앉아 있던 이 의원은 말을 몰아 절벽에 막혀 있는 길을 빠져나갔다.
이제 이곳에는 비강과 약철빙, 오직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비강은 시신들의 품속을 뒤져 값나가는 것들을 전부 긁어모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던 약철빙이 입을 열었다.
“못 본 사이에 도적이라도 된 것인가?”
“전리품을 챙기는 것뿐입니다.”
“아직까지…… 내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지금 전부 말해.”
“고작 그런 이야기나 듣고자 이곳에 남아 있었던 겁니까?”
아니었다.
우선 비강이 살아 있어 너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 놓기는 싫었다.
“연 부관은 분명 무슨 목적이 있어 북림에 들어왔을 거야. 내 짐작이 틀렸나?”
패물과 은자들을 전부 챙겨 행낭에 넣은 비강은 약철빙과 마주했다.
“목적이라…… 그럴지도 모르지요.”
“무슨 목적으로 내게 접근했지?”
하하하하…….
참으로 웃긴 말이었다.
비강은 목적을 위해 약철빙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을 뿐.
챙!
비웃음을 당했다는 생각을 했는지 약철빙은 검을 뽑아 비강의 목에 겨누었다.
그녀의 몸에서는 얼음장보다 더한 차가운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비강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으로 검첨을 잡아 옆으로 돌렸다.
“아마도 나는…… 북림의 주인이었던 풍천양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기묘한 말이었으나 그 말을 들은 약철빙의 눈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그렇다면…… 그 파면 노인은 너와 무슨 관계야.”
약철빙이 파면 노인의 정체를 알게 되면 모든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남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얼굴을 지우고 원래의 목소리까지 지워 버린 담노를 알게 된다면 그녀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평생 동안 아버지와 비강을 위해 살아간 담노의 충성심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그분은 나의 가족입니다. 나의 할아버지입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지요.”
그 말을 끝으로 비강은 몸을 돌렸다.
“이제 어디로 갈 거지?”
“설마 강호에 내 몸 하나 쉴 정도의 거처조차 없겠습니까.”
멀어져 가는 비강의 뒷모습을 그녀는 하염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 * *
약철빙을 뒤로하고 일행을 찾아가던 비강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 어둠 속에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걸어오던 누군가는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연 대협.”
“공손 대협.”
걸음을 멈췄던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살아 있었구려.”
비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공손황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검신의 손에서 어찌 살아남으셨소?”
“살려 주더이다.”
공손황은 비강의 대답에서 많은 것을 유추해 냈다.
“과연…… 검신이라는 별호가 허명은 아닌 모양이오. 연 대협을 이용해 중천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것을 보면.”
“그래서 나를 막을 생각이오?”
공손황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또 봅시다, 연 대협.”
“그럽시다.”
“그런데 어디로 향하는 중이오?”
“북쪽. 그곳에 새로 거처를 정했소. 공손 대협만 알고 계시오.”
“고맙소.”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비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공손황은 자신의 손을 들어 보이고는 급히 뛰어갔다.
“잠깐만. 이거 가져가시오.”
공손황이 건넨 것은 술 두 병이었다.
그 술은 원래 약철빙과 나눠 마시려고 준비한 것이었다.
“잘 마시겠소.”
* * *
시원하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냇가 옆으로 화톳불이 타올랐다.
그리고 그곳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네 마리의 말이 풀을 뜯고 있었다.
“몸에 스며든 독을 불로 태우기는 했으나, 이미 몸속 깊이 들어간 독은 스스로 이겨 내야 합니다. 의술이 높지 못해 죄송합니다. 만약 허승이라는 분이 이곳에 계셨다면 쉽게 이분을 살릴 수 있었을 겁니다.”
치료를 마친 의원의 말에 장경주는 몹시 안타까워했으나 비강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허승이라는 의원은 비강도 알고 있었다.
북림에서 한번 치료를 받았던 바로 그 의원이 아니던가.
비강은 살가의 별호는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장경주를 보호하고 있지 않았다면 굳이 목숨까지 살리려 애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흐음…… 흠…….
강무화는 묘한 콧소리를 내며 누워 있는 살가의 주변을 돌았다.
“신을 모셔야겠구나. 그것을 가져오너라.”
그러더니 곧 제자들을 불러 짐을 풀게 했다.
그녀는 짐 속의 붉은 요란한 비단옷을 겉에 걸쳐 입었다.
그리고 살가의 앞으로가 정좌를 하고 앉았다.
그녀의 입에서 의미 모를 주문이 흘러나오고 눈은 온통 흰자위로 바뀌었다.
강무화의 눈이 흰자위에서 검은 눈동자로 바뀌었다.
“아직 멀었구나, 아직 멀었어. 이자는 참으로 오랫동안 이승에 머물겠구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달리 탁하고 우렁우렁했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말을 제자들만 알아들었다.
이곳의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비강은 그녀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의미는 대충 짐작했다.
‘살가가 죽지는 않겠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비강은 문득 헛웃음을 지었다.
언제부턴가 자신이 저 강무화라는 이상한 여인을 마음속으로 믿고 있지 않은가.
기이한 광채를 띠고 있던 강무화의 눈빛이 점점 제자리를 찾아갔다.
“저분은 무사하겠군요.”
그녀의 말에 장경주는 비강을 쳐다보았다.
비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도 안심이 됐는지 조금이나마 굳어 있던 안색을 풀었다.
“나는 강무화라고 하는데, 당신의 이름은 뭐죠?”
강무화가 먼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러자 장경주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하오문의 장경주라고 해요.”
강무화는 장경주가 민망해할 정도로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당신은…… 여러 사람들을 거느릴 운명을 타고난 것 같군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죠?”
“나중에…… 나중에 알게 될 거예요. 물론 내 말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장난 같으나 장난 같지 않은 말을 남긴 강무화는 화톳불 앞에 앉아 있는 비강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마도 자신의 운명은 저 사람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