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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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42화
제142화. 십만대산의 신(6)
“왔느냐.”
“도망친 곳이 고작 이곳이었소이까. 이곳은 선배에게 너무 불리하지 않소?”
“어떡하겠느냐? 보호해야 할 상대가 이곳으로 도망쳐 왔으니 그에 맞춰 움직일밖에.”
절벽과 절벽 사이로 대화가 오고 갔다.
약철빙과 옥돈조는 이 당황스런 상황에 잠시 말없이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그럼, 인사부터 하겠소.”
쉬익―!
짧은 파공성과 함께 화살 하나가 이십여 장 너머의 절벽을 향해 날아갔다.
깡!
절벽을 가로지른 화살은 검과 부딪친 후 튕겨 나가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활과 화살까지 준비했느냐.”
“내가 말하지 않았소? 사냥을 즐기며 살았다고. 선배도 예전에는 살행에 활을 자주 이용했었지 않소.”
살몽의 말대로 예전에는 암습에 활을 자주 사용했었다.
살수가 은밀히 움직이기에는 활이 거추장스러워 작은 활을 주로 사용했었다.
때문에 궁술은 어느 누구보다 뛰어났었다.
한쪽 팔을 잃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대화를 나누던 살몽은 아래쪽을 향해 나직한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그만 돌아가라.”
“당신이 뭔데 우리보고 돌아가라는 거지?”
당연히 약철빙이 살몽의 명령에 맞섰다.
“천주의 영을 받고 온 몸이다. 좋은 말로 할 때 돌아가. 너희들로 인해 내 일을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
시천세의 명령을 받고 온 자의 말이라면 일단 들어줘야 한다.
분명히 그는 황곡의 고수일 것이니까.
“이만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단주.”
“옥돈조는 그만 철수해. 나는 이곳에 남을 테니까.”
“단주가 남는다면 우리들도 남겠습니다.”
“아니야. 나는 사적으로 서안 지부장과 볼일이 있어. 그러니 옥돈조는 그만 돌아가.”
“단주…….”
공손황은 결연한 표정의 약철빙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젓고는 조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만 철수하자. 무운을 빕니다, 단주.”
옥돈조가 떠나가고, 약철빙은 자리를 지켰다.
크크크…….
“순찰단주가 미친년이라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구나.”
약철빙은 살몽의 비웃음과 욕설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선배가 보기에는 어떻소?”
“내 눈에도 그리 명이 길어 보이지는 않아.”
“역시, 그렇지요?”
옴짝달싹하지 못할 상황에 몰린 살가였지만, 목소리에는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처한 상황은 최악이었다.
작은 동굴이라 검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해 화살을 막아 내기 어려웠고, 피해 내기는 더욱 어려웠다.
더욱이 살몽은 동굴과 같은 높이에서 화살을 쏘아 대고 있었기에 그가 피한다면 안쪽에 있는 장경주가 화살을 맞아야 할 상황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살몽은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아니, 살몽은 잔인하게도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크크크크…….
“하오잡배와 약가의 반편이들이 몰려오고 있구려.”
살몽의 말대로 절벽 사이로 난 넓은 길을 통해 우동문과 약가의 가인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절벽 안으로 몰려들던 그들은 중앙에 우뚝 버티고 있는 약철빙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순찰단주께서 먼저 도착하셨구려. 옥돈조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동문이 먼저 약철빙에게 다가가 예를 표하며 물었다.
그러나 약철빙은 우동문을 마치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 듯한 눈길로 쳐다볼 뿐이었다.
우동문도 그녀의 그런 눈길을 알아보았는지 슬쩍 시선을 회피했다.
“너희들도 그만 물러나는 게 좋아. 천주의 명령을 직접 받든 고수가 이곳에 와 있으니.”
약철빙의 차가운 경고에 우동문과 약가의 가인들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고수는 보이지 않았다.
“철빙아.”
그때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장로 약세격이 안타까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목소리였으나 약철빙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부천주의 개로 살아가시는 분이 무슨 볼일로 저를 부르셨나요?”
“어찌 저런 망발을…….”
“장로님께 이 무슨 불손한 언행이오!”
약가의 가인들은 분에 이기지 못해 얼굴까지 붉히며 약철빙과 맞섰다.
크크크…….
끌끌끌…….
그들의 그런 모습이 어처구니없는지 양쪽 절벽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제야 비로소 약가의 가인들은 긴장을 하며 양쪽 절벽을 올려다보았다.
“너희들도 그만 돌아가.”
살몽이 말을 놓자 장로 약세격이 앞으로 나서 허리를 굽혔다.
“뉘신지 정체를 밝혀 주실 수 있겠는지요?”
“살몽이라 한다.”
그의 별호를 듣는 순간 장로 약세격의 안색은 창백해졌고, 가인들은 정체를 몰라 웅성거렸다.
가인들이 자신의 별호를 알아듣지 못하자 살몽은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살가는 아느냐?”
다시 살몽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가인들의 안색이 일제히 굳어졌다.
그들도 북림을 습격했던 살가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선배가 나보다 낫구려. 그것도 오늘까지겠지만. 하오문의 계집을 보호하고 있는 자가 바로 살가이니 너희들이 끼어들 틈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만 물러가라.”
차갑기 그지없는 명령이었지만, 장로 약세격은 여기서 물러설 수 없었다.
약추완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공을 세워야 했다.
“실례지만 살몽께서 원하시는 상대가 살가인지 아니면 하오문의 계집인지 묻고자 합니다.”
호오…….
“반편이 중에 그래도 온전한 놈이 있기는 있군. 나의 목표는 살가이니라.”
“그렇다면 저희들이 하오문의 계집을 데려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크크크크…….
“네놈들도 나름대로 절실하단 말이겠지. 그렇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니 살몽께 도움을 구합니다.”
장로 약세격은 솔직하게 지금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허락하마.”
살몽이 약가를 허락한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였다.
이곳에서 살가를 죽인다 하더라도, 목격자가 없으면 소문은 아주 늦게 퍼져 나갈 것이다.
하지만 약가의 가인들처럼 반편이라면 가는 곳마다 소문을 내고 다닐 것이니, 강호 제일의 살수는 곧 살가가 아닌 살몽이 될 터였다.
쉬익!
깡!
또다시 화살이 날고, 화살은 검에 부딪쳐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시간은 많소, 선배. 나는 선배를 굶겨 죽일 수도 있소.”
쉬이익―
까깡!
이번에는 화살 두 대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 * *
“조장, 약 단주를 저대로 놓아두고 철수해도 괜찮겠어?”
“아니, 우리는 안새구에서 단주를 기다린다.”
“역시 그래야겠지?”
공손황은 조원들을 이끌고 안새구로 향했다.
그 마을은 무슨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 단주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였다.
길을 걷는 와중에도 공손황은 가슴이 답답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큰 뜻을 품고 북림에 남았다.
고래를 보더라도 나라의 흥망성쇠가 당연하듯 언젠가는 중천도 힘을 잃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협의지사들과 힘을 모아 예전 북림의 모습을 되찾고 싶었다.
그 일을 위해 젊은 기재들과 교류를 나누고 있지만, 제 마음처럼 협의지심을 품고 있는 젊은 기재들은 많지 않았다.
‘세상이 연 대협을 마왕이라 해도 나는 연 대협이 협객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소. 언젠가 연 대협과 함께 세상을 바꿀 때를 꿈꾸고 있었건만…….’
공손황과 옥돈조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접어들었다.
그길로 가야만 안새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옥돈조가 갈림길로 들어간 지 반 시진쯤 지났을까.
아이 하나가 뛰어오더니 갈림길 중앙에 털썩 주저앉았다.
* * *
헉…… 헉…….
아이는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되돌아 뛰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섯 명의 어른과 아이 하나가 오른쪽으로 난 길을 통해 걸어왔다.
그들은 바로 비강과 일행들이었다.
길을 걷던 비강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말 울음소리를 들었다.
비강이 걸음을 멈추자 일행들도 전부 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말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예?”
의원 이종은 사방에 귀를 기울였으나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이종뿐만 아니라 강무화나 제자들도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근처에 목장이 있는 모양이지요.”
“아닙니다. 근처에는 목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 울음소리가 왠지 귀에 익숙합니다.”
비강은 관도를 벗어나 말 울음소리를 따라 걸었다.
일행도 말없이 뒤를 따라 걸었다.
한참을 걷던 비강의 걸음이 갑작스레 빨라졌다.
말 울음소리가 왜 귀에 익었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뛰듯 달려간 숲 안쪽에는 검은 마차와 말 네 마리가 서 있었다.
세 마리의 말들은 풀을 뜯고 있었으나 오직 한 마리의 말만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역시, 너였구나.”
비강은 전에 자신이 타고 다니던 말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마차의 주인도 알아보았다.
말도 비강을 알아보았는지 울음소리를 그쳤다.
“너의 주인은 어디에 있느냐?”
비강이 말갈기를 쓸며 물었다.
그러나 말은 투레질만 할 뿐이었다.
뒤늦게 도착한 일행들도 비강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았다.
“장 소저와 헤어진 곳을 찾을 수 있겠느냐?”
하찮은 미물에게 말을 걸고 있는 모습이 마치 미친놈처럼 보였으나, 일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은 수레를 달고 있는 말들은 숲 안쪽에서 나와 어딘가를 향해 말발굽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전부 마차에 오르시오.”
이에 비강은 문을 열고 일행을 전부 마차에 태웠다.
* * *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무엇인가요? 약 단주.”
“연 부관이 정말로 죽었는지 알고 싶어.”
약철빙이 이곳에 남아 묻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 질문을 하기 위해 옥돈조도 물렸지만, 그 자리를 가문의 가인들이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철빙아, 네가 함부로 입에 올릴 이름이 아니니라.”
당연하게도 장로 약세격이 펄쩍 뛰며 나섰고 가인들도 얼굴에 노한 기색을 드러냈다.
백리혈 연비강이 누구던가?
수많은 강호인을 학살했을 뿐 아니라 가인들의 목숨까지 앗아 가고, 혈족인 악규를 죽이고, 악가에 불을 지른 원수 중의 원수였다.
하지만 약철빙은 가문의 그런 반응을 기대한 것인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하오문이라면 연 부관에 관해 자세히 알 것 같은데, 그는 어떻게 되었지?”
“저도 알지 못해요. 들리는 소식은 전부 그 사람의 죽음에 관한 것들뿐이에요.”
쉬익!
장경주가 대답을 하기 위해 안쪽에서 조금 앞쪽으로 나온 것을 확인한 살몽이 다시 화살을 날렸다.
팅!
살가는 화살을 튕겨 내려 했으나 뜻 같지 않았다.
검신에 빗겨 부딪친 화살은 살가의 오른쪽 어깨에 틀어박혔다.
크음…….
화살을 살가의 어깨에 박아 넣은 살몽이 웃음을 흘렸다.
크크크…….
“치료를 빨리 하지 않으면 살이 썩을 거요, 선배. 화살촉에 독을 발라 놨소.”
살만 썩을까, 목숨마저 위태로울 것이다.
살몽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이제 살가는 죽은 목숨이었다.
뚜둑!
살가는 어깨에 박힌 화살대를 부러뜨렸다.
그래야 움직이기에 조금 더 편하기 때문이었다.
그도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는지 장경주를 돌아보았다.
“너에게는 미안하게 되었구나. 문주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싶었는데.”
장경주는 그런 살가에게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지금이라도 저를 버리고 이곳을 떠나세요.”
끌끌끌…….
“오히려 젊은 네가 나이 든 나를 걱정해 주다니…… 나도 그리 쓸쓸한 인생은 아니었나 보구나.”
살가는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동굴을 나선다면 바로 화살이 날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 화살을 무시하고 적들에게 뛰어든다면 꽤 많은 자들을 길동무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지키려던 하오문의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살몽의 손에서는 도망치기 힘들겠지.’
살가는 천천히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살몽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미 살수는 그만두었지만, 그래도 이제 살몽이 천하제일의 살수라 불릴 것이다.
“잘 가시오,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