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41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41화
제141화. 십만대산의 신(5)
“아쉽구나. 나머지 팔이 온전한 것을 보니.”
장경주의 말은 우동문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날아가 박혔다.
우동문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지고 목소리에 날이 섰다.
“누이, 연비강이라는 놈이 그리도 좋소?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나보다 말이오?”
장경주의 목소리는 침착하기만 했다.
“그분은 최소한 은혜를 베푼 상대의 등에 칼을 꽂지 않아. 그리고 너처럼 간악하지도 않지.”
“그놈은……! 그놈은 수많은 강호인을 죽인 잔인한 마인이란 말이오!”
우동문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다.
“네가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약추완에게 그리 말해 보렴.”
그녀의 그런 대꾸는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약가의 장로와 가인들까지 노하게 만들었다.
“하오문의 천한 계집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그러나 장경주는 안색은 평온하기만 했다.
마치 그녀는 삶을 포기한 것 같았다.
우동문도 분노한 가운데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감정을 억지로 추슬렀다.
“누이, 누이가 도망칠 곳은 없소. 남쪽에서는 순찰단이 올라오고 있고, 북쪽에는 내가 있으니 말이오. 그만 포기하고 순순히 잡혀 주시오. 그렇게만 한다면 목숨은 보장해 주겠소.”
“누가 이런 말을 하더구나. 개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전부 개소리라고 말이야.”
이이익…….
우동문은 다시 이를 악물며 노기를 드러냈다.
“그만하게나. 우리가 저 계집을 온전하게 잡아 줄 터이니 말일세.”
“제가…… 제가 직접 잡겠습니다.”
우동문이 병기를 잡으며 앞으로 나서려 할 때, 진을 치고 있던 약가의 가인 하나가 갑자기 풀썩 쓰러졌다.
“무슨 일이냐?”
장로가 놀라 소리쳤을 때 또 다른 가인 하나가 풀썩 쓰러졌다.
스아앗―
“암습이다! 원진을 구성하라!”
그제야 장로의 입에서 급박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으나 벌써 세 명째 가인이 쓰러지고 있었다.
약가의 가인들은 장로를 중심으로 원형을 만들어 적의 암습에 대비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적의 정체나 숫자조차 알아낸 가인조차 없었다.
우동문 또한 가인들과 섞여 원진을 만들었으나 암습한 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설마…… 설마, 살가(殺歌)?’
그럴 리 없었다.
살가는 하오문주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동문조차 그에 관한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 얼굴을 대하거나 대화를 나눈 적조차 없었다.
“강호에서 사라졌던 살수까지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
약가의 장로 약세격은 침중한 얼굴로 사방을 살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살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오문의 계집이 사라졌습니다.”
“제기랄.”
약가의 가인들이 어디 있을지 모를 살수와 대치를 하는 동안 장경주와 마부는 마차를 달려 종적을 감춰 버렸다.
“만약 살수가 하오문 서안 지부장을 보호하려는 것이 목적이라면, 살수는 이곳에 없을 겁니다.”
우동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장로 약세격이 명령을 내렸다.
“그 계집을 추격하라!”
약가의 가인들은 원진을 풀고 장경주의 마차가 사라진 방향으로 달려갔다.
과연 우동문의 말대로 살수의 암습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살가가 맞았어.’
우동문도 약가의 가인들을 암습한 자가 살가임을 알아차렸다.
장경주를 보호하고 있는 살수라 한다면 살가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중천 연안 지부에 지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살수는 오래전에 사라진 살가가 분명합니다.”
“뭣이야? 살수의 정체가 살가인 게 확실한가?”
“예. 지금까지 살가는 하오문주를 지키며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럴 리가…….”
살가에 관해서는 약가도 잘 알고 있었다.
북림을 습격한 살수들에 관해 약추완에게 여러 번 들었고, 그전에 살가는 이미 살수들의 왕이라 칭해질 만큼 악명이 드높았었다.
“연안 지부에 지원을 요청하라!”
* * *
한편 장경주를 보호하며 움직이던 살가는 문득 뒷목에서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은밀하게 그늘 속으로 숨어들어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나이가 들어 내 감각이 무뎌진 것인가?’
스슥…… 스스스…….
그늘에서 벗어나 장경주가 움직이고 있는 방향으로 달리던 살가는 다시 전해져 오는 서늘한 감각에 발을 멈췄다.
“그만 나오시게.”
한 번은 우연이었을지 모르나 두 번은 아니었다.
“오랜만이오, 살가.”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 목소리만 들려왔다.
그러나 살가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보았다.
“여러 번 들어 본 목소리로군. 굵지도 그렇다고 가늘지도 않은 담백한 목소리. 살몽(殺夢)이던가.”
“맞소. 선배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하나도 없구려. 오른팔이 없는 것을 빼면.”
“그렇지. 하나 오른팔 대신 왼팔이 있으니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네. 자네는 여태까지 무엇을 하며 지냈는가.”
“사패의 등쌀에 못 이겨 도망을 치고 있는데 황곡에서 누가 찾아왔지 뭐요. 그곳에서 십오 년을 넘게 사냥이나 하며 지냈소이다.”
끌끌끌…….
“사패를 피해 사패의 본거지를 찾아 들어갔다는 말인가?”
“그랬소이다. 아무튼 내 선택은 그리 잘못된 것이 아니었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니.”
“그런가. 이곳에 나타난 목적은?”
“원래 천주의 영을 받아 약추완이 하는 일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도 선배가 걸려든 거요.”
“그랬군. 하면 이제 어찌할 생각인가?”
“미뤄 두었던 승부를 벌여야 하지 않겠소.”
참으로 억세게 운수가 없는 날이지 않은가.
오랜만에 강호에 나왔건만, 최악의 적수와 마주치게 되었다.
오른팔이 온전했다면 승산은 충분했을 것이나, 아쉽게도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승부를 뒤로 미루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하오문주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되었군.’
“그렇게 하지.”
“고맙소. 그럼 반 시진 후부터 시작하겠소. 나는 최선을 다해 하오문의 계집을 죽일 터이니 막아 보시오.”
스으으…….
어디선가 바람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장경주가 사라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참으로 재수가 없는 날이야.”
* * *
장경주의 앞을 높디높은 절벽이 가로막았다.
마부는 조금이나마 추격을 다른 곳으로 돌려 보려고 중간에서 헤어졌다.
절벽과 마주한 그녀는 몸을 돌려 다른 곳을 찾아 움직였다.
그런데 그녀의 앞을 오른쪽 소매가 헐렁한 중노인이 가로막았다.
“저쪽에 잠시 몸을 피할 곳이 있으니 저곳으로 가자꾸나.”
“누구시죠?”
장경주는 검을 겨누며 잔뜩 경계를 했다.
“살가라고 한다.”
순간 장경주는 쥐고 있던 검을 내리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살가의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아버지에게 여러 번 들었다.
문주를 지키는 마지막 힘이 바로 살가라고 했다.
“아버지가…… 당신까지 보냈군요.”
“후회는 언제나 늦은 법이지. 내가 그랬고 너의 아비가 그러했으나, 그나마 너의 아비는 마지막 후회까진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더구나. 어서 움직여라.”
살가의 재촉에 장경주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움직였다.
절벽으로 이어진 곳에 작은 동굴이 하나 있었다.
장경주는 절벽으로 난 틈을 밟고 올라갔다.
바닥과는 십여 장이나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동굴이었다.
살가는 장경주를 안으로 들이고 입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차라리 멀리 피하는 것이 어떤가요?”
“그놈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래야 했겠지만 지금은 이것이 최선이다.”
“그놈이라니요?”
“살몽. 그놈이 적들과 함께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구나.”
살몽.
장경주는 그 별호를 듣고 나서야 살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살몽은 살가와 선두를 다투던 살수계의 전설이었다.
비록 살가에 밀려 이인자에 만족해야 했지만, 언제든 일인자가 될 수 있는 자였다.
“그런데 왜 하오문에 들어오셨어요?”
“네 애비가 사람을 보내 나를 초빙하지 않았느냐.”
“아니요.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살가는 초빙 때문에 들어올 사람이 아니라고.”
끌끌…….
“내가 북림으로 끌어들인 살수들이 몇 명인지 아느냐? 오십하고도 다섯 명이었다. 그때의 북림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 많은 곳이 허술했었지. 우리는 바로 북림의 풍천양이 있는 곳으로 숨어들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풍천양은…… 그는…… 정말 무신이었다. 전부 죽었어. 나를 빼고는. 그에게 팔 하나를 잘리고 살아남았지만, 살가는 이미 그곳에서 죽었다. 남은 삶은 풍천양이 적선하듯 던져 준 것뿐이다. 그러니 어디에 있든 무슨 상관이겠느냐.”
“그분을 존경했군요.”
끌끌…….
“그리 생각하느냐?”
되묻기는 했지만 저 영리한 계집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살수들이 전멸하고 팔까지 잘렸지만, 왠지 풍천양에게 밉고 원망스럽다는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다.
“저기 적들이 오는구나. 이곳을 발견하지 못하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장경주가 도망친 방향이 최악이었다.
이런 곳은 빠져나가기도 힘들고 숨어 있을 곳도 찾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절벽으로 가로막혀 빠져나갈 길은 오직 한곳밖에 없었다.
* * *
장경주와 살가가 숨어 있는 동굴 아래쪽으로 나타난 자들은 우동문이나 약가의 가인들이 아니라 약철빙과 공손황이 속해 있는 옥돈조였다.
옥돈조는 절벽에 막힌 길을 들어왔다가 다시 방향을 돌려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막 길을 빠져나가던 공손황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뭐야? 왜 그래?”
“풀잎이 꺾였어.”
돌과 모래로 가득한 길에도 풀이 솟아나 있었다.
그런데 그 풀들 중에 하나를 누가 밟고 지나간 것처럼 꺾여 있었다.
장경주가 절벽으로 난 길 안으로 들어올 때 밟고 지나간 것이었다.
발을 멈춘 옥돈조는 고개를 들어 사방을 살폈다.
그리고 곧 공손황과 약철빙의 눈에 절벽 중앙에 언뜻 동굴로 보이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옥돈조의 한 조원이 동굴이 있는 절벽 아래로 달려가 틈을 살폈다.
과연, 사람이 밟고 올라가는 와중에 부딪친 돌과 돌의 흔적이 있었다.
조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공손황은 동굴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그만 내려오시오! 목숨은 보장하겠소!”
후우…….
공손황의 외침 소리를 들은 살가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놈 때문에 다른 놈들까지 이곳으로 몰려들게 생겼다.
특히 살몽이라는 놈까지.
살가의 마음도 모른 채 공손황은 계속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하오문과는 그리 나쁜 관계가 아니었지 않소! 그러니 그만 내려오시오!”
“소리치지 않아도 다 들리니 조용히 해라.”
살가의 목소리에 공손황은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누구십니까?”
“살가라고 한다.”
살가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곧 다 알게 될 사실이니 숨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살가의 별호를 들은 공손황과 옥돈조, 그리고 약철빙은 크게 놀랐다.
“살수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약철빙은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그녀도 살가에 대해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살수는 의뢰를 받고 움직이지. 은자를 받고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살수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의외이기는 하지만. 누가 당신에게 의뢰를 했지?”
끌끌…….
“나와 하오문은 약간의 인연이 있어 서안 지부장을 보호하게 되었으니 너무 몰아세우지 마라.”
흥!
“하찮은 것들이 잡스러운 것을 끌어들였구나.”
약철빙의 목소리는 잔뜩 날이 서 있었다.
그러나 살가는 그녀를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모욕감을 느낀 사람은 장경주였다.
그녀는 입술까지 깨물며 참다가 기어코 목소리를 내려 했다.
쉿!
살가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자 장경주는 억지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너희들의 눈을 돌리는 동안 서안 지부장은 멀리 달아났을 게다.”
살가의 말대로라면 저 동굴 안에는 서안 지부장이 없다는 말이 아닌가.
옥돈조의 조원들이 술렁이자 공손황은 고개를 흔들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진정으로 우리들의 눈을 돌리고자 했다면 저런 말은 하지 않았을 거야. 분명히 서안 지부장은 저 동굴 안에 있어.”
“참으로 영리한 놈이로구나.”
살몽 때문에 쓸데없는 말까지 지껄였다.
살가는 맞은편에서 전해 오는 서늘한 느낌에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