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40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40화
제140화. 십만대산의 신(4)
번뜩이는 빛줄기가 대도로 아이의 목을 겨누고 있는 산적의 팔을 스치고 지나 다른 산적들의 목을 휘감고 돌았다.
턱―
그리고 그 빛줄기는 다시 비강의 허리로 돌아 들어갔다.
투툭, 툭…….
으아아아악!
산적들의 머리가 연이어 굴러떨어지고, 팔을 잃은 산적은 팔목을 움켜쥐며 비명을 질렀다.
“이리 오너라.”
아이는 바로 비강에게 달려와 옆에 나란히 섰다.
“조용.”
비강의 목소리는 작았으나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산적의 귀로 똑똑하게 들려왔다.
비명을 질러 대던 산적은 고통마저 참아 삼켜 낼 수밖에 없었다.
비강은 목이 달아난 산적들의 품을 일일이 뒤졌다.
모든 산적의 품을 뒤졌으나 전낭 안에는 은자 몇 냥과 철전들이 고작이었다.
“산채로 안내해.”
* * *
산길을 오르다 보니 벌써 날이 저물고 있었다.
“저, 저곳입니다.”
산적이 가리키는 곳에는 베어 낸 나무로 입구를 막은 산채가 보였다.
“언제 산채를 열었지?”
“반년이 채 안 되었습니다.”
“채주는?”
“스스로를 점창의 제자라 하였습니다. 무공이 아주 대단했습니다.”
역시, 이 산적들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적이다!”
산채에 접근하자 망루에서 망을 보고 있던 산적들이 적의 침입을 알렸다.
스악―!
그러나 곧 한 줄기 빛이 망루의 기둥을 스쳐 지나갔다.
콰드드드…… 쿠쿵!
망루가 비명을 질러 대며 쓰러지며 망루 안에 있던 산적들의 구슬픈 비명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콰쾅! 쿵!
작은 나무를 엮어 만든 입구를 발로 걷어차자 목문은 그대로 안으로 넘어갔다.
열린 입구로 안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십여 채의 초옥과 황급하게 몰려나온 산적들.
그들의 중앙에는 사십 대 중반의 여인이 검을 찬 채 서 있었다.
비강은 단번에 그가 이 산채의 주인임을 알아보았다.
얼굴에 자리 잡고 있는 여러 흉터가 그녀의 삶이 평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점창의 제자라고?”
비강이 먼저 말을 놓자 채주는 살기를 흘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은 잠시 이곳까지 안내해 온 산적에게 향했다.
채주의 살기 어린 눈빛을 받자 팔이 잘린 산적의 목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강호인은 절대로 건들지 말라는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저 병신 같은 놈들이 술에 취해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상대가 낭인이나 무공이 약한 강호인이라면 모르겠으나 본능적으로 이자가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을 짐작했다.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이런 식으로 세력을 심어 놓고 있었군. 자금도 마련할 겸.”
“뉘신지 모르나 수하들이 무례를 저지른 것 같소. 내가 대신 사과하겠소.”
“이미 늦었어.”
그 순간.
스아악―!
비강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채주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흐릿해졌다.
다섯으로 나뉜 그녀의 신형과 검이 비강의 목과 가슴을 노리며 파고들었다.
과연 산적이나 어지간한 강호인이 상대하기에는 벅찬 고수였다.
스걱―
채주의 검이 비강의 목을 자르고 멈췄다.
하지만 목이 잘린 비강은 연기처럼 흩어지고, 그녀의 등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퍽!
일 검에 목이 잘린 채주가 나동그라졌다.
채주의 목을 자른 비강이 몸을 돌리자 산적들은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하늘처럼 떠받든 채주였다.
비록 여인이라고는 하나 무공 하나만큼은 최고였다.
툭.
산적 하나가 병기를 내려놓으며 무릎을 꿇었다.
투툭…… 툭…….
뒤이어 다른 산적들도 병기를 던지고 차례로 바닥에 엎드렸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쉴 것이니 준비해.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고. 저놈처럼.”
초옥 옆에 숨어 있던 산적 하나가 등을 돌리자마자 비강은 땅바닥에 놓여 있던 창 하나를 집어 던졌다.
퍽! 커…… 억!
도망을 치려던 산적은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지 못한 채 애끓는 소리를 흘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서 움직여.”
“예, 옛!”
놀란 산적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시신들을 치우거나 부엌으로 달려가 음식들을 장만했다.
산적들의 움직임을 살피던 비강은 마당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는 초옥으로 걸어갔다.
초옥의 문은 바깥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
문을 열자, 안에는 십여 명의 젊고 어린 여인들이 멍한 눈으로 비강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인들이 걸치고 있는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속살까지 내비치고 있었다.
“이리 와 봐.”
비강은 팔이 잘린 산적을 손짓해 불렀다.
“이 여인들과 아이들은 뭐지?”
“지, 지나가던 여인들과 아이들입니다.”
“여인들이 홀로 지나갔을 리는 없고, 동행한 자들은 어떻게 했지?”
“늙…… 은 여인들과 동행했던 사내들은 죽여…… 없앴습니다.”
이미 짐작하고 있던 터라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인신매매로군.”
“예, 예. 우리는 그, 그저 채주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살려 주십시오.”
팔이 잘린 산적은 얼른 바닥에 엎드렸다.
산적의 팔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는다면 이 산적도 피가 전부 빠져나가 결국 죽을 것이다.
산적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탈색된 상태였다.
그러나 비강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도망치려 하거나 반항하는 여인과 아이들은 어떻게 했지?”
“그것은…… 그것은…….”
산적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답을 듣지 않아도 그 상황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의원께서는 혹시 다친 여인과 아이들이 있는지 살펴봐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의원은 두말없이 초옥 안으로 들어갔다.
“저도 함께 들어갈게요.”
여인은 비강의 허락조차 받지 않고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너희들도 들어오너라.”
여인의 말에 제자들도 초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 * *
큰상이 마련이 되고, 그 위에 여러 요리가 올라왔다.
상 주변으로 여러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비강과 의원, 여인과 제자들은 물론이고 초옥 안에 갇혀 있던 여인들까지 상 앞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요리를 상 위에 차리고 있는 자들은 산적들이었다.
비강의 눈이 잠시 마당 한쪽으로 돌려졌다.
마당 한쪽에는 팔을 잃은 산적이 쓰러져 있었다.
그의 숨은 이미 끊어진 상태였다.
“듭시다.”
비강의 말이 떨어지자 의원과 아이가 수저를 들었다.
그러나 갇혀 있던 여인들은 아무도 수저를 들지 않았다.
수상한 여인이 수저를 들자 그제야 갇혀 있던 여인들도 수저를 들었다.
그런 그녀들의 모습에 비강은 남몰래 전음을 보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귓속으로 전음이 파고들자 여인은 흠칫 놀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그녀의 얼굴에 알 듯 모를 듯 미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당신에게는 말해 주고 싶지 않아요.”
식사가 끝이 나고 상이 치워지자, 산적들은 커다란 나무 상자를 끌어내 와 비강 앞에 바쳐 올렸다.
뿐만 아니라 창고에 쌓여 있는 비단과 귀한 물건들까지 끌어내 왔다.
“한 달에 한 번씩 강호의 무인들이 산채로 들어와 이것들을 수거해 갑니다.”
강호의 무인들은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일 것이다.
“그자들은 언제 또 오지?”
“앞으로 닷새 후에 도착할 것입니다.”
“아쉽군.”
약탈한 물건들과 상자 안의 은자들을 살펴보던 비강은 여인을 불렀다.
“거기, 좀 봅시다.”
비강의 부름에 여인은 이번에도 미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것들을 여인들에게 나눠 주고 내일 아침에 산채 밖으로 내려보내십시오.”
“네에.”
여인은 갇혀 있던 여인들을 불러 모아 은자와 여러 물건들을 나눠 주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갔다.
* * *
이튿날 아침 거하게 아침상을 받은 비강은 식사가 끝이 나자마자 산적들을 불러 모았다.
“전부 저곳으로 들어가.”
비강이 가리킨 곳은 바로 여인들이 갇혀 있던 초옥이었다.
문득 불길한 느낌을 받은 산적 하나가 주춤주춤 물었다.
“저, 저희들은 협객님이 시키는 대로…… 다했습니다. 그러니…… 목숨만은…….”
“저 안에 들어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냐?”
전날 밤에 산채에서 탈출하려던 산적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단 한 사람도 비강의 손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이 아니오라…….”
“죽고 싶다면 들어가지 않아도 좋다.”
“아…… 아닙니다.”
산적들이 앞다퉈 초옥 안으로 들어가자 비강은 문을 걸어 잠갔다.
스아악…… 퍼퍽! 풀썩!
백파가 빛을 뿜을 때마다 초옥 한 채씩 옆으로 몸을 뉘었다.
비강은 쓰러진 초옥의 나뭇가지와 마른풀을 가져다가 산적들이 들어간 초옥 밖으로 쌓았다.
아이가 달려들어 비강이 하는 일을 거들었다.
“용아…….”
의원은 아들이 하는 일을 만류하려 했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초옥 밖으로 나뭇가지와 마른 풀들이 쌓이고 부엌에서 불씨를 가져나온 비강은 그것을 던져 넣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곧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안에서 산적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비강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여인들과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이제 내려가시오.”
그러나 여인들은 타오르는 불길만 쳐다볼 뿐, 아무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만 내려가요.”
수상한 여인의 말 한마디에 여인들이 발걸음을 떼어 놓기 시작했다.
수상한 여인과 제자들이 앞장서고, 여인들은 산채를 빠져나갔다.
그런 여인들을 지켜보며 의원이 입을 열었다.
“초옥 안으로 들어간 저 여인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끌어안았습니다. 저 여인의 품에 안긴 여인들과 아이들이 전부 울음을 터뜨리더군요. 그리고 저 여인은 알아듣지 못할 주문을 외웠는데, 그 주문을 들은 여인들의 표정이 편안해졌습니다. 참으로 신비한 여인입니다.”
불타오르는 초옥과 비명 소리를 지켜보던 비강은 산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산 아래 관도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수상한 여인과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가요.”
“이름이 뭡니까?”
“무화라고 해요, 강무화. 당신은요?”
“알 필요 없습니다.”
강무화의 눈매가 살짝 찌푸려졌다.
* * *
“아무래도 이곳이 적들에게 발각된 것 같습니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하오문도의 보고를 받은 장경주는 애가 탔다.
피하기는 피해야 하는데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중천의 무인들로 보이는 자들이 이미 연안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북쪽으로 가요.”
남쪽에서 중천의 무인들이 올라오고 있다면 북쪽으로 피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장경주가 간단하게 짐을 챙겨 마차에 올라타자 마부는 급하게 말을 움직였다.
“이럇! 어서 가자!”
참담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장경주는 중천의 무인들을 이끌고 오는 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우동문.
그자가 아니라면 이렇게 쉽게 자신의 거처가 발각될 리 없었다.
연비강이 동천의 주인 남궁악에게 패해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 소문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아보기 위해 하오문도들을 동원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났었다.
그 일로 인해 우동문에게 뒤를 밟히게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비강에 대한 정보는 듣지 못했다.
두두두두…….
네 필의 말은 마차를 북쪽으로 이끌었다.
네 필의 말 중 하나가 바로 비강이 타고 다니던 말이었다.
‘너의 주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구나.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장경주는 마차에 내놓은 구멍으로 말들을 바라보며 한탄을 했다.
“워…… 워…….”
빠른 속도를 관도를 달리던 마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큰일 났습니다, 지부장님. 앞에 이미 적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장경주도 마차 구멍으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자들을 보고 있었다.
하아…….
그녀는 작은 한숨과 함께 마차 문을 열었다.
마차 문을 열고 장경주가 밖으로 나오자 진을 친 채 기다리고 있던 무인 중에 한 사람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바로 왼팔이 없는 우동문이었다.
“오랜만이오, 누이.”
“그래. 오랜만에 보는구나. 그동안 잘 있었느냐?”
하하…….
“내 몸이 이 모양이지 뭐요.”
우동문은 밝게 웃으며 비어 버린 자신의 왼 소매를 들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