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38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38화
제138화. 십만대산의 신(2)
백리혈 연비강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오진권은 부맹주 남궁휘와 군사 제갈곤을 불러들였다.
원래의 계획보다 연비강은 시천세와 삼패의 시선을 오래 잡아끌지 못했다.
또한 연비강이 시천세가 아닌 남궁악에게 패해 죽었다는 사실도 오지권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는 젊은 고수 중에 자신에 비견될 만한 자는 오직 연비강 한 사람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쪽의 북궁도나 서쪽의 여문탁, 동쪽의 오기륭마저도 자신보다 한 수 아래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연비강이 시천세도 아닌 남궁악에 패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답답하오?”
조용히 오진권의 표정을 살피던 제갈곤이 물었다.
“무엇이 답답하다는 말씀이십니까?”
껄껄…….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소? 연비강은 시천세와 삼패의 시선을 오래 잡아 두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천세가 아닌 남궁악에게 패해 죽었으니 말이오. 더군다나 직접 복수도 하지 못했고.”
제갈곤은 오진권의 속내를 족집게처럼 집어냈다.
“역시, 군사의 눈은 속이지 못하겠군요.”
오진권은 숨기고 있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매우 불쾌했다.
하지만 그것을 밖으로 내보이지는 않는 것이 참으로 그다웠다.
웃음을 거둔 제갈곤은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문을 열었다.
“맹주, 엉뚱하게 들릴지는 모르나 옛 선인들을 본받아 연비강의 인물평을 한번 해 보고자 하오.”
어느 때보다도 진중하기 이를 데 없는 제갈곤의 말투와 모습에 오진권과 남궁휘는 별말 없이 귀를 기울였다.
“강호에서는 그를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마왕이라고 하오. 하나 그는 양민들에게 털끝만큼도 해를 가한 적이 없소. 오히려 양민들을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소이다. 고강한 무공에 더해 결단과 임기응변이 빠르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 등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자라 할 수 있어 적으로 만난다면 최악의 상대가 될 자였지요.”
“하면 군사께서는 원수인 그자를 제가 끌어안아야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껄껄…….
“아니오. 아니외다. 내 얘기는 아직 다 끝나지 않았소. 그자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큰 단점을 가지고 있소. 바로 정과 의리에 약하다는 것이오. 무릇 큰일을 도모하려면 정과 의리를 배제하고 실리를 취해야 하는데, 그자는 그런 것이 없소. 작은 세력의 우두머리는 가능하나 큰 세력을 일으켜 세울 만한 자는 아니외다. 때문에 언젠가는 적의 칼날 아래 목숨을 잃을 자였소. 그것이 짐작보다 너무 빠르기는 했으나, 어차피 강호에서 사라질 자였소.”
제갈곤의 헤아림이 날카롭다 여겼는지, 남궁휘는 적잖이 감탄을 했다.
“과연, 군사께서는 천목자라 불릴 만하십니다. 그렇다면 시천세는 어떻습니까?
“그간의 행적과 맹주와 부맹주께서 북림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토대로 짐작한 것이니 혹여 나중에 내 말이 맞지 않더라도 비웃지 마시구려. 그자는 명실상부한 강호 무림의 천하제일인이자 절대자요. 거기다가 지략에 밝아 앞일을 내다볼 뿐 아니라, 뛰어난 수하들까지 그를 충심으로 따르고 있소. 사패에 의해 강호가 넷으로 갈라지고 난 후부터 작금의 일을 진행시킨 것을 보면, 일을 도모하는 능력과 인내심도 대단하다 할 수 있을 거외다.”
제갈곤이 표정을 달리하며 말을 이었다.
“하나 그런 그에게도 커다란 약점이 있으니, 바로 자신의 사형제 외에는 아무도 인정하려 들지 않을 정도로 오만하다는 점이오. ……그럼에도 만약 몇 년 이내에 강호일통이 이루어진다면 바로 그자가 주인이 될 것이외다.”
“자신의 사형제 외에 아무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은 어찌 아셨습니까?”
오진권의 물음에 제갈곤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
“맹주, 만약 그자가 자신의 사형제들마저 인정하지 않았다면, 벌써 강호일통이 이루어졌을 거외다.”
오진권과 남궁휘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제갈곤의 이야기가 모두 이치에 닿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천세 외에 우리가 경계해야 할 자는 누구라고 보십니까?”
“동천의 남궁악이 될 것이오.”
오진권이 몹시 의아해하며 물었다.
“남쪽에는 도운패가 있고 서쪽에는 당백요가 있습니다. 그들 모두 무신이라 불리고 있고 세력 또한 거대한데, 굳이 남궁악을 지목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선의 도운패는 정이 많고 의를 아는 협객이오. 협객은 고루하고 불의를 용납하지 못하니 주변에 적이 많아 배신을 당하거나 협공을 당해 제명을 채우지는 못할 거요. 서쪽의 당백요 또한 의를 아는 인물이기는 하나 도운패에 미치지 못하고 시천세에게 머리를 조아린 것으로 보아 야심도 대단한 인물이오. 그 때문에 그녀는 남들에게 이용당하다가 버려질 가능성이 높소.”
“과연…….”
제갈곤이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가문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사패의 주인들을 살펴본바, 그들 중에 동천의 남궁악이 가장 조용했소. 어지간해서는 밖으로 나오지도 않아 그에 대한 소문이 거의 없다시피 했소. 하여 나는 그를 때를 기다리는 용이나 범으로 보는 것이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미천한 저희들을 깨우쳐 주십시오.”
“나는 무림맹의 군사요. 당연히 두 분을 도와 잃어버렸던 강호 무림을 되찾아 와야 하지 않겠소. 연비강의 죽음은 우리의 앞날을 막을지도 모르는 아주 대단한 고수가 하나 사라졌다고 생각하시오. 그렇게 하나씩 제거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 무림맹은 강호 무림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오.”
사실 제갈곤도 속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연비강의 죽음이 왠지 미심쩍어 조사를 해 보고 싶었지만 상대가 동천의 남궁악과 사파의 두궁천이라 방도를 찾지 못한 까닭이었다.
“연비강의 죽음은 확실한 것이겠지요.”
“장담은 하지 못하오.”
* * *
[하오문의 제자가 미력하나마 글로써 문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뜻하지 않은 일로 하오문에 누를 끼치게 되어 문주님을 뵐 낯이 없습니다.
고아였던 저를 먹여 주고 가르쳐 주신 그 깊고 깊은 은혜는 백 번을 죽어도 갚을 길이 없습니다.
하여 저는 그 은혜를 갚는 일에 남은 생을 다 바칠까 하옵니다.
제가 중천에 든 것은 다름 아닌 바로 하오문과 문주님을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하오문도 이제 밝은 빛을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까지 칙칙하고 음습한 어둠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자는 중천의 부천주 약추완을 이용하여 하오문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할 것입니다.
약추완이 그 일을 거부한다면 벽 총관의 아래로 들어가 반드시 그 일을 완수해 낼 것입니다.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문주님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제 아래로 들어온 하오문의 형제들을 핍박하지 마시고 힘을 보태 주십시오.
부디 제자의 충심을 의심하지 마옵소서.
또한 누이가 하오문을 배신해 도망을 쳤으니 제 손으로 직접 추포하게 해 주십시오.
행여 제자를 의심해 큰일을 도모함에 방해가 된다면 천추의 한으로 남을 것입니다.
늦게나마 글로써 문주님께 아뢰옵나이다.]
와락…….
하오문주는 서신을 구기고 잡아 찢었다.
“죽일 놈.”
이 서신은 겉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일을 방해하지 마라.
바로 그것이 서신의 요지였다.
하오문은 이미 난도질이 되어 중구난방으로 흩어졌다.
중천에 있는 우동문에게 정보를 전해 주는 자들, 무림맹에 정보를 전해 주는 자들, 거기다가 동천의 두궁천에게까지 정보를 전해 주는 자들도 있었다.
하오문주는 그런 자들을 일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중천이나 무림맹, 동천과는 맞설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하오문에서 양성한 무인들을 내보내 연비강을 추격하게 했다.
천운이 따라 그자만 잡는다면 하오문은 꿈에 그리던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늘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살가(殺歌).”
하오문주의 부름에 어둡고 칙칙한 동굴 속에서 중노인이 걸어 나왔다.
“부르셨소? 문주.”
아담한 체구의 중노인은 지극히 평범한 얼굴이었으나, 오른쪽 소매가 비었고 머리카락만은 새치 하나 없이 까맸다.
“나를 위해 내 딸아이를 보호해 주시오.”
“그건 계약과는 다른 일이오.”
중노인이 거절하자 하오문주는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중노인을 향해 넙죽 엎드렸다.
“부탁하오.”
하오문주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중노인이 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나와 그대가 나눈 계약은 사라지는 것이오. 나는 이 년 동안 그대를 대신해 딸아이를 살려 놓겠소.”
“고맙소, 살가.”
“먼 길을 떠나려면 단단히 채비를 해야겠구먼.”
자리에서 일어난 중노인은 다시 어둠 속의 동굴로 들어갔다.
하오문주는 고개를 푹 늘어뜨렸다.
살가는 숨겨 놓은 하오문의 마지막 힘이었다.
이제 저 사람까지 내놓았으니 하오문을 지킬 만한 힘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 *
노인은 이름이 없었다.
오래전, 강호에서는 그를 ‘살가’라 불렀다.
구파일방의 의뢰에 의해 풍천양을 암살하러 살수들과 북림으로 쳐들어갔던 최고의 살수.
대가는 전멸이었고 중노인은 팔을 잃었다.
그것도 풍천양이 봐주었기에 한 팔만 잃은 것이다.
―은신만은 가히 천하제일이라 할 만하구나.
그것이 풍천양에게 들은 말이었다.
중노인은 풍천양에게서 하늘을 보았고 강호를 은퇴하려 했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하오문이 접근했다.
―가실 곳이 마땅치 않다면, 우리 하오문에 기거하십시오.
그랬는데, 이제 연이 다한 것이다.
* * *
동이(東夷)에서 온 여인과 제자들이 비강을 쫓아 움직인 지 벌써 닷새째 접어들고 있었다.
“굉장히 잔인한 분이었군요.”
여인이 말을 걸었으나, 비강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비강은 그들에게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넓은 관도를 걷던 비강은 산으로 통하는 좁은 길로 방향을 틀었다.
“조금 험하기는 하지만 지름길입니다.”
비강이 의원과 아이를 데리고 좁은 길로 접어들자 여인과 제자들도 뒤를 따라왔다.
날이 조금씩 더워지는 것이, 며칠만 지나면 여름이라 해도 될 것 같았다.
“조금 쉬었다가 가자.”
맑은 냇물을 발견한 비강이 자리를 정해 앉자, 의원이 다가와 마주 앉았다.
“가슴과 복부를 묶고 있는 헝겊을 새것으로 갈아야 합니다.”
“수고해 주십시오.”
비강이 겉옷을 풀어 헤치자 상체를 동여매고 있는 하얀 헝겊들이 나타났다.
의원은 조심스럽게 헝겊을 풀기 시작했다.
뒤따라온 여인과 제자들도 거리를 벌려 앉더니 그런 비강을 힐끔거렸다.
행낭에서 새 헝겊을 꺼낸 의원은 비강의 상체를 다시 감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움직이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어디 아픈 곳은 없으십니까?”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쓰립니다.”
하하…….
“겨우 쓰리다는 말씀이십니까?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겉옷을 갖춰 입은 비강은 여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왜 계속 우리 뒤를 따라오는 겁니까?”
“방향이 같은 것뿐이에요. 무공이 뛰어나시니 방향이 갈라질 때까지 도움을 받고 싶기도 하고요.”
“당신과 같은 여인이 젊은 제자 둘을 데리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험한 강호를 주유하고 다닐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내가 모르는 뭔가 있겠지요.”
하하하…….
여인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맑고 고혹적이었다.
하나 왠지 모르게 섬뜩하기도 했다.
비강은 여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아저…… 씨, 제게…… 무공을 가르쳐 주세요.”
그때까지 아무런 말도 없던 아이가 비강의 앞으로 다가와 머뭇머뭇 목소리를 냈다.
“이 무슨 짓이냐?”
의원이 놀라 아이를 나무랐다.
하지만 비강이 손을 저으며 그를 말렸다.
“괜찮습니다. 한데 너는 무엇 때문에 무공을 배우고 싶은 게냐?”
아이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대답이 없었다.
“그런 자들을 직접 죽이고 싶은 게냐?”
아이가 무슨 짓을 당했는지 잘 알고 있는 비강은 적이 안쓰러웠다.
아이는 고개는 더욱 수그러들었다.
하아아…….
의원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차라리 무인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적어도 아이를 그 악마들에게 빼앗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좋아 의원이 되었으나, 아내를 살리지 못했고 아들의 아픔조차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좋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무공을 가르쳐 주마. 우선 체력부터 길러야 하니 준비를 단단히 해라.”
의원의 표정을 살핀 비강은 고개를 끄덕여 아이의 청을 승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