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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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36화
제136화. 마왕의 죽음(2)
“연비강이 죽었다고 들었다.”
이미 전서를 받아 비강의 죽음을 알고 있는 시천세는 복귀한 약추완을 불러 물었다.
“두궁천이 연비강의 철봉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자가 말하기를 연비강을 죽인 자는 동천의 주인이라 하였습니다.”
“너의 생각은?”
“동천의 주인이 나섰다면 연비강의 죽음은 확실합니다.”
이미 강호에는 연비강의 죽음이 퍼져,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정도였다.
“나가 봐.”
시천세는 별말 없이 약추완을 방 밖으로 내보냈다.
끌끌…….
방을 나가는 약추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시천세는 비웃음을 흘렸다.
“천양이 참으로 인내심이 많았어. 나 또한 마찬가지고.”
약추완은 시천세의 비웃음을 온전히 그대로 들으며 방을 나갔다.
약추완이 방을 나가고 나자 비웃음이 가득했던 시천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지금 분노를 참기 위해 주먹까지 꽉 쥐고 있었다.
“내…… 실수야.”
남궁악의 야심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풍천양과 일전을 벌일 때 언뜻 남궁악이 흘리고 있는 기운이 기묘하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었다.
사제는 자신과 똑같은 야심을 품고 있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것을 위해서라면 사형과 사제는 물론이고 사부까지 베어 버릴 놈이었다.
“놈을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사부를 만난 일까지 전부 전해 주었건만.”
사부는 단 한 사람의 후계자를 원하고 있었다.
남궁악도 그 사실을 알았으니 절대로 연비강을 살려 둘 리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연비강은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남궁악은 필시 그 아이를 살려 주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다시 원점인가.”
시천세가 앉아 있는 방이 어둠 속으로 젖어 들어갔다.
곧 종예가 방으로 들어와 촛불을 밝혔지만, 시천세의 눈에는 밝음마저 들어오지 않았다.
“종예.”
“예, 주공.”
“마동(魔洞)에 있는 놈들을 데려와라.”
깜짝 놀란 종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마동을 개방하려 하시는지요? 너무 이른 것이 아닙니까?”
시천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종예는 허리를 숙이며 물러났다.
“숨겨 놓았던 힘을 보여 주마, 사제.”
* * *
삐걱…… 삐걱…….
어둠 속으로 오직 노 젓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팔을 다쳐 치료를 받으러 왔던 수적은 고통을 무릅쓰고 열심히 노를 저었다.
“어찌하여 뭍으로 들어가느냐?”
이윽고 뱃전에 앉아 있던 비강이 물었다.
“우리는…… 수채가 없습니다. 대신 아무도 다니지 않는 산에다가 산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수적들을 제대로 잡아들이지 못한 것일 게다.
어느 누가 물에서 노는 수적들이 산채를 만들었으리라 짐작이라도 했겠는가.
“배는 어디에다 숨겨 두느냐?”
“근처에 동굴이 있습니다. 그리고 배를 대는 곳에 수적들이 항상 상주해 있어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라면 접근하기도 힘들 겁니다.”
수적의 말속에는 은근한 협박도 들어 있었다.
상황이 너에게 불리하니 그만 돌아가 목숨이라도 연명하라는 의미.
하지만 비강의 정체를 알았다면 수적은 입조차 뻥끗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강과 수적을 태운 작은 배는 점점 뭍과 가까워졌다.
이윽고 어둠 속의 뭍이 십여 장 가까이 왔을 때 노를 젓던 수적은 갑자기 몸을 일으켜 소리쳤다.
“습격이다!”
습격을 알린 수적은 바로 물로 뛰어들었다.
제 딴에는 물질에 능하니 물속으로 들어가 목숨을 건지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검신이 어둠 속을 갈랐다.
크아악―!
허리가 갈라진 수적은 비명을 내지르며 물속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비강은 작은 배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토, 토톡……!
물을 박차고 날아간 비강은 뭍에 도착하자마자 검을 뿌렸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가슴에서 극심한 통증이 전해져 온다.
스걱, 스걱!
기분 나쁜 절삭음과 함께 적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뭍을 지키고 있던 적들을 모두 처리한 비강은 어둠 속에서 수적들의 흔적을 찾았다.
수적들이 오간 흔적이 산으로 이어져 있었다.
산을 달려 올라간 비강은 깊은 골짜기 안에서 반짝이고 있는 흐릿한 불빛을 발견했다.
아마도 저곳이 수적들의 은거지일 것이다.
골짜기 안으로 들어간 비강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자들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신형을 날렸다.
* * *
스으으…….
어둠 속으로 한 줄기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투툭.
뒤이어 두 개의 머리가 비명 소리 하나 없이 땅으로 굴러떨어진다.
털썩.
머리 없는 수적들의 몸이 쓰러질 때, 비강은 이미 작은 헛간 같은 곳에 숨어들고 있었다.
흑흑…….
허억…… 허억…….
흐느껴 우는 소리와 숨넘어가는 소리가 섞여 들려오는 헛간을 들여다본 비강의 눈이 커지며 빛을 잃어 갔다.
헛간 안에는 묶여 있는 아이들이 여섯 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아랫도리를 까 내린 수적 하나와 일고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흐느껴 울고 있었다.
구멍으로 안쪽을 들여다보던 비강은 수적이 몸을 일으키자 바로 문을 향해 다가갔다.
수적은 아랫도리를 추켜올리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퍽.
작은 타격음과 함께 수적은 바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수적을 쓰러뜨린 비강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중앙의 초옥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때 술에 취한 수적 하나가 문을 열고 나와 한쪽에 서서 아랫도리를 까 내렸다.
소변을 보러 나온 놈이었다.
서걱. 툭.
목이 바닥에 떨어지고 몸이 쓰러졌다.
비강은 초옥의 문을 조용히 닫았다.
그리고 마당 한쪽에 붙여 놓은 횃불을 가져와 초옥을 돌며 불을 붙였다.
초옥의 외벽은 순식간에 불에 타오르고 안쪽에서 비명 소리와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불이야! 밖에서 뭣들 하느냐! 어서 불을 꺼라! 콜록, 콜록…….”
“어서 불을 꺼라, 이 새끼들아! 콜록, 콜록…….”
수적들의 외침 소리에 오른쪽에 늘어진 초옥에서 수적들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것은 자비를 모르는 사신이었다.
이미 불을 지른 다음이라 그런지, 비강의 손속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크아악…… 아악!
비강은 절대로 한 번에 목숨을 끊는 동정심을 보이지 않았다.
수적의 팔을 자르고 다리를 잘랐다.
수적들도 병기를 들어 대항했으나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병기를 들고 있는 손이 공중으로 떠올라 바닥에 떨어지고, 두 다리가 잘려 나갔다.
아아아악―!
“살려 줘! 제발, 살려 줘!”
수적들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을 쳐 댔다.
쾅!
불길이 치솟고 있는 초옥을 뚫고 수적 하나가 몸에 불이 붙은 채 튀어나왔다.
스걱.
크아아악……!
하지만 밖으로 튀어나오자마자 두 다리가 잘려 바닥을 뒹굴었다.
수적 하나가 튀어나온 구멍으로 다른 수적들이 연이어 튀어나왔다.
불길에 휩싸인 채 튀어나온 수적들은 비명을 질러 대며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하나둘 바닥에 몸을 뉘어 오그라들었다.
수적들의 팔다리를 전부 베어 낸 비강은 마당 한쪽에 놓인 바위에 걸터앉았다.
악다구니와 비명이 골짜기에 가득하고 피맺힌 원한의 외침 소리가 수적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네놈을…… 반드시 죽일 것이다!”
“원귀가 되어 네놈을 반드시 죽일 것이다!”
비강은 그들을 향해 비웃음으로 답해 주었다.
“그러든지.”
고통에 몸부림치는 수적들을 지켜보던 비강이 물었다.
“배를 숨겨 놓은 동굴이 있다고 하던데. 그곳을 가르쳐 주면 목숨은 살려 주마.”
“골짜기를 돌아가면 그곳에 있소!”
“골짜기 너머에 있소!”
온갖 악다구니를 다 써 대던 수적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소리쳐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비강은 아이들이 갇혀 있는 헛간으로 걸어갔다.
“나를 살려 준다고 했잖아!”
“약속을 지켜!”
헛간으로 걸어가던 비강이 고개를 돌렸다.
“내가 누구와 약속을 했나.”
“이 찢어 죽일 새끼야!”
“너는 천벌을 받아 죽을 것이다!”
다시 악다구니가 이어졌지만 비강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삐걱.
헛간 안으로 들어간 비강은 아이들의 몸을 묶고 있는 줄을 끊어 주었다.
“그만 가자.”
겁에 질려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다.
“괜찮아. 그만 가자.”
비강의 재촉에 아이들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몸이 성치 않은 아이도 있었다.
비강은 몸조차 일으키지 못하는 아이를 안아 들었다.
앞장서 문을 나선 비강은 횃불을 하나 찾아 뒤에서 걷고 있는 아이에게 건넸다.
“네가 아이들을 위해 길을 비춰 주어라.”
비강과 아이들은 천천히 죽어 가고 있는 수적들을 지나쳐 걸었다.
“제발……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제발…….”
비강은 수적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수적들이 두려운지 몸을 잔뜩 움츠렸다.
골짜기를 돌아가니 수적들의 말대로 동굴이 나타났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여기저기 작은 배들이 바위에 묶여 있었다.
안고 있는 아이를 배 위에 내려놓은 비강은 아이들을 전부 배에 태우고 배를 밀었다.
그리고 바로 배 위에 올라타 노를 잡았다.
“이제 집에 가는 거다.”
으아아앙!
아이들의 입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 * *
적룡조와 함께 무공을 연마하고 있던 북궁도는 급한 발소리에 도를 내렸다.
저렇게 급한 발걸음이라면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급하게 걸어온 젊은 사내는 북궁도의 귀에 작은 목소리로 몇 마디 건넸다.
북궁도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무공을 연마하던 조원들도 전부 손을 멈췄다.
“확실한 소식이오?”
“예. 확실합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도대체 누가 내 벗을 죽일 수 있단 말이오?”
“동천의 천주가 직접 움직였답니다.”
“이런…….”
북궁도는 온몸에 힘이라도 빠진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조장.”
조원들이 놀라 몰려들었으나 북궁도는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그러게…… 그러게 작작 좀 죽이지…….”
북궁도가 힘없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부조장 지선방이 사내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설명해 봐요.”
“저…… 그것이…….”
사내는 바닥에 앉아 있는 북궁도의 눈치를 살피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백리혈 연비강이 동천에서 전사했다고 합니다. 동천의 천주가 직접 나서서 상대했다고 하니, 아무리 백리혈이 대단하다고 해도 어찌 살아날 수 있었겠습니까.”
처음이 어렵지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하자 사내는 거침없이 모든 것을 밝혔다.
사내의 이야기를 들은 조원들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북궁도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들도 북궁도가 얼마나 비강을 좋아하는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끄응…….
멍하니 앉아 있던 북궁도는 어렵게 몸을 일으키더니 갑자기 하늘을 향해 앙천괴소를 토해 냈다.
크하하하……!
“만약에 내 벗이 정말로 죽었다면, 내가 당신을 용서치 않을 것이오!”
하늘을 향해 삿대질까지 하며 소리친 북궁도는 조원들을 향해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벗은 안 죽었어.”
“조장…….”
아무래도 북궁도의 상태가 많이 이상했다.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 지선방은 조장의 팔을 잡아끌었다.
“조금 쉬는 게 좋겠어, 조장.”
북궁도는 지선방이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적룡조의 조원이자 검절의 제자들도 어두운 얼굴로 북궁도를 바라보았다.
그들 또한 비강과 인연이 있었기에 그의 죽음에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이다.
그들이 느끼기에 백리혈 연비강은 절대로 마왕이 아니었다.
* * *
숙소에 누워 있던 북궁도는 곁을 지키던 지선방이 자리를 비우자 급하게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벽에 난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북궁도는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달렸다.
바로 비강을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비강이 정말로 죽었다면 시신이라도 찾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북궁도는 남선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어디로 가느냐?”
어떻게 알았는지 도운패가 뒷짐을 지고 앞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내 주십시오, 사부님.”
북궁도는 도운패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