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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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35화
제135화. 마왕의 죽음(1)
“두령, 저기 시신이 한 구 떠다니고 있습니다.”
노를 젓던 수적 하나가 강물 위에 떠 있는 시신을 발견했다.
“끌어 올려 봐. 패물이라도 안고 뒈졌을지도 모르니.”
“예.”
수적들은 힘을 합쳐 물 위에 떠 있는 시신을 끌어 올렸다.
시신은 장검 한 자루를 굳게 잡고 있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명검 한 자루가 있습니다.”
“그럼, 그거라도 가져와.”
“검을 꽉 쥐고 있는데요?”
“손이라도 잘라, 이 새끼들아!”
“예.”
수적은 바로 넓적한 도 한 자루를 빼 들었다.
그러나 그 수적은 도를 내려치지 못했다.
핏. 핏. 핏……!
배 위에 올라타고 있는 수적들의 목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털썩, 그륵…… 그르륵…….
“뭐야? 무슨 일이냐?”
다른 배에 타고 있던 수적들이 배를 몰아 몰려들었다.
배 위에 쓰러진 수적들은 피를 게워 내다가 곧 숨이 끊어졌다.
스으으…….
배 위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것은 가슴이 벌어져 있는 시신이었다.
으어억!
강심장을 가진 수적들이었지만 그 모습이 너무도 기괴했는지 전부 놀라 자빠졌다.
수적들의 두령은 대번에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다른 배들과는 다르게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그는 배를 타고 있는 수적들에게 몰래 명령을 내렸다.
“돌아간다.”
하지만 그보다 빠른 것은 시신의 움직임이었다.
스아악……!
손에 쥐어져 있던 검이 순식간에 물을 갈랐다.
투툭, 투툭.
뿌드드드…… 쿵!
수적들의 목이 떨어져 배 위에 나뒹굴고, 수적들을 태운 배가 반으로 갈라졌다.
갈라진 배는 물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도망쳐!”
그제야 두령의 입에서 급박한 외침 소리가 튀어나왔다.
콰쾅!
그러나 그들이 타고 있는 작은 배 앞에 광채가 스쳐 지나가며 물기둥이 치솟았다.
두령은 강호의 고수에게 자신들이 잘못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팔을 축 늘어뜨린 채 배 위에 서 있는 검은 시신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던 두령이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곳으로 가라.”
이 상황에서 살아날 방법은 저 정체 모를 시신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하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오히려 검은 시신과 조금이라도 더 멀어지기 위해 급하게 노를 저었다.
콰쾅!
다시 뱃전 앞의 물이 치솟아 오르자 두령은 허리에 차고 있던 도를 빼 들었다.
퍼퍽! 퍽!
크아악! 꺼어억……!
부하들을 전부 쳐 죽인 두령은 시신을 강물 위에 던져 버렸다.
그러고는 직접 노를 저어 여전히 배 위에 서 있는 시신을 향해 다가갔다.
푹 숙이고 있던 머리가 천천히 들려지며 백지장 같은 얼굴이 드러났다.
시신처럼 백지장 같은 하얀 얼굴은 깊숙하고 기이한 눈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수채에 의원이 있느냐?”
두령은 배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수채에 의원은 없으나, 의원의 집은 알고 있습니다.”
“안내하라.”
죽은 것인지 살아 있는 것인지 모를 시신은 그런 말을 남기고 배 후미에 가 누웠다.
두령은 시신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다.
언제 다시 일어나 무자비한 살수를 들이밀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첨벙! 첨벙!
검은 시신의 배 위에 올라탄 두령은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시신들을 전부 강물에 던져 버렸다.
그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였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의원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삐걱…… 삐걱…….
두령과 시신을 태운 배는 바닥에 넙죽 엎드려 있는 어부와 점점 멀어져 갔다.
이윽고 노 젓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을 때 바닥에 넙죽 엎드려 있던 어부는 살며시 고개를 쳐들었다.
주변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수적들만이 강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으…… 으아아악!
어부는 갑자기 비명을 질러 댔다.
그리고 황급히 배 안에 숨겨 둔 은자와 전표를 강물에 뿌렸다.
아무래도 이 은자와 전표는 죽은 자가 저승으로 가는 노잣돈이었던 모양이었다.
* * *
마동의 마왕이 죽었다.
하북과 호북의 경계에서 추격을 이어 나가고 있던 약추완의 귀로 들려온 소문이었다.
하지만 약추완은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지금까지 수없는 죽음의 난관을 헤쳐 나온 연비강이었다.
자신이 직접 그의 시신을 보지 않는다면 절대로 믿지 않을 것이다.
결국 동천으로 넘어온 약추완은 한 무리의 무인들과 마주했다.
무인들을 이끌고 있는 자는 바로 악추산의 손가락을 자른 두궁천이었다.
수천의 무인들과 마주한 두궁천이었으나 그의 얼굴에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중천의 이인자를 뵙소이다.”
두궁천이 먼저 나와 허리를 굽혔다.
약추완은 자신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있는 두궁천을 살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았다.
외손자의 손가락을 자른 놈을 면전에 두고도 어쩌지 못하는 이 상황에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두궁천은 약추완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허리를 펴더니 태연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중천이나 동천은 각자 관리하는 영역이 따로 나뉘어 있습니다. 한데 어찌하여 동천의 영역을 침입하셨소이까?”
“백리혈 연비강을 추격하는 일이다. 그 일에 관해서는 영역의 구분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너도 잘 알고 있을 터, 또한 감히 중천의 일을 동천이 가로막는 것이냐?”
동천을 중천의 아래로 보는 약추완의 반응이었다.
두궁천은 그 말에 맞서지 않았다.
약추완의 말이 맞기 때문이었다.
“백리혈 연비강을 잡기 위해 동천으로 들어오려 한다면 그만 돌아가라는 말씀을 올리고 싶소이다.”
“무슨 뜻이냐?”
“그자는 이미 죽었소.”
퍽.
두궁천은 등 뒤에 메고 있던 철봉을 뽑아 바닥에 꽂았다.
철봉은 땅바닥 깊숙이 박혔다.
약추완은 물론이고 뒤쪽에서 관망하고 있던 벽사군까지 다가와 철봉을 살폈다.
중간에 무언가에 잘린 흔적이 있기는 하지만 연비강의 철봉이 확실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백리혈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
“동천의 주인께서 직접 그자의 목숨을 거두셨소.”
“사…… 실인가요?”
벽사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백리혈 연비강이 죽은 것은 확실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소.”
크크…… 크하하하…….
미친 듯 웃고 있는 자는 다름 아닌 우동문이었다.
우동문은 비어 버린 자신의 손목을 들어 보이며 미친 듯 웃어 젖혔다.
이제야…… 이제야 놈의 죽음을 듣게 되었다.
직접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싶었지만, 남의 손에 죽었다는 것도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우동문뿐만이 아니었다.
강호에서 마왕을 잡기 위해 몰려들었던 낭인과 강호인들 중에는 눈물까지 흘리는 자들도 많았다.
그들은 마왕의 손에 동료를 잃었고, 형제를 잃었고, 가족을 잃었다.
먼저 목숨을 빼앗기 위해 나선 쪽은 오히려 자신들이었지만 백리혈 연비강은 장차 무림에 피를 몰고 올 마인이었으며 마왕이었다.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약추완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연비강이 죽어 없어진 것은 좋으나 이번에도 아무런 공을 세우지 못했다.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시천세에게 온갖 수모를 당할 것이다.
“동천의 주인께서 이런 말씀을 전하라 하셨소. 마왕을 죽일 수 있었던 이유는 부천주의 공이 대단히 컸다고 하셨소.”
“그런…… 가.”
“지금까지 백리혈의 추격에 나셔 주셨던 분들을 위해 저 안쪽에 우리가 조촐한 위로의 자리를 마련했소. 하루 정도 마음껏 드시고 마시다가 돌아가 주시오.”
두궁천은 몸을 비켜서며 안쪽을 가리켰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다. 다음에는 네놈의 목을 쳐 주마.”
약추완이 몸을 돌리자 우동문과 중천의 고수들, 그리고 약가의 가인들이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강호인들은 아니었다.
대부분 두궁천이 가리키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중에는 벽사군도 끼어 있었다.
그녀의 목적은 바로 두궁천이었다.
* * *
“부목을 대고 상처를 꿰매기는 했으나 제대로 뼈가 붙고 아물지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사십 대의 의원은 누워 있는 비강에게 그렇게 말을 하긴 했으나 분명 제대로 아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의원 생활이 벌써 이십 년이 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런 환자는 처음 받았다.
이 환자를 받았을 때 반쯤 잘려 나갔던 뼈는 이미 붙고 있었으며 상처도 아물어 가고 있었다.
자신은 아물어 가는 상처를 이어붙이고 뼈가 제자리를 찾도록 부목을 댄 것밖에 없었다.
‘많이 지쳤나 보군.’
의원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환자를 내려다보다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이런 의원 생활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뿐인 아들이 수적들에게 볼모로 잡혀 있었다.
휴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길게 한숨을 내쉰 의원은 넘실거리는 강물로 시선을 던졌다.
저 환자를 데리고 온 수채의 소두령은 바로 목이 잘려 강물에 버려졌다.
살지 죽을지 모르는, 어쩌면 저승에서 건너온 것 같은 낯빛 창백한 젊은 사내가 수적을 없애 버리고 치료해 달라 할 때에는 정말 크게 놀랐었다.
그 말을 마치고 곧바로 쓰러진 젊은 사내를 방 안으로 옮기고 진료를 했으나, 환자의 몸 상태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일반적인 사람의 몸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죽을 정도의 중상이었는데 살아 움직이는 것도 신기했고 거기다가 상처까지 아물어 가고 있었다.
의원은 이 기적에 자신의 운명을 걸어 보기로 했다.
이 신비한 젊은 사내를 살려 반드시 아들을 되찾으리라.
길게 한숨을 내쉬었던 의원은 부엌으로 들어가 죽을 끓였다.
환자가 눈을 뜨면 먹이기 위한 것이었다.
죽이 팔팔 끓어오르자 의원은 불을 죽였다.
솥에서 죽을 떠내 식히고 방으로 들어가 보니 환자가 눈을 뜬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행히 눈을 뜨셨군요.”
“고맙소.”
말투로 보아 도리를 저버리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초면에 죄송합니다만, 존함을 알 수 있겠는지요?”
의원은 절실했다.
눈을 뜬 비강은 한참 동안 의원의 눈만 쳐다보았다.
여기서 가명을 말할 것인가, 아니면 원래 이름을 밝힐 것인가.
“비강, 연비강이오.”
갑자기 의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람들이 마왕이라 부르든 아니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다만 아들만 찾아준다면 마왕에게 영혼까지 바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은 내가 두렵지 않소?”
“조금도……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 보시오.”
비강은 의원의 얼굴에서 간절함을 읽어 냈다.
이 의원은 자신에게 뭔가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
“제 아들을…… 제 아들을 찾아주십시오.”
“어디에 당신의 아들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며칠 기다려야 할 것 같소.”
“일 년이고 십 년이고 기다릴 것입니다.”
사내가 말을 마치자 비강은 다시 눈을 감았다.
부엌에는 의원이 식히고 있던 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 * *
“저는 수적들의 은신처를 모릅니다.”
“하면 수적들이 이곳을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소. 수채에는 당신의 아들 말고 다른 아이들도 볼모로 잡혀 있소?”
“확실히는 모르나 물건과 식량을 대는 상단의 어린 아들이 함께 잡혀 있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수적들이 오는 날, 내가 수채로 들어갈 거요.”
“그 몸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소.”
바로 이런 대화를 나눈 날 저녁에 작은 배 한 척이 팔을 다친 수적을 싣고 뭍에 닿았다.
“뭐 하고 있어, 허 의원! 얼른 이 녀석의 팔을 고쳐야지!”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의원이 허겁지겁 그 배를 향해 달려 나갔을 때, 그곳에는 검은 마왕이 내려앉고 있었다.
투툭, 툭.
수적들의 머리가 뭍과 물로 떨어졌고, 살아남은 수적은 팔을 다친 수적 하나가 전부였다.
“저, 저도 함께 가고 싶습니다.”
“방해만 될 거요. 참고 기다리시오.”
“부디…… 제 아들놈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