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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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33화
제133화. 동쪽의 악(惡)(3)
공중으로 뛰어오른 적들의 발목이 찢겨 나갔다.
당당하게 용과 맞섰던 자들의 몸도 뜯겨 날아갔다.
하지만 흉포한 용은 끝까지 날아가지 못했다.
겨우 십여 명을 집어삼키고 흩어져 사라진 것이다.
짐작보다 사련의 고수들은 훨씬 더 강한 자들이었다.
“저기 있다!”
“백리혈이 강호 협객들과 혈전을 벌이고 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비강의 허리를 향해 도신이 파고들어 왔다.
툭.
땅을 가볍게 밀며 뒤로 물러서는 비강의 손이 사선을 그렸다.
스걱.
허리를 노리며 파고들었던 적의 몸이 사선으로 잘려 넘어갔다.
아무래도 남선의 도운패를 만나려면 조금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비강은 땅을 가볍게 밀며 동쪽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쫓아라!”
“놈이 동천으로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죽여야 한다!”
등 뒤를 쫓고 있는 약추완은 비강이 하북으로 넘어가기 전에 잡고 싶었다.
동쪽에도 이미 강호인들이 진을 치고 있기야 하겠지만, 비강을 잡기에는 규모와 힘이 모자랐다.
‘빌어먹을. 이번에는 놈을 반드시 잡을 것이라 확신했는데.’
실망도 잠시, 약추완은 비강의 앞을 막아선 자들을 주시했다.
기분 나쁜 음습한 기운이 그들에게 느껴졌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너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어서 연비강을 쫓아라!”
“부천주의 엄명을 받듭니다.”
사련의 고수들은 약추완을 향해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비강이 사라진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 * *
동쪽을 향해 달리던 비강은 사나운 개들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벽사군.”
컹! 컹!
시커멓고 날렵하게 생긴 개 두 마리가 나무 사이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달려왔다.
컹!
삼장까지 접근한 사냥개 두 마리가 땅을 박차며 비강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순간 비강의 신형은 공중으로 도약한 사냥개 사이를 지나갔다.
퍼퍽!
사냥개 두 마리의 몸통이 분리되며 땅바닥에 고깃덩이처럼 처박혔다.
비강은 사냥개들이 달려온 방향으로 걸었다.
연이은 혈전으로 인해 내공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육체도 무거워져 가고 있었다.
면사를 쓴 벽사군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고 은운곡의 총관 마태관이 뒤를 이었다.
하아…….
비강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설마 은운곡의 총관까지 자신의 죽음을 원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중천의 벽사군과 함께 나타날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비강은 벽사군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마 총관, 설마 은운곡이 저 계집에게 넘어간 거요?”
마태관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해 슬쩍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맞나 보군.”
“그럴 수밖에 없었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음을 짐작한 비강은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추궁하지 않았다.
“백리혈 연비강, 너는 마동의 마왕으로 있으면서 천하 강호인들의 눈을 속이고…….”
스릉……!
벽사군의 준엄한 꾸짖음은 비강이 검을 뽑는 소리에 멈춰 버렸다.
비강이 검을 뽑자마자 등 뒤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참으로 눈물 나는 충정이로군.”
스아악……!
십 장의 거리를 격하고 있던 비강의 신형이 사라졌다.
찰나, 벽사군을 가로막고 있는 자들의 앞으로 가느다란 선 하나가 접근했다.
아니,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벽사군의 앞을 막아서고 있던 자가 선을 향해 내딛으며 검을 뿌렸다.
순간 선은 수직에서 수평으로 변하며 그자의 허리를 자르고 지나갔다.
스악. 서걱.
크르륵…… 커억!
뒤이어 좌우에 있던 자들의 가슴과 목이 베이고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순간 좌우에 있던 다른 자들이 비강의 좌우로 짓쳐 들었다.
벽사군은 십 장의 거리를 건너뛰듯 순식간에 다가온 비강의 눈과 마주쳤다.
조금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시리도록 차가운 눈.
세상의 그 어느 사내가 자신을 그런 눈으로 대할 수 있을까.
크아악! 아아악……!
연이어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벽사군은 급히 신형을 움직였다.
“저기다!”
어느새 약추완과 중천의 고수, 강호인들이 뒤를 따라붙은 것이다.
벽사군의 수하들과 혈전을 벌이던 비강은 벽사군을 향해 일 검을 그어 내고는 좌측으로 신형을 움직였다.
스아악.
희뿌연 기운 하나가 벽사군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콰쾅!
가까스로 희뿌연 기운을 쳐 낸 벽사군의 신형이 뒤로 밀려났다.
“대주!”
수하들이 놀라 그녀 주위로 몰려들었다.
벽사군은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사라져 가는 비강의 등을 바라보았다.
비록 적이라 하지만 저 연비강이라는 자를 얻고 싶었다.
저 연비강이라는 자를 얻게 된다면 무후라는 꿈도 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시천세가 왜 저자를 그토록 미워하는지는 모르지만, 수하로 거두게 된다면 충분히 그를 납득시킬 자신도 있었다.
벽사군은 시천세와 비강의 관계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 * *
적들의 추격을 피해 관도로 내려온 비강의 앞을 또 다른 자들이 가로막았다.
그자들은 바로 황곡의 고수이자 시천세의 직속 수하들이었다.
“끝도 없군.”
비강의 입에서 절로 그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내공을 아끼기 위해 벽사군과 일전을 벌일 때는 용아포와 가문의 무공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과는 상대조차 되지 않는 자들이 앞을 막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황옥과 우화봉은 목숨을 건졌다. 몇 달 동안 침상 신세를 벗어나가 어렵겠지만. 연비강, 우리는 너를 적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형제들의 목숨을 빼앗고 해한 원수로 대할 뿐이다.”
황곡의 고수가 이런 말을 하는 와중에도 비강은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황곡의 고수들이 서 있는 방향은 남쪽이었다.
남쪽을 막고 서 있는 저들의 수는 여덟.
몸이 온전한 상황에서도 쉽지 않은 상대들이었겠지만, 지금은 더욱 힘든 상대들이었다.
‘단번에 뚫는다.’
비강은 오른쪽 발을 내디디며 허리의 검을 뽑았다.
마치 발검의 자세와 비슷했으나 검에서 흐르는 기운은 막강하기 그지없었다.
“피해!”
그것을 알아본 황곡의 고수들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후우우웅,!
무형의 기운 한 줄기가 그 사이로 빠져나가고, 또 다른 무언가가 그들을 덮쳤다.
콰콰콰쾅!
다섯 마리의 용이 관도를 질주했다.
그리고 그 뒤를 비강의 신형이 좇았다.
관도를 길게 갈라 버린 용들이 모습을 감췄을 때, 뿌연 먼지들이 하늘로 피어올랐다.
하지만 황곡의 고수들도 이렇게 간단하게 비강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들의 신형도 비강이 사라진 방향으로 빠르게 멀어져 갔다.
* * *
하하…….
남쪽으로 달리던 비강이 저 멀리 모여 있는 강호인들을 발견하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숫자는 비록 이삼백에 불과했으나 잠시 잠깐이나마 시간을 벌 만한 숫자였다.
만약 저들과 혈전을 벌이게 되면 황곡의 고수들이 뒤를 따라붙을 것이다.
비강은 다시 동쪽으로 신형을 틀었다.
서쪽은 깎아지른 산들이 가로막고 있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빠져나가기 어려웠다.
속도가 늦어지면 또다시 적들이 까맣게 사방을 에워쌀 것이다.
비강이 사라지고 바로 황곡의 고수들이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도 관도를 막고 있는 강호인들을 알아보았다.
“저들이 멀쩡하다면 놈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을 거야. 서쪽은…… 험하군.”
그렇게 짐작한 그들은 바로 동쪽으로 몸을 날렸다.
황곡의 고수들이 사라지고 잠시 후 수많은 강호인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약추완과 중천의 고수들을 위시한 강호의 고수들이었다.
“놈이 이쪽으로 도망치지 않았다면 어느 쪽으로 갔단 말이냐?”
약추완도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강호인들을 알아보았다.
“동쪽이에요.”
뒤를 쫓아온 벽사군이 먼저 동쪽으로 움직이자 약추완도 그쪽으로 움직이려다 말고 주변을 훑었다.
음습한 기운을 흘리던 자들이 어느새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부천주, 그자들은 사파의 고수들이었을 겁니다.”
우동문이 먼저 동쪽으로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확실한 것이냐?”
약추완도 경공으로 달리며 말을 받았다.
“예. 저는 확신합니다. 두궁천이 할아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사파의 정예들을 동원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내게는 일언반구조차 없었느냐?”
“나름대로 그자들을 이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구나.”
“죄송합니다, 부천주.”
“되었다.”
* * *
한편 동쪽으로 달리던 비강은 이미 하북으로 들어섰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산길을 달리다가 관도로 내려온 비강을 수많은 무인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높고 낮은 언덕에 서서 비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군.”
“그렇지. 바로 네놈을 기다리고 있었어.”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비강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커다란 대도를 쥐고 있는 삼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서 있었다.
그 대도는 언젠가 한번 마주했던 병기였다.
그리고 그 병기의 주인은 비강의 손에 죽었다.
“두궁천.”
“연비강.”
비강과 두궁천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을 때, 일단의 무리가 장내로 날아들었다.
“드디어 잡았구나, 연비강.”
그들은 바로 황곡의 고수들이자 황옥과 우화봉의 동료들이었다.
그러나 두궁천이나 연비강이나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천천히 몸을 돌린 두궁천이 조용히 허리를 숙였다.
“황곡의 전설들을 뵙습니다.”
“너는 누구냐?”
관심이 생긴 고수들이 이름을 물었다.
“동천의 두궁천입니다.”
하나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비강의 목을 취해 원수를 갚고자 했다.
“동천? 우리가 그런 것에 구애를 받아야 하느냐?”
“아닙니다. 하지만 동천의 주인께서는 다르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 말이 두궁천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고수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분께서 이곳에 없다면 우리들은 연비강을 직접 벨 것이다.”
“그분께서는 이곳에 계십니다. 하나 별로 만나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거짓말!”
그들은 비강을 이렇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남궁악이라는 존재가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제 말이 거짓이라면 다음에라도 저의 목을 베십시오.”
당당한 두궁천의 대꾸에 할 말을 잃은 그들은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
“두궁천이라고 했느냐?”
두궁천은 여전히 머리를 조아린 채 대답했다.
“예. 매일같이 지난날을 후회하며 살아가는 병신이올시다.”
스스로를 병신이라고 하는 자는 처음 보았다.
“인물이구나. 강호에 너와 같은 인물도 있었구나.”
적잖이 감탄한 그들은 잠시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연비강, 어차피 너는 이곳에서 죽게 되었다. 만약 천운이 따라 살아남는다면 우리 손에 죽게 될 것이다.”
“기대하지.”
비강의 담담한 대꾸에 그들은 설핏 코웃음을 짓더니 신형을 돌렸다.
백리혈 연비강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은 일찍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벌써부터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백산 형이 놈에게 죽었다.
거기다 더해 동료들까지 죽고 황옥과 우화봉은 생과 사의 경계에서 헤매고 있었다.
“두궁천, 그분께 안부나 전해다오.”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곡의 고수들이 떠나가자 두궁천은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멀어져 가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무저갱처럼 깊고 어두웠다.
“내게 볼일이 있다면 빨리 시작하지.”
두궁천은 비강을 향해 몸을 돌리며 싸늘한 미소를 지어냈다.
“너는 내 말을 거짓으로 들었던 모양이구나.”
담담했던 비강의 안색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동천의 주인이 이곳에 있나?”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너를 죽음에 이르게 할 분이니.”
말을 마친 두궁천은 길게 뻗은 관도를 걷기 시작했다.
비강도 말없이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걸음을 옮기던 비강은 길게 뻗은 관도와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웃었다.
“죽기에 참 좋은 날이구나.”